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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돈 버는 것을 잠시 잊고 앞산 나뭇잎 사이에, 늘잇늘잇 만자씨 이렇게 한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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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는 숫자가 두려웠습니다. 나이를 세는 그 숫자 말입니다. 나날이 쌓여가는 하루하루가 더해져 세월이라 이름 지어진 그 아라비아 발명품. 그러다가 저는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생활하는 것에 대하여,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움켜쥐려 했지만 그 어느 결과에도 만족할 수 없었던 생활이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가 달리는 궤도가 길고 지루하며, 때로는 무섭다고 느껴지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잠시 접기로 했습니다. ---서문 중 이번 여름 우리 세 식구는 무척이나 시원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시원해보려고 차거운 벽에 등을 기대며 밤잠을 설쳐야 했던 지난해의 여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한 여름입니다. 밤에는 서늘한 바람 속에 열었던 창문을 닫으며 숲 속 나무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냅니다. ---p.15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좋습니다. 예쁘진 않지만 특이하면서 작가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아 맘에 듭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장난기 많은 언니들과 서로의 이름 뒤에 ‘-자’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전 ‘만자’입니다. ---p.69 요즘처럼 빨리빨리 변하고 바뀌어 가는 시대하고는 좀 맞지 않을 것 같지만 전 제 방식대로가 편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좀 느리고 뒤떨어지고 더디게 가는 것 같습니다. ---p.83 주름이 깊게 팬 할머니 얼굴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집니다. 누구든 혼자 길을 가는 할아버지 뒷모습에서 코끝이 찡해집니다. 눈물이 나올라치면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이리저리 분산시키며 참아보려 하지만 잘 안 됩니다. 눈물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p.113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참을 얘기하다 보면 욕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줍니다. 사람이 너무도 맑아 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별처럼 빛나 보이기도 합니다. ---p.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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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자, 비움 쪽으로 발길을 돌리다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새벽, 창밖으로 보이는 산의 실루엣으로부터 슬슬 드러내기 시작한 아침을 먼저 맞이한다. 소리 내어 일어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로 조용한 아침 풍경을 넋 놓아 감상한다. 창문을 열면 싱그러운 공기가 하루를 마중 나오고, 저 산 너머에서부터 오르는 해의 기운을 멍하니 기다리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스러운 것들과 함께하는 만자의 생활에서 이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없다. 그러니까 돈 버는 것을 잠시 잊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 책은 ‘만자’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저자의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번잡한 도심생활을 잠시 놓고 내려간 전원의 삶은 만자와 그의 사람들의 생활을 바꿔놓는 데 충분했다. 만자는 그 생활에서 세상엔 돈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연을 그리며 하루의 가치를 되새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나뭇잎들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그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건 별거 아니지만 요즘 우리에게 흔하지만은 않은 장면이다. 돈 버는 것을 잠시 잊고 느릿느릿하게 ‘만자’로 살아간다는 건 주변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하는 삶일 수도 있다. 비단 익숙한 애칭으로 산다고, 촌으로 내려와 산다고 해서 그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순 없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고, 온갖 번거로운 것들을 비우고는 넉넉하게 비워진 공간에 소박하게 다듬어진 ‘만자’의 생활을 채워 넣었더니 ‘행복’이라는 순간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이다. 『만자』가 담고 있는 사소한 사건과 푸근한 행복은 힘을 주거나 빼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한 사람의 ‘그때, 그때’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이야기한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시간이 더디 흐르는 걸 느끼고 사뭇 색다른 감상에 젖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보내고 있는 대부분의 하루들이 여유롭지만은 않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