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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어머니의 노래 오르골 연주 (Mother’s Song)
33곡의 우리 전래 동요 모음집 2CD + 고급 양장본 + 전곡 가사 및 일러스트레이션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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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백옥같이 예쁜아기 - 고성
  • 02 꼬박꼬박 잠이온다 - 함양
  • 03 별이 삼형제 - 방정환/정순철
  • 04 둥개둥개 우리아기 - 전주
  • 05 초생달 - 한국전래
  • 06 새야 새야 파랑새야 - 전라
  • 07 부엉이 노래 - 의성
  • 08 타박 네야 - 전라,함경
  • 09 새는 새는 나무에서 - 상주
  • 10 누에 노래 - 선산
  • 11 비야 비야 오지마라 - 충남
  • 12 언니 온다 - 강릉
  • 13 나물 노래 - 공주
  • 14 아리랑 - 경기
  • 15 달맞이 - 윤석중/홍난파
  • 16 자장가 - 한국전래

Disc2

  • 01 M 짝짜꿍 - 윤석중/정순철
  • 02 잘잘 잘 - 한국전래
  • 03 쎄쎄쎄 - 한국전래
  • 04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 한국전래 - 한국전래
  • 05 우리 집에 왜 왔니 - 한국전래
  • 06 꼬마야 꼬마야 - 한국 전래
  • 07 햇볕은 쨍쨍 - 최옥란/홍난파
  • 08 퐁당 퐁당 - 윤석중/홍난파
  • 09 대문 놀이 - 전라
  • 10 옛날 옛적에 - 경기
  • 11 고추 먹고 맴맴 - 한국전래
  • 12 쪼로롱 종달아 - 황해
  • 13 가재골 양반이 - 경기
  • 14 베틀 노래 - 경기
  • 15 도라지 타령 - 경기
  • 16 둥그레 당실 - 제주
  • 17 밀양 아리랑 - 경상

아티스트 소개 5

작곡정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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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홍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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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Nan Pa,洪蘭坡, 홍영후永厚

1989년 4월 10일 경기도 화성군 남양읍 활초리에서 홍순(洪淳)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영후(永厚)이고, 난파(蘭坡)는 호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2세(1912)에 중앙 기독교 청년회 중학부에서 바이올린 수업을 시작했다. 15세(1913)에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바이올린 및 악전대요를 공부하고,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생들의 크리스마스 축하 무대에서 독주를 했다. 16세(1914)에 김상운과 결혼하였다. 17세(1915)에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 교사로 2년간 근무했다. 18세(1916)에는 홍난파가 쓴 최초의 곡인 창가 「야구전」을 발표했
1989년 4월 10일 경기도 화성군 남양읍 활초리에서 홍순(洪淳)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영후(永厚)이고, 난파(蘭坡)는 호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2세(1912)에 중앙 기독교 청년회 중학부에서 바이올린 수업을 시작했다. 15세(1913)에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바이올린 및 악전대요를 공부하고,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생들의 크리스마스 축하 무대에서 독주를 했다.

16세(1914)에 김상운과 결혼하였다. 17세(1915)에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 교사로 2년간 근무했다. 18세(1916)에는 홍난파가 쓴 최초의 곡인 창가 「야구전」을 발표했다. 19세(1917)에 의학에 뜻을 두고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지만 1년 후 중퇴했다. 『악전대요』(박문서관), 『명곡신집(明曲新集)』(박문서관), 『통속창가집』(박문서관), 『간이무답(簡易舞踏) 행진곡집』(박문서관), 『말 잘하는 사위』(광익서관), 『조선 정악보』(광익서관)를 펴냈다. 20세(1918년)에 부인 김상운이 사망한다. 도쿄의 우에노(上野)음악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21세(1919)에 도쿄에서 음악, 미술, 문학의 예술 잡지인 [삼광](삼광사)을 창간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해 매일신보 기자로 근무했다. 경성악우회(京城樂友會) 주간이 되어 음악 보급 운동을 전개했다. 「서울 계신 K 형께」([삼광], 창간호), 「북변잡기(北邊雜記)」([매일신보] 8월 11일∼8월 19일) 등의 수필과 단편 소설 「바람과 빛」([삼광], 창간호), 음악 평론인 「창가 유희의 교육상의 효능」(『삼광』 2호)을 발표했다. 22세(1920년)에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도쿄 복학이 거절되었다. 소설 『허영(處榮)』([매일신보], 9월 3일∼11월 18일)을 60회 발표한다. 단편 소설 「처녀혼」([삼광], 3호)을 출간한다. 이 책 서두에 「애수」라는 곡명으로 멜로디를 게재하고 김형준(金亨俊)이 작사해 「봉선화」가 탄생하게 된다. 9월 도쿄에서 ‘폴란드 고아 구제 대음악회’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 이를 홍난파는 최초의 연주회라 했다. 수필 「석왕사유기(釋王寺遊記)」,([삼광], 3호), 번역 소설 「빈인(貧人)」([삼광], 3호)을 각각 발표했다.

23세(1921)에 연극단의 음악과 연출을 맡았다. 자작 소설 『최후의 악수』([매일신보], 4월 29일∼6월 7일)을 쓰고, 이를 연극 대본으로 개작해서 자신이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해 주목을 끌었다. 24세(1922)에 전문 음악 연구 기관인 연악회(硏樂會)를 창설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27세(1925)에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잡지인 [음악계]를 창간했다. 세계 명작 가곡집(연악회)을 출판했다. 28세(1926)에 일본의 도쿄고등음악학원에 편입했다. 세계 악성집(연악회)을 출판했다. 29세(1927)에 도쿄 교향악단(현 NHK 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로 입단한다. 31세(1929)에 도쿄고등음악학원을 졸업하고, 『조선동요백곡집』(연악회) 상권을 간행했다.

32세(1930)에 중앙 보육학교 음악과 교수가 되었다. 33세(1931) 조선음악가협회를 결성하고 상무이사가 되었다. 미국 시카고 셔우드(Sherwood)음악대학으로 2년간의 유학을 떠났다. 35세(1933)에 귀국해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조선동요백곡집』(연악회) 하권을 출판한다. 이은상의 시조에 곡을 붙인 『조선가요작곡집』(연악회) 제1집을 발행했다. 36세(1934)에 경성보육과 이화여전 강사가 되었다. 빅터 레코드사의 음악부 고문을 지냈다. 12월 27일 소프라노 이대형(李大亨)과 재혼하였다.

38세(1936)에 경성중앙방송국 양악부 책임자가 되었다. 경성방송관현악단을 조직해 지휘자가 되었다. 39세(1937) 성서(成西)트리오 3중주단을 조직해 경성방송국을 통해서 실내악 발전에 기여했다. 흥사단 사건에 관련되어 대구 형무소에 4개월간 수감되었다. 40세(1938)에 경성 음악 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음악만필』(영창서관)을 간행했다. 41세(1939)에 경성 방송 관현악단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교향곡 연주를 지휘했다. 43세(1941) 늑막염으로 경성요양원에서 타계했다.

홍난파의 다른 상품

작사윤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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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양정고보(자퇴)를 거쳐 일본 조오치대학(上智大學)을 졸업했다. 2003년 12월 9일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우리나라 아동문학계를 이끌어 온 동요시인이자 아동문화운동가로 ‘동요의 아버지’ 또는 ‘윤석중 할아버지’로 불렸다. 13세 때인 1924년 어린이 잡지 『신소년』에 동요 「봄」이, 1925년 『어린이』에 동요시 「오뚝이」가 뽑히면서 천재 소년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동문학가의 길로 들어서서 1932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집 『윤석중 동요집』과 1933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를 펴내면서 우리 정서가 담긴 동요시를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양정고보(자퇴)를 거쳐 일본 조오치대학(上智大學)을 졸업했다. 2003년 12월 9일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우리나라 아동문학계를 이끌어 온 동요시인이자 아동문화운동가로 ‘동요의 아버지’ 또는 ‘윤석중 할아버지’로 불렸다.

13세 때인 1924년 어린이 잡지 『신소년』에 동요 「봄」이, 1925년 『어린이』에 동요시 「오뚝이」가 뽑히면서 천재 소년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동문학가의 길로 들어서서 1932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집 『윤석중 동요집』과 1933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를 펴내면서 우리 정서가 담긴 동요시를 짓고 널리 알리는 데 헌신했다.

그가 남긴 1,200편이 넘는 동요시 가운데 800여 편이 동요로 만들어졌는데, 「퐁당퐁당」 「짝짜꿍」 「나리나리 개나리」 「낮에 나온 반달」 「기찻길 옆」 「우산 셋이 나란히」 등을 비롯하여 「어린이날 노래」 「졸업식 노래」 들은 세대를 이어 지금까지 널리 불린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신문을 내기도 한 윤석중은 ‘아동문학협회’를 창설하여 『주간 소학생』을 창간하고 우리말 글짓기 운동을 일으켰으며, ‘노래동무회’를 창립, 동요 보급에도 나섰다. 1956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모임인 ‘새싹회’를 창립하고 소파상, 장한 어머니상, 새싹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3·1문화상(1961), 문화훈장 국민장(1966), 외솔상(1973), 라몬 막사이사이상(1978), 대한민국예술원상(1989), 인촌상(1992), 금관문화훈장(2003) 등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동요시인으로 추앙받았다.

저서에 우리나라 첫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 동요집 『날아라 새들아』 『어깨동무』 『굴렁쇠』, 동화집 『열 손가락 이야기』 『멍청이 명철이』 『열두 대문』 들이 있고, 『넉 점 반』 『낮에 나온 반달』 들이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

윤석중의 다른 상품

작사최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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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은 쨍쨍」을 지었고, 1928년 『조선동요선집』에 실리며 알려졌다.

노래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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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야주개(현 당주동)에서 미곡상과 어물전을 경영하던 방경수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제 식민치하 사람 대접을 못 받던 불쌍하고 학대받던 조선 어린이를 위해 그는 수많은 선구적 사업을 몸소 개척하며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사에 잊을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1921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1922년 처음 어린이날을 선포한 데 이어, 이듬 해 1923년 제1회 어린이날을 전국 규모로 개최함으로써 ‘어린이날’을 확대 정착시켰다. 1923년 3월 순문예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같은 해 5월 1일 일본 동경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문제 연구 단체인 〈
서울시 종로구 야주개(현 당주동)에서 미곡상과 어물전을 경영하던 방경수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제 식민치하 사람 대접을 못 받던 불쌍하고 학대받던 조선 어린이를 위해 그는 수많은 선구적 사업을 몸소 개척하며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사에 잊을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1921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1922년 처음 어린이날을 선포한 데 이어, 이듬 해 1923년 제1회 어린이날을 전국 규모로 개최함으로써 ‘어린이날’을 확대 정착시켰다. 1923년 3월 순문예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같은 해 5월 1일 일본 동경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문제 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창립하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어린이 문제의 연구와 사명을 진지하게 각성하고 동요, 동화, 동화극, 아동자유화, 세계아동예술전람회 등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과 예술 방면의 성장과 부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공훈으로 방정환은 2017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국가 보훈처)로 선정되었다. 생전에 남긴 유일한 책은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1922, 개벽사)이며, 그밖에 동요 「귀뚜라미 소리」, 「눈」, 동화 「호랑이 형님」, 「사월 그믐날밤」, 소년소설 「만년샤쓰」, 소년탐정소설 「칠칠단의 비밀」 등 어린이를 위해 뛰어난 문학을 많이 남겼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매일
2018년 07월 18일
시간/무게/크기
700g | 146*256mm
KC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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