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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깊은 절망의 밤에 평화의 꿈을 꾼다 7
1부 강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 평화의 길목에서 보낸 편지 13 1. 왜 교도소 앞마당에서 평화를 배워야 하나요? 15 송강호의 옥중일기 1 24 2. 평화의 학교는 이미 열려 있어요 35 송강호의 옥중일기 2 56 3. 군사기지로 고통받는 작은 섬들의 연대를 꿈꾸며 61 송강호의 옥중일기 3 77 4. 평화의 꿈을 좇는 난민이 됩시다 81 송강호의 옥중일기 4 98 5. 공권력의 폭력에 노출될 때 103 6. 다시, ‘3천년의 꿈’을 꿉시다 121 7. 포기할 수 없는 꿈, 생명평화의 마을 ‘강정’ 139 제주법정 최후진술서 1 (2012. 12. 20) 149 8.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도를 꿈꿉니다 157 제주법정 최후진술서 2 (2013. 1. 21) 165 9. 역사는 악인뿐 아니라 방관자도 심판합니다 175 10. 다시, 평화의 돛을 올립니다 193 11. ‘자유의 도성’ 대한민국을 꿈꾸며 207 12. 한국전쟁은 왜 60년 전쟁이 되었나? 223 13. 폭력과 싸우는 힘, 상상력 241 송강호의 옥중일기 5 248 14. 통일 길목을 지키는 이정표들 261 15. 젊은이들에게 군복무 대신 ‘평화복무’를 277 16.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정당을 꿈꾸며 293 17.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 313 2부 강정 이후를 말하다 - 평화를 만드는 대화 331 에필로그 - 평화의 답장을 기다리며 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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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9 군사주의나 전쟁 그 자체의 투쟁은 힘과 무력에 의한 싸움이 아니다. 평화를 위한 싸움은 상상력과 예술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며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다. 우리는 승리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하며 현실 너머에 있는 가능성의 세상을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의 상상력이 폭력을 이기는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p.41 언젠가 선생님은 “제주가 그리고 강정마을이 그런 평화를 위한 학교가 되어야 한다. 강정마을이 평화 공원, 평화의 학습장이 되어야 한다. UN 평화대학을 유치하자” 이야기하셨죠. 사실 그때 저는 강정마을이 처한 현실, 그러니까 해군기지 공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만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앞일을 내다볼 여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요즘 그런 것들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의 꿈은 평화학교 짓는 것이었지요. --- p.53 저는 정의와 평화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빛이 거기에서 비취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불의한 강자에게 억울하게 짓밟힌 약자들이나 불화와 갈등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가 있습니다. 이들이 딛고 있는 고통스런 대지에 하나님의 나라가 닿아 있습니다. --- p.116 어두운 길을 혼자 걷는 것처럼 몹시 외로워 본적이 없느냐고요? 있었지요.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정의와 평화 같이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우리를 고독한 인생으로 만듭니다. 그런 삶은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손해를 보아야 하고 때로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거나 수감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치거나 목숨을 잃어야 하기도 할 테니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지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잊혀 간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 p.135 내가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그래서 무기와 그 무기를 만드는 기업이 더 많이 줄어든다면, 그래서 우리 사회가 군대가 아니라 조금 더 아름다운 얼굴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따금씩 상상해 보곤 하는 거지요. 선생님은 그것을 바로 ‘꿈’이라고 말씀하실 테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병역기피자, 혹은 이상주의자로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말처럼 그리스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도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현실적일 수도 없고, 현실적이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 p.191 이제는 평화를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쟁업자들이 팔고 있는 불안에 중독되지 않을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의 불안한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안까지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보았던 공포를 잃어버린 딱딱해진 마음이 아니라, 불안을 희망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진 평화를 연습해야 합니다. --- p.221 평화운동은 어쩌면 앞으로 분명 ‘국가의 이익’이라는 신화를 넘어서야 할지 모릅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국경을 넘어서는 일이야말로 보편적 인권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건너야 하는 커다란 목표일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 국가의 이익이 권력자들의 이익이 되고 국경이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친구가 되는 길에 장애가 된다면 언젠가는 그 국경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 p.251 제가 처음 선생님과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게 된 것도 선생님의 체포 때문이었지요. 편지를 주고받았던 별로 길지 않은 그 시간 동안 선생님의 체포와 구속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군요. 주민들의 완력과 저항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기에 거대한 기업과 정부, 군대는 주민들을 기어이 감옥으로 보내려는 것일까요. 강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평화를 희망하는 일이 그렇게 위험하고 불법적인 걸까요. 이 땅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가, 돌아갈 곳이 평화의 길이 아니라면 두터운 담장 안의 좁은 방이라도 피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 p.278 군복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청년 시절 1년 6개월이나 되는 인생의 황금기를 철창 속에 갇혀 지내야만 했으니까요.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형제님을 접견하러 갔던 날, 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던 제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국가가 자신의 양심과 신념으로 선택한 삶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으며 자국의 폭력 이데올로기를 강요해도 되는 것일까?’ 국가의 무지나 나태가 아니라 철저한 무능함이고 악독이라는 절망감에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 p.316 나는 평화에 대한 신념 때문에 세 번째 수감이 되었습니다. 수감될 때마다 감옥은 나를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평화의 꿈이 어떤 고난이나 슬픔이 닥친다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만큼 소중한 것임을 수용생활 속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평생을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천하고 전파하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은 변할 수 없습니다. --- p.328 저는 지금도 ‘평화수감자’라는 말이 이상합니다. 평화를 감옥에 가두고야 마는 우리의 역설적 현실을 그 이름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그 이름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감옥에 평화수감자라 불러야 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비극입니다. 하지만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발걸음은 평화를 향한 희망일 것입니다. 단지 하루뿐이지만 추운 겨울에 우리가 평화를 위한 감옥의 고통과 무게에 함께할 수 있는 날이기에 소중하게 지켜가려 합니다. --- p.335 저는 해군기지가 준공이 되면서 평화운동이 오히려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고 봐요. 준공이 되었으니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무언의 질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이제 해군기지가 건설이 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강정을 새로운 평화운동의 모판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새로운 상황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응답이 무엇인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해군기지의 준공은 강정에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새롭게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결단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어요. 이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봅니다.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4년간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강정마을에는 결국 해군기지가 완공되었고, 사드 배치 문제로 이번에는 성주 소성리 주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수 천 명의 공권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올해 들어 북한은 한 달에 몇 차례씩 미사일을 발사했고 핵실험까지 진행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평화도 멈추지 않습니다. 강정마을에는 군사기지를 감시하고 다시 해군을 내보내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성주 주민들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추리는 이제 10년이 되었지만 아직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평화교육을 위한 활동도 과거보다 활발해졌습니다. 다른 나라의 분쟁지역과 연대하는 활동도 계속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 p.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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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제주도는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지만 바로 2년 후(2007년) 해군기지 사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정부는 해군기지를 강정마을에 유치하기로 결정한다. 강정마을은 주민투표를 실시해 해군기지 건설 반대로 저항하지만 결국 2011년에 공사는 강행된다. 구럼비 바위의 혼을 보호 계승하고 강정의 생태계 속 생물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마을 주민들은 권력과 힘겹게 싸웠다. 송강호는 구럼비 폭파 현장에서 철조망을 넘다가 공무 업무 방해혐의로 체포 구속된다. 송강호는 약 1년의 수감생활로 고초를 겪는다. 1부는 송강호의 수감생활 중 평화활동가 박정경수와 주고받은 편지글을 엮은 것이다. 박정경수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 6개월 수감생활 경험이 있고 군사기지 반대운동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일까. 그는 평화와 투쟁의 삶의 고단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둘의 교감은 각별했다. 송강호는 보석으로 석방되지만 시위를 계속 이어간다. 강정마을 주민 모두에 큰 상처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평화의 섬 제주도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활동가들은 현재를 산다고 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틈을 내는 몸부림, 그것이 이들 삶의 본질이기도 하다. 해군군사기지는 완공되었지만 강정 평화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강정 이후를 말하다 누가 시간이 지나면 서로 잊힌다고 했든가. 몸에 새겨진 세월은 지워지지 않는다. 송강호가 활동하는 ‘개척자들’이 있는 양평 ‘샘터’에서 송강호와 박정경수가 오랜만에 만났다(2016년 12월 26일). ‘강정 이후’를 말해보기 위해서이지만 현재의 투쟁에서 희망을 말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강정의 ‘이후’를 말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평화는 투쟁의 끝이 아니라 항상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지속적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굳이 희미한 희망을 말한다면 “평화는 가둘 수 없다”는 믿음이랄까.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이 평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인터뷰를 하고도 1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평화 투쟁’ 중이다. ‘평화수감자’의 삶 누구도 가둘 수 없는 평화 의지와 몸짓. 지역의 특수한 사건의 현장에서 보편적인 평화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투쟁했던 자들 없이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평화는 지속될 수 없다. ‘평화수감자들’이 미래의 불가능한 희망을 현재에 앞당기는 ‘사건적 몸짓’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평화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다. 평화를 진작하는 ‘평화수감자들’의 투쟁적 삶은 현재도 계속 되고 있지만 이러한 비극적 현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할 때까지 그 누군가에 의해 이 평화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평화는 가둘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