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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1월, 귀국길에 오른 참치잡이 원양어선 한 척이 해상에서 구조신호를 수신한다.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한 난민들이었다. 이른바 보트피플. 식량도 연료도 떨어져 표류하는 그들의 구조신호를 이미 많은 배들은 외면하고 지나쳐갔다. 이 원양어선 역시 본사로부터 상관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선장은 회사의 명령을 어기고 96명의 난민을 구출하여 부산항으로 돌아온다. 그 후 난민들은 미국의 보호를 받았지만, 그들을 구한 선장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재취업도 거부당했다. 양심의 대가로 미래를 잃은 것이다.
이것은 원양어선 ‘광명 87호’와 전재용 선장의 실화이다. 소설 『흔들리며 피는 꽃』은 선장의 양심적 결단으로 고초를 겪었을 그 가족의 후일담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것이다. 풍비박산이 난 한 가족의 역사, 그리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선장의 담담한 토로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존엄,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위대하고도 불변하는 가치를 숙고하게 한다. 고난과 역경에 흔들리면서도 피어나는 꽃, 인간은 그러한 존재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세계 최고의 자살률, 꿈과 상상력을 키워야 할 아이들이 시달리는 심한 입시 경쟁 , 인터넷에 범람하는 악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세월호 같은 대형 사고 등,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존엄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자기가 속한 사회에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빠른 경제적 성장으로 인한 후유증, 후기 산업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과도한 경쟁에서 오는 좌절감과 불안은 개인의 자존감을 잃게 한다. 자존감이 낮은 개인이 다수인 집단일수록 불안과 불만이 쌓이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가들은 한 개인 개인의 존엄을 살리는 정책을 통하여 복지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기업가 역시 회사 구성원들의 기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신문을 비롯한 매스컴에서도 사회 구성원들이 모멸감을 느끼는 사건을 파헤치는 뉴스보다 좀더 사회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존엄을 세우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으면 좋겠다. 이번 장편 『흔들리며 피는 꽃』은 우연히 알게 된 ‘광명 87호’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를 유튜브로 보았을 때의 감동을 소설화한 것이다. 30년 전, 전재용 선장은 난민 구출에 관여치 말라는 선박회사의 명령까지 물리치고 베트남 난민 96명을 구출하여 무사히 부산 난민촌에 안착시켰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 가족의 안녕까지도 위협하는 결단이었다. 전재용 선장은 귀국 후 직업을 잃었다. 이 작품은 그의 가족들이 겪었을 후일담을 상상력으로 복원한 것이다. 전재용 같은 의인이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것을 작품화하고 싶었다. 전재용 선장이 난민을 구한 사건까지는 실화지만 나머지는 모두 허구적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몇십 년간 소설을 연구하고 소설을 써오면서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에서 정치가를 비롯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집단이 한 개인의 존엄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소망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성장만큼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존엄이다. 사회복지는 개인의 존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존감이 높을 때 그가 속한 단체와 사회는 활기차고 타인에 대한 배려로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 소설은 예술이기 때문에 심미적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심미적 목적을 드러내는 감동이 인간에 대한 감동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 한 편의 소설로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는 미시적 파동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