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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51 서경별곡 0112 가시리 0433 정석가 0834 청산별곡 1295 한림별곡 1736 만전춘별사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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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들도 흩어지고 사라져요. 노래를 만든 작곡인(作曲人)도, 그 노래를 부른 가인(歌人)도, 노래를 연주한 악공(樂工)도,노래에 맞춰 춤춘 무인(舞人)도 저마다의 인생을 살다 죽습니다. 그들이 흙으로 돌아갈 때 많은 노래도 함께 영원히 멈췄어요. 하지만 아주 적은 수의 노래는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고 춤추던 이들이 사라진 뒤에도 살아남아 널리널리 불려요. --- p.6
의지가 확고하더라도, 의지가 확고할수록 아쉬움도 깊다는 것을 아청은 그 밤 처음 느꼈다. 좌와 우 모두 제국의 막강한 힘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는 저항하자 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는 항복하자 했다. --- p.35 셋은 열 살이었다. 뭍에서라면 집 밖 출입이 어려웠겠지만 강화경에선 사람도 짐승도 일찍 철이 들었다. 전쟁은 어린 생명을 애늙은이로 만들었다. 죽음이 항상 삶 가까이 있었다. --- p.56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는군. 숲길을 걷는데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만 같아 멈췄다고 해. 돌아서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고, 또 걷다가 기다리고…. 그렇게 서러웠대. 눈물이 쏟아질 만큼.” --- p.111 그녀에게 죽은 좌는 추억의 대상이지만 살아 있는 좌는 미래의 목표였다. 그녀는 노래 연습에 몰두했다. 우는 연습실 밖에 서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손에 땀이 차올랐다. 질투심이었다. --- p.133 오늘 첫 곡으로 들은 노래에 대한 고음의 평도 다행히 그 속에 있었다. 필체가 시원시원했다. ‘강화경으로 들어온 뒤론 왕국의 국토 전부가 전쟁터다. 산도 예전의 산이 아니고 바다도 예전의 바다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평화가 없듯 영원한 전쟁도 없다. 전쟁이 지독할수록 평화가 간절한 법이다. 평화의 산과 바다를 노래하는 마음에 피가 서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래쪽 여백엔 더 짧은 아청의 평도 가는 붓으로 적혔다. ’바로 손에 쥔 것처럼!‘ --- p.160 그렇게 바라보던 날들이 일상이던 시절도 있었다. 아청은 팔방상 연습실에서, 좌와 우는 삼별초 훈련장에서 일과를 마친 후 약속도 없이 모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먹고 거닐고 노래하고 춤추었다. --- p.186 진도가 텅 빌 만큼, 섬에 살던 왕국의 백성들이 삼별초의 잔당으로 간주되어 끌려왔다. 몸과 몸이 굴비처럼 엮여 제국으로 향했다. 다치거나 병들어 걷지 못하게 된 자들은 길에서 도륙되었다. --- p.190 남이 설계도를 찢지 않은 날에는 우 홀로 술을 몰래 마셨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밤을 틈타 아청이 머무는 방 앞까지 가기도 했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제국의 대신 앞에 무릎 꿇은 날보다 이 밤이 더 서러웠다. --- p.195 “천 개의 동굴을 모두 구경한 후엔 하얀 사슴을 보러 가자.” “하얀 사슴?” “한라산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어. 눈 내리고 안개 자욱한 날이었는데, 정말 눈처럼 하얀 사슴이 지나갔지. 행운을 몰아다 주는 영물이래.” --- p.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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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살아 돌아온 750년 전 노래의 주인공!꼭 셋일 필요는 없으나, 아청이 포함될 때 그들은 늘 셋이었다. 셋에서 둘이 되고, 둘에서 하나가 될 날이 멀지 않음을 예감하면서도, 셋은 애써 그 예감을 외면했다. 한 사람을 얻음으로 한 사람을 잃는 길을 가기에는 셋이 쌓아올린 탑이 너무나 견고하고 완전했으므로. 선택의 날은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왔다. 왕이 몸소 제국의 수도에 가서 황제 앞에 엎드려 그들의 속국이 되기를 간청한 것이다. 길고긴 날들을 버티며 전쟁을 이어갔지만 제국은 압도적으로 강했다. 좌와 우가 서로 다른 시간에 아청을 찾아왔다. 두 벗 다 제국이 지닌 무소불위의 힘을 인정했으나 미래를 향한 의지와 희망의 길이 달랐다. 그러므로 우는 왕과 대신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 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는 저항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지금껏 좌와 우의 의견이 갈릴 때 아청은 두 사내 모두 섭섭해 하지 않는 절충안을 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절충할 지점이 보이지 않았다. 두 벗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미래를 바라보며 좌와 우가 치러냈을 숱한 고뇌와 불면의 밤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자신이 개입할 틈이 없었다. 결코 하나로 모을 수 없는 희망이었다. 아득한 갈림길 앞에서 아청의 가슴은 미어졌다. -35쪽 의지가 또한 사랑인 여인, 사랑이 또한 의지인 사내번개처럼 빠르고 당당한 청년 우는 확신했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둘이 남아야 하는 날에 아청은 결국 자신의 여인이 되리라고. 고통은 없고 기쁨만 들꽃처럼 피어오르던 시절, 우의 사랑은 열 살 초봄에 시작되었다.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을 걸어 온통 붉게 피어오른 진달래를 꺾기 위해 좌와 함께 절벽을 올랐던 그 날, 절벽 아래 선 아청이 진달래꽃보다 고운 목소리로 ‘가시리 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렵니까…,’ 새로 배운 노래를 처연하게 부르던 그 날, 소년 우는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청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기억의 접점마다 드러난 아청의 속 깊은 배려를, 우는 그녀 마음 역시 자신과 같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개경으로 향하는 배에 아청은 없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많던 고음의 유품까지 통째로 들고 아청은 어디로 숨어든 걸까? 아청이 좌에게 갔을 리 없다며 도리질 쳤지만, 우는 알았다. 좌와 우, 그리고 아청이 스무 해 넘도록 견고하게 쌓아올린 시간의 탑은 이제 산산이 깨어졌다. 복원되지 못할 우정,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아름다운 시절. 그러므로 더욱 아청을 놓쳐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삼별초 동료들과 등 돌리면서까지 이 길을 택한 까닭은, 오로지 아청과 더불어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가장 좋았던 벗 좌와 양보 없는 결전을 벌여야만 하리라. 힘과 힘, 재능과 재능, 전략과 전략이 맞서는 목숨 건 혈투를 피할 수 없으리라. ‘전쟁이 지독할수록 평화가 간절한 법이다.평화의 산과 바다를 노래하는 마음에 피가 서려 있음을 이지 말아야 한다.’평화와 안녕은 아득하게 멀었지만 땅 위에서 목숨 부지하는 이들은 언젠가 맞이할 꿈결 같은 날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소망했다. 두고 온 고향 산천에 다시 깃드는 노래, 떠나간 사랑을 그리는 노래, 영원을 기원하는 노래, 빼앗긴 나라 백성으로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노래, 이별 없는 궁극의 사랑을 맹세하는 노래…. 고단한 나날을 견디고 황폐해지기 쉬운 마음을 다독이는 방편이기도 했다. 이제 많은 백성은 제국에 머리 조아린 왕과 대신들을 따르는 대신 남쪽으로 가는 삼별초의 행렬에 동참했다. 그들을 가득 실은 배의 수가 천여 척에 달했다. 1270년 6월 초, 강화경을 떠나 거센 물결 위에 위태롭게 내던져진 사람들을 위무하듯 한 줄기 노래가 울려퍼졌다. 높고 깊고 따듯한 목소리. 방상의 으뜸 가인 아청이 부르는 새로운 희망의 출정가였다. 선유 장편소설 『가시리』, 과거와 현재가 만나 변주하는 또 다른 사랑노래 소설은 아청이 부르는 별곡을 배음으로 하여 그때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가치와 욕망, 염원과 상실을 단단하고 품격 있는 문장으로 되살려낸다. 강화를 떠나 안면소(안면도)와 진도를 거쳐 제주로 깃들기까지, 위험천만한 전투와 고난의 현장을 감싸 안던 아청의 노래는 남녀노소 모두의 가슴에 파고들어 한 사람 한 사람, 그들 생의 의미를 새로이 환기시키는 촉매제였다. 그리고…, 양극단의 무리 맨 앞에는 아청의 오랜 벗 좌와 우가 서 있었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나무처럼 싱싱한 꿈을 지녔으되 사랑을 잃고는 단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웠던 청춘들. 엇갈리고 부딪히고 피 흘리면서도 정직하게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낸 그들의 이야기는 선유 장편소설 『가시리』로 다시 태어나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또 다른 사랑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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