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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역마살
박태기나무·11 | 빗소리·16 | 그곳엔 지금·20 마음에 비질하는 나무 한 그루·25 | 묵은지·29 | 역마살·33 마량포구의 봄·38 | 가슴으로 그리는 수채화·42 제2부 옆집 아기 깰라 옆집 아기 깰라·49 | 매듭·52 | 쌀 두 자루의 무게·56 | 노란 종소리·61 자주색 가죽 구두·64 | 곱슬머리 솜사탕·68 윤민수, 나를 울게 하다·73 | 어디로 간 것일까·77 제3부 대빗자루 손길·83 | 박이옷·86 | 나의 목소리·91 대빗자루·94 | 마른 나무에 비틀린 나뭇가지·99 꽃을 받다·103 | 선물·107 제4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울릉도에서·115 | 열쇠와 휴대폰·120 내소사에서 하룻밤·125 | 사양斜陽·130 | 말 잘 듣는 친구·135 천천히, 아주 천천히·139 | 버려지는 것들·142 | 갈마중·146 제5부 소리여행 비밀·153 | 풍경 소리 차고 맑다·158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163 | 무채를 썰며·167 몽돌·171 | 소리여행·175 | 철없는 미소·180 해설 | 방랑자, 모두의 아픔을 어루만지다 ·한복용·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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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갑자기 노랫말이 떠오른다.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몸짓과 표정만으로도 자신의 의사표시는 가능하다. 각자의 개성이나 성품을 알 수 있고 때론 빈부 차이도 알 수 있다.
아침에 문득, 눈을 떴을 때 몇 년째 걸려 있는 커튼이 문득 칙칙하게 보일 때가 있다. 어서 바꾸어달라는 말이다. 빛바랜 벽지나 한 장 남은 달력은 수명이 다했음을 말해주고 말라가는 화초들은 목마름을 호소하기도 한다. 때론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환한 웃음으로 말하는 유리병 속의 시들지 않은 장미도 있다. 연말이 다가오자 백화점과 노점상이 밀집한 시장 근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몹시 분주하다. 그 틈을 비집고 달려드는 자전거. 물건을 가득 실은 손수레.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음식 쟁반을 머리에 인 아주머니. 그 거리에 떠밀려가며 나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낀다. 갖가지 사물들이 한꺼번에 내 안으로 들어와 아우성을 친다. 소리. 색. 냄새. 오감을 자극하는 온갖 사물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리고자 아귀다툼을 벌인다. 나는 대화의 물결에 멀미를 하고 만다. 화훼장식 수업을 함께하는 후배가 있다. 지난 주 그녀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털모자 속에 숨겨진 머리카락은 귀밑머리 부분이 파랬다. 늘 조곤조곤한 말씨와 조용한 성품인 그녀의 느닷없는 행동은 심경의 변화를 의심케 했다. 가끔 여자들은 정신적 충격이나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을 때 제일 먼저 머리 형태의 변화를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한 충동적 행동이 바로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생각에서다. (…중략…)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오고 있다. 멀리 있는 친구가 연하장을 보내왔다. 요즘같이 손가락 하나로도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스마트시대에 편지함에 꽂혀 있는 연하장을 발견하고 나니 뜻밖이었다. 그녀는 ‘그립다’라는 말 한마디로 수많은 언어를 토해냈다. 석류알 같은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내일도 오늘 같다고 말할 친구. 멀리 있지만 서로가 잘 지내고 있음을 대신해주고 있다. 함께했던 여행지에서의 피아노 바가 생각나느냐고 내가 묻는다. 턱시도를 입은 은발의 피아니스트를 기억하고 있다고 그녀가 대답한다. 피아니스트에게서 장미 한 송이 받았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그녀가 내게 질문한다. 그 순간의 떨림도 아직 잊지 않고 있다고 나는 말해준다. 오랜 친구의 그립다,라는 짧은 말 한마디는 내 젊은 날의 시간 속으로 데리고 가 많은 대화를 나누게 한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부모가 있어 아이들은 미래를 꿈꾼다. 늦은 밤 교대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택시기사는 따뜻한 아침인사 한마디로 하루 종일 안전운행을 할 수 있고 식당 문을 나서며 맛있게 잘 먹었다는 칭찬 한마디는 훌륭한 요리사를 만든다고 한다.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닌 진심을 담은 언어는 굳이 밖으로 소리를 내어 전달하는 것만은 아니다. 비수가 도사린 언어폭력, 비아냥거림이 숨어 있는 다정한 말, 격앙된 질타의 목소리 속에 내포된 진실은 곧바로 들키게 마련이다. 표정과 눈짓 몸짓만으로도 뜻은 이미 다 읽혀버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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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선을 거치며 대화와 소통으로 이어지는 ‘치유의 수필’들
『문파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수필가협회와 경기 용인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유채연 수필가가 첫 수필집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출간했다. 유채연의 수필집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에 실린 글들을 ‘치유의 문학’으로 분류하고자 한다고 해설을 쓴 한복용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글쓴이의 의도야 어디에 있든 독자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아늑한 평온을 경험한다. 그의 작품은 긴장과 갈등의 구조를 거쳐 반드시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독자를 어둠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각 작품의 결미를 보면서 마치 하루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의 평화와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유채연은 ‘여행자’이다. 그는 여행의 정의를 ‘고향’에 두었다. 또 「가슴으로 그리는 수채화」에서 그가 말하는 고향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흙이다. 여행은 어머니를 떠나 혼자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문화, 내가 걷지 않았던 길과 내가 느끼지 못했던 감성들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닿는 것만으로도 설렐 수 있겠으나 작가의 여행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그리운 것들을 하나둘 찾아가 자신의 가슴과 눈과 마음에서 불붙었던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유채연은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고백하면서 그들과 다른 색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작품에 투영하기도 한다. “하찮은 냄새나 소음에서부터 먼지를 뒤집어쓴 잡초일지라도 마음속에 그려놓고 즐기는 기쁨은 여행을 떠나야만 안다”고 하면서, “여행길에 들어서면 마음은 어느새 너그러워지고 부자가 된 느낌”이 들어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길을 떠난다고 고백한다. 그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몸을 틀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할 줄 아는 멋진 방랑자이다. 표제작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몸짓과 표정만으로도” 의사 표시나 각자의 개성, 성품, 빈부까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유채연의 시선을 거치면 모든 것이 대화와 소통으로 이어진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소통부재인 세상에 놓이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에 뒤질세라 모두들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어느 집에서 누가 죽어 나가는지도 모른 채 오직 나 하나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다. 혼자 먹는 밥과 술, 혼자 보는 영화 관람이 예사가 되어버렸다. “내일도 오늘 같다고 말할 친구. 멀리 있지만 서로가 잘 지내고 있음을 대신해주고 있다.” “오랜 친구의 그립다, 라는 짧은 말 한마디는 내 젊은 날의 시간 속으로 데리고 가 많은 대화를 나누게 한다.”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부모가 있어 아이들은 미래를 꿈꾼다. 늦은 밤 교대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택시기사는 따뜻한 아침인사 한마디로 하루 종일 안전운행을 할 수 있고 식당 문을 나서며 맛있게 잘 먹었다는 칭찬 한마디는 훌륭한 요리사를 만든다고 한다.” 말이 주는 따뜻함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다. 외로움이 당연하여 그 투정은 외려 사치가 돼버린 시대, 이런 건조하고 빡빡한 시대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감성으로 어루만져주는 따뜻하고 감미로운 수필을 만난 것은 퍽 반가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