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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중국의 농업기술 발달과 주자학
02고려, 주자학을 받아들이다 03조선, 개국하고 쇄국정책을 택하다 04정도전, 농본이상국가를 세우다 05조선의 사대교린과 쇄국정책 06송시열, 주자의 후계자를 꿈꾸다“ 예송논쟁과 소중화주의 07예치: 조선 유교는 초기 단계에 있었다 08양반 독점체제, 사회발전을 가로막다 09양반에게는 국방의무가 없다 10경국대전 체제, 경제발전을 가로막다 11상품유통 경제를 막아라 12조선에는 상품과 상인이 없었다 13군자, 소인, 그리고 경연: 중심을 잡지 못한 조선 14이의 세계 조선과 기의 세계 일본 15일본의 습합문화: 모방문화와 일본화 16일본의 침략전쟁: 정한론, 아시아연대론, 탈아시아론 17조선과 일본의 주자학과 양명학 18북학과 실학 주자학에 대한 반성 19양반사대부의 세도와 부패: 한성판윤은 평균 4개월 20대원군의 보호정책: 개혁사상가 21갑신정변: 개혁사상인가, 매국사상인가 22강대국 의존: 해바라기 버림받다 23한국의 저항민족주의: ‘왜 때려’ 민족주의 24반쪽 주자학과 반쪽 자유민주주의 25전시작전통제권 되찾아야 한다 26유라시아 지정학과 대량사회와 문화이동 27문화민족주의와 포퓰리즘 28동북아시아의 분수령: 한반도의 지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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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은 이러한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생겨난 지주층의 이익을 주장하고 옹호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자기 수양을 이룬 다음에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주자학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은 인간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배움을 통한 사회적 성장 가능성을 사대부들에게 열어주었다. 또한, 배워서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사대부들에게 기회균등 또는 평등사상의 논리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13~14세기에 사대부들이 ‘신권’을 주장한 것은 1215년 영국에서 귀족들이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맺은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와 모양새는 다르지만 역사적 흐름을 같이 한다. 이렇게 주자학을 학문적 기반으로 하여 관료사회에 진출한 사대부들은 ‘군주권’에 대항하여 ‘신권’을 주장했다.--- p.20
조선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이의 주자학 원리주의(fundamentalism)이다. 조선의 주자학은 우주가 생겨난 불변의 원리인 ‘이’가 지배하는, 즉 교육을 통해 백성을 교화하여 예가 바로 서는 이상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그에 따라 조선의 주자학은 새로운 학문을 이단이라고 단정하면서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고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농업만을 본업이라 하여 장려하고 상업이나 과학기술을 말업이라며 억압했다. 이것이 조선의 사회정책인 ‘무본억말(務本抑末)’이다. --- p.39 정도전이 모범으로 삼은 주나라는 대략 기원전 2000~3000년에 존재한 국가이다. 이 시기는 인류 역사에서 원시 공산사회가 국가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노예사회로 가는 시기이다. 노예사회에서는 모든 백성이 국가의 노예이다. 사유재산은 없고 모든 권력과 재산은 집권자에게 집중되었다. 정도전은 개인 재산이 없는 일종의 공산주의 사회를 구상했다. 조선의 경제정책은 미래지향적인 발전정책이 아니라 정체되고 변화가 없는 복고주의적 답보정책이었다. --- p.104 일본은 조선을 통해서 중국의 유교와 주자학의 세계질서관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일본의 무사사회에 알맞게 인종주의 세계질서로 바꾸었다. 인종주의 세력 확대 수단은 전쟁이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도 인종주의 세계질서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유럽 세력들이 몰려올 때에 세계질서관을 바꿀 필요 없이 쉽게 국내의 제도를 개혁하여 일본은 현대화하고 유럽화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세력들과 함께 군사적으로 아시아를 침략할 수 있었다 --- p.179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은 정도전이 세운 ?경국대전? 체제를 바꾸려 했다. 정도전의 쇄국정책을 개방정책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그는 조선을 바로 세우고 개방하려 했으나 서양과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이 밀려오므로 조선이 이에 대응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 주체성을 지키려는 보호정책을 폈다. 대원군은 또한 당파와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 인재를 등용하여 당파싸움을 막으려 했다. --- p.238 중국은 세계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단일국가이자 세계에서 제일 크고 통합이 잘된 지역 공동체로서, 과거 중화세계의 변방(주변)이었던 동남아시아와 한반도에 진출하려고 한다. 일본은 이에 대응하여 1990년대에 동남아시아에 ‘제2의 대동아공영권’을 만들려고 했다.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은 19세기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지렛대로 이용한다. 미국은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1997년에 일본과 미ㆍ일 방위지침을 합의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유사시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동아시아 방위책임을 맡게 했다. 이것은 일본의 이중적인 탈아시아정책을 잘 보여준다. --- pp.345~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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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4색 당파의 근원, ‘주자학’
조선 왕조의 사상적 기반인 주자학은 어찌하여 조선을 멸망시켰나? 조선을 덮고 있었던 숲은 바로 주자학이었다. 조선 500년 동안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은 주자학이라는 숲에서 자라난 나무, 혹은 가지에 불과했다.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군사 등 모든 문제를 지배했다. 조선은 ?경국대전?을 통해 이 원칙 절대로 고치거나 바꾸지 못하도록 원칙을 정해놓았으며, 후세 사람들은 이에 순종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책을 내면서 중 조선의 ‘주자학’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사회 전체의 발전을 막았고, 결국 조선이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침탈당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조선을 통해 주자학을 받아들인 이웃 나라 일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자학을 해석했고, 주자학의 원조인 중국에서조차 양명학 등의 새로운 학문이 대세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왜 조선은 주자학 원리주의를 고집했을까? 이 책은 주자학이 과거의 조선과 지금의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해석하고 있다. ‘주자학’은 과거의 조선, 그리고 지금의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 책은 조선왕조가 창건되면서부터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으로 4색 당파를 지목하고, 그 근원에 주자학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조선이 얼마나 쇄국했고 주자학을 만들어냈던 중국보다 더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이를 해석했는가, 또한 이것을 조선 사회에 적용하여 ‘이’의 주자학을 원리주의 종교로 500년 동안 얼마나 숭배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조선과 함께 주자학과 양명학을 받아들였던 일본은 어떻게 다르게 해석했고 발전했는가를 비교해보았다. 또한 지정학적 시각에 따라 조선 시대와 현재의 한국을 대비하려 했다. 조선 시대와 해방 전후의 국제정치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5장 ?전시작전통제권 되찾아야 한다?에서는 강대국에 의존하다 결국 버림받은 조선과 현재 상황을 대비했다. 26장 ?유라시아 지정학과 대량사회와 문화이동?에서는 세계화 시대에 유라시아 대륙의 세력구조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내다보았다. 27장 ?문화민족주의와 포퓰리즘?에서는 세계화 시대의 정치변동 수단인 대량사회와 포퓰리즘에 대한 대응 수단을 서술했다. 28장 ?동북아시아의 분수령: 한반도의 지정학?에서는 세계화 시대 유라시아 세력 중심의 구조에서 한반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과거 4색과 당쟁에서 사회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찾으려 했다. 그러한 생각은 조선 역사를 세계역사의 흐름에서 이해하고 조선의 주체성을 찾아보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책을 쓰려고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4색이 정당의 시초였다는 생각은 잘못임을 알게 되었다. 조선 사회에서는 그 어떤 다양성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통치자와 사회다양성의 역사이기도 한데, 조선의 정치사는 국민이나 사회와는 관계없는 양반 지배층의 역사였다. 역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의 하루하루를 모아 정리한 기록이다. 정치의 역사와 민주주의 역사도 그 속에 포함된다. 정치사는 곧 민주주의 역사이다. 민주주의는 통치자와 국민과의 관계 속에 정립된다. 대의정치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근대에 와서야 대두된 주장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백성을 하늘로 섬겨라”라는 민본주의 사상이 있었다. 다만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다. 필자는 한국 역사, 한국 정치사상을 전공하지 않았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조선의 역사를 다루었으니 많은 질책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 역사를 다루는 사람들이 “4색은 정당의 시초이다”라는 내용으로 한반도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주체적인 역사를 새로 쓰는 또다른 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