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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장 흙을 벗 삼다보니 막돌탑 들국화 꽃등 분꽃 돌담 울 한련화 사위질빵풀 흙을 벗삼다 보니 달개비꽃 숨 쉬는 토방 2장 그때 그 시절 북가좌동 그 집 속물 세상 인과응보 눈물 사는 맛 강칭이 할머니 열차 관광 눈 3장 타고난 변덕 망신살 텔레비전 타고난 변덕 다시 버스 칸에서 입찬소리 노인정 가지 말고 교회 가시오 구두선 말장난 4장 40년이라는 세월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마차푸차레 영봉 부채 예찬 그 좋았던 불일암 발우공양 밀짚모자 스코트 니어링의 삶과 죽음 40년이라는 세월 발문|조정은 활동하는 무(無), 그 신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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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년 후면 소위 미수(米壽)라고 해서 여건이 되면 그동안 긁적댄 글들을 묶어볼까 막연히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여건이 되면’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 이 년을 더 산다는 보장이 없고 변덕이 팥죽 끓듯 하는 내 성질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쓰레기장의 폐기물 같은 별로 향기롭지도 못한 소리들을 늘어놔 봐야 망신만 당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눈곱만큼의 자존심도 끼어들어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뜻밖의 운수대통이랄까,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깟 것 여든여덟에 하든 여든여섯에 하든 세상 뒤집혀질 일은 아닐 테니 에라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책을 엮게 되었다. 하긴 쓰레기더미에서도 장미가 핀다는 속설(俗說)이 있듯이 정성어린 우정을 가지고 속속들이 찾아보면 의외로 장미향 이상의 기분 통쾌한 내용이 있어 삼년 묵은 체증이 뚫릴지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부자 동네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놀랍게도 세계 명품, 값비싼 보석 장신구들이 나오는 일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자고 빈자고 간에 난지도 쓰레기 집하장엔 현대 문명이 쏟아낸 별의별 것들이 다 쌓여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었다. 그랬던 곳이 이제는 하늘공원으로 바뀌어 아름다운 꽃들과 향기로 상쾌한 가슴을 활짝 펴게 해주니 꿈같은 현실이 이루어진 것이다. 천부당만부당한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내 글 역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 굴뚝같다.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겠지만 바라건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현대는 끝 간 데 모르고 치닫는 첨단 과학 문명으로 말미암아 인간성 상실, 환경 파괴,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인류 파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환경 파괴만 하더라도 그렇다. 내가 이곳에 내려와 농사를 짓던 40년~50년 전만 해도 쓰레기가 전혀 없었다. 모든 생활 찌꺼기는 자연스럽게 흙속으로 환원돼 재생산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원시의 오염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 모두가 신선하고 건강한 것들이었다. 땅은 점점 비옥해지고 보약이나 다름없는 농산물이 생산되었다. 농경 사회의 평화롭고 인정 많은 삶은 겉으로 보기에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고향의 따뜻한 품 안에서 꿈을 키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생활 조건은 미개의 표본 같았을지 모르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 하는 끊임없는 신경 소모와 불안, 불만, 불쾌감 같은 병적인 요소는 오히려 적었다. 내 경우로만 보자면, 물론 모든 면에서 스스로 부족한 게 너무 많았지만, 조직 사회의 폭력 같은 불합리한 것들이 영 못마땅해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고향의 정서를 느끼며 자연 속에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번에 나오는 산문집에도 더러 끼어 있는 그런 일상의 위안이 읽는 분들로 하여금 공감될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솔직히 잡동사니에 불과한 이 글을 꾸미는 데 마음을 써준 달아실출판사와 몇 분들의 우정 깊은 도움에 고마운 마음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나와 인연 있는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2018. 여름 끝자락 知軒 김기철 편집자 책소개 1 40년을 한결같이! 흙을 일구고 흙을 빚고 흙과 같은 문장을 빚고 계신 김기철 선생님께서 어느 날 출판사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선생님의 따님이고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미현 사진가의 사진집 『bathtime』을 낸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박 선생이 이번에 사진집 만들면서 고생 많으셨는데, 또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못난 글이지만 언제 또 묶을 수 있을지 모르고 해서 10월에 있을 전시에 맞춰 책을 내줬으면 좋겠는데…….” 이미 선생님의 수필집 『고향이 있는 풍경』과 『흙장난』을 통해서 선생님 특유의 문장의 맛에 취했던 나로서는 언젠가 우리 달아실출판사에서 선생님의 수필집을 냈으면 했었다. 고소원(固所願)이지만 불감청(不敢請)이었는데, 뜻밖의 횡재였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이렇게 선생님의 수필집 『꽃 피는 산골』을 내 손으로 편집하고 책으로 묶게 되었으니, 이런 행운이 또 어디 있을까. 2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다시피 김기철 선생님은 한국 도예를 대표하는 도예가이지만, 실은 또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한국의 수필을 대표하는 수필가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도자기에는 선생님만의 형(形)과 질(質)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선생님의 글(수필) 또한 선생님 특유의 체(體)와 향(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도자기와 글을 공통으로 관통하는 것은 한마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인공의 세련미보다는 자연의 투박미가 선생님의 도자기와 글(문장)을 오히려 다른 그것들보다 우위에 있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이번 수필집에도 그런 선생님 특유의 문장이 읽는 이로 하여금 웃다가 울게 만들고, 울다가 웃게 만들고, 그야말로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3 김기철 선생님은 한국의 스코트 니어링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선생님 스스로도 스코트 니어링의 삶이 그랬듯, 산업자본주의가 인간을 삶을 망가뜨리는 원인으로 파악했고 무위자연을 실천하고 계시니 말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은 애써 독자를 가르치려 하거나 계몽하려 하지 않는다.(실은 선생님은 도예가의 길을 걷기 이전에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냥 선생님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자기 자신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말과 글과 삶이 다르지 않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수필집은 선생님의 삶과 선생님의 말이 고스란히 글(문장) 속에 담긴 것이니, 무릇 고수의 글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는 셈이겠다. 4 선생님의 도자기가 그러하듯, 선생님의 문장이 지닌 힘 중의 으뜸은 ‘치유’가 아닐까. 마치 병자들이 깊은 산속에서, 숲 속에서 병을 치유하듯이 말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내 삶의 병듦을 돌아보게 하고, 그 병을 치유해주는 그런 신비를 경험하고 싶은 분들은 선생님의 도자기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선생님의 문장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선생님의 문장을 편집하고 책으로 묶는 내내 내가 경험한 그 신비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작품 해설, 「활동하는 무(無), 그 신명」 중에서 자유는 후련한 것 나는 격월간 에세이스트에서 일한 지 올해로 14년째다. 여기 와서 얻은 가장 큰 보람 중 하나가 지헌 김기철 선생을 지근거리에서 자주 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을 뵙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단숨에 후련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아니 자유란 10년 묵은 체증 내려가듯 후련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에세이스트』의 발행인 김종완 선생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대체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김 선생의 말대로 소위 ‘뼈다귀가 맞는 경우’가 있으면 이런 제안을 한다. “우리 곤지암에 한번 갑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웬 곤지암? 뜨악한 표정을 짓지만 김 선생으로선 그게 엄청난 대우라는 것을 난 안다. 그가 곤지암 카드를 꺼내든 것은 맞선본 여자가 상대 남자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독자는 곤지암이 김 선생의 본가라도 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아니다. 김종완 선생과 김기철 선생은 아무런 인척 관계도 아니다. 그런데도 호기롭게 김기철 선생을 만나러 가자면서 마치 자기 집에 초대하듯 자신만만해지는 저 객기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일단 곤지암 카드를 꺼내들면 그때부터 김 선생은 김이 오르기 시작한 떡시루처럼 혼자 냄새를 풍기며 혼자 익어간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한 번만 만나봐도 정신이 번쩍 나는 진짜 스승이 있다고,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차려주시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찻잔에 진귀한 차를 주시고,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주시고… 주시고…. 장터의 약장사처럼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서 신명의 절정에서 늘 터져 나오는 말은 매번 똑같다. 무엇보다 후련한 욕 샤워를 한번 해보면 정신이 번쩍 난다, 진짜 살아 있다는 것이 뭔지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자연적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위적인 죽음인데, 지금 세상은 모든 사람이 박제되어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뻣뻣하게 굳어진 채 ‘살아 있다는 자기기만’으로 살아가고 있다나. 진짜 살아 있는 정신을 만나보면 그걸 알아채게 된다나. 그렇게 해서 김기철 선생께 데려간 사람이 10년 동안 모르긴 해도 백 명은 훨씬 넘을 것이다. 김종완 선생이 ‘진짜 삶’,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보증하는 김기철 선생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나는 헛살았다, 라는 깨달음의 순간 2014년 8월 3일, 62호 합평회에서 김기철 선생을 모시고 수필가 강병기와 정아경이 대담을 했다. 그 자리에서 김기철 선생은 먼저 도예가가 되기 전 교사로 있을 때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 조직에서 목격한 권위적인 사람의 강제성과 억압성의 구체적 실증을 들면서 만약 자신이 그곳에서 그럭저럭 적응했더라면 도예가가 될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억압당하는 삶,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그 꼴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노예적인 삶에 대한 일차적인 탈출구는 북가좌동에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 300평을 사는 일이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그곳에서 꽃 농사를 지었다. 겨울이면 비닐하우스에 연료를 때는 등 일 년 농사 비용으로 당시 반년 치 월급이 나갔지만 꽃은 시장에 내지 못했다. 폭우에 떠내려가기도 하고 혹한에 얼어 죽기도 하고, 도통 이익을 남길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도 형제도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그럴 즈음 김봉룡 선생의 나전칠기 전을 보게 되었고 그때 “이런 사람은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나! 나는 헛살았다!”라는 깨달음이 그의 창조적인 본성을 자극했다. 순간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그즈음 대학 강단으로 갈 기회가 주어졌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곤지암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산속으로 갈 때엔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지 도자기를 주업으로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먹고사는 걸 자급자족하면서 창조적 작업을 돈으로 환산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국 도예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다. 백일몽의 자각과 비애의 응어리 「눈」이란 작품이 쓰인 것은 한 3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그해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에 창문을 열자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은 천상의 꽃밭보다도 더 화사할 만큼 사람의 눈과 마음을 홀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황홀경에서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가장 비극적이었던 절망의 순간이다. 우리는 전투의 길목, 문경새재 바로 밑에서 방향도 목적지도 없이 어디론가는 떠나야 했다. 추위는 고추보다도 더 맵고 칼날 같아서 그까짓 무명천으로 몸을 가린 신세로 세차게 몰아닥치는 눈보라 속을 허우적대며 발길을 떼어놓는다는 것이 죽음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마치 형장으로 끌려가는 포로들처럼 무거운 짐 보따리에 눌려 걷는다기보다는 굼실굼실 꿈틀대고 있다는 것이 제대로 된 표현일 것이다. 포성인지 천둥인지 간헐적으로 천지를 뒤흔들고, 무겁게 가라앉은 구름 떼는 앞이 안 보이게 눈발을 쏟아내려 굼벵이 구르듯 움직이는 우리를 금세 파묻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길섶에 어린애들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있는 한 여인이 끌고나온 너덧 명의 가족은 동사하기 전에 눈 무덤이 돼버릴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저녁이 되고 캄캄해지자 신작로마저도 암흑의 장막으로 꽉 막힌 것 같았다. “도루 돌아가자! 가다 얼어 죽으나 포탄을 맞아 죽으나 집에 앉아 죽는 게 낫겠다!” 앞장서 가던 큰아버지의 비장한 목소리가 울리고 우리는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눈」 부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하다. 똑같이 눈 내린 풍경이라 해도 따뜻한 방에서 푹 자고 난 뒤 창문을 열고 보면 그것은 꽃밭처럼 화사하지만 갈 곳 없는 피난길의 난민들에겐 형장처럼 살벌하고 저주인 듯 참혹하다는 것. 아마도 이러한 균형성이 김기철 작품의 특장(特長)일 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에서 비극을 찾아내고, 비극에서 아름다움을 건져 올린다. 특히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고유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서민적 흥취를 더하고 문장 내에서 여러 번 의미를 전복시키면서 판소리나 서사 민요처럼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등 다양한 장단으로 몰아가는 기법은 압권이다. 햇살이 미처 찾아들기 전의 눈 세상일망정 눈을 부시게 하는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럴 때 도인인 양 지그시 눈을 감고 묵묵히 내면의 세계를 관조하는 것처럼 우둑하니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등때기를 한번 보기 좋게 후려쳐서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끌고나가 강아지처럼 눈밭에 함께 뒹굴자고 야단법석을 떨 일이었다. - 「눈」 부분 위와 같은 문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김기철뿐이다. “등때기를 한번 보기 좋게 후려쳐서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끌고나가 강아지처럼 눈밭에 함께 뒹굴자고” 할 대상은 문장대로라면 “도인인 양 지그시 눈을 감고 묵묵히 내면의 세계를 관조하는 것처럼 우둑하니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도사연하는 이가 누구냐? 바로 그 자신이다. 아름다운 정경을 마주치는 순간 전쟁 중에 저 참혹하게 오갈 데 없이 얼어 죽어가는 난민을 떠올리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던 자신과 가족을 떠올린 바로 그 자신! 시치미 뚝 떼고 아닌 척, 모르는 척, 자신을 객관화해서 야유할 수 있는 해학적 문법은 원래 우리의 노동요나 서사 민요, 서사 무가, 판소리, 탈춤 대사의 기본 틀이다. 걸쭉한 입담으로 은근슬쩍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어떤 비극도 희화화해 버리는, 그것은 ‘민중적 삶의 본디 성품으로 신명’(김지하 「흰 그늘의 미학」)이다. 이어서 곤지암 보원요의 눈 내린 뜰로 안내된다. 그곳은 “티끌 하나 없이 순백 순결의 평원! 미지의 땅! 미답의 원형! 차마 이 속물의 발을 내딛기가 두렵기까지 했다. 나는 마치 처녀지를 탐험하는 무법자처럼 과감하게 발길을 내디뎠다”고 쓰고 있다.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정경에 대한 탐미적 묘사는 찬찬히 음미해 볼 만하다. ― 조정은(수필가, 문학평론가, 격월간 에세이스트 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