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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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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출연진 소개3

감독Woody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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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5살 무렵 처음 극장에 들어섰던 소년 ‘앨런 스튜어드 코니스버그’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25개 정도의 극장이 있었다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8,9살 쯤에는 모르는 배우가 하나도 없을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다. 글쓰기의 감각을 타고난 그는15살 때부터 주당 25불을 받고 신문의 가십을 썼으며 카바레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대본을 써주며 유명해지기 시작해서 1961년에는 결국 자신이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우디 앨런’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코미디언의 시작이다. 1965년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의 시나리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5살 무렵 처음 극장에 들어섰던 소년 ‘앨런 스튜어드 코니스버그’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25개 정도의 극장이 있었다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8,9살 쯤에는 모르는 배우가 하나도 없을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다. 글쓰기의 감각을 타고난 그는15살 때부터 주당 25불을 받고 신문의 가십을 썼으며 카바레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대본을 써주며 유명해지기 시작해서 1961년에는 결국 자신이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우디 앨런’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코미디언의 시작이다.

1965년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의 시나리오를 쓰고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영화제작에 입문한 우디 앨런은 1969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강도의 해프닝을 그린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감독, 각본, 주연을 멋지게 해내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1977년 <애니 홀>로 자신이 단순한 광대짓이나 통속 코미디가 보장하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후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만 30여 편에 이른다.

초기작에서 우디 앨런은, 채플린이 그랬듯이 순진하고 착하지만 무력하고 서툰 사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까지 고민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심약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한편, 막스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아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코미디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으며, <애니 홀> 이후에는 베르히만과 펠리니 등 유럽거장의 영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고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실험하면서 속 깊고 진지한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78년 뉴욕 상류층의 불안을 묘사한 <인테리어스>로 드라마에도 도전장을 내밀었고, <또 다른 여인(1988)>에서는 그가 숭배해 마지 않는 베르히만을 아예 모방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도 우디 앨런의 모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와 30년대 헐리우드 공포물을 연상시키는 <그림자와 안개(1992)>, 미아 패로와의 파경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을 주는 <부부일기(1992)>를 비롯하여 뮤지컬까지 욕심을 낸 <마이티 아프로디테(1995)>와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를 잇달아 발표했다.

수많은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그는 가장 개인적인 주제를 영화화하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련의 영화에 대한 영화들, 감독과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은 내밀한 조크와 자기반영적인 개그가 스며있어 우디 앨런을 이해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애니 홀>에서 코미디 작가 앨비 싱어는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효과음으로 넣어가며 억지웃음을 만드는 LA 스튜디오에서 경악하고,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에서 영화감독 샌디 베이츠는 비평가와 열성팬에 둘러싸여 있지만 악몽에 시달리며 성공의 쓴 맛을 톡톡히 보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쇼비즈니스의 이면을 드러내며 진짜 예술가는 누구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풍자의 맛을 한 껏살린 코미디는 우디 앨런이 아니라면 그렇게 유쾌하게 표현해내기는 힘들 것이다.

[필모그래피]

카산드라 드림()|감독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감독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주연배우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감독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주연배우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감독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1996)|감독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1996)|감독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1996)|주연배우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1996)|주연배우
개미(1998)|주연배우
헐리우드 엔딩(2002)|각본
헐리우드 엔딩(2002)|발 왁스만
헐리우드 엔딩(2002)|발 왁스만
헐리우드 엔딩(2002)|발 왁스만
헐리우드 엔딩(2002)|발 왁스만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2003)|도벨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2003)|도벨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2003)|도벨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2003)|도벨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2003)|각본
매치포인트+10분단편(2005)|감독
매치포인트(2005)|감독
스쿠프(2006)|감독
스쿠프(2006)|각본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감독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각본

Woody Allen의 다른 상품

출연Woody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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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5살 무렵 처음 극장에 들어섰던 소년 ‘앨런 스튜어드 코니스버그’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25개 정도의 극장이 있었다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8,9살 쯤에는 모르는 배우가 하나도 없을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다. 글쓰기의 감각을 타고난 그는15살 때부터 주당 25불을 받고 신문의 가십을 썼으며 카바레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대본을 써주며 유명해지기 시작해서 1961년에는 결국 자신이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우디 앨런’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코미디언의 시작이다. 1965년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의 시나리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5살 무렵 처음 극장에 들어섰던 소년 ‘앨런 스튜어드 코니스버그’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25개 정도의 극장이 있었다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8,9살 쯤에는 모르는 배우가 하나도 없을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다. 글쓰기의 감각을 타고난 그는15살 때부터 주당 25불을 받고 신문의 가십을 썼으며 카바레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대본을 써주며 유명해지기 시작해서 1961년에는 결국 자신이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우디 앨런’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코미디언의 시작이다.

1965년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의 시나리오를 쓰고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영화제작에 입문한 우디 앨런은 1969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강도의 해프닝을 그린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감독, 각본, 주연을 멋지게 해내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1977년 <애니 홀>로 자신이 단순한 광대짓이나 통속 코미디가 보장하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후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만 30여 편에 이른다.

초기작에서 우디 앨런은, 채플린이 그랬듯이 순진하고 착하지만 무력하고 서툰 사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까지 고민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심약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한편, 막스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아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코미디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으며, <애니 홀> 이후에는 베르히만과 펠리니 등 유럽거장의 영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고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실험하면서 속 깊고 진지한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78년 뉴욕 상류층의 불안을 묘사한 <인테리어스>로 드라마에도 도전장을 내밀었고, <또 다른 여인(1988)>에서는 그가 숭배해 마지 않는 베르히만을 아예 모방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도 우디 앨런의 모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와 30년대 헐리우드 공포물을 연상시키는 <그림자와 안개(1992)>, 미아 패로와의 파경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을 주는 <부부일기(1992)>를 비롯하여 뮤지컬까지 욕심을 낸 <마이티 아프로디테(1995)>와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를 잇달아 발표했다.

수많은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그는 가장 개인적인 주제를 영화화하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련의 영화에 대한 영화들, 감독과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은 내밀한 조크와 자기반영적인 개그가 스며있어 우디 앨런을 이해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애니 홀>에서 코미디 작가 앨비 싱어는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효과음으로 넣어가며 억지웃음을 만드는 LA 스튜디오에서 경악하고,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에서 영화감독 샌디 베이츠는 비평가와 열성팬에 둘러싸여 있지만 악몽에 시달리며 성공의 쓴 맛을 톡톡히 보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쇼비즈니스의 이면을 드러내며 진짜 예술가는 누구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풍자의 맛을 한 껏살린 코미디는 우디 앨런이 아니라면 그렇게 유쾌하게 표현해내기는 힘들 것이다.

[필모그래피]

카산드라 드림()|감독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감독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주연배우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감독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주연배우
마이티 아프로디테 (1995)|감독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1996)|감독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1996)|감독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1996)|주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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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엔딩(2002)|각본
헐리우드 엔딩(2002)|발 왁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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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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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Charlotte Ramp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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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램플링

NATO 장군이면서 화가인 브리티쉬 콜로넬의 딸로서, 프랑스에서 베르사유의 잔 다르크 아카데미와 영국 부쉴리의 세인트 힐다 스쿨에서 수학했다. 영화배우가 되기 전 모델도 했던 그녀는 루치노 비스콘티의 1969년작 <지옥에 떨어진 용감한 자들>, 1974년작 <비에나 호텔의 야간배달부>로 알려졌으며 션 코넬리와 함께 <자도즈>의 주연을 맡았고 우디 앨런의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 폴 뉴먼과 함께 시드니 루멧의 <버딕트> (1982)에도 출연했다. 언제나 개성있으면서도 파워풀한 역할을 소화하는 램플링은 오시마 나기사의 1986년 코미디 <내 사랑 맥스>에 침팬지와 사랑에
NATO 장군이면서 화가인 브리티쉬 콜로넬의 딸로서, 프랑스에서 베르사유의 잔 다르크 아카데미와 영국 부쉴리의 세인트 힐다 스쿨에서 수학했다. 영화배우가 되기 전 모델도 했던 그녀는 루치노 비스콘티의 1969년작 <지옥에 떨어진 용감한 자들>, 1974년작 <비에나 호텔의 야간배달부>로 알려졌으며 션 코넬리와 함께 <자도즈>의 주연을 맡았고 우디 앨런의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 폴 뉴먼과 함께 시드니 루멧의 <버딕트> (1982)에도 출연했다. 언제나 개성있으면서도 파워풀한 역할을 소화하는 램플링은 오시마 나기사의 1986년 코미디 <내 사랑 맥스>에 침팬지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으로도 출연했으며 최근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스위밍 풀>에서 잊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필모그래피]

비엔나 호텔의 야간배달부(1974)|주연배우
엔젤 하트(1987)|주연배우
스위밍 풀(2003)|주연배우
레밍(2005)|주연배우
엔젤(2007)|헤르미온느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2008)|주연배우
바빌론 A.D.(2008)|조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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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11년 11월 15일
시간/무게/크기
89분 | 크기확인중
연령제한
15세 이용가
KC인증

줄거리

< 메뉴 >

- Interactive Menus
- Scene Selection


< 감독소개 >

* 감독 : 우디 알렌 Woody Allen 1935.12.1

본명은 알렌 스튜어트 코닉스버(Allen S. Konigsberg). 뉴욕 대학과 뉴욕 시립대학을 다녔으나 두 군데에서 모두 퇴학당했다. (뉴욕대학의 필름 프로그램에 등록했다가 '영화 제작'과목에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학교를 중퇴했다)

고등학생 시절인 1950년부터 짧은 글을 써서 얼 윌슨이나 여러 신문사에 투고했는데, 윌슨의 소개로 쇼단의 짤막한 보도 자료를 쓰는 자리를 얻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드 씨저의 TV쇼에 스텝으로 참가했는데, 글을 쓰는 일은 1961년 '개리 무어쇼'를 마지막으로 끝냈다. 그 후 스탠드 업 개그맨으로 나섰는데, 1964년에 프로듀서인 찰스 펠드먼이 나이트클럽에서 그를 보고 〈What's New, Pussycat?〉을 쓰도록 고용했다. 1966년엔 그의 첫 번째 브로드웨이 무대인 〈물을 마시지 마라〉 가 대성공을 킵었?1969년에는 험프리 보가트의 〈카사블랑카〉를 패러디한 〈보기, 나도 남자다(Play It Again, Sam)〉가 또 다시 대성공을 거두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1966년에 일본 스파이 영화를 재편집해 자신이 직접 쓴 영어대사로 더빙한 영화 〈타이거 릴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였지만, 실질적인 데뷔작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강도를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돈을 갖고 튀어라〉(1969)였다. 주연과 각본, 감독을 맡았던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우디 알렌은 이후 유대계 뉴요커가 산 마르코스로 가서 난데없이 대통령이 된다는 정치와 매스컴에 대한 풍자극 〈바나나 공화국〉(1971),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1972), SF 코미디로 초현실적인 개그가 돋보이는 〈슬리퍼〉(1973) 등을 만들며 승승장구한다.

77년작인 〈애니홀〉은 코미디 영화감독 우디 알렌의 재능이 만개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알렌의 영화는 고급스러워지는데, 그는 앙그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 장 르누아르 등 유럽의 거장들이 시도했던 영화언어를 코미디에 결합한다. 베르히만의 비관주의가 짙게 베인 〈인테리어〉(1978), 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더스트 메모리〉(1980)이 그러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알렌은 코미디가 전문인 감독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뉴욕에 대한 자전적인 송시라 할 수 있는 흑백영화 〈맨하탄〉(1979), 가상인물인 유대인 젤리그에 관한 가짜 다큐멘터리와 뉴스릴 필름을 뒤섞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감쪽같이 지워버림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효시로 기록된 〈젤리그〉 (1983) 등이 그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알렌은 80년대와 같은 방식으로 영화 연출 작업을 계속한다. 적은 예산으로 자신을 변함없이 지켜봐주는 컬트 관객들을 위한 시류와 관계없는 영화를 만들어간 것이다. 90년대의 대표작으로는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 〈마이티 아프로디테〉(1995), 그의 최초의 뮤지컬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 등이 있다.

영원한 뉴요커답게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의 특색이기도 하다. 1992년 미아 패로가 저명한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살 때, 입양했던 순이의 나체 사진을 자신의 집 벽난로에 뒀다가 발각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미아 패로와의 갈등으로 그는 항상 사생활이 노출된 채 살아야 했으며, 순이와는 우여곡절 끝에 97년 12월 결혼했다. 나이 차이가 무려 35년. 두 사람은 뉴욕에 거주하며 1999년 첫 딸 베쳇을, 2000년 둘째딸 맨지 티오를 입양했다.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 즉 유대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뉴욕 중산층의 자의식과 죄의식, 자기 내부에 은밀히 도사리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도시인의 소심증을 특유의 재담으로 풀어낸 감독이다.


< 줄거리 >

성공한 영화감독인 샌디 베이츠는 더 이상 괴짜 코미디를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대중은 그에게서 코미디를 원하고, 그의 첫 번째 진지한 영화는 외면당한다. 그는 스타더스트 호텔에서 주말을 보내며 그의 인생, 작품, 인간관계를 돌아보는데, 그러던 중 그는 도리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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