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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비가와 낯선 운명 望鄕の悲歌と不慣れな運命
고독한 그림자 孤獨な影 렌과 류타카 蓮と龍鷹 연못가에서 만난 두 사람 池近で會ったふたり 깊고 푸른 우월의 밤 아래 深くて靑い雨月のさ夜の下 흔들리는 사내의 마음 搖れる男の心 인연이 아닌 인연 緣ではない緣 서러운 초야 悲しい初夜 얽매인 정과 여인의 눈물 かまけた情そして女人の淚 여심 女心 홀로 번민하는 사내 獨りで煩悶する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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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요한 시선에 사로잡힌 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가토 기요마사 앞에서도 이러지 않았는데 저 사내 앞에서는 마치 온몸이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히타치 당주의 입에서 준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가 연못에서 구한 아이는 내 아들이다. 알고 있었나?” “돌보는 이가 없었기에 평민의 아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너를 죽이기 전에 내 허락이 필요하다 했나? 내가 모든 것을 지켜봤다. 그러니 이제 널 죽인다 해도 달리 할 말은 없겠지?” 언뜻 보기에도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몹시 딱딱해 보였다. 농담을 하는 것인지 진담을 하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곧 상대방이 자신을 떠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 p.107 “정을 나누고 싶다.” “예?” “너와 정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미칠 것처럼 두근거리는 건 왜일까? 그녀는 묘하게 떨리는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이것은 단순한 운우지락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것이다.” “저는…….” “너와 함께라면 정을 나눠도 무방하다고, 아니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하며 사내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 p.301 말을 타고 숲을 달리는 동안은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뺨을 거세게 스치는 나뭇가지가 따가웠지만 류타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대로 숨이 터져 버릴 때까지 달려서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계집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싶었다. 남김없이 미련을 떨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으리라. “토노! 토노!” --- p.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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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너무나 애틋한 두 남녀의 사랑이 시작된다 소설 〈렌〉은 작가 지영이 텔레비전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던 중 임진년 전쟁의 포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슬쩍 지나치며 본 일본 도쿠시마의 옛 성터에 있는 한 가신 집안의 묘지에 ‘朝鮮女之墓’라고 적힌 비석을 보고 구상하게 된 소설이다. 4백여 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그 비석을 보면서 작가는 문득 ‘그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조선인 포로들은 험난하고 고달프게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을 설연(일본 이름 렌)이라 정하고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임진왜란의 끝 무렵. 본국으로 도망가던 왜병들은 닥치는 대로 조선양민들을 관선(船:배)에 싣고 노비로 끌고 갔다. 그 속에는 요양 차 강릉에 머물다 붙잡혀온 윤이규 도지사 영감의 처와 그의 무남독녀 딸 윤설연(렌) 모녀가 있었다. 당시 11살이었던 그녀는 병든 어머니를 구환하며 일본에서 말 그대로 천비의 신세로 연명하게 된다. 그러다 강릉 산사에 있을 때 인연이 닿아 목숨을 구해주었던 일본의 무사 신겐을 만나 그의 양딸이 된다. 그런데 렌의 나이 18세 때 신겐이 주군으로 모시고 있던 가토 당주(지방수령정도)의 눈에 띄게 되어 정략적 목적으로 히타치의 다이묘(수령) 키타가와 류타카의 측실로 바쳐지게 된다.가토 당주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간자 역할이었고, 그녀의 거부할 수 없는 족쇄는 일본에 같이 끌려왔던 사촌오빠의 목숨이었다. 류타카가 처음 본 렌은 사람을 잡아끄는 맑음과 탄복할 만한 영민함, 아무나 무시할 수 없는 당당함을 지닌 어린 계집애였다. 하지만 가까이 본 그녀는 너무나 따스하고 고와 보여 문득문득 옛적 어미의 품속을 떠올리게 하여 마침내 그녀를 일곱 번째 측실로 삼는다. 렌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 지영은 주인공 렌의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감칠맛 나는 묘사,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장인이 직조하듯 써냈다. 작가 지영이 오랜 산고 끝에 내놓은 작품 〈렌〉은 우리나라 로맨스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철저한 자료 조사와 세밀하고 정교한 구성, 풍성하고 능란한 성격 묘사, 아름답고 빼어난 문체 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