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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004
지도로 보는 우리 곁의 한시 008 명사십리에 해당화 붉고 012 강원도 고성군 청간정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고 028 강원도 강릉시 초당마을 허난설헌 생가터 이루지 못한 연파조수의 꿈 050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유적지 푸른 바위에 정자가 있는데 푸른 연못이 도네 061 경상북도 봉화군 청암정 인간 세상의 참혹한 사건을 목격한 은행나무 080 경상북도 영주시 금성단 압각수 매화에 부친 처사의 꿈 093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 6백 년 된 매화에 얽힌 여러 이야기 109 경상남도 산청군 단속사 정당매 남강 바위에 서린 넋 119 경상남도 진주시 촉석루 비단을 펼친 듯한 묘한 시구 133 전라북도 부안읍 매창 묘지 사랑의 공간이 된 선녀의 궁궐 149 전라북도 남원시 광한루 글자 없는 묘비 169 전라남도 장성군 박수량 백비 그늘 속에서 그림자를 쉬게 하는 곳 178 전라남도 담양군 식영정 연자루 안의 그리움은 서글프네 199 전라남도 순천시 연자루 팽나무 대문의 죽림정 213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마을 죽림정 세상 험난한 것은 물속 같은 것이 없으리라 225 탐라의 잠녀 추사가 사랑한 수선화 246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김정희 유배지 사진 출처 258 |
奇泰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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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읽고, 역사도 배우고
교과서 속 인물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 강릉시 초당마을에 가면 허난설헌 생가터를 비롯해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난설헌은〈죽지사〉에서 “집은 강릉 돌 쌓인 물가에 있는데, 문 앞 흐르는 물에 비단옷 빨지요. 아침엔 한가히 목란배를 매어 놓고, 원앙새 짝 지어 날아가는 것을 부럽게 본다오.”라고 노래했다.〈죽지사〉는 당나라 유우석이 처음 개발한 시 형식인데 칠언절구에 지방의 풍속이나 남녀의 애정을 다루는 내용이 많다. 아침부터 물가에 배를 매어 놓고 다정히 짝지어 날아가는 원앙새를 부럽게 바라보는 여인.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남양주시 다산 유적지에는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과 함께 다산의 묘와 다산문화관, 실학박물관 등이 있다. 다산은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 묘지명을 지어서 생애를 직접 정리했다. 그〈자찬묘지명〉에서 “이는 열수洌水 정용丁鏞의 묘지이다. 본명은 약용若鏞이고, 자는 미용美庸이며 또 다른 자는 송보頌甫이다. 호는 사암俟菴이고 당호堂號는 여유당與猶堂인데 ‘주저하기를 겨울에 내를 건너듯 하고 조심하기를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했다. 다산은 외롭고 기나긴 유배 기간 동안 고향을 노래한 시를 여럿 남겼다. 안동 도산서원의 봄은 매화로부터 온다. 도산의 주인 퇴계 이황은 자신의 뜻을 매화에 부쳤다. 퇴계는 평생 107수의 매화시를 지었는데 이 가운데 91수의 시를 손수 베끼어 써《매화시첩》을 만들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퇴계는 매화시에서 고산의 임포를 빈번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의〈매화가 답하다〉에 “나는 포옹이 환골탈태한 신선인데, 그대는 돌아온 학이 요동 하늘로 내려온 듯하구려[我是逋翁換骨仙 君如歸鶴下遼天]”라고 했는데, 매화는 임포가 변한 환신이고, 자신은 신선의 학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퇴계는 고산에서 은거했던 임포처럼 평생 매화를 사랑하며, 초야에 묻혀 사는 처사로 남을 것을 맹세했다. 조선 명종 시절에 부안의 기생 매창은 시인으로서 한양까지 이름을 날렸다. 당시 북쪽에 황진이가 있다면 남쪽에는 매창이 있다고 했다. 매창은 시조와 한시를 짓는 데 뛰어나고 노래와 금 연주도 빼어났다. 이매창의 시조,〈이화우〉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 시는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지었다. 매창은 1610년 38세로 요절했다. 유희경의《촌은집》에는 매창을 애도한 시가 없다. 도리어 다른 기생의 죽음을 슬퍼한 시는 있는데 말이다. 정작 매창에게 애도시를 헌사한 사람은 허균이었다. 부안읍 봉덕리 매창 묘지 옆 매창공원에는 그와 관련된 많은 글과 시를 새긴 비석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 추사 김정희 유배지 돌담가에는 수선화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여기서 수선화는 매화와 동시에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추사는 제주 수선화를 처음으로 사랑하고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이다. 추사는 이재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배지 주변에 흰 구름과 눈발처럼 널려 있는 수선화 무리에 감동해 눈물이 쏟아진다고 했다. 유배 오기 전에 중국에서 들여온 수선화 몇 송이를 애지중지 키웠는데 뜻밖에 제주도에서 잡초처럼 지천으로 깔린 수선화를 목격했던 것이다. 이렇게 여행이 즐거워지는 역사 이야기는 끝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