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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강문신 함박눈 테왁·12 강애심 숨비소리·13 강현덕 우도 여자·14 강현수 잠녀삼촌·15 구애영 테왁, 혹은 물숨·16 권갑하 하도리 해녀군상·17 곽홍란 오후 세 시의 바다·19 김강호 상군 해녀·20 김계정 그곳에 그녀가 있다·21 김광순 4·3 해녀·22 김덕남 두렁박 타령·23 김동관 해녀, 꽃피다·24 김민정 부표를 읽다·25 김복근 물질·26 김석이 테왁을 보다·27 김선희 상처가 늙고 있다·28 김성영 하군 비바리의 사랑가·29 김소해 돌미역·30 김수엽 해녀상象 앞에서·31 김양희 파도 멀미·33 김연동 바다와 해녀·34 김연희 칠성판 등에 지고, 혼백 상자 머리에 이고·35 김영란 해녀콩·36 김영순 똥군해녀·37 김영철 아름다운가, 숨비소리·38 봉집 김용채 모질도??圖 숨비소리 2·39 김윤숙 구룡포에 들다·40 김윤숭 제주해녀 애가·41 김임순 숨·42 김 정 어머니의 망사리·44 김정숙 인어 이야기·45 김정해 푸른 불새·47 김종영 숨비소리·48 김주경 물숨·50 김진숙 숨 1·52 김진희 등대·53 김차순 물의 길·54 김춘기 숨비소리, 수평선 흔들다·55 김희운 섬 하나·57 노창수 잠녀의 신화·58 문경선 숨비소리·59 문수영 섬·60 문순자 갯무꽃·61 문희숙 해녀·62 박권숙 해녀·63 박기섭 가시加時·64 박명숙 위미 동백·65 박방희 제주해녀의 시詩·66 박복영 물풀이 흔들릴 때·67 박성애 할머니 해녀·68 박수근 고내포구 비파소리·69 박영식 물숨·70 박옥위 제주 마지막 해녀의 꿈·71 박지현 집 한 채·72 박홍재 지구에 매달려서·73 박화남 내 이름은 해녀·74 박희정 긁다·75 배경희 해녀콩·76 배우식 딱 한숨·77 백순금 숨비소리, 그녀·78 변현상 짙은 수다·79 서연정 숨·81 서석조 이어도·82 서숙희 그 여자의 바다·83 서일옥 해녀, 어머니·84 서정택 세이렌·85 서정화 누가 언제쯤이면 이 후라이를 뒤집나?·86 서태수 강물 홀로 아리랑·87 손증호 절영도 12·88 송유나 엄니의 바다·89 신춘희 제주해녀·90 신필영 해녀 김삼순·91 양점숙 해녀·92 염창권 어멍의 바다 ·93 오승철 그리운 붉바리·94 오영호 바다 위에 테왁들이 둥둥 뜨는 날은·95 오종문 어멍의 바다·98 옥영숙 제주 샛담·99 우아지 해녀 사설·100 우은숙 오토바이 탄 그녀·102 윤금초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103 윤종남 제주, 그리고 바다·106 이기라 우도 해녀·107 이 광 숨비소리·109 이남순 귀항·110 이두의 해녀 이야기·111 이말라 여·112 이명숙 그 여자의 바코드·115 이복현 즐거운 비밀·116 이숙경 그예·117 이승은 물밭·118 이양순 이어도의 아침·119 이애자 할망바당·120 이우걸 해녀·122 이은주 여·123 이정홍 해녀 물질·124 이정환 협재 해녀·125 이지엽 제주바다 여자·126 이창선 미역해경·128 이한성 제주바다에는 휘파람새가 산다·129 이행숙 그 여자의 바다·130 인은주 그녀의 수법·131 임 석 바다 밭·132 임성구 숨비소리로 오는 봄·133 임성화 제주바다·134 임영숙 터·135 임채성 물의 딸·136 임태진 어떤 귀향·137 제만자 우도에 남아·138 전정희 해녀에게 길을 묻다·139 장영심 불턱·141 장영춘 이모 바당·142 장은수 비양도 어머니·143 정경수 기장 해녀 말라·144 정수자 푸른 동거·145 정옥선 테왁이 있는 풍경·146 정유지 바다섬, 테왁·147 정진희 물숨·148 정평림 세화리 순비기꽃·149 정현숙 바다가 된 어멍·151 정형석 제주해녀·152 정황수 구럼비 순비기꽃·153 정희경 불턱·154 조경애 비바리에게·155 조명선 물-숨·156 조 안 이어도사나·158 조한일 물질일보日報·159 조호연 며느리와·160 진순분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161 천성수 돌아가고 싶다·162 최성아 긴 생머리·163 최영효 숨비기새·164 추창호 해녀·165 하순희 푸른 해녀·166 한분옥 숨비·167 한희정 종달리 수국·168 홍진기 바다를 캐다·169 대담 [나의 삶 나의 물질] | 김윤숙·강애심 85세 해녀 임순옥씨, 아직도 물질은 끝나지 않았다·172 발문 | 김순이 제주해녀는 세계최강이다·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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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테왁
강문신 신묘년 새 아침을 서귀포가 길을 낸다 적설량 첫 발자국 새연교 넘어갈 때 함박눈 바다 한가운데 테왁 하나 떠 있었네 이런 날 이 아침에 어쩌자고 물에 드셨나 아들놈 등록금을 못 채우신 가슴인가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물에도 풀리지 않는 새해맞이 며칠간은 푹 쉬려 했었는데 그 생각 그마저도 참으로 죄스러운 먼 세월 역류로 이는 저 난바다… 우리 어멍 서울신문·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제주도문화상, 시조시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조운문학상, 시조집 『어떤 사랑』, 시선집 『나무를 키워본 사람』 숨비소리 강애심 1 제주시 바다에도 영락리 불빛은 있다 친정집 아버지 신열로 켠 등 하나 자맥질 못 해본 내가 숨비소릴 내고 있다 2 한 포대씩 돌린 귤이 자리돔으로 돌아오는 영락리 회귀 못 한 이 가을 연어처럼 내 삶의 지느러미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3 매립된 바다에도 더운 숨결 살아 있어 연체된 갈증 물고 솟아오른 갈매기 폭풍의 그 바다에서 집어등을 낚는다 2004년 『시조시학』 등단, 시집 『다시 뜨는 수평선』 『그 진한 봄꽃 향기로』 우도 여자 강현덕 햇살 출렁이는 우도에서 보았네 한숨의 깊이가 바다의 깊이란 걸 짙푸른 물의 깊이가 한 삶의 넓이란 걸 멈춘 숨 죽인 숨으로 살아온 우도 여자 바다를 다 안았네 천 평 만 평 제 것이네 주황의 테왁 위에선 휘파람 숨비소리 1994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첫눈 가루분 1호』 등, 역류 동인 잠녀삼촌 강현수 보목리 팽나무도 은퇴를 했나 보다 그 곁에 잠녀삼촌 강씨가 혼자 산다. 팔순의 자리젓 냄새 바다처럼 익었다. 4·3에 잃은 세월이 어디 나뿐이냐며 제비꼬리 같은 오리발 수직으로 꽂힌다. 망사리, 그 눈썹 끝에 걸려오는 풍경 하나 누구나 한 허리는 납덩이 달고 산다. 더러는 진눈깨비 더러는 반짝 햇빛 궤짝 속 짓다만 수의, 바람결에 마른다. 바닷가 키 낮은 집, 뼈마다 물이 들어 바다도 나뭇잎도 흔들리며 가는 시간 섶섬을 마당에 들이고 달려오는 너, 삼월아 제주 서귀포 출생. 2008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등단, 『열린시학』 등단, 정드리문학회 회장 역임, 서귀포시청 근무 테왁, 혹은 물숨 ― 우도해녀촌에서 구애영 1. 옹찬 속살 들어낸 구멍 없는 반달 팽팽하게 잠겨있는 목숨의 근처 같은 파도를 바다이게 한 뒤웅박의 저 자맥질 2. 방안에 나 혼자서 가만히 앉앙이시믄 호이 호이 휘파람소리 들리는 거 닮아 가슴이 촐랑촐랑해 막 바다에 가고정허여 3. 물숨은 숨이 아니지 멈춰야 살 수 있지 물안경, 쑥이파리, 씹던 껌, 뇌신 한 갑 버텨온 숨비소리에 맑게 뜨는 우도 하늘 2010년 『시조시학』 등단, 시집 『모서리이미지』 『호루라기 둥근 소리』 하도리 해녀군상* 권갑하 등 뒤로 바르팟* 흰 살결 아롱아롱 피워 올리는 북제주군 하도리 해안도로변 해녀들은 함부로 그 날 얘기를 풀어 놓지 않는다. 뿔 돋은 소라 껍질 밀물 썰물 모래가 되고 젖 불은 엄마는 자꾸 아이 젖을 물리지만 현무암 검은 가슴엔 하얀 포말이 섬뜩하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혼백 상자 등에 지곡 가슴 아피 두렁박 차곡 한질 두질 들어가난 저승길이 왓닥 갓닥 이여싸나 이여싸나* 머리엔 흰 수건, 두 손엔 빗창과 호미 호-이 호-이 숨비질 소리 수평선 띄워 놓고 일 천여 분노의 노래 주재소로 몰려갔다.* 그날 밤 덩치 큰 해일이 섬을 다 삼켰다 불턱에 갈무려 둔 불씨마저 다 지우고 바다는 고요가 잠든 밤 속으로만 흐느꼈다. * 하도리 해녀군상: 제주시 하도리 해변에는 현무암으로 조각된 5명의 해녀가 젖먹이 둘을 안고 있는 ‘해녀군상’이 세워져 있다. * 바르팟: 바다밭. * 이여싸나 이여싸나~: 제주민요 ‘해녀의 노래’ 일부. * 머리엔 흰 수건~: 일제강점기 일본의 수탈에 대항했던 해녀항쟁 역사. 1958년 경북 문경 출생, 문화콘텐츠학 박사, 조선일보·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시조집 『외등의 시간』 등, 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오후 세 시의 바다 곽홍란 바다를 버릴 수 없어 섬이 된 휘파람새 병상에 홀로 누워 갯바위를 더듬는지 몸 안쪽 허물어져서 휘어 넘는 긴 파랑 밀치며 끌어당기며 건져 올리던 기억 태양마저 몸 사리던 물밭 박차 올라도 수평선 새끼발가락 겨우 닿던 흰 부리 고래심줄만큼 질기고 찰박한 아흔 바당 곱던 손 다 닳아서 지문조차 잃어버린 울 엄마 숨비소리로 오후 세 시를 건진다 조선일보·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직선을 버린다』, 동시집 『글세, 그게 될까』, 소리시집 『내 영혼의 보석상자』 『가슴으로 읽는 따뜻한 시』 등 상군 해녀 김강호 해녀의 발끝에서 파고는 시작된다 하늘도 출렁거리는 여든 해 할망 물질 바다를 삼켜버린 멍게 그 멍게 담은 망사리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참, 좋은 대통령』 등 그곳에 그녀가 있다 김계정 세상에는 없는 별 머리 위에서 빛나면 한잎 두잎 꽃잎인 양 물살이 키우는 꽃 차가운 생의 노래에 파도가 지나간다 웃음 한 그릇 풀어 다정하게 나눠 마시면 발끝까지 투명하게 전해지는 뜨거운 피 바다를 등에 업고서 출항을 서둘렀다 햇볕도 쉬어가는 새까만 민낯으로 출렁이는 속울음 쏟아 부은 바닷속 취한 듯 비틀거리며 만선 한 척 들어온다 2006년 백수 정완영 시조백일장 장원, 『나래시조』 등단, 시조집 『눈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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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꽃, 제주해녀
제주여성이 이룩한 인류의 문화유산 2016년 11월 30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은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받았을 때 지정되는데 현재 세계무형유산으로 약 330여 종목이 지정돼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이룩한 문화로서는 세계에서 이것이 유일하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로써 제주도는 뛰어난 자연유산에 이어 세계인의 주목과 부러움을 받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때 해녀는 잠수 일을 할 때면 분명 해녀복을 입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벌거숭이 상태로 일하는 것처럼 ‘불보재기’라며 괄시와 천시를 받았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눈에는 해녀복은 옷도 아니었던 것이다. 바다 깊이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선 물의 저항을 최소화해주는 뛰어난 기능복은 필수장비였다. 그때는 그랬다 치고, 현재도 해양관련 통계에는 해녀라는 용어보다 발가벗고 잠수하는 업자라는 뜻을 가진 나잠업자(裸潛業者)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한시바삐 바로잡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녀가 언제부터 제주바다에서 활동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해녀 연구자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의 선사유적(先史遺跡)에서는 어김없이 다량의 커다란 전복껍질들이 나온다. 전복은 수심 5미터 이상에서만 서식한다. 썰물에 드러나는 갯가에서는 잡을 수 없는 해산물이다. 그러므로 이를 채취하기 위한 잠수를 선사시대 사람들도 했을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다. 제주해녀는 한겨울에도 수심 20미터까지 잠수하는 강인한 체력을 지녔다. 스쿠버다이버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단숨에 바다 밑에 이르기 위해 수압조절도 없이 잠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몸에 충격을 주는 일인지. 그뿐인가, 해산물을 채취하고선 턱까지 차오른 숨을 비우려고 일렁이는 두꺼운 초록빛 유리벽을 단숨에 머리로 들이받아 깨뜨리며 올라와야 한다. 이때 올라와 내뱉는 소리가 숨비소리이다. 바다 속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절박하고 서러운 안도의 숨소리이다. 해녀들은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100~200번을 잠수한다. 해산물을 채취할 욕심에 수압으로 생긴 초록빛 물벽을 들이받을 때마다 받는 충격이 쌓여 잠수병이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 전 지역은 물론 일본 중국 소련까지도 행동반경을 넓혀 벌어들인 돈은 한때 제주경제의 활력소였다. 밭과 집을 사서 가정경제를 일으켰으며 처녀들은 혼수 비용도 자신이 마련했다. 자립심과 경제력은 제주해녀가 갖춘 기본역량이었다. 불턱에서 길러지는 빛나는 공동체 정신 제주해녀가 지닌 강인한 체력, 악착같은 경제력, 남자에게 기대지 않는 자립심도 남다르지만 세계무형유산에 지정될만한 값어치를 가진 제주해녀의 가장 빛나는 덕목은 공동체 정신에 있다. 불턱은 공동체정신의 산실이었다. 열다섯 살이 되면 해안가에 사는 여자아이는 성인으로 인정받아 해녀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간다. 그때부터 해녀들이 작업하고 올라와 불을 쬐며 휴식하는 불턱에 끼어 곁불도 쬐며 선배해녀들의 대화를 얻어들어가며 바다에의 지식과 경험을 쌓아간다. 해녀들의 군대와 같은 위계질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던 곳이‘불턱’이다. 불턱은 물에서 작업하고 올라와 불을 쪼이던 휴식처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우묵진 바위그늘이나 돌담을 둥글게 두른 곳으로 중심에는 모닥불을 피웠다. 현대식 샤워시설을 갖춘 탈의장이 생기면서 이제 더 이상 불턱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불턱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날의 바람 방향에 따라 연기와 불티가 날아들지 않는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인데 리더인 대상군의 좌석이다. 대상군을 중심으로 좌우에 상군이 앉고 중군과 하군이 자리 잡는다. 해녀가 많은 마을에서는 아예 따로 상불턱, 중불턱, 하불턱을 만들기도 한다. 불턱은 해녀공동체의 정보센터이며 여론의 집합지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매너(maner)가 검증되며 도덕성과 리더십(leadership) 자질이 은연중에 드러나게 된다. 바다에서 먼저 올라와 불을 피우는 사람이 추위를 유난히 타는 해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 작업을 끝내고 와 불을 피워놓고 무거운 짐을 받아주는 그런 속 깊은 해녀가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이익에 잔머리를 굴리며 탐욕적인 근성을 억제하지 못하는 해녀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해녀는 개인적인 기량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중요 결정에서는 말의 씨알이 먹혀들지 않게 마련이며 위계질서에 있어서 상위권에 진입하지 못하는 흠이 된다. 불턱은 해녀들에게 있어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전달의 장소이며 삶의 애환을 풀어놓는 카운셀링의 장소이다. 해녀공동체의 진로에 대한 논의의 장소이며 마을에 떠도는 온갖 소문이 모여드는 정보교환의 장소이기도 하다. 애기해녀는 불턱에서 대상군을 비롯한 상군, 중군, 하군 해녀들의 위계질서, 그에 따른 의무와 도리를 배우고 익혀나가는 동안 한사람 몫을 하는 어엿한 해녀로 성장한다. 목숨 걸고 왜놈들에게 저항 제주해녀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착취와 강압에 저항했다. 1920년 일제는 해녀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어 해녀협회를 창립하고 조합장은 제주도의 행정책임자인 일본인 제주도사(濟州島司)가 겸임했다. 처음 얼마간은 해녀들을 위하는 척 했으나 머지않아 착취와 수탈이 본격적으로 공공연히 자행됐다. 1. 바다에 다니는 15세 애기해녀건 80세 넘은 할망해녀건 바다에만 들어가면 무조건 입어료(入漁料)를 납부하도록 했으며 해녀조합에 강제로 가입시켜 조합비를 내게 했다. 2. 일본인 독점상인을 지정해놓고 전복과 소라 등의 해산물을 그에게만 판매하도록 했다. 3. 해산물 판매 시 저울눈을 속이는데다 판매 수수료를 따로 받아냈다. 그나마 해녀의 몫으로 돌아오는 20% 정도의 판매대금은 외상으로 처리되어 언제 받을지 몰랐다. 4. 각 읍면마다 일본인 해녀조합 서기를 상주시키고 보수를 해녀들에게 부담시켰다. 5. 경상도나 전라도 또는 일본의 대마도 등으로 해녀들이 나가려면 출가수수료를 내야만 허가증을 받아 나갈 수 있었다. 1930년부터 제주해녀들은 이에 대한 진정서를 몇 번이나 행정당국에 제출했으나 답은 지지부진이었고 무성의하기만 했다. 억압과 수탈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해녀들은 들고 일어섰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이 짓밟힘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대표적인 항일투쟁은 1932년 1월 12일 일어났다. 다구치 데이키(田口禎喜) 제주도사가 순시를 온다는 정보가 돌았다. 마침 그날은 구좌읍 세화리 오일장날이었다. 차가운 북풍이 살갗을 파고드는 겨울날, 하얀 무명천의 해녀복을 입고 손에는 전복 따는 도구인 빗창을 든 그들은 사뭇 비장했다. 구좌읍 일대는 물론 성산 우도해녀들까지 1,000여명이 모여들었다. 해녀대표 3인이 이들을 이끌었다. 부춘화(당시 25세) 김옥련(당시 23세) 부덕량(당시 22세)은 장터에서 외쳤다. “우리를 착취하는 일본상인 몰아내자!” “해녀조합은 해녀의 권익을 옹호하라!” “우리의 진정서에 아무런 회답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우리들의 진정한 요구에 칼로 대응한다면 우리는 죽음으로 대응하겠다!” 이날 살기등등한 해녀들에게 포위된 다구치는 해녀들의 모든 조건에 응한다는 헛된 약속을 하고 혼비백산, 줄행랑을 놓았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부터 주동자 검거선풍의 피바람이 불어 닥쳤다. 해녀대표들은 물론 이 봉기를 정신적으로 도운 민족주의자들이 감옥에서 가혹한 취조와 고문으로 죽음을 맞았다. 해녀들은 1930년부터 1932년까지 230여회에 걸쳐 시위를 벌였고 참가한 해녀는 2만여 명에 달했다. 제주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제주에서 일어난 3대 항일운동의 하나이며 여성들만이 일으킨 항일운동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제주바다가 일구어낸 자연과의 공존 지혜 2017년 9월 현재 제주바다를 활동무대로 하는 해녀는 4,000여명이다. 일 년에 한번이나 두 번 우뭇가사리 공동채취 때나 얼굴을 내미는 해녀들이 약 5,000 명, 도합 9,000여 명의 해녀가 존재하는 셈이다. 주축을 이루고 있는 60~70대의 고령자가 사망하면서 해녀 수는 날마다 줄어들고 있다. 다행스럽게 근래 해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실히 바뀌었고, 해녀를 직업으로 가지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시의 한림해녀학교에 이어 서귀포시에 법환해녀학교가 생기고 이곳에 지원한 학생 중에는 현직 교수를 비롯해서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도 꽤 된다. 이들의 체험을 통해 해녀의 삶은 보다 리얼하게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해녀공동체는 폐쇄적인 태도를 좀처럼 풀려고 하지 않고 있다. 예전의 그 아름답던 관행들, 포용력과 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던 멋진 대상군 리더는 보이지 않고 마을에서도 이기적인 집단으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실정에 이르고 있다. 행정당국에서도 해녀 보존을 위한 여러 대책들을 내놓고 있으나 기존 해녀조직이 완강하게 버티며 젊은 해녀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 제주바다에서 해녀가 사라질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해녀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전승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칠고 야성적인 그들의 불문율 속에는 진주와 같은 지혜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존의 법칙이 엄연하다. 해녀들이 일구어낸 전승문화는 해양을 무대로 한 생업기술로서 바다가 미래자원으로 대두되는 21세기에 우리가 더욱 소중하게 가꾸어야할 대상이다. 제주해녀의 강인한 정신과 자연과의 공존, 공동체 정신은 세계의 여성들이 전승해 가야할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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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이 물에 드는 날, 제주바다는 휘파람새 떼 울음의 장 같습니다.
‘물숨’이요, ‘숨비소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의시조시인회 2018 여름세미나는 마치 그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처럼 회원들의 ‘해녀’ 관련 시편들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시집의 제호도 『해양문화의 꽃, 해녀』로 정했습니다. 이는 세계인들의 눈에 비친 해녀의 모습을 지칭한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를 2016년 11월 30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이에 화답했습니다. 조선 세종 시절, 제주 목사로 부임했던 기건寄虔은 눈 내리는 날 해녀들의 고된 물질 모습을 보고, “저렇게 힘들게 채취하는데 앞으로 내 밥상에는 전복을 아예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제주에서 해녀의 역할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물질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해녀는, 좋은 풀을 찾아 유랑하는 유목민처럼, 국내는 물론 일본·중국·소련의 국경을 넘어 바다를 찾아 나서는 도전·개척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일제의 수탈에 맞서 대규모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독립투사들이었습니다. - 오승철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