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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 폭력의 화면들
2. 폭력의 두 시기 3. '천성적인 살인자들' : 제거와 조롱의 사이 4. 폭력의 노예들 '증오' 5. 자유를 향한 시나리오들 : 가족, 전사들과 조상들 '전사의 후예' 6. 폭력을 해체하는 것, 혹은 어떻게 무장해제시키는가?-- '용서받지 못한 자'와 '인디어 러너' 7. 폭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추락에서 상승으로 8. 폭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시계태엽장치 오렌지'와 '메탈 9. 결론 10. 부록 # 1 : 볼모로 잡힌 도시 : 베이루트에 관한 영화들 11. 부록 # 2 : 이미지의 거짓과 맹목적 광신주의... 존 휴스턴의 '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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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갱들이여!
--- 00/01/05 고흥준(coju@hitel.net)
많은 여배우들이 '작품을 위해서라면 옷을 벗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전유성 氏는 소주 광고에 누드로 출연하면서 '예술을 위해 벗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상 그의 말은 앞서 말한 여배우들의 발언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이것은 그가 어떤 의식의 행위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품으로 제조된 의식을 파괴하는 대권자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어눌한 말투와 표정으로 패러디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가 신앙처럼 믿고 있는 문화적 담론이 지닌 불순함이다. 수많은 '예술지상주의 여배우'들에 대한 냉소다.
흔히 의식있다는 여배우들에게 있어 영화의 가치는 시나리오에 있지 않고, 영상을 평가하는 평론가들에게 있다. 이런 종속성향이 부질없는 '의식'을 낳는다. 예술지향론적인 발언으로 면책권을 행사하는 배우들의 작태는 그 방식과 효과에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도정(道程)에 놓여있으므로 모순을 낳는다. 또한 이지적인 예술론의 구현에 실패했을 경우 폐기의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다분히 기만적이다. 올리비에 몽젱이 말하는 폭력의 경우도 예외적이지 않다. 그에게 있어 폭력은 의도된 문화론처럼 불손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오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책 속에 열거된 수많은 영상 이미지들 속에 재현되는 폭력은 상징과 은유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가해로써의 폭력이다. 악의 질서, 즉 폭력이 거두고 있는 성과는 그것이 기본적인 성향으로써의 기발제인지도 모른다는 발상이다. 폭력의 이미지가 작용하는 영화시장은 흔히 우리가 이해하듯 단순히 상업적 논리 아래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폭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세력의 불평등한 조작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단절된 커뮤니케이션의 실체가 폭력의 이미지들을 잉태하고 배양하는 곳에는 무책임한 공급자와 무의식적인 수요자가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작은 실례에 불과하다. 폭력의 내적 분화에 의해 가해의 규칙은 관객의 욕구를 종속시키고 또 다른 거부집단과의 마찰을 낳는다. 이런 초기적 폭력의 구사는 이미 이 시대와 사회의 대중적 매체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의 폭력은 독재적 폭력으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 몽젱은 이러한 이미지의 폭력에 대해 단순한 비난이나 거부의 몸짓으로 우려를 표방하는 대신 몇몇의 대안적인 폭력을 시사함으로써 수동적인 둔화와 긍정적 공유로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적극적인 배척이나 거부보다 덜 엄격하고 포괄적인 공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폭력의 이미지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몽젱에게 있어서 폭력은 폭력을 야기하는 집단과 수용하는 집단 사이의 갈등과 해소의 단계를 넘어서 있다. 이미 리모컨의 플레이버튼 하나로 모든 비상식적 이미지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 시대에서 단순한 배척이 아닌 화해나 공유를 도모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몽젱은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의문만 남아있는 공백이 이 책이 지닌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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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이미지들의 막대한 책임은 단지 그것이 주변의 폭력을 촉발시키거나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동시에 그것은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방어하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p.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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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의 대변인이 모든 의혹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 이것은 고전적인 주제이다.
--- p.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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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다 잘됐어> 질 파비에와 마티외 카소비츠 지음 '중요한 것은 추락이 아니라 떨어져 땅에 이르는 것이다.'
--- p.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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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다 잘됐어> 질 파비에와 마티외 카소비츠 지음 '중요한 것은 추락이 아니라 떨어져 땅에 이르는 것이다.'
--- p.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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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폭력, 일찌기 폭력이 이처럼 미화된 적이 있었던가? 영화와 텔레비전의 화면을 침범한 폭력은 서구 국가들에서 사회적인 논쟁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없다면, 비난해야 하는가? 보통 몇몇 민감한 질문들이 열렬한 입장들과 흔히 피상적인 입장들을 끌어낸다.
올리비에 몽젱은 반대로 사람들이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영화를 가까이에서 검토하는 입장에 섰다. 60년대 폭력이 나타나는 방식과, 오늘날 제시되는 방법 사이에 분명하게 변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 현대의 폭력성은 폭력 자체로 내비쳐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추월할 수도, 그것을 제거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다. 폭력 장면들을 비난하는 대신,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트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