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 1부
제 2부 제 3부 제 4부 제 5부 |
조동화의 다른 상품
|
시인 조동화는 시, 시조, 동시라는 세 분야에 각각 한 번씩 도합 세 번이나 신춘문예에 당선한 다재다능한 시인이다. 그의 열한 번째 시집 『고삐에 관한 명상』에서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표제시가 보여주는 그대로 신과 진리를 찾아가는 진솔한 시편들이다.
1 모래 구덩이에서 갓 깨난 새끼 거북/ 한 쪽을 제외하면 다 죽음의 방향인데/ 용케도 물소리 들리는 바다 쪽을 향해간 다// 누구의 가르침도 그는 들은 바 없다/ 다만 날 때부터 지녀온 본능의 고삐/ 투명한 그 이끌림 따라 생명의 첫 길을 간다 2 사람의 뇌리 속에도 그런 고삐 들어 있나/ 평생 흑암에 살다 부신 빛 보는 순간/ 홀연히 마음눈 열려 좁은 길로 드는 사람// 많이는 왜 저럴까, 의혹의 눈길을 주고/ 더러는 너무 변했다, 뒤에서 수군대지만/ 흔연히 모든 걸 두고 진리의 첫 길을 간다 ― 「고삐에 관한 명상」 전문 이 작품은 1과 2가 직유(直喩)의 원리로 결합되어 있다. 어느 밤에 어미거북이 제가 태어난 백사장을 찾아와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아 모래 속에 숨긴 다음 바다로 돌아갔다. 때가 되면 그 알들은 수십 마리의 새끼거북으로 깨어나 일제히 바다를 향해 행군을 시작한다. 육지 쪽은 어디나 다 죽음의 방향이건만 그들은 누구에게 배운 바가 없는데도 물소리 들리는 쪽만이 생명의 길임을 숙지하고 있다. 바로 신이 넣어준 본능의 고삐다. 길은 여기저기 죽음의 위험으로 가득하다. 어떤 놈은 사람의 발자국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말라 죽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갈매기의 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굴하는 법 없이 드넓은 바다에서 펼쳐질 파란만장한 생을 향하여 한사코 물결 속에 몸을 맡기려 한다. 시인은 이쯤에서 사람의 뇌리 속에도 새끼거북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고삐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예민하고 심지가 굳은 소수의 사람들은 평생 흑암 속에 살다가도 홀연 눈부신 빛을 감지하고는 마음눈이 열려 진리의 좁은 길을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갑자기 왜 저러지?”하고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기도 하고, 변해도 너무 변했다며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흔연히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진리의 첫길을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좁은 문」, 「나의 길」, 「책 한 권」, 「불멸을 위하여」, 「알현」 등이 모두 신과 진리를 찾아가는 노정에서 얻은 작품들이다. 이번 조동화 시집 『고삐에 관한 명상』에서 두 번째로 눈길을 끄는 것은 외경의 눈으로 잡아낸 자연의 장엄함이다. 다음 작품을 보자. 먼 저쪽 구름 뒤에 누가 숨어 지휘를 하나/ 어느 순간 물을 차며 잇따라 솟구치더니/ 유유히 하늘을 나는 혹등고래 한 마리 눈부신 노을 속을 몇 바퀴나 돌고 돌아/ 마주 오는 암코래와 나란히 방향을 튼다/ 별들이 돋는 곳까지 어 깨 겯고 가자는 듯 흡사 한 몸 같은 수십만의 점, 점들/ 펼쳤다 감아쥐었다 다시 힘껏 흩뿌려도/ 끝끝내 헝클리지 않고 아득 히 멀어져간다 -「가창오리 군무」전문 이 작품은 자연은 자연이되 동적 자연이다. 겨울이면 아침저녁으로 30만 마리의 가창오리들이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일대 파노라마, 혹은 오케스트라를 마치 독자들의 눈앞 무대에서 연출하듯 펼쳐내는 광경을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느 순간 노을이 지는 하늘을 향해 순차적으로 날아오른 30만 마리의 가창오리들의 대 군단은 마치 하늘의 드넓은 광장에서 흡사 거대한 두어 마리의 혹등고래의 모습을 하고 마스게임을 펼치는 것이다. 그것은 우아하고도 섬세하며 장엄하면서도 역동적이다. 펼쳤다가 감아쥐었다가 몇 번이나 흩뿌려도 결코 헝클리는 법이 없다. 대체 저 불가사의한 연출의 기획자는 누구이며, 지휘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이번 조동화 시집 『고삐에 관한 명상』에서 세 번째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 삶의 철학적 구명(究明)이다. 더 높이 더 멀리 골프공이 날아가는 건/ 제 몸 가득히 패인 딤플들 때문이다/ 빽빽이 뒤덮인 상처가 바로 그의 힘이다 일견 매끈한 공이 멀리 갈 듯하지만/ 마찰과 부력이 그에게선 일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때린대도 겨우 몇 십 미터일 뿐… 먼 길을 가는 자에겐 모두 딤플이 있다/ 고통의 고비마다 아로새긴 흔적들/ 필살의 타격에 업혀 홀인원도 이루느니 -「상처의 힘 Ⅰ」전문 골프공은 제 몸 가득히 페인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딤플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딤플들이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는 힘의 원동력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귀공자처럼 매끈한 공은 세게 때려 봐도 마찰과 부력이 일지 않음으로 해서 그리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딤플이 가득한 골프공은 타격이 제 몸에 임하는 순간 먼 곳까지 날아간다. 제 몸의 상처들로 하여 부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천둥과 비바람과 먹구름이 없이는 그 어떤 무지개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삶이란 결코 꽃밭을 산책하는 일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꽃은, 참으로 곱고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꽃은 역경에 마주서서 고비마다 상처를 간직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피어나는 것임을 이 시는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가/ 여섯으로/ 돌아오는/ 단 한 길은// 삼동 내/ 언 독방에서/ 뜨겁게/ 제 몸 벼려// 숨겼던/ 초록 보검을/ 뽑아드는/ 일이다 -「마늘」 전문 이 시 역시도 역경을 겪어야만, 즉 얼어붙은 땅속에서 긴 겨울제 몸을 벼려 이듬해 봄 초록 보검 한 자루를 눈부시게 뽑아드는 자라야 마늘이 되는 과정을 통해 인생도 역경을 거친 연후에 가장 아름답게 꽃 피는 이치를 떨어지게 보여주고 있다. 조동화 시집 『고삐에 관한 명상』에서 네 번째로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일에 제 자신을 송두리째 희생하는 물의 미덕이다. 바다가 구름을 피워 바람에 실어 보내고/ 구름은 비와 눈으로 철 따라 땅을 적실 때/ 물들은 낮은 곳으로 먼 순례를 시 작한다 목마른 자에게는 한 잔의 생명으로/ 뿌리는 자에게는 소담스런 열매들로/ 베풀고 안겨주면서 먼 길을 더듬어간다 식물의 물관을 흘러 얼마는 날개를 얻고/ 햇볕에 닳고 닳아 얼마는 구름이 돼도/ 끝내는 땅으로 내려 느릿느릿 기어서 간다 투명한 한 벌 옷이 남루가 될 때까지/ 독毒으로 전신이 검은 멍이 들 때까지/ 첩첩한 산굽이 돌아 제 아픈 등 밀고 간 다 ― 「강 Ⅰ」 전문 여기에 나타난 물은 순례자다. 바다의 소금물 속에서 제 몸을 깨끗이 가다듬은 끝에 희디흰 구름이 되어 육지로 날아오는 일도 순례의 한 과정이거니와, 비가 되어 땅에 내린 후 본향인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순례다. 목마른 자에게 한 잔의 생명으로 다가가고, 뿌리는 자에게는 열매들로 베풀면서 물은 먼 길을 제 온 몸으로 더듬어간다. 투명한 한 벌의 옷이 남루가 될 때까지, 온갖 독으로 전신이 검은 멍이 들 때까지 첩첩한 산굽이를 돌아 강은 제 아픈 등을 밀며 바다로 간다. 세상에 성자가 있다면 이보다 더 거룩한 성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음의 작품도 보자. 마시든/ 지고가든/ 공으로/ 죄다 주고 깊은 밤/ 더 많은 생명/ 기다리는/ 산 아래로 물소리/ 환히 켜들고/ 어둔 골짝/ 내려간다 -「산 샘물」 이 작품 역시 갈데없는 성자의 모습이다. 산 샘물은 자신을 주되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 없다. 마시든 지고가든 모두 공으로 자신을 제공한다. 사람의 발걸음도 끊어지는 깊은 밤이 되면 더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는 산 아래로 산 샘물은 스스로 다가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흥겨운 콧노래와도 같은 제 목소리를 등불처럼 환히 켜들고 어두운 골짜기를 더듬어 내려간다. 그의 깨끗한 옷 한 벌은 십중팔구 멀지 않아 남루가 될 것이다. 그의 투명한 몸 역시 드넓은 세상을 기어가며 온통 멍투성이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