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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양익준의 들어가는 말|인터뷰어 지승호의 들어가는 말
1장 나쁜 남자? 스타 감독? 그냥 수컷? 이제 첫 장편을 만든 감독일 뿐|한국영화를 향한 시선|삶 자체가 영화보다 소중하다|폭력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배수진 치고 산 인생, 끝까지 간다|쌓이지 않으면 이야기도 없다 2장 폭력, 혹은 화해 “그냥, 다 같은 사람이잖아요”|이 나라 애비들은 집에서는 김일성|사과의 힘으로 폭력을 넘다|영화는 영혼을 치유한다|나를 지켜보는 자, 관객|질투, 아무것도 아녜요 3장 소년은 울지 않는다 산동네 오막살이에서 다닌 명문 초등학교|동급생들 사이에서 더욱 구차했던 초등학생|스스로를 상처 내며 사춘기를 건너다 |한번 선택한 꿈, 포기는 없다|엄마야 누이야, 고맙고 미안해 4장 청춘은 닥치고 영화 군대에서 준비한 대학 입시|출연작의 추억, 다만 쏟아내고 싶었을 뿐|연출,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의 출구|나의 영화연출 입문기|20만 원으로 시작한 블록버스터|무식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갔다|6년봉 1,500만 원을 넘어서 5장 브라보, 마이 배우 라이프! 만화, 내 상상의 만화경|“연기에 지도가 어디 있어?”|배우는 감정을 다치면 안 된다|나는 이런 배우를 꿈꾼다|내 욕망은 낯선 새로움에 기운다|답답한 놈이 표현도 한다|내장을 확 태울 만한 끌림이 없다면|연출 양익준이 배우 양익준에게 6장 연출의 결정적 순간들 건담과 영화, 영화와 건담|연출의 자산은 현장에 있다|연기자가 연출에 빠질 때|강렬한 매혹에 대한 갈망|누구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는다|인간에 대한 존중은 기본|감독은 배우들의 소중한 피난처|단호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소통의 시네마 현장을 위하여|남과 여 사이의 대화|창작에 ‘적당히’는 필요 없다|내 머릿속 느낌의 시나리오|“무슨 인생을 영화 안에서만 배워요?” 7장 영화는 감독이 찍는가, 돈이 찍는가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더 나아지고 있다|돈의 흐름을 보다, 시스템을 보다|영화한다고 배곯는 사람은 보고 싶지 않다|창작과 제작 사이 최적의 포인트를 찾아서|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영화관을 꿈꾸다|그래도 절실하게, 미친 듯이 만들면|영화가 구걸입니까? 8장 해적왕 루피익준과 영화 친구들 유명해지고 사람이 바뀌었다?|해적왕 루피와 같은 모험을 꿈꾸며|사람, 사람,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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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폭력을 성난 눈으로 돌아보다
2009년 겨울, 용산 참사가 있었다. 말 그대로 ‘참사’였다.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하고 있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폭력을 휘두른 용역깡패와 경찰 특공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작 구속된 건 살아남은 다른 7명의 철거민들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참사, 2009년 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쌍용차 사태가 있다. 쌍용차 노조원 2,646명은 회사의 구조조정에 저항하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거리로 내쫓겼다. 삶의 기반이 무너진 노조원과 가족들은 그 후유증에 하나둘 숨지더니, 그 숫자가 현재 22명에 이르고 있다. 그중 자살한 사람은 12명, 국내 자살률의 15배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 사회의 이 모든 폭력은 어디서 왔을까? 단지 공권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공권력 투입 전에는 용역깡패가 있었고, 사건이 종료(?)된 후에는 시민들의 폭넓은 무관심이 있었다. 양익준은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떤 과정, 어떤 환경에서 폭력적인 인간이 탄생하며, 무엇이 우리를 일상의 만연한 폭력에 둔감하게 만드는가. 어째서 끔찍한 폭력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며, 그것을 소멸시킬 방법은 또 어디에 있는가. 혹자는 〈똥파리〉에 난무하는 살벌한 욕설과 무지막지한 폭력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선정적’ 폭력이 아니라, ‘성찰적’ 폭력이라는 데 〈똥파리〉의 가치가 있다. 양익준 감독은 폭력의 과정을 진지하게 그려내고 그 극복과 화해의 길을 모색한다. 끔찍한 폭력 앞에 할 말을 잃은 한국 사회가 양익준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