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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내는 글
장편소설 『분례기』를 둘러싼 예산 이야기 방영웅의 『분례기』소설 속으로 작가 방영웅 장편소설 『분례기』줄거리 영화 [분례기](1971) 드라마 [분례기](1992) 『분례기』와 예산 장편소설『분례기』, 현장을 찾아 새말(신흥동) 동흥대반점 쌍송국수 밤 그리고 똥 고추기름집 대통령의 맛집, ‘소복식당’ 본정통에 있던 대동병원 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 김두환 해동안과 충남 등록문화재 예산성당 호서은행 예산2리 마을회관(옛 예산사) 향천사 천불전 예산읍내 기행을 마치며 걸어서 예산 속으로 걸어서 예산 속으로 시루미마을, 시(時)가 있는 시산리 우리 집 벼 베는 날 가을 저녁 방안 풍경 오가면 오촌리 오가면 원천, 분천, 양막, 내량 마을 대술면 궐곡, 상항, 장복리 삽다리 꽃산 한 바퀴 실학의 본향, 장사래 동북아평화연대 국제심포지엄 신양면 가지리, 자은동, 덕동 바다낚시와 사뭇 다른 산골 물고기잡이 응봉 운곡, 후사, 평촌리 광시면 서초정, 장신, 시목, 대리 대흥 상중리, 고덕 호음리 신양 대덕리, 차동리 신양 일산이수정, 만사리, 여래미리 고덕 상장, 지곡리 고덕 상궁리 양촌마을 함께 걷는 평화의 길, 함께 여는 통일의 길 예산군 마을대회에 가다 청년 윤봉길 타이밍 재주는 곰이 부리고 어머니와 [생활개선회] 기억하고 이어간다는 것 신암 주예리, 고덕 구만2리, 용1리, 사2리 이왕이면 이발소 “생명창고의 열쇠를 쥔 농민이 잘살아야 나라도 잘산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짐 농어업회의소 연시총회 경로당 투어 “산 날보다 갈 날이 가차워” 오늘도 한 수 배운다 한 겨울에 한창인 겨울농사, 영농교육 “다시다 한 숟갈만 넣으랐잖아” “경로당에도 양성평등을” “워서 본 것 같은디” “여자 아녀?” “더 잘헐 수 있는 게 있대유” 퇴비증산운동 포상_광시면 간음리 마을복지회관 액자 예산 단상 병계 윤봉구 선생의 「가야구곡」 일본 가나자와 윤봉길 의사 순국비 앞 말뚝테러를 강력히 규탄한다 안 의사 제문 시인 한용수를 그리워하며 윤봉길 의사 순국 80주기에 부쳐 친일은 친일이고 애국은 애국이다 내포문화발원탑을 세우다 추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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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예가 새말 사는 영철의 재취로 시집을 오던 대목에서 시댁이 위치한 새말에 대한 설명은 하천 뚝 건너 초가집이 많은 동네다. 세월이 변해 초가집은 대부분이 양철지붕이나 양옥으로 변했다. 그 중 미루나무 두 그루가 대문격인 집이 영철네인데 소설가 방영웅이 어릴 적 살았던 바로 옆집이다. 작가가 1955년 마을을 떠나고 뒷집 조서관은 없어지고 그 자리엔 교회(예산성결교회)가 들어섰다. 날씨가 추운 날 혹시나 『분례기』속 분위기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맘으로 신흥동 곡목길을 걸었다.
--- p.25 무엇이 예산다운 것인가는 그간에 지켜온 역사와 문화에 철저히 새겨져 있다. 정기어린 추사의 서체 속에서 끝까지 일제에 항거하며 순국한 윤봉길의 정신에서만 꼭 그것을 볼 것인가? 이름 없는 이가 향천사에서 올린 기도 속에, 쌍송백이 나무장에 지게 짐을 부리던 소년의 솔가지 위에, 그리고 무한천 몇 번째 다리 아래서 방망이질 하던 아낙네의 고단한 삶 속에도 예산의 역사와 문화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지켜온 터전에 얽힌 문화는 주로 구전되어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변색되어 왔다. 결국 기록하지 않으면 남지 않는 법이다. --- p.87 아궁이 열기가 느껴지는 가마솥에 물이 끓고 있는 어느 집 사랑채에는 인기척도 없다. 아마도 잠시 마실 간 모양이다. 더 걷다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유구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한다는 갓 밑동을 시장에 팔려고 작업하고 있었다. 덕산 옥계리 월봉이 친정이란다. 일하다 말고 갑자기 전화를 받더니 김치 담아 파는 흥정을 하신다. 곁에 서 있던 나는 휴대폰 계산기로 불러주는 가격 계산해 드리고 갓 밑동도 얻어먹었다. 일회용 비닐장갑 끼고 은행 줍는 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잎보다 더 고왔을 젊은 시절을 상상해 봤다. 안쪽에 집이 좀 있냐고 물었더니 명인사라는 절이 있다고 대답한다. 절 마당에 할머니바위가 있는데 소원을 말해서 아무 대답도 없으면 들어준 거란다. --- p.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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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을이라는 삶의 현장을 찾아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쓴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보다 넓게 세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든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윤리는 어디로 갔는가? 경제적 풍요로움은 존재하는 것 같은데 따뜻한 인정의 강물은 메말라가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법과 제도와 정책과 교육을 통하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평화를 누리며 잘 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김영우 씨는 이런 생각을 깔고 책을 쓴 것 같아 반갑고 고맙다. - 이일구 (前 덕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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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모여 이룬 마을, 사람과 마을이 함께 어우러져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김영우 님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 정경 스님 (보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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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걸어야만 읽을 수 있는 거대한 이야기책이다. 김영우 그가 마을을 걷고 있다. - 권상구 (대구 근대골목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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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기억될 수 없고 기억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습니다. - 서은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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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밥 먹고 일하며 함께 공부하고 노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예산, 김영우 님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응원합니다. - 이애정 (미술관 서담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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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천 몇 번째 다리 아래 방망이질하던 아낙네 고단한 삶 속에도 예산의 역사와 문화가 새겨져 있던 것이다. - 황순우 (건축가, 인천 아트플랫폼 총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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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정의만이 그 사회를 지탱한다.”
예산. 윤봉길 의사, 김영우. 이 세 명사가 나의 인생에 중심으로 진입한 것은 십 년 전이다. 나는 2006년 1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동상 설립에 참여했다. 그 후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매헌 윤봉길 의사 월진회 자매결연을 주선했다. 그 핵심에 당시 매헌 윤봉길 의사 김영우 국장이 있었다. 나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선양을 하고 김영우 국장은 예산에서 윤봉길 의사 선양을 한 것이다. 강인한 사랑 윤봉길 의사 시대정신을 현실에 투영하는 김영우는 행동과 실천으로 나에게 각인됐다. 천하언재(天何言哉)이다. 스스로 참답고 정의로운 길 10여 년을 산 사람이 김영우다. 이제 새로운 길을 간다고 한다. 김영우에게 묻고 싶다. 안중근 의사시라면 지금 이 순간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리셨을까? 거기에 반드시 옳은 길과 정답이 있다. 오직 정의만이 그 사회를 지탱한다. - 김월배 (하얼빈 이공대학/ 안중근 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