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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 숨은 빛 / 2. 마리 오 정원 / 3. 마누 다락방 / 4. 모퉁이를 돌면 /
5. 아코디언, 아코디언 / 6. 켄세라 / 7. 아칸소스테가 / 8. 나의 글루미 선데이

해설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채현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칸소스테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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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06일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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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9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0.3만자, 약 3.3만 단어, A4 약 65쪽 ?
ISBN13
9788957075692

책 속으로

손끝이 닿은 화분이 오묘한 청잣빛을 냈다. 화분을 커다란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밑바닥에 작은 알갱이의 부엽토를 넣고 검은흙을 덮었다. 능숙하게 움직이는 마리의 가늘고 메마른 손가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마리가 그의 손톱이 담긴 유리병을 집어 들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리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는 그의 손톱을 화분 속에 쏟았다. 스르륵, 빗장이 풀린 듯 내 안의 등뼈 속으로 바람이 지나갔다.
“주술의 첫 번째 단계는 환화초 씨앗을 심는 것으로 시작해요.”
씨앗의 모양은 아몬드처럼 타원형이었고 색깔은 그보다 옅었다.
“당신이 심어야 해요, 마음속의 모든 것과 함께.”
마리가 나에게 씨앗을 내밀었다. 완전한 원(怨)이 서린 독(毒)이라고 말하는 마리의 시선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씨앗을 받아 들었지만 선뜻 화분에 심을 수 없었다.
“원하지 않으면 지금 그만둘 수도 있어요. 선택은 당신이 하는 거니까.”「마리 오 정원」---pp.46~47

남자는 그 후 날마다 아이를 위해 영화를 틀었다고 했다. 아이가 늘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보며 묘지 앞에서 일종의 축제를 벌인 것이다. 아이가 자신들 곁에 함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남자의 아이는 바람을 타며 찾아온다. 스크린 자락을 흔들고 캐릭터들의 몸을 구부리며, 부부를 위해 춤춘다. 그러니까 부부에게 영화관은 곧 행복의 묘지라는 말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죽은 영혼이 찾아와 입김을 불어 넣고 바람을 타며 춤을 춘다는 게. 남자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산 사람과 영혼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믿고 싶지 않은 산 사람의 마음이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남자의 말대로 영혼이 있다면 미수는 왜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그러니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며 믿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설령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일지라도.” 「모퉁이를 돌면」---p.116

레일 위를 미끄러지는 기차의 굉음이 온 집 안을 흔들었다. 양철 지붕도 마루도,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물들이 소리의 결을 따라 진동했다. 발바닥에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커다란 신발 속에서 발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고개를 들진 않았지만 아버지를 삼킨 기차가 작은 점으로 변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가 떠난 후, 두번째 맞는 이별이었다. 나는 혼자서 반짝거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슬픈 것들은 혼자서 반짝였으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밤, 혼자 잠들어본 사람만이 아는 특유의 감정. 다른 세계로 향해 있는 문이 어디선가 벌컥 열릴 것 같다거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둠에도 수많은 결이 있음을 알게 되는 신비한 경험들이 매일 귓속을 간질였다.
아버지가 돌아간 후, 자신이 ‘사요나라 바’에 출근하면 혼자 남게 될 나를 걱정하느라 할아버지는 얼굴이 새까매졌다.
“귀찮아서가 아니란다. 걱정된다는 건 그것이 소중해서야.”

「아코디언, 아코디언」---p.138

출판사 리뷰

너의 아픔에 지극한 위로를 퍼뜨리는 주술사들의 이야기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신비의 정원
그곳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누군가가 있다!

약간 비밀스러운 공감과 마법사가 등장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
이상하고 엉뚱하게 아름다운 음악 소리,
아직 온기가 남은 달콤한 음식들만으로도 아픔으로 독이 올랐던 우리는
금세 착해지고 체념으로 힘을 잃었던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다.
―「해설」 중에서

채현선 작가 첫 소설집 출간!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아칸소스테가」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채현선은 등단 이후 평론가들 사이에서 주목할 만한 여성 작가라고 호평을 받으며 다수의 문예지에 단편을 게재해왔고, 이번에 작품들을 모아 첫 소설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신춘문예 당선작은 “어둡고도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한부의 생명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삶의 의미임을 일깨워준다. 냉정한 시선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는 내면의 세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소도구의 병치, 수채화처럼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서사 공간 등이 이 작품의 소설적 성취”라는 평을 받았다.

이번 소설집에는 신춘문예 등단작을 비롯하여 표제작인 「마리 오 정원」 외에 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긴장과 균형을 잃지 않은 내러티브를 발산한 이번 소설집은 소설가 채현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주지 않을까 한다.

“보이는 것만 본다면, 세상은 음악 없이 춤추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채현선의 첫 소설집 『마리 오 정원』은 문체나 기법에 있어서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보이는 ‘환상’이나 ‘신비’의 내러티브가 아닌, 실재하는 현실 속에서 경험될 수 있는 고통이나 아픔을 채현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환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방법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수채화처럼 투명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사, 단정하면서도 낭만적인 문장들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작가만의 작품 세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특히 각 작품들은 ‘한국의 어디’라는 정형화된 공간을 설정하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순간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의 그 어딘가로 데리고 가서 풍부한 언어와 낭만적인 서사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외로움, 슬픔, 고통이라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마리, 마누, 얀, 아킴테라, 켄세라, 라파엘, 로렌스, 소피아, 푸엘라 등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명칭들과 정형화되지도, 구체화되지도 않은 시공간의 설정은 우리가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 속에서 신비로운 아우라를 발산하며 채현선만의 독특한 작품 색을 드러낸다. 순수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슬픔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거칠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를 바로 볼 수 있게 안내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아픔과 슬픔의 근원을 찾아 부드럽게 다독이며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주문을 걸다!


표제작인 「마리 오 정원」은 실연의 상처로 아픔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마리’라는 주술사의 힘을 빌려 복수를 하려고 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식물의 힘을 빌려 복수의 주술 의식을 완성하는 과정은 소설 안에서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그려진다. 신비한 씨앗과 함께 남자와 관련된 물건, 상처받은 여자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감정을 담아 화분에 심고, 세 차례에 걸친 주술 의식을 통해 식물이 자라 꽃이 피면 남자가 죽게 됨으로써 여자의 복수가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세 차례에 걸친 의식 과정 속에서 고통을 원망으로, 원망을 복수로 되갚으려 했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주술사 마리를 통해 마음속에 엉켜 있던 응어리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고 그렇게 천천히 치유되었던 것이다.

채현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잃은 데서 오는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있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을 다독이고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며 고통을 함께 나눈다.

자신의 아픔을 타인을 향한 베풂으로 승화시키며 소외된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소피아 할머니(「숨은 빛」), 누군가의 고통을 잊지 않고 함께 나누며 치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누 할아버지(「마누 다락방」), 죽음을 존재 자체의 사라짐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만남이라고 생각하는 노부부와 남자(「모퉁이를 돌면」),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 앞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죽은 아들의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공짜로 잼을 나눠주슴 할아버지(「아코디언, 아코디언」),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낯선 이들의 한밤의 통화(「켄세라」),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호흡하며 살아가는 아내(「아칸소스테가」), 사랑도 실패, 취업도 실패한 한 남자와 동고동락하게 된 코커스패니얼 이야기(「나의 글루미 선데이」)까지 채현선의 소설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임과 동시에 우리 자신이기도 한 인물들이다. 그들을 통해 독자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삶을 향한 아름다운 열정과 따뜻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지금 바로 손을 들어 눈앞의 허공을 가볍게 두드리시길. 그러면 듣게 될 거예요. 톡톡톡. 오래전부터 그토록 열망해오던 세상의 문이 응답하는 소리를. 그러면 여러분은 알게 되지요. 마침내 새로운 낭만의 ‘마리 오 정원’에 초대되었음을.
곧 나타날 시네마스코프에 대한 설렘을 안고 잠시 눈 감고 숨이라도 고르시길. 그러면 감은 눈으로도 보게 될 거예요. 세상에 없는 꽃들로 한껏 다정한, 꿈꾼 적도 없이 열린 꿈길들을. 어느새 아기자기한 마법의 뜨락을 맘껏 걷고 달리고 날아오르는 여러분 자신을.
눈부시게, 때로는 아늑하게 발하는 저 한없이 자유로운 언어의 영상들은 결코 낯섦도 환상도 아니랍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지독하게, 줄지어 선 딱딱한 의자, 그 어둠 속 질서 안에서, 삶이라는 핑계로 자기를 기만하며, 결국 질식해가고 있었던가를 깜짝 일깨우는 빛줄기인걸요. 페이지 사이사이마다 끼워진 그 빛줄기를 숨 쉬며, 매번, 다시 깨어나시길.
구효서(소설가)
채현선의 소설은 몽환적이다. 그녀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통과 외로움을 점묘하듯 생생하게 돌출시키는 데 탁월한 기량을 보인다. 그녀의 소설 공간은 기억 속 풍경으로나 존재하는 낡은 이발소나 다락방 또는 이국종 식물이 무성한 정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시원과 조우하면서 고단한 현재의 삶을 헤쳐 나갈 주문을 배운다. 그녀의 이야기는 맑은 종소리처럼 조곤조곤 우리의 지친 영혼을 위무한다.
장영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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