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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파리
2부. 볼로냐 3부. 이타카 4부. 베네치아 5부. 파리 에필로그. 나폴리 |
Laurent 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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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안경 너머로 바야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길고 긴 이야기의 비밀스런 결말을 자신만이 알고 있는 듯이 천천히, 음절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롤랑 바르트는 죽었어요.” “하지만 누가 그를 죽였다는 겁니까?” “시스템이죠. 당연히.” 푸코가 사용한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바야르가 막연히 품고 있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맙소사. 역시 좌파에게 걸려들었군!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좌파들의 입에선 ‘부패한 사회, 계급투쟁, 시스템’ 같은 말만 나올 뿐이다. --- p.35 그는 인쇄물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시몽 에르조그에게 물었다. “기호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사회적 삶 속에 있는 기호들을 연구하는 학문?” 바야르는《롤랑 바르트 쉽게 읽기》를 떠올리고 이를 악물었다. “그 말을 불어로 하면?” “하지만… 그게 소쉬르가 내린 정의인데요….” “소쉬르인지 쇼쉬르(신발)인지 그 사람이 바르트를 아나요?” “어, 아니요. 소쉬르는 죽었어요. 기호학의 창시자입니다.” “흠. 알겠습니다.” 하지만 바야르는 사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 p.55~56 시몽은 바야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이 중에 살인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바야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모두에게 혐의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뭘 찾고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바르트가 가지고 있던 물건, 훔치는 것만으로 모자라 그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귀중한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 p.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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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가 죽었다. 아니, 살해당했다.
1980년, 프랑스의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문예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살해당했다. 또한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문서를 지니고 있었다. 너무나 강력하고 위험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숨겨야 했던 비밀, 바로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담은 문서였다. 중년 마초-자크 바야르와 풋내기 기호학자-시몽 에르조그의 톡톡 튀는 케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정보국 수사관 바야르. 그는 우선 롤랑 바르트의 주변 인물들 탐문에 착수한다. 하지만 대학가의 먹물들이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뱅센 대학의 젊은 강사, 시몽을 ‘통역사’로 데리고 다니며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이 둘은 이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소설 같은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하나부터 열까지 티격태격하는 이 콤비가 과연 사건의 진상과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무사히 풀어낼 수 있을까? 원자폭탄보다 강력하다는 괴문서의 힘, 문서를 차지하려는 정치 세력들의 각축전 일찍이 소쉬르와 함께 언어학을 창시했던 러시아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은 언어의 6가지 기능을 정의한 적이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일부러 숨기려고 했는지 야콥슨은 언어의 7번째 기능을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바야르를 수사관으로 파견한 프랑스 대통령 지스카르는 ‘언어의 7번째 기능’이 원자폭탄보다 중대하다고 단언한다. 수사 과정에서 바야르와 만난 이탈리아의 현인 움베트로 에코는 이 기능을 터득한 자가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토록 강력한 비밀문서를 두고 정치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 지스카르,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미테랑, 소련의 KGB 국장 안드로포프 등 당대의 정치인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68세대를 비롯한 20세기 지식인들이 모두 (가면을 벗은 채) 모였다. 주인공 시몽과 바야르는 수사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을 만난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같은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비롯해 쥘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같은 페미니스트 학자들까지, 얼굴을 비추는 세기의 지성들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한다. 이 지식인들이 당대의 전통을 무너뜨렸듯이, 저자 로랑 비네도 ‘고고한 지식인’이라는 이들의 성역을 가차 없이 무너뜨린다. 작품 속에서 이들은 각자의 욕망과 이익을 좇는다.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며, 독자들이 예상하지 못할 속물적인 인간상을 보이기도 한다. 언뜻 보면 저자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 무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당돌한 태도야말로 진짜 ‘신예 작가다운’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예 작가의 ‘머리가 즐거운 소설’. 저자 로랑 비네는 데뷔작 『HHhH』로 공쿠르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바르가스 요사와 존 르 카레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가 5년 만에 다시 내놓은 두 번째 작품 『언어의 7번째 기능』 역시 프랑스 FNAC 소설상과 엥테랄리에 상을 받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시점이 다른 99개의 짤막한 장들이 그물처럼 엮인 구성 방식, 곳곳에 스리슬쩍 내비치는 복선들은 독자들에게 퍼즐을 맞춰 나가는 듯한 재미를 준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서술 기법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움베르토 에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정하고 독자를 웃기려 하는 대신에 적절하게 들어간 위트 역시 이 소설의 백미로 빼놓을 수 없다. 단순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작품을 원하던 독자들에게 『언어의 7번째 기능』은 ‘머리를 즐겁게 하는 독서’를 선사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