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萬甲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인목대비 폐위 사건이 터지나 벼슬을 버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귀향했다. 인조반정 후 다시 벼슬에 올라 1625년 교리가 되었다. 하지만 서인인 김류가 북인 남이공을 등용하자 이를 반대하다 강동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종사관이 되어 왕을 따라 강화도에 가서 풍기를 바르게 하고 도민을 서로 경계하게 해 범죄를 엄하게 다스렸다. 이듬해 한양으로 돌아 와 병조정랑·수찬·지평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김류 등의 탄핵으로 다시 귀양을 떠났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단신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왕을 모시고 공조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인목대비 폐위 사건이 터지나 벼슬을 버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귀향했다. 인조반정 후 다시 벼슬에 올라 1625년 교리가 되었다. 하지만 서인인 김류가 북인 남이공을 등용하자 이를 반대하다 강동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종사관이 되어 왕을 따라 강화도에 가서 풍기를 바르게 하고 도민을 서로 경계하게 해 범죄를 엄하게 다스렸다. 이듬해 한양으로 돌아 와 병조정랑·수찬·지평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김류 등의 탄핵으로 다시 귀양을 떠났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단신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왕을 모시고 공조참의·병조참지로서 관향사가 되어 군량 공급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 무고를 받아 영해로 귀양 갔다가 1639년 풀려나와 영천(지금의 영주)에서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는 『병자록』과 『구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