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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패자부활 ?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1장. 경상도 촌놈 할머니 셋에 어머니는 둘 14 / 3살 종손의 종갓집 20 / 공부에 맛들이기 23 / ‘남이야!’‘우리가 남이가?’ 27 / 기를 죽인 선생님, 기를 살린 선생님 29 / 씨암탉의 씨를 말린 제사 33 / 내겐 너무 멋진 그녀, 고모 35 / 새로운 세계, 기독교 40 / 선망의 대상, 그대 이름은 자전거! 42 / 나의 영원한 그라운드 안계중과 계성고교 44 / 한 지붕 다섯 가족의 자취집 47 / 귓가에 들리는 ‘콰이강의 다리’ 53 /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 55 2장. 개구리 우물 밖으로 나오다 3선 개헌 반대 운동으로 시작된 대학생활 60 / 개인구원인가? 사회정의실현인가? 64 / 가자! 노동현장으로! 69 / 아비규환, 가난한 도시빈민 75 / 학생운동 하지 말고 골프운동이나 해라 81 / 인생사 새옹지마 86 / 아무리 고문해봐라, 나를 꺾을 수 있나 91 / 문제제기 운동가인가? 문제해결 지도자인가? 102 / 공대출신의 행정대학원생 106 / 연구실 같던 군대생활 111 / 사랑? 나는야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115 / 이사, 또 이사, 또또 이사 117 / 하늘이 무너지면서 솟아난 기회 127 / 신원특이자가 국립대 교수로! 131 / 이 나이에 또 공부를? 30대 중반에 유학을 떠나다 135 / 이별선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고추장 137 / 평생 은사이자 좋은 친구인 UCLA 리즈 교수 139 / 목숨 건 아르바이트 ? 야간 가게 근무 144 / 한국인으로서 UCLA 정치학과대학원 학생회장 145 / 아들의 탈골사고와 사이비 마법사 146 / 알고보니 내 병이 최초의 컴퓨터 VDT증후군 152 / 악필과 독수리타법이 종합시험의 장애다? 154 /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떠나다 160 / 미국의 상류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엿보다 164 3장. 조용한 불도저, 대학을 갈아엎다 가장 진보적인(?) 행정학 교수 168 / 내 일생의 연구주제 ? 국가의 발전 170 / 사설 하나로 시작된 기획처장 176 / 교수부터 먼저 고통분담 하시오! 185 / 최고의 핵심 인재를 홍보과에! 190 / 수위실이었던 기획처장실 193 / 정체되어 있는 학교, 어쩌지? 196 / 대학종합평가 1위, 의과대학평가 1위 198 / ‘숲속의 잠자는 미녀’여, 깨어나라! 204 / “10억이요?” “아니오, 대학발전기금 1000억 원을 모급하세요.” 206 / 교수 물갈이의 시발점 214 / 진통 끝에 낳은 직원업적평가 221 / ‘우리 학교 식당이 달라졌어요’ 223 / 대학을 키우려면 자존심을 버리세요 228 / 세상에 어려움 없는 사람은 없는가보다 232 / 24시간 불 ???ㅣ지 않는 도서관 236 / 유리알 같은 대학경영과 홍보방식 238 / 이대목동병원을 일일연속극 세트장으로 241 / KBS TV 열린음악회, 안된다고요? 244 4장. 낙숫물로 댓돌 뚫기 6두품이었어도 행복했다 252 / 진작 참여연대로 옮겼으면 좋았을까? 257 / “원고 좀 부탁합니다!” 260 / 모두가 진보를 외칠 때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가? 263 / 차비도 챙겨주지 못하는 윗사람 266 / 한국행정학회 회장 선거에서 꼴찌 269 /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아 맡게 된 자리-공심위원 274 / “깍두기들! 일당이 얼마야?” “5만원이요!” 279 / 나만의 착각,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어준다’는 것 283 / 진흙탕 시장 바닥에서 찢어진 명함조각을 주워 모으며 287 / 억울해서 흘린 눈물, 신만이 아시지요 291 / 인기보다 꼭 필요한 일을 한다 293 / 가르친 대로 실천한다 295 / 과거를 정리해야 미래로 나아간다-입법부차원의 과거사 청산작업주도 298 / 집 없는 설움을 알기에 ? 부도공공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법안 301 /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 국회의원으로 산다는 것 305 / 17대 국회 최우수 의정호라동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다 309 / 국회의원 퇴임 후 백수생활 311 / 흔적없이 흡수된 과학기술의 컨트롤타워 313 / 나는 아직 꿈꾸고 있다 317 맺음말. 무한도전 ? 나는 빚이 많은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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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는 없는 대신, 어머니는 두 분이었다. 나의 생모는 ‘엄마’이고, 호적상 어머니는 ‘오매’이다. 박월순과 정태연, 두 분의 이름이다. 나는 그렇게 두 어머니를 구별하여 부르면서 자라왔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 호칭으로 남아있다. 생모는 주민등록표에 ‘동거인’으로만 기록되어 있고, 유일하게 족보에만 이름도 없이 ‘박씨’로 남아 있다. ---p.15
성하지 못한 아들 하나만 겨우 고생하여 살리려는데, 나를 수태한 상태에서 6.25전쟁이 터졌다. 난리 통에 아버지 생사를 모른 상태에서 내가 피난을 다녀 온 후 태어났다. 그러니 셋째로 태어난 나는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셈이었다. ---p.17 곧 이어 단상에서 마이크를 통해 나를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단상으로 불려간 나에게 180cm의 거구로 학교에서 가장 컸던 담임선생님은 다짜고짜 이유도 묻지 않고 억센 손바닥으로 뺨을 힘차게 때렸다. 조그만 나는 저 만큼 나동그라져 자빠졌는데, 선생님은 다시 불러 일으켜 세 차례 더 따귀를 더 억세게 때렸다.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리며 정신이 아뜩했다. ---p.30 아마 전 세계에서 골프를 치지 않으면서 캐디나 갤러리도 아니면서 골프 풀코스를 돈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p.85 그 순간 내 눈에서 한없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내가 고문을 받아 고통당하는 아픔이 서러웠다. 내가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p.96 공대졸업생들은 대부분 기업의 월급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공돌이’라는 자조적인 말은 공고 졸업생만이 아니라 현장의 공대 졸업생들에게 널리 퍼진 사회적인 지칭이었다. ---p.105 결혼 이후 36년 동안 기록적인 19회라는 이사 회수를 채웠다. 거의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이사를 다닌 셈이다. 그렇게 빈번한 이사로 인해 아이들은 적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p.126 오랫동안 천직으로 생각해왔던 교수의 직업이 유신체제의 극성으로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서 나에게는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았다. 물질적으로 만족을 주는 현실에 더욱 안주하게 되면서 술에 심취하는 정도는 더욱 심각해졌다. ---p.129 누구든지 남이 변화하기를 바라지 내가 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파업이후 자신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바뀌길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파업에서 원하던 새로운 변화가 하굑 전반에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변화와 개혁에는 어려운 고통이 필수적으로 따른다. 그래서 개혁과 변화가 어렵다. ---p.215 초기만하더라도 정치학자와 행정학자 가운데에는 나 외에 참여한 학자들이 거의 없어서 나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 때문에 나의 몸은 경실련 일로 다른 전문가들보다 몇 배나 분주했다. 운동권으로부터 ‘개량주의자’로 비판 받았지만, 반대로 정부나 기득권세력으로부터는 ‘새로운 가면을 쓴 또 다른 운동권’으로 분류되어 사면초가였다. 이 때문에 정치행정학자들은 경실련 운동에 참여하기를 꺼려했다. 특히 행정학자들은 정부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경실련과는 거리를 두었다. ---p.253 돌이켜보면, 나만 홀로 어려움 속에 던져져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살았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가고자 하는 길이 옳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믿고 달려 가다보면, 안내자를 만나고, 길동무를 만나고, 때론 의외의 행운도 만나데 되는 듯하다. 삶은 인연의 연속인 듯하다. ---p.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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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태어나도 그만인 사람이었다. 할머니 셋에 어머니는 둘,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종갓집 종손인 형님과 함께 어른들의 존대를 받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나의 어머니는 얼굴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부엌에서 생의 거의를 보내다 가셨다. 내게는 정겨운 고향이지만, 경상도 의성은 또 한편으로는 무거운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의 고장이었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곤란하게 해드리기 위해 말썽을 부리지 않으려고 애썼고, 집안일 하지 않으려고 책상에 앉다보니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장학금을 받는 곳으로 진로를 정하다보니 처음 생각했던 학교와는 다른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삶의 절반을 살면서 늘 처음 마음먹었던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하며 살게 된 것 같다. 그저 매순간 처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마음 깊은 속에서 원하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주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희망. 보지도 못한 납북된 아버지의 사연은 내 선택과 상관없이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다. 아직도 드러내놓고 그리워하지 못하는, 그리고 아버지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더 열심히 내달리려했다. 여전히 이 이야기만은 두려워 꺼내놓지 못하는 내게, 다음이라는 또 기회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결코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다. 아버지니까........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젊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좌절하는 젊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신이니 연좌제니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요즘 젊은이는 없겠지만, 나의 젊음이 겪었던 실패와 절망이 내게 늘 큰 산으로 다가와 내 앞을 가로막는 막막함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숨기고 싶은 나의 실패담을 꺼내놓는 이유다. 삶은 생각보다 긴 것이어서 역전의 기회와 패자부활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어서다. 포기하지 않는 한, 도전하는 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이야기다. 더구나 쟁쟁한 경력을 가진 분께서 가정사에, 학점에, 실패담과 좌절만 골라 편집하는 편집자가 원망스러웠을 텐데도 저자는 맡겨주었다. ‘어느 삶이나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 그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얼마간의 힌트는 얻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구의 삶이든지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비슷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비록 시간이지나면 아니라고 느낄지라도. 그렇게 매번 최선을 다하면서도 끊임없이 우리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담한다.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이 들면 수정하면서 또 나아간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나가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향성만 잃지 않고!’ 출판사의 기획의도를 잘 이해해 주었다. 편집과정을 거치면서 ‘어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느꼈다. 패자부활이라는 꼭지를 통해 서슴없이 패자가 되어 주었고, 빚쟁이도 되어 주었다. 그러면서 편집자를 격려하며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리고 뜻이 있는 자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말씀. 이 말씀을 독자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말고 무한도전 하라. 마음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 가리키는 방향을 잃지 말고.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고 찬란하게 빛날 미래의 나를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는 한, 그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