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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길, 봄 멸치, 늪 ㄱ이 ㄴ에게 그날, 또 다시 매미 1 매미 2 매미 3 며느리 발톱 절망, 재회 심로(心路) 전설, 별을 보며 쌍목(雙木) 어둠, 찬 새벽길 절개(節槪) 세월, 네 번째 봄 승천(昇天) 회귀본능 뭍, 나비 소주, 별 서로가 전부입니다 문행(文行) 종이배 2부 갓 스물 그대들에게 바람에 깃들다 공방(攻防) 밤길 국밥, 오늘도 국물, 아버지 혈연(血戀) 바람, 비바람 부엉, 부엉 안부, 눈 한잔, 이별 후 불청객 일상의 이별 비, 1073 인도블록 자아(自我) 적폐일소(積弊一掃) 애소리 화해, 되풀이 3부 벽, 자해 지나가는 비 증표(證票) 한반도, 평화의 휘몰이 허물 이런, 시발(詩發) 사소한 이별 우산, 비밀 음주면허 유성(流星) 비둘기, 날 수없는 사과라고는 방백(傍白) 벤치 곁에서 벚꽃 길고양이 꼬리, 꼴이 꿈, 젠장맞을 꽃 광화문, 선 채 만장(挽章) 골목을 돌며 4부 타결(妥結)에 시비(是非) 가방보다 못한 괜한 산책 늦가을, 모기 태극기 판결(判決) 날궂이 밥 먹자 모정(母情) 삼백구일, 사계절 다 보내고 마지막 여행 묘약 양서(棲)의 변(辨) 창세기(創世記) 위로 참외 유산(遺産)의 시(時) 터벅머리 포경(捕鯨)의 노래 피델 카스트로 하늘 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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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어릴 적엔 구슬이 용의 눈깔을 빼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했지요. 무엇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붉게 휘말린 선과 푸른 선이 엉킨, 구슬 안을 들여다보면 영락없이 꿈틀대는, 용 한 마리. ---「승천(昇天)」중에서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빙그르르 돌다 앞뒤 없이 흘러가는, 종이배가 된 나는 풀숲 어딘가에 갇힌 채 깨어나길, 이 빌어먹을 꿈에서 깨어나길, 원했을까. ---「종이배」중에서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흙빛 입술 사이로 읊조리던 의사들의 민주주의는 시간의 날에 찢어져 흩날리는 굴절된 교과서처럼, 의미 없이 굳어만 가고 저의 민주주의는 겹겹이 지층에 쌓여만 가지요. ---「광화문, 선 채」중에서 며칠이나 지났을까. 꿈을 꾼다. 이리저리 떼로 몰려다니는 고등어가 꿈을 꾼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비늘을 주렁주렁 매달고 바다를 가르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나면 배를 가르는 생선가게 주인의 재바른 손이 쓰레기통으로 그의 장기들을 던진다. 매일 반복되는 꿈은 지치지도 않는다. 어둠이 내린 후 차갑고 비린 공간에 푸른 인광(燐光)이 유성처럼 빛났다가 사라진다. ---「적폐일소(積弊一掃)」중에서 뭍으로 걸어 나온 진실의 선체 바다에서 몸을 뒤틀며 살아있던 선체 차갑게 굳어버린 선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를 버린 선장도, 선장을 믿은 아이들도 그 자리에 없습니다. ---「세월, 네 번째 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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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ㄱ이 ㄴ에게』는 시를 쓰는 이들에게 자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작품들이 다소 실려 있다. 문단 내의 성희롱 문제를 비롯한 패거리문학을 꼬집는가 하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는 작품들도 여럿 수록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다소 거친 시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희망의 마중물로 기꺼이 본인을 던지는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도 보여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용기와 객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용단(勇斷)/술 몇 잔에 버려질 순절(殉節)의 시인들이 무슨,/다부지게 자리한 문단의 제단(祭壇)에 헌시 한 편/입가에 말라붙은 희멀건 오수, 막걸리/건배! 경배! 건강을 기원합니다. /부디 한 결로 왜(倭)의 동심을 노래하라. -「만장(挽章)」 중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들의 언저리에서 양심을 담보하는 문인들의 적폐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 「만장(挽章)」은 슬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강한 시어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시를 꽃에 비유한 작품 「꽃」에서는 처음부터 꽃을 피울 수 없었던 그가 스스로 꽃이 되어가기로 마음을 먹으며 현실과 타협해가야만 하는 쓸쓸함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나의 화분에 피어난 그대는,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꽃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대가 날마다 봉오리들을 피워낼 때마다, 점점 나는 외로워졌습니다. 그대가 심겨진 화분에, 엉겅퀴처럼 흉한 나의 온 몸을, 서서히 담그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나는 그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꽃이 아니었으니까요. -「꽃」 중에서 부조리한 현실과 마뜩잖은 미래에 대한 강한 저항은 시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시인의 입술에서 비롯된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역사가 흘러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시인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의 ‘파지처럼 젖어드는 침묵’은 내일의 희망을 깨우기 위한 휴식임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만 날지 말자. 언젠가 날아보자. 잊지 말고 날아서, 저 녀석 입을 쪼아 버리자. 대신 오늘만 파지처럼 맥없이 젖어 버리자. -「비둘기, 날 수 없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