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서문 들어가기에 앞서 1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의 빈센트 반 고흐 _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서(1890년 5월 20일~7월 29일) 2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유화 작품과 습작 _ 전 작품 수록(1890년 5월 20일~7월 29일) 3부 반 고흐 유작 계승자 요안나 봉허 _ 기록 에세이(1862년 10월 4일~1925년 9월 2일) 빈센트 반 고흐 연보 |
|
1890년 5월 20일,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와즈 강변에 위치한 전원 마을에 도착한 반 고흐는 라부 여관의 작은 방에서 7월 29일에 숨을 거두었다. 그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머문 시간은 앞에서 언급한 다른 장소들에서 보낸 시간들보다 훨씬 짧다. 하지만 그는 그 어디에서도 오베르에서만큼 생산적으로 작업하지 못했다. 그는 오베르에서 70일 동안 70점이 넘는 그림을 남겼다. 이 책에는 그곳에서 그린 작품 전체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그림에 반 고흐가 오베르에서 보낸 최후의 날들에 대한 묘사가 덧붙여져 있다. --- p.14
오늘날까지 반 고흐에게는 가난뱅이, 병자, 미치광이, 우울증 환자, 알코올 중독자, 성격 파탄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고립된 사회부적응자, 거친 성격의 소유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살아생전에 오로지 한 개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반 고흐라는 인물은 동시대 사람들의 무지에 의해 제물로 바쳐져 순교자처럼 죽음을 맞았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서는 영화, 책, 기사 등을 통해 많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 p.15 반 고흐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비난을 받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그러한 이유로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다. 테오를 통해 그의 그림을 접한 운 좋은 몇몇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목 있는 평론가들의 글을 게재하는 잡지인 《메르퀴르 드 프랑스》는 1890년 초에 혁신적이며 대범한 그의 그림에 대해 엄청난 찬사를 보내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는 반 고흐가 사망하기 약 6개월 전의 일이다. 반 고흐가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절망했고 그로 인해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심할 정도로 순진한 일이다. 반 고흐는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 화가였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으며 진심으로 이해했다. --- p.18 〈사랑하는 테오와 조에게 보내는 편지〉 이제 조를 만난 이상 테오에게만 편지를 쓸 수는 없겠다, 조는 내가 프랑스어로 쓰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프랑스 남부에서 2년을 보내고 오니 이렇게 프랑스어로 쓰는 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베르는 매우 멋진 곳이다. 이곳에는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늙은 초가지붕이 널려 있다. 이러한 풍경을 열심히 그리면 이곳에서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곳은 심각하게 멋지다. 정취가 가득한 전형적인 시골이다. --- p.28 반 고흐는 오베르에 머문 70일 동안 뛰어난 그림을 많이 남겼다. 짧은 기간을 고려하면 그 수는 매우 놀랍다.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그는 놀랄 만한 속도로 그림을 그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작품을 완성했다. 이 시기에 그가 남긴 걸작으로는 〈오베르 쉬르 와즈의 교회〉, 〈가셰 의상의 초상〉 그리고 숨 막히도록 근사한 〈밀밭〉 연작이 있다. 반 고흐의 건강 상태는 최상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정한 몇몇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작업을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예전보다 술을 적게 마셨으며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했다. 또한 많은 시간을 걷는 것에 할애했다. 이는 그를 더욱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베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크게 만족했다. --- p.30 반 고흐에게 최고의 적은 고독감이었다. 그가 머물던 곳은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였으며 원하기만 한다면 파리행 기차를 타고 동생이나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가 고독감을 느꼈다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오베르에서 첫 몇 주 동안 그가 유일하게 만난 사람은 가셰 의사였다. 반 고흐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가셰 의사에게도 우회하거나 예의를 차리지 않고 정면에서 직접적으로 다가갔다. 반 고흐는 간단한 특색 몇 가지만으로 가셰 의사의 모습을 편지지에 스케치했다. 그는 단번에 가셰 의사가 자신의 형제이자 불운한 동료, 예술가의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 고흐는 평소 어려움을 겪은 사람에게 호감을 가졌다. 이러한 점에서 아내를 일찍 떠나보낸 가셰 의사는 반 고흐가 호감을 가질 만한 인물이었다. 반 고흐는 가셰 의사와 함께 판화와 색깔, 고대와 현대 미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 p.37 반 고흐는 순수한 색깔 자체만으로도 무엇인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로 인해 그가 만들어 낸 색깔을 통한 작업 방식은 ‘현대 초상화’라고 부르는 장르 안에서 완성되었다. 〈가셰 의사의 초상〉에는 그가 연구한 여러 기법이 모여 있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대범한 구도는 참으로 놀랍다. 그의 그림에는 기술적으로 통제가 잘된 색감의 조화와 대비로 인해 더욱 강조되는 색깔, 상징성을 띤 오브제들, 잘 표현된 모델의 슬픔 등 걸작의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 p.44 |
|
영혼을 울린 화가, 반 고흐!
오베르에서 보낸 그의 마지막 70일을 들여다보다 70일 동안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전 그림 수록! 반 고흐, 그는 마지막 70일 동안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을까? 반 고흐, 그는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70일을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는 80여 점이 넘는 그림을 남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오베르에서 반 고흐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절대적이며 필수적인 존재였다. 반 고흐가 오베르에서 머문 시간은 다른 장소에서 보낸 시간들보다 무척이나 짧다. 하지만 그는 그 어디에서도 오베르에서만큼 열정을 다해 작품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이 책에는 반 고흐가 오베르에서 남긴 그림 전체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저자들은 뛰어난 분석으로 각각의 그림에 반 고흐가 보낸 최후의 날들에 대한 묘사를 덧붙였다. 독자들은 이러한 소중한 자료들을 통해 반 고흐가 하루하루 어떤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 임했는지는 물론 반 고흐의 인간적인 면과 미술에 대한 그의 엄청난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미치광이, 우울증 환자, 성격 파탄자……. 반 고흐에 대한 끊임없는 오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반 고흐를 가난뱅이, 미치광이, 우울증 환자, 알코올 중독자, 성격 파탄자이며 사람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살아생전에 오로지 한 개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불운의 화가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 그는 절대 가난하지 않았으며 미치광이도, 사회부적응자도 아니었다. 오베르에서 작성한 그의 편지들은 그가 저주받은 불행한 화가였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말해 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반 고흐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고 그의 그림 역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 고흐의 유작 계승자 요안나 봉허! 반 고흐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세상에 알리다 반 고흐에 대해 출간된 책들을 살펴보면 요안나 봉허라는 여성이 자주 등장한다. 요안나는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아내이다. 반 고흐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생이자 친구였던 테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28세에 혼자 남겨진 요안나는 시숙인 반 고흐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1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에서는 요안나가 자신의 임무를 얼마나 훌륭하게 완수하였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그녀가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어 더욱 실감나게 그녀의 활약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