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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 세 가지 질문
이 책의 용어 프롤로그_ 어떤 죽음의 풍경 Chapter 1 만약에… 01 환자가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더라면 02 가족과 함께 미리 '만약의 경우'에 대해 논의했다면 03 담당 의사가 완화의료에 정통했더라면 04 사전에 연명치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Chapter 2 나는 호스피스 의사다 01 말기암 환자에게 인슐린 치료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02 당신, 환자랑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잖아! 03 무뚝뚝한 노무라 씨도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04 환자를 살리는 것도 가족이고 죽이는 것도 가족이야 05 곧 질식합니다, 그때까지만 고통을 참으십시오? 06 깔끔한 기타 씨는 신루를 원치 않았다 07 다만 1초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라면 08 사실은…, 깊이 사랑했습니다 09 나를 아끼는 선생님을 믿어요 10 환자의 변화를 감지하는 의사인가? 11 언제까지나 이마에 주름진 의사로 12 다시 무릎을 굽혀 환자와 같은 눈높이로 Chapter 3 후회 없는 죽음이란 01 우리 몸은 스스로 낫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 02 모르핀도 약이다 03 편견을 버리면 끔찍한 고통이 줄어든다 04 작은 알악이 큰 위안을 주다 05 절대반지는 있지만 절대약제는 없습니다 06 언제부터 죽음을 멸시하게 됐을까? Chapter 4 연명치료란 무엇인가 01 그는 죽기로 결심했다 02 인공호흡기를 장착하시겠습니까? 03 임종을 지키자고 고통을 주지 마십시오 04 모든 환자에게 전기충격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05 말기암 환자에게 소생약이 필요할까? 06 일반 병동에서 시행되는 의료 Chapter 5 그곳은 밝고 따사롭다 01 큐어와 케어가 공존하는 곳 02 완화의료 의사란 에필로그_ 또 다른 죽음의 풍경 맺는말 |
大津秀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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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으로 어지럽게 연결된 채 병상 위에 누워 있는 A씨의 모습은 불과 몇 달 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아들은 자신이 구역질을 느낀 원인이 아버지의 그런 비참한 모습 때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초점 없이 반쯤 뜬 눈, 아무렇게나 벌려진 입, 고무공처럼 부풀어 오른 온몸……. A씨의 암 발병 사실이 가족에게 통보된 지 두 달 후, 결국 A씨는 세상을 떠났다. 이 사례에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앞서 머리말에서 묘사한 임종 장면과 큰 차이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실제 이런 식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죽음의 현실’이다. ---pp.23-24
대체로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 본인의 의향을 ‘추측’해서 결론을 내리곤 한다. “OO는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면 충격이 심할 거야. 그러니까 통보하지 않는 게 좋아.” 하지만 이런 추측은 주제넘은 생각이다. 환자 본인에게 남은 생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어쩌면 죽기 전에 무언가를 꼭 해보고 싶은 강렬한 희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다른 가족의 추측 때문에 짓밟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슬프고도 불행한 일이다. ---p.32 나는 의사로서 혈당 관리법을 배웠다. 혈당이 높은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혈당 측정을 실시하고, 경구약으로 조절할 수 없을 때는 인슐린주사를 놓았다. 환자의 혈당을 관리하는 것은 나에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과연 모든 환자에게도 상식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의료 현장의 상식은 이상한 것뿐이었다. 가족이 환자 곁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는 심장마사지, 말기암 환자에게 사용되는 혈압상승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시행되는 혈당 측정 등 내가 환자라면 절대 받고 싶지 않을 처치들이 의료 현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p.53 그 후로도 B 선생님은 틈만 나면 기타야마 씨에게 병명을 알리자고 가족을 설득했다. “불쌍하잖아요.”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으면 딱해서 어떡해요?” “특별히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편, 딸, 아들은 그렇게 말하며 거절했다. 이 가족에게 부족한 점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아니었다. 가장 부족한 점은 유연성과 상상력이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가?” “이 상황에서 환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환자의 가족은 이런 질문들을 해가며 환자를 위해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p.88 물론 가족과 의사 모두 환자가 더 오래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고통이 없는 범위 내에서 환자 본인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상태로’최대한 오래 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고통스럽든 얼마나 비참한 상태든 상관없이 일분일초라도 더 오래 살라고 환자에게 강요하는 일은 가족의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 환자에 대한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일분일초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가족에게 의료인은 매우 약해진다. 인공호흡기를 장착하면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의료인은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가족이 “생명을 연장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의료인은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만……”이라고 모호하게 대답해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료인은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 “인공호흡기를 달면 생명은 연장되지만, 움직이거나 말할 수 없습니다. 단순하고 무의미한 생명 연장일 뿐입니다.” ---p.125 언제부터 죽음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죽음을 멸시하게 되었을까? 인공호흡기를 달고, 문자 그대로‘살아 있기’만 한 상태가 된 인간을 앞에 두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마치 살아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듯, 살아 있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하다는 듯 사람들은 오늘도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쭉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식으로 죽어야 행복할까?’와 같은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뇌사와 같이 호흡이 완전히 정지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서 계속 살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은 이미 손에 넣은 상태다. 인간의 마음이 의학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pp.204-205 완치만을 목표로 환자의 고통을 살피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의료에 그치고 만다. 또한 완치 가능성이 있어 완치를 기대하는 환자에게 완화의료만 실시한다면(이런 사례는 별로 없겠지만) 역시 반쪽짜리 의료에 그칠 것이다. 큐어와 케어는 항상 동시에, 둘의 비중을 알맞게 조절하면서 되도록이면 병행해야 한다. 더 이상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의 치료를 모두 중단하고, 앞으로 완화의료에만 전념하겠다는 식의 흑백논리는 낡은 생각이다. 호스피스에서는 큐어와 케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치료를 시행해 나간다. 그리고 완화의료는 실시하지만,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실시하지 않는다. 다만 환자가 희망한다면 연명치료라고 생각되는 치료를 실시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되도록이면 환자의 희망에 따르는 형태로, 개별적인 치료법을 고민한다. ---p.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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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인생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면!
후회 없는 죽음을 위한 마지막 버킷 리스트 얼마 전 종영된 한 드라마에서 젊은 30대 여성이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친구인 의사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은 인생 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중요한 항암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어리석어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여성이 암 선고를 받는 일이 드라마에 나올 정도로 오늘날 암 환자의 수는 크게 증가했고 성별과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암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암의 치료법도 그만큼 발전했지만, 이제 문제는 단순한 치료나 소생이 아니다. ‘소생술’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의료 시술과,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조치들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삶’과 비참한 ‘죽음’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0명에 이르는 수많은 말기암 환자를 직접 옆에서 지켜본 저자는 호스피스 전문의다. 원래는 일반 병동의 내과의였지만, 비상식적인 마지막 조치들로 인해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한 환자들을 보아오면서 호스피스 의사로 전향했다. 이 책은 저자가 ‘한 사람이라도 비참한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여러 사례들과, 호스피스에서 경험한 사례들을 담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통찰과 함께, ‘죽음을 선고 받은 환자와 가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답을 통해 얼핏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주제를 담담히 풀어냈다. 어느 날 내가 출근했다가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갔다가 말기암 선고를 받고 당장 입원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만일 내가 그런 환자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소생’을 위해 뼈가 부러질 수도 있는 심장마사지를 받거나 인공호흡기로 연명해야 한다면,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병명조차 듣지 못한 채 점점 죽어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낀다면, 그것이 진정 후회 없는 마지막 순간일까? 물론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일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고, 가족과 의사가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에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스스로 그런 죽음이 비참하다고 생각되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병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기 둘째, 불치병 통보 문제나 마지막 순간에 대해 가족과 대화하기 셋째, 완화의료를 받기 넷째,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기 그중 완화의료와 관련된 호스피스 의료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호스피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지원 모두가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호스피스 하면 병을 낫게 하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 치료를 받는 곳이기 때문에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호스피스에서 불치병을 낫게 하는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훨씬 인간적이고 고통 없이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인생의 끝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환자를 위해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은, 아니 아주 여러 번은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