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다시 책머리에
정신세계사판 서문 태학사판 서문 1부 신라.고려 나그네 시름 / 혜초대사 가을밤 빗소리를 들으며 / 최치원 접시꽃 / 최치원 가야산 / 최치원 옛 친구를 그리며 / 최광유 멧새 소리를 들으며 / 최승로 한송정 / 장연우 촛불 삼아 달 밝혀 놓고 / 최충 사주 구산사 / 박인량 청평거사에게 / 곽여 …… 2부 조선 전기 경포대 / 황희 게으름 / 이첨 봄날 / 권근 금강산 / 권근 김거사 은거처를 찾아 / 정도전 금강루에서 / 정도전 병든 소나무 / 이직 삼월 / 정이오 산에 사는 맛 / 유방선 소와정에서 / 유의손 …… 작자별 작품 찾아보기 주제별 작품 찾아보기 |
|
멧새 소리를 들으며
-최승로 맡이 있다손 뉘 씨를 뿌리며 술이 어디 있어 술을 들라니? 산새들 무슨 회포나 있어 "뻐꾹 뻐꾹……." "제호로 제호로……." 봄이면 저리 공연히 제 이름을 불러 우는고? 有田誰布穀 無酒可提壺 山鳥何心緖 逢春?自呼 「偶吟」 밭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손이 어디 있어 씨를 뿌리며, 아무리 울적해도 술 한 잔 없는 터에, 산새들은 무슨 심사로 '씨를 뿌리라'느니, '술을 들라'느니, 공연히 사람 약 올리듯 속상케 하고 있는고? 멧새와의 대화요 독백이다. 만사 여의치 못한 궁춘의 아쉬움 속에서도, 새소리에 이끌리어 맹동하는 한 가닥 봄마음의 꿈틀거림이, 짓궂은 듯 곰살궂은 해학 속에 은근히 엿보인다. ---p.71, 「멧새 소리를 들으며」 중에서 산에 살며 -이인로 봄이 가고야 꽃은 제 철인 양 갠 날에도 어둑한 골짜기 두견새 한낮에 우니 진정 알괘라 내 사는 곳 깊은 줄을- 春去花猶在 天晴谷自陰 杜鵑啼白晝 始覺卜居深 「山居」 봄도 지각하는 후미진 곳, 산 높고 숲 짙어, 갠 날에도 그늘지는 어둑한 골짜기, 대낮에 울어 쌓는 두견새 소리를 들으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살고 있는 곳이 무던히도 깊은 두메산골임을 사무치게 느꺼워하고 있는 작자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의 표면상의 표정은, 일체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어, 그저 대범스럽고 덤덤할 뿐이다. 그러나 보라. '深'의 여운에는 '골의 깊이'만큼이나 무슨 사연, 무슨 곡절, 무슨 한 같은 것이 함께 깊어져 있는 듯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그것은 작자의 가슴속에 항시 그늘져 있는 우수(憂愁)를 잠들지 못하게 일깨우는, 저 밤을 이어 우는 한낮의 두견새 소리 때문인지 모른다. 촉나라에 돌아가지 못함이 철천의 한이 되어 귀촉도를 되뇐다는 원한의 새 두견이의, 그 슬픈 전설이며 청승맞은 가락 때문이리라. ---p.133, 「산에 살며」 중에서 원숭이 -나식 늙은 원숭이 무리를 잃고 저문 날 외로운 뗏목 위에 고개도 안 돌리고 오똑이 앉아 일천 산 산울림에 귀를 재는고! 老猿失其群 落日孤査上 兀坐首不回 想聽千峯響 「題?猿: 長吟亭集 張5」 동류에서 격리된 한 가엾은 늙은 원숭이가, 해도 저문 외진 강굽이를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뗏목 위에 오똑이 앉아, 고개도 옴쭉 않은 채, 깊은 사념에 잠겨 있다. 이제는 이미 멀어진 청산 시절을 회상하고 있음인가? 만학천봉에 메아리져 오는 산울림. 허허로이 봉만(峰巒)을 주름잡아 끝없이 번져 가는 시원의 태허성(太虛聲)에서, 야생의 고장, 청산에의 향수에 젖어 있음이리라. 이는 원숭이를 그린 그림의 화제이나, 실은 늙은 원숭이에 우의한 작자 자신의 자화상이다. 가족은 물론 친지ㆍ동지들에게 격리되어, 함거에 실려 온 유배지,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역외 절지(域外絶地)에 위리안치되어 있는 자신이야말로,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이 운명의 뗏목을 탄 늙은 원숭이와 다를 것이 없다. 유형, 유배의 '流'와, '孤査'의 '떠내려감'이 은연중 상응하고 있음을 본다. ---p.503, 「원숭이」 중에서 |
|
옛 시 속으로 걸어 들어가 주인공으로 살아가다
대부분의 한시 평론들은 문학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데 치우친 나머지 독자와의 소통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한시에 대한 문학적 소양을 갖춘 고급 독자들만 윤곽을 이해할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 손종섭은 이 같은 풍토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다. 작자가 시의 첫 씨앗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그것을 숙성하고 언어로 표현하기까지의 과정에 함께하면서, 옛 시인의 마음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예를 들어 최치원의 「접시꽃」에 대한 해설에서는, 단순히 주목받지 못하는 꽃의 신세를 그린 것이 아니라 육두품으로서 신라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 시인의 마음을 빗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선정적이라 할 만큼 탐미적 표현이 두드러진 이후의 「이 푸른 봄날을」에서는 작자가 유자(儒者)로서 지나친 언사를 했다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무사(思無邪)한 경지'를 이르렀다고 옹호한다. 다른 부차적인 기준은 완전히 배제한 채 오로지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한 점의 가감 없이 전달하는 데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저자는 자신이 역자도 논평자도 아닌 작품 속의 '당사자'로서 여러 시대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신라부터 조선까지 한시 350수를 아우르다 저자의 한시 해석이 뛰어난 이유는 옮기는 과정에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김정희의 「시골집」을 옮기면서는 "호박 덩굴 싱푸르게 외양간을 타오르고"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서 '싱푸르다'라는 말은 '싱싱하면서 푸르다'라는 뜻으로 특별히 만들어 낸 말이다. 한자 하나하나의 해석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말로 새로운 시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숭인의 「산마을」에서는 "맑은 샘물이 돌 뿌리를 양치질한다"라는 구절을 "돌 어금니를 양치질한다"로 바꿔 옮긴다. 원래 작자가 '牙(어금니 아)' 자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운율 때문에 '根(뿌리 근)'을 택한 아쉬움을 읽어 이렇게 한 것이다. 거기에다 우리 가락과 맥을 같이하는 한시는 시조로 옮기는 담대한 시도까지 보여 준다. 이러한 저자의 작업이 의미 깊은 이유는 무엇보다 신라, 고려, 조선, 여류 시인에 이르는 350수의 시를 망라함으로써 우리 옛 시의 광대한 세계를 보여 주는 데 있다. 주제 면에서 보더라도 충과 효 등 전통적 덕목에서 이별의 슬픔 같은 날 것의 감성, 거기에 비루한 세상에 대한 풍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형식 면에서도 오언과 칠언 절구에서부터 단시와 연작시, 시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투명한 옛 시 가락에 실어 따뜻한 정을 전하다 저자가 우리 한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처음 뜻을 둔 것은 나이 칠십을 넘긴 인생의 황혼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저자는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신라부터 조선에 이르는 우리 한시의 풍요로운 세계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집대성하기에 이르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풍성한 한문학 유산을 우리말로 계승하면서, 사회 전반에 퍼져 가는 비인간화의 풍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은 현학적인 식자들의 논리를 답습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마음 밭을 가꾸는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저자는 가뭄의 논바닥마냥 갈라진 마음 밭에 따스한 시정의 비를 뿌린다. 아흔 살의 나이지만 새파란 청년처럼 패기가 넘치는 한문학 원로의 투명한 옛 시 가락에 함께 귀 기울여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