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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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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지리산의 평화를 가져온 차일혁을 생각한다
차일혁 경무관을 추모하며
차일혁 대장님 영전에
이 글을 민족 앞에...

제1부 빨치산 토벌대장이 되다
6.25 발발과 유격대 대장으로
인민군 보급차 습격으로 피신 다니는 몸이 되어
빨치산 토벌 위해 전투경찰에 입문하다

제2부 빨치산 토벌작전
구이면의 첫 토벌을 명령 받다
칠보작전
고창작전
정읍작전
명덕리작전
가마골작전

제3부 아! 이현상
57사단과 북에서 남파된 6지대
빨치산에 속아 구천동작전에서 참패
무주경찰서장으로
외팔이 사살작전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부임
제5지구당 해체와 이현상의 지위격하
이현상의 의문의 죽음
아! 지리산

저자 소개 1

1947년 4월 7일 전라북도 전주 출생.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는 구명시식을 통해 삶의 성찰과 지혜를 널리 대중들과 나누고 있다. 문화기획자, 언론인, 재야사학자, 베스트셀러 작가 등으로서 사방팔방맹렬하게 활동하는 그는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말미암아 천수관음상을 연상시킨다. 남들은 차길진 법사를 이 시대 최고의 영능력자라고 평하길 주저하지 않지만 본인은 달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그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충남 유성 계룡산, 미국 뉴저지, 일본에 후암정사를 설립하고 종교적 삶을 천작하고 있다. 특히 차길진은 차일혁 경무관의 아들로 차 경무관의 수기 '진중기록'을 바탕으로 1
1947년 4월 7일 전라북도 전주 출생.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는 구명시식을 통해 삶의 성찰과 지혜를 널리 대중들과 나누고 있다. 문화기획자, 언론인, 재야사학자, 베스트셀러 작가 등으로서 사방팔방맹렬하게 활동하는 그는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말미암아 천수관음상을 연상시킨다. 남들은 차길진 법사를 이 시대 최고의 영능력자라고 평하길 주저하지 않지만 본인은 달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그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충남 유성 계룡산, 미국 뉴저지, 일본에 후암정사를 설립하고 종교적 삶을 천작하고 있다. 특히 차길진은 차일혁 경무관의 아들로 차 경무관의 수기 '진중기록'을 바탕으로 10여년간 지리산일대를 탐문하여 역사에 묻혔던 지리산 빨치산들의 행적을 밝혀내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를 출간했다. 본 원고는 월간중앙(1989년 8월) 논픽션 부분에서 우수작으로 당선되었으며, 복간된 월간 '다리'지에 '빨치산 토벌대작전'으로 연재되기도 하였다. 경력: 현 차일혁기념사업회 대표, 현 서울히어로즈프로야구단 구단주, 현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현 (주)후암문화공간 대표, 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청 박물관 운영위원, 현 숙명여자대학교 역사관 운영위원.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 한국불교신문, 월간 불교 사장, 오성 INC회장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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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37쪽 | 485g | 148*210*30mm
ISBN13
9788996553625

출판사 리뷰

“1990년 초 나는 선친 차일혁 총경의 행적을 더듬어 정리한 원고를 ‘월간중앙’ 복간 1주년 기념 논픽션 공모에 응모하여 우수작으로 당선되었다. 이렇게 해서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가 출간되었다.

5000년 이어져온 우리 민족사라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지리산 토벌대와 빨치산의 대결사는 극히 짤막한 대결에 불과할 것이다. 이 짧은 기간에 부상된 두 개의 조국, 그 조국을 위해 뜨거운 피를 흘렸던 이 땅의 젊은이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빨치산을 토벌했던 토벌대도, 토벌대에 희생된 빨치산도 같은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길 기대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시작이지 완결편은 되지 못 할 것이다. 이 책은 아버지의 전쟁임과 동시에 우리 근대사의 기록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공중파 방송에서 ‘여명의 눈동자’가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숨겨진 이야기지만 드라마 주인공인 장하림, 최대치의 모델이 차일혁이었다.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했다.”

◇ 차일혁 경무관
1920년 전북 김제군 금산면 성계리에서 태어나 1935년(16세) 홍성공업전수학교에 입학하였다. 17세에 일본인 형사를 구타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직후 일제 악질 고등계 형사 사이가, 미와, 쯔보이 등을 저격하고 호국군과 청년 방위대에서 봉직.
1950년(30세) 6.25전쟁이 터지자 ‘옹골연 유격대’를 조직하여 유격전 도중 부상을 당하여 군에서 제대한 뒤, 1950년 10월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장(경감)에 투신하여 ‘지리산 호랑이’란 별명으로 정읍 칠보발전소를 탈환하고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는 등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충주경찰서장, 충남도경 경비과장, 진해경찰서장, 공주경찰서장 등을 역임했으며 1958년 공주에서 작전 훈련 중 38세의 나이로 순직하였다.
1998년 화엄사 경내에 그를 기리는 공적비가 세워졌고, 1999년 충주경찰서에서 공덕패를 수여하였으며, 2000년 조선일보창간 80주년기념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인물’에 선정되었다. 2008년 6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호국인물로 선정되었고, 그해 10월 6개의 고찰을 전화(戰火)에서 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2011년 경무관으로 1계급 특별 승진하였다.

만주에서 항일 무장독립 투쟁을 하고 해방 후 귀국한 차일혁은 유격대를 결성해 북한의 인민군과 싸우던 중 경찰에 특채되어 빨치산 토벌대 대장으로 복무한다. 6.25전쟁 중에는 빨치산 소탕을 담당하는 전투경찰대 제2연대연대장으로 근무하며 조선 공산당 총사령관인 이현상 등을 토벌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급적 귀순을 유도하여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렸다.
가동 중이던 남한유일의 칠보발전소가 적에게 포위되자 70명의 결사대원으로 2천여 명의 적을 격파한다.
1951년 5월, 전라북도에 새로 주둔한 국군 8 사단(당시 사단장 최영희 준장)과 군경합동 회의 참석차 차일혁은 도계로 갔다. 회의에는 지리산 전투경찰대 사령관 신상묵을 비롯한 경찰 지휘관들과 최영희 사단장 및 8사단 참모들이 참석했다. 회의 후 따로 모인 전투경찰대 지휘관들은 화엄사 소각 명령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 명령은 숲이 우거질 시기인 녹음기에 빨치산들이 근거지가 될만한 사찰 및 암자를 소각하라는 것이었다. 화엄사 소재 지역은 8사단 방득윤 대대장이 관할하고 있었고, 명령도 방득윤 대대장에게 내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방득윤 대대장은 명령 수행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차일혁 18대대장은 방득윤 대대장에게 해결책을 제안했다. 화엄사 대웅전 등의 문짝을 떼어내어 문짝만 소각하는 것이었다. 차일혁은 명령을 "공비들의 은신처를 없애고 관측과 사격을 용이하게 하자는 것"으로 이해했고, 문짝만 뜯어내어 소각해도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방득윤 대대장도 이에 동의했고, 이로써 화엄사는 전체 사찰이 소각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천은사, 쌍계사, 선운사 등 유명한 사찰 등 문화재들에 대한 폭격도 될 수 있는 대로 피했다. 결국 그는 잇따른 명령 불이행으로 감봉처분을 받았다.
휴전이 되었지만, 지리산의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이현상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도 사살하였다. 그러나 차일혁은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벌어진 부질없는 동족상잔이었다고..”라는 글을 전북일보에 기고하였다. 그는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을 화장하여 하동 송림에 뿌리며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이로 인해 상부로부터 질책을 받아서 부대원들에게 태극무공훈장이 3개나 수여되었지만 자신은 받지 못하였다.

◇ 언킷보도
“우리 경찰 중에 항일독립군 출신이 몇 명이나 되는가? 피비린내 나는 6.25 이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과 아군의 존경을 동시에 받은 경찰이 누가 있는가? 살육의 전장에서 상부의 명령을 어겨가며 한줌의 재로 소실될 문화재를 보호하고, 경찰 영화를 만들고, 극장을 세운 공로로 문화훈장을 받은 경찰이 누가 있는가? 전쟁 물자로 민간인 집을 짓고, 직업청소년학교를 세워 전쟁고아 재기에 힘썼던 경찰이 누가 있는가?
항일독립군 출신의 경찰, 호국경찰, 인본경찰, 문화경찰인 고(考) 차일혁 경무관은 그러한 이유들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경찰의 표상으로 선정되었고, 경무관으로 특진되었다.”
-인터넷 신문 후아이엠(2009. 7. 4.)

“6·25 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을 담당하면서, 사살 보다는 귀순을 유도해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린 인물”
- 연합뉴스 차일혁 경무관 추서 보도 중 (2011. 8. 27)

“그는 1951년 6월 11일자 전북일보에 "공비 토벌 중 소 두 마리를 노획했으니 주인은 찾아가시오"라는 광고를 실었다. 토벌대원의 주린 배를 채우는 것도 급했지만 목숨 같은 소를 잃은 농민 심정을 먼저 헤아렸다.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 (2011. 6. 17)

“이데올로기, 적군과 아군을 초월한 박애주의적 사랑을 실천한 실존 인물 차일혁”
뉴시스 (2010. 5. 4.)

“전란 중에 상부의 명령을 어겨가며 화엄사 전소를 막고 국창 임방울의 육성을 녹취해 후손에게 남긴 문화 경찰”
- 일요서울 (2010. 1. 26.)

“지리산 달궁 위령제에서 빨치산 출신이 유일하게 토벌대 측의 차일혁 대장의 만장기를 들고 있었다.”
“보복 살육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에 마취되지 않은 자율적 결단과 철저한 자기책임을 온몸으로 보여준 차일혁은 책임지지 않아 아물지 못하는 분단조국의 깊은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할 귀중한 줄기세포 같은 존재다.”
- 이부영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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