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 1896년 지금의 체코 프라하에서 폴란드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바르샤바 미술대학과 크라쿠프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카피스트’로 활동했다. 차프스키는 1939년, 독일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예비역 장교로 참전했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스타로벨스크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0년 소련군에 의해 자행된 악명 높은 ‘카틴 대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그는 그랴조베츠 수용소로 이감된 뒤 이듬해 8월에 풀려났다. 이후 재입대해 학살 당시 사라진 폴란드의 장교들을 수색하는 임무를 맡는 한편, 전쟁 막바지에 이탈
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 1896년 지금의 체코 프라하에서 폴란드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바르샤바 미술대학과 크라쿠프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카피스트’로 활동했다. 차프스키는 1939년, 독일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예비역 장교로 참전했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스타로벨스크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0년 소련군에 의해 자행된 악명 높은 ‘카틴 대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그는 그랴조베츠 수용소로 이감된 뒤 이듬해 8월에 풀려났다. 이후 재입대해 학살 당시 사라진 폴란드의 장교들을 수색하는 임무를 맡는 한편, 전쟁 막바지에 이탈리아 전선에 다시 투입되었다. 종전 후 파리에 정착한 차프스키는 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동시에 프랑스의 폴란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 『쿨투라Kultura』의 기획 및 편집에 참여하여 작가이자 비평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차프스키는 그랴조베츠 수용소에 함께 수감되어 있던 포로들을 위하여 1940년부터 이듬해인 1941년까지 마르셀 프루스트를 주제로 한 강의를 연 바 있고, 그 강의록이 이 『쿨투라』지에 발표되면서 훗날 책으로 출판되었다. 1993년 사망했으며, 메닐르루아 묘지에 묻혔다.
직수입외서의 경우, 해외거래처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부족하여 제목, 표지, 가격, 유통상태 등의 정보가 미비하거나 변경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확한 확인을 원하시는 경우, 일대일 상담으로 문의하여 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판형과 판수 등이 다양한 도서는 찾으시는 도서의 ISBN을 알려 주시면 보다 빠르고 정확한 안내가 가능합니다.)
해외거래처에서 품절인 경우, 2차 거래선을 통해 유럽과 미국 출판사로 직접 수입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수입 진행 시점으로 부터 2~3주가 추가로 소요되며, 해외에서도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도서는 품절 안내가 지연될 수 있습니다. 해당 경우, 문자와 메일로 별도 안내를 드리고 있사오니 마이페이지에서 휴대전화번호와 메일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