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지미 카터
구순 기념 회고록
베스트
정치/외교 top100 2주
가격
17,000
10 15,300
YES포인트?
8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서문 / 5
제1장 가족, 어린 시절과 인종문제 / 11
제2장 해군 시절 / 53
제3장 조지아로 돌아와서 / 103
제4장 애틀랜타에서 워싱턴으로 / 145
제5장 백악관 생활 / 175
제6장 임기 중 거의 해결한 사안들 / 207
제7장 끝나지 않은 문제들 / 263
제8장 고향으로 / 303
옮긴이의 글 / 351
찾아보기 / 356

저자 소개 1

지미 카터

관심작가 알림신청
 

James Earl Carter Jr.

미국 제39대 대통령. 1924년 땅콩농부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잠수함에서 대위로 근무했으며, 서른 살에 고향에 정착해 아내 로잘린과 농기구 판매회사를 열었다. 1062년 민주당 소속 조지아 주 상원의원, 1970년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1976년 52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재임 중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소련과의 SALT Ⅱ 협정 등의 업적을 남겼으나 오일쇼크, 이란 인질사태 해결 실패 등으로 지지도가 추락해 1980년 공화당 레이건 후보에 밀리면서 재선에 실패한다. 재임 중 ‘가장 인기
미국 제39대 대통령. 1924년 땅콩농부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잠수함에서 대위로 근무했으며, 서른 살에 고향에 정착해 아내 로잘린과 농기구 판매회사를 열었다. 1062년 민주당 소속 조지아 주 상원의원, 1970년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1976년 52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재임 중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소련과의 SALT Ⅱ 협정 등의 업적을 남겼으나 오일쇼크, 이란 인질사태 해결 실패 등으로 지지도가 추락해 1980년 공화당 레이건 후보에 밀리면서 재선에 실패한다.
재임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평가됐던 그는 현재 ‘가장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2년 그가 설립한 카터재단은 전 세계 인권과 환경 문제는 물론 다양한 국제분쟁에 개입하였으며, 지미 카터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작 활동도 활발하여 『아름다운 노년』, 『해뜨기 전 한 시간』 등 12권의 책을 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562g | 153*224*30mm
ISBN13
9788920029073

책 속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완전과 영광에서 빗나가 버렸고 따라서 벌을 받기에 마땅하다는 점,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의 행위가 아닌 그의 은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완전한 용서의 길을 제공하셨다는 점, 그리고 우리에 대한 징벌을 예수 자신이 대신 받았기에 우리가 회개하고 이 용서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 그리고 우리 안에 머무는 성령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점 등이 내용이었다.
--- p.138

그들이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서약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설명한 믿음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함께 기도해 주었다. 그때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주의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해 몇 가지 방문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때 나는 앞으로 우리가 만날 사람들에게 이제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또 신기하게도 우리가 종종 서투르게 설명하더라도 그 결과에 조금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나는 그건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느껴”라고도 덧붙였다. 우리가 이뤄 낸 성과, 즉 우리가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변화의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기독교 신앙의 깊은 효력을 느꼈다.
--- p.139

로크 헤이븐에 거주하던 40명 이상의 사람들이 새 교회를 설립하기로 했고, 우리는 그들이 파이퍼 항공사의 활주로 끝자락에 있는 버려진 빌딩에 세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교제가 가능하다는 들뜬 마음을 가지고 로크 헤이븐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 p.141

그는 그리스도 본인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늘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온유했다는 것을 나에게 상기시켰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한 가지 단순한 원리를 따른다고 말했다. “당신의 삶 속에서 두 가지 사랑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또 다른 하나는 어떤 특정한 시간에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죠.” 크루즈의 말은 내 인생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고, 나는 종종 그의 말을 되새긴다.
--- p.143

조지사 주지사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공관에서 가장 가까운 침례교회에 등록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같은 원칙에 따라 백악관에서 겨우 몇 구역 떨어진 제1침례교회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교회의 주일교회 교사였던 프레드 그레그는 내게 가끔씩 성경공부반에서 가르칠 수 있을지 물었는데, 나는 이 사실을 공지하지도, 공개하지도 않는다는 조건하에 일 년에 몇 번 정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 p.197

나중에 한국을 방문했다. 우선 미군기지로 가서 미군 장성들과 토론을 갖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사들과 달리기를 했다. 서울에 가서는 명망 있는 몇몇 인권운동가를 만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 가운데 하나인 여의도침례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했다.
--- p.199

박정희 장군은 아내와 그의 자녀 몇몇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길 권했다고 말했다. 나의 신앙을 짧게 설명해 주고 그가 던지는 질문에 답했다. 박정희 장군은 내가 침례교인 지인을 청와대로 보내 주면 자신이 기독교인이 될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요청했다.
--- p.200쪽

아내와 내가 퇴임 후 6개월이 지나 중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기독교가 중국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상하이에 있는 한 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했다. 그 교회는 5명의 성공회 사제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사제들은 이제 성경이 중국에서 자유롭게 배포되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성경을 인쇄할 때 보통 사용하는 아주 얇은 종이의 공급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중국정부가 공급량을 확보해 주었던 사례도 전했다.
--- p.201쪽

레이건은 특정한 기독교 그룹에 한번도 속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주지사 시절에는 미국 내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게 무제한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지지했다. 반면, 나는 낙태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되, 산모의 건강이 위태롭거나 혹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만 허용하는 예외를 두었다. 그러나 나는 당시 모든 종류의 낙태를 금지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는 반대했고, 레이건은 돌연 기독교 우파의 모든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 p.274

기독교인으로서, 산모의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가 아니거나 혹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이 아닌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낙태를 허용했으리라고 결코 믿어 본 적이 없다. 대통령으로서 법률을 지킬 의무가 나에겐 있었지만, 그럼에도 낙태 건수를 줄이려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 p.297

2011년까지 나는 600건 이상의 성경강의를 했고, 이 내용은 녹음·녹화되어 대통령 기념도서관 냉동보존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 가운데 366건의 강의를 골랐고, 존더반 출판사의 편집인이 각 강의를 요약했다. 이 내용을 편집하여 날마다 종교적 주제를 이야기하는 《지미 카터와 1년을》이란 책을 출판했다. 나는 또 뉴 인터내셔널 버전의 성경번역에 대한 200여 건의 논평을 정리해서 《NIV로 읽는 성경의 교휸: 지미 카터와 같이 하는 개인묵상》을 2012년에 펴냈다.

--- p.339

출판사 리뷰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당시 대북특사 파견,
1977년 주한미군 감축과 국내 핵무기 철수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들

평화올림픽으로 올림픽 정신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며 폐막한 평창올림픽에 때맞춰, 한국에서도 지미 카터(이하 카터)의 자서전이 나왔다. 최근 양 극단으로 치닫는 북미관계 속에서, 카터는 제1차 북핵위기 당시의 대북특사 파견 경험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과의 심각한 의견 대립으로 한미관계가 어려움에 처했던 지난 1977년의 경험과 관련해서는 당시의 주한미군 감축 계획과 이것이 무산된 과정, 한국전쟁 이후 국내에 배치되어 있던 핵무기 철수에 관한 비화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되었다가 철회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낙마 배경으로 일각에서는 코피 전략(bloody nose strike)에 부정적이었던 점이 손꼽힌다.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는 대북 선제타격설로 일촉즉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 북한은 평창올림픽 참여와 특사단 파견으로 핵 개발 이후 대화를 통한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김일성 생존 당시, 3년 동안이나 카터의 방북을 요청해 온 북한과,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하던 미국이 대조되는 1994년의 정세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카터는 회고록에서 평화의 중재자로서 적극적으로 북핵위기에 개입한 과정을 서술한다. 클린턴 대통령의 두 차례 방북 거부에도 불구하고, 승인 없이도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고 결국 방북을 승인받았다. 방북과정 또한 순조롭지만은 않았는데, 김일성이 중국을 통한 방북을 원한 반면, 카터는 서울에서 비무장지대를 경유하고자 했다. 이 책에는 방북과정과 합의내용, 이후 이행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카터가 직접 회상하며, 이때 느낀 김일성 개인에 대한 인상과 방북 소회 등도 언급된다.

대북 경제제재에 대한 인권운동가로서의 견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인권과 세계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카터는 자신의 행정부를 평가하면서도 인권 옹호를 강조한다. 인권운동가로서 북한의 식량난에 관심을 보이며, 식량 증산을 위해 북한 농업지도자들을 멕시코로 보내기도 한다. 미국의 식량지원 증가에 보람을 표현한 카터는, 특히 북핵위기 당시 본인의 방북에서 연결된 제네바 합의 이후 양국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후 식량원조의 감소와 북한의 열악한 영양상태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카터가 북한 정권에 호의적이라는 것은 오해다. 카터는 단호하게 북한 정권을 폭압적이라고 묘사하며, 독재국가에 대한 결연함을 보인다. 다만 인권운동가로서 실제 경제제재나 경제봉쇄조치의 경우, 독재국가의 통제된 미디어로 역효과를 낼 수 있고, 오히려 정권의 기반만 강화시킨다며, 독재자와 그 측근들에 대한 여행 제한, 해외계좌 동결, 그리고 기타 특권을 표적으로 한 맞춤 경제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대북 경제제재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것 같다.
한편,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인권과 도덕주의를 기치로 취임한 대통령답게 카터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관되게 ‘장군(General)’으로 호칭하여 눈길을 끈다. 1977년 방한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명망 있는 인권운동가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유신 정권의 인권유린 사례를 항의했던 당시의 회담이 자신이 경험한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불쾌했었다고 기억을 끄집어낸다. 상대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당시 영부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비교적 호의적인 서술 태도를 보이며,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사실까지 직접 언급한다.

아메리카 퍼스트 트럼프의 시대, 평화와 정의의 사도 카터를 만나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동맹국들과의 무역 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단기적 이익과 인기에 영합하는 지도자들로 가득 찬 오늘날, 카터의 자서전은 우리에게 지도자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카터는 세계적인 시야에서 가치와 이념을 추구했던 이상주의 지도자로, 당시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파나마운하 반환을 직접 나서서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야당이었던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알래스카에서도 한반도 면적만한 제한구역을 설정함으로써 카터는 지역민들로부터 지지를 잃어, 실제로도 지역에서 카터에 대한 지지율은 재선 도전 때는, 1976년 대선에 비해 하락한다.
이 밖에도 카터는 냉전 시기, B-1 폭격기 생산에 반대한 것을 비롯해 소련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핵무기 경쟁 속에서도 군축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제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해치지 않고 무역 분쟁을 현명하게 해결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 오늘날 미국의 일방적인 행보와는 큰 대조를 보인다. 카터가 민주 진영의 거두로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이상적인 면모를 유지했던 덕분에 세계는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냉전을 열전이 아닌 냉전으로 지켜냈으며, 오히려 중동 평화안을 비롯한 몇 가지 굵직한 합의까지 이끌어 냈다.
카터가 바라는 미국의 모습은 트럼프와는 대조적이다. 카터는 책의 후반부에서 평화, 인권, 환경, 공정 등의 가치가 미국을 존경받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한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특히 일관되게 자신의 행정부에 대해, 도덕주의적인 면모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을 드러내는데, 경제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세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지도자로서 카터의 가치는 다시금 조명받아 마땅하다. 카터 스스로도 자신의 결정은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고 술회한다.

위대한 인물의 담대한 이야기(빌 게이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명저 10선으로 꼽기도 한 《지미 카터(원서 A FULL LIFE)》는 지난 2016년 카터에게 그래미상 수상(Best Spoken Word Album 부문)을 안겼다. 카터 본인이 구순을 기념하여 자신의 선조로부터 최근의 일에 이르기까지, 담담하게 연대기적으로 서술해 나갔으며,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 10컷과 사진 11컷은 물론, 직접 쓴 시 6수가 포함되어 있다.(카터는 1995년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리뷰/한줄평2

리뷰

6.0 리뷰 총점

한줄평

2.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