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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그리운 우물
가끔, 공자가 출몰하는 마을
아버지의 문상
그림자가 있는 풍경
눈꽃 피던 날
저녁 무렵의 선물
아버지와 여인
세 가지 빛깔의 눈과 여행
흰 우물
자주색 우산
정전의 집

작품해설/ 겨레말로 지은 연민의 집_ 정호웅(문학평론가, 홍익대 교수)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李淵柱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경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리운 우물』 『슬픔의 무궁한 빛깔』 『사랑의 저편』과 장편소설 『탑의 연가』 『최 회장댁 역사적 가을』 『염원의 밤』을 출간했다. 대구소설가협회장과 정화중·여자고등학교장을 역임했고, 〈대구문학상〉과 〈금복문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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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연주
1952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1년《매일신문》신춘문예에 당선하고, 1993년 다시《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현재 대구 정화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며, 대구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114*224*20mm
ISBN13
9788996292838

책 속으로

“아지벰, 함부래 권하지 마소. 저녀리 자슥은 지 에미 죽고 쪼글쪼글 늙어 봐야 사람 되니요. 지금은 호강에 받혀서 지 권속이 을매나 중한동 모르니요. 에이, 더러운 자슥…”
그리고 노모는 방문을 꽝 닫았다. 닫힌 방문 너머로 노모의 밭은기침 소리가 붉덩물처럼 질퍽하게 쏟아졌다.
아재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를 작은방으로 끌고 간 아재가 먹다 남은 윗목의 막걸리로 목을 축인 뒤 차분히 목소리를 깔았다.
“지난번 방앗간에서도 이바구했다만도 내가 와 늬 심정을 모리겠노. 흥수가 그캐쌓는 거 절대루 무리가 아이다. 너도 알다시피, 참, 너거 오메가 갓 스물에 숟가락 몽댕이 하나 올찮은 우리 비문(卑門)으로 시집와가꼬 이날 이때까정 쎄 빠지게 고생만 안했드나. 술 좋아하고 노름 좋아하는 흥님이 억시기 싹싹해서 서방 복이 있었나, 그렇다고 자숙 복이나 있었나. 알밤 같은 자슥들을 과거하다가 다 베리불고 늦게사 너거 삼흥제를 붙들어가꼬 눈물 멕이 안 키웠드나. 흥순들 그 혼인이 이차 좋아서 팔 걷어붙였겠나. 아까도 얼핏 비치드라만도 속으로야 니대마 및 배 더 곪아터졌을 끼다. 와 그 심정 모리노. 그러이 두십이 니도 자꾸 고집만 씨아쌓지 말고 마지막으로 효도한다 셈치고 맴을 한번 돌려 묵어 봐라. 아니할 말로, 니가 대처로 나가 살 헹핀이 되나, 나이가 적나. 돈이 도라꾸(트럭)로 있어 연변 처녀를 사오마 모리까, 안 그런 담은 성한 처녀한테 장가들기는 글른 기라. 속 썩히는 병신 처자한테 장가들기보담야 및 백 배 낫다. 이바구 들어보이끄내 아(애) 문제도 걱정 안해도 되겠고, 천상 니 배필이다 싶드만도. 읍에 누부가 비미(어련히) 알아서 중신을 섰겠나. 니가 혹 고자문 모리까 안 그러모 우야든동 여자를 디리가꼬 씨를 뿌리야 하는 기라. 요즘 시상에 과부먼 어떻고, 소박데기먼 어떻노.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제? 자, 자, 내 술 한 잔 받고 탁 털어 뿌리라.”
“아재도 참 답답쿠마. 개코도 털 끼 있어야 털든동 오그리든동 하지요.”

아버지는 또 방문을 열고 바깥의 눈을 살피고 있었다. 종작없이 흩뿌리는 오색 종이처럼 낭자한 눈의 입자들이 어둠 속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감질내고 있는 것은 그 눈이 아니라 눈바람이었다. 북쪽 이봉산을 넘어오는 고추 먹은 눈바람은 말경에는 할머니의 여린 생명의 불을 지워 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눈 좀 붙이세요. 내일 또 가 봐야죠.”
나는 아버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제야 무엇을 훌훌 떨어버리듯 시선을 거둔 아버지가 이불 깊숙이 몸을 묻었다. 따스한 온기가 몸속에 스며들자 냉기로 움츠러들었던 피로가 일시에 덮쳐 오는 모양이었다. 지게미가 낀 아버지의 눈시울이 형광불빛 아래 새들새들한 푸새처럼 떨리며 스르르 내려앉았다. 방안이 점점 따뜻해 왔다.

아버지는 은행나무 밑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할머니를 안고 있었다. 어머니도 그 곁에 혼 뜬 모습으로 조각처럼 서 있었다. 할머니의 어깨는 간밤에 어머니가 마무른 밤색 스웨터로 감싸여 있었다.
“운명하셨다!”
내가 무심코 다가섰을 때, 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그 말이 아버지의 입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운명하시다뇨?”
나는 다듬잇방망이로 뒤통수를 얼얼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나와 계신 모양이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덧붙였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라. 늙으면 언젠가 한 번은 이 길을 가는 법이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침착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불가사의하게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눈빛 때문에 더욱 환해 보이는 얼굴은 간밤에 우리가 맛본 평화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너… 눈을 갖고 싶어.”
돌아오는 차 속에서 몇 년을 벼르던 말을 마침내 남자가 내뱉었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박꽃 같은 수줍음이 묻어 있었고, 여자의 카메라를 매만지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는 아직도 산행의 잔열이 남아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차가 제 속력을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라앉았던 흥이 되살아나 머리를 간댕거리며 허밍으로 밥 딜런의 하모니카 소리를 쫓고 있던 여자가 일순 동작을 멈추고 찬찬히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물었다.
“언제, 오늘?”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여자가 남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쉬운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해. 깜짝 놀랬잖아. 필름을 잃어버린 줄 알고…”
여자의 눈에는 남자의 표정이 그렇게 비쳤던 모양이었다. 여자는 삼십오 밀리 미놀타 카메라를 메고 다녔다. 하산할 때 화장실엘 가면서 그것을 벗어 남자에게 주며 특종거리 취재 필름이 들어 있다고 겁을 주었었다. 그 뒤로 남자가 보관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의 대답은 그 카메라로 찍어두고 싶을 만귅 남자에겐 특종감이었다.
하긴 여자는 어려운 말을 쉽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가령 ‘생리통이 심해’ 라든가‘ 한쪽 젖가슴이 작아’ 같은, 그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내뱉곤 했다. 누구에게나 다 그런지는 남자로선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그것이 여자의 단점이자 장점이고 매력이었다. 어쩐지 쑥스러워진 남자가 담배를 꺼내 물자 여자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잠시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여자가 유턴 지점도 아닌 곳에서 홱 핸들을 꺾어 황색 실선을 무너뜨리더니 서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눈앞이 캄캄하다.
어릴 때 그녀의 어머니는 자주 그렇게 중얼거렸다. 처음 어머니의 입에서 그 중얼거림이 터져 나온 것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그날 밤이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서른다섯이었고, 그녀 앞에는 도토리 같은 어린 네 딸이 초롱한 눈망울을 깜박이며 그믐달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그 후 어머니는 자주 그 중얼거림을 혀끝에 매달았다. 윗목에 곧추앉아 바느질감을 들고 있을 때도 그랬고, 집 앞 개울의 빨래터에서 속곳이 다 보이도록 퍼더버리고 앉아 쿵쿵 방망이질을 할 때도 그랬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눈알이 도글도글 소리가 나도록 문지르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말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꼭 한 번 그 말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내 백일장이 있었는데 그녀는 당돌하게 첫머리를 이렇게 썼다.
‘면사무소 행정주사로 근무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졸중으로 돌아가시자 맏이였던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회적, 역사적인 문제와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룬 이연주의 작품들
그리고 순 우리말이 주는 묘미의 성찬


저자는 이 소설집에서 크게 세 가지의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독자들에게 그 각각의 주제에 대한 문제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마약과 이혼 등 우리 사회의 각종 병리적인 현상을 다룬 ‘사회적인 문제’다. 그 다음으로는 남북 분단의 아픔과 일제 강점기의 후유증을 다룬 ‘역사적인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자지간 혹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등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다룬 ‘가족 간의 문제’다.

캠퍼스의 시위 현장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여자가 알고 보니 마약 중독자였고, 결국은 여자 스스로 집을 떠나 종적을 감추어 버린 후 재혼한 화자가, 그녀가 남긴 아들과 함께 그 여자를 찾아나서는「세 가지 빛깔의 눈과 여행」. 어느 날 각별한 사이의 대학 동창 언니가 소개한 사진작가에게 성적 모욕을 당한 후, 그에게 그 현장 사진을 볼모로 돈을 갈취 당하는 유부녀의 압박감을 그린「정전의 집」. 어느 날 자신과 아내 사이에서는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외딸의 혈액형을 알고 난 후 그 아내와 갈등을 겪는「흰 우물」. 교회의 목사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이혼 법정에서 만난 또 다른 이혼녀와의 조우를 그린「자주색 우산」. 이 네 편의 작품들이 모두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회적인 병리 현상을 조명한 사회적인 문제의 소설들이다.
역사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로는 다음 두 주제의 소설들이 있다. 그 중 남북 분단문제를 다룬 소설로는, 미국 이민을 소재로 월남한 친정아버지의 이북 고향에 대한 향수를 그린「아버지의 문상」과, 밤만 되면 학교 운동장의 조회단에 올라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역시 월남한 교장 선생님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그린「그림자가 있는 풍경」이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 징용을 당해 실종된 할아버지의 생사에 대한 의견 대립과, 그 제사 문제를 두고 할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다룬「눈꽃 피던 날」. 이 작품은 남북 분단문제와는 또 다른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는 역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가족 간의 문제를 다룬 소설들은 그 소재만큼이나 다양하다. 시어머니 산소의 상석 문제를 둘러싸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을 다룬「저녁 무렵의 선물」. 살아생전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갈등을 겪던 아들이, 아버지 사후 한 여인의 등장으로 인해 새삼스레 고인이 된 아버지와의 화해를 다룬「아버지와 여인」. 농촌의 노총각 문제가 주된 주제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 어머니와 아들간의 갈등을 부각시킨「그리운 우물」. 역시 청춘 남녀 간의 애정 문제가 주제이긴 하나, 그 이면에 어머니와 고모 즉 올케와 시누이 사이의 갈등을 리얼하게 부각시킨「가끔, 공자가 출몰하는 마을」등이 있다.
작품에 임하는 저자의 관심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작가 이연주의 미덕이라면 지금은 사라져 버린 순수한 우리말에 대한 애착이다. 이 소설집에는 평소에는 사람들이 쓰지 않는 아주 다양하고 아름다운 순 우리말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것을 발견해 내는 묘미만 하더라도 이 소설집을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독자들에게 이 소설집을 권하는 이유다.

소설가 김원일은 이연주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작가 이연주의 관심 분야는 폭이 넓은 만큼 그 세계가 다양하다. 남북분단 문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옛 전통이 사라져가는 농촌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꼼꼼하게 짚는 솜씨가 연륜에 걸맞은 작가답게 노련하다. 그 다양한 주제의 내밀한 목소리는 그리움이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옛것에 대한 향수이자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을 바탕에 깔고 있다. 시골 고향집과 우물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도 근원적인 그리움과 닿아 있다. 작가는 일찍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와 살게 된 뒤, 옛 시골집의 우물을 두고 그 시절의 아련한 정서를 끊임없이 퍼 올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 작가의 문장을 음미하면 이제 철저히 잊히다시피 한 우리말을 착실하게 건져 올리고 있음을 알게 되며, 이처럼 다양하고 순수한 우리말을 어디서 찾아내어 맞춤하게 제 자리에 갖다놓았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점 또한 오랜 교직에 몸 담아오며 아름다운 우리말을 복원시키려 노력해온 공력의 결과라, 온고지신 그 참신성이 종요롭다.”

그리고 문학평론가 정호웅은 이렇게 평한다.
“이연주가 겨레말로 지은 그 연민의 집 한복판에는 오래된 우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흰 우물」「그리운 우물」에 나오는 우물이다. 그 우물은 수백 년 동안 한 자리에서 대대손손 이어 살아온 유서 깊은 한 집안의 역사이고, 사람살이의 도리를 지키고자 애썼던 그 집안사람들의 반듯한 삶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그 우물은 또한 순수하고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거두어 감싸 안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 우물의 물을 먹고 자란 이연주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더라도 이 우물이 있어, 쉼 없이 솟는 맑은 물로 그들의 상처투성이인 지치고 병든 몸과 영혼을 어루만진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제목은 ‘그리운 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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