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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이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건 뭐가 되건 욕망이나 이익으로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라는 데 내 무엇을 걸어도 좋다” (영화감독 이창동)
- 한 권의 시집 같은 인물탐구서 문고판 크기(12×19), 130쪽 분량. - ‘사람도서관(living book)’ 시리즈 ‘내 인생을 쓰면 책 한권은 될 거야’ 우리네 삶은 한권의 책으로 묶기에 부족함이 없다. 책 대신 사람을 대출해 읽는 사람도서관 행사([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운영)의 결과물이 바로 이 한 권의 책이다. - 대출 첫 권은 문제적 인간, 문성근 남들은 직업 한번 바꾸기도 어려운데 다섯 번이나 인생 전환을 했고 매번 자신을 던졌다. 왜, 어떻게 가능했는지…. 문성근, 그가 알고 싶다. - 문성근의 강연과 청중의 집단 인터뷰(일문일답) - 문성근에 관한 9개의 키워드 ‘강박’ ‘몰입’ ‘시래깃국’ ‘침묵’ ‘다정다감’ ‘왕자’ ‘로열패밀리’ ‘막걸리’ ‘살림’ 등의 키워드로 풀어낸 문성근의 내면 - 에필로그 ‘문성근의 도착하지 않은 정치’- 현장 기자가 쓴 인물평. “시민과 정치인이 왜 정치를 달리해야 하는데? 똑같으면 뭐가 안되는데?” 문성근은 기존의 정치 담론, 소통 구조로는 국민의 새 정치를 향한 욕구를 해소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가능한 ‘판’을 만드는 것, 그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 여긴다. 문성근식 표현에 따르면 ‘흐르는 민주주의’다.” #1. ‘정치인 문성근’에 관한 이야기다 “본래 예술가와 정치인의 운명은 하나였다. 공동체의 운명과 대중이 처해 있는 삶의 진상을 대의하고 대변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무너졌다. 대중은 더 이상 작가들의 재현이나 정치인들의 대변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직접 말하고 직접 항의했으며 직접 행동을 조직했다….” ‘배우’ 문성근이 열고자 하는 ‘정치’의 시대는 바로 그런 것이다. “어큐파이 파티, 정당을 점령하라! 당원만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들어와서 투표하고 공천해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시라는 것. 아직은 미완이다. 야권통합도, 온오프결합 정당도… 또 그 무수한 정당 혁신의 안들.” 하지만 문성근의 정치,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가 희구하는 정치를 그는 어떻게 열어젖히려는 걸까? #2. ‘인간 문성근’의 내면 고백이다 문성근의 집안은 근현대사의 압축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동학군으로 활동했고,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였으며, 아버지는 통일과 민주화 운동가다. 집안의 그런 공기를 마시고 그런 젖을 먹고 자란 문성근에게 역사와 정치는 신념이기에 앞서 원체험이다. 해서 배우를 할 때든 운동을 할 때든 ‘나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서 있는가’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문성근의 불편한 DNA. 꽤 오래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저는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어요.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이 깡그리 다 박사고 교수고 그랬으니까. 아버지 교수, 삼촌 교수, 작은고모 박사, 뭐 다 그런 식이었죠. 제가 보기엔 형, 누나도 머리가 굉장히 좋았고 또 막내인 저하고는 터울이 한참 져서 어디 가서 말 붙일 데가 없는 거죠. 다들 정신세계가 저보다 엄청 높은 분들이니까. 굉장히 주눅 들어 살았고 배우하면서도 그랬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마흔 즈음이었죠.” #3. ‘남자 문성근’의 사랑 이야기다 [닥치고 정치]에서 김어준은 문성근이 좋은 정치인의 자질을 갖춰다며 도덕적 자격, 역사적 자격, 현실적 역량 모두 된다고 평가하면서 하나 더 꼽은 게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 이에 대한 문성근의 대답은? “사랑은 변하죠, 식죠. 그건 당연하잖아요. 생물학적으로도 사랑이 유지되는 게 3, 4년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으니까. 그런데 저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음… 저는 주례를 안서요. 주례 해달라고 하면 나 결혼제도 반대한다고 말해. 원시 청동기 시대쯤에 결혼제도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어요. 재산이든 종족번식 때문이든…. 그런데 이창동이가 딱 한번 주례를 섰는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두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지켜야 합니다.’ 에이 저 새끼, 말도 잘한다. 그 얘기를 내가 좀 일찍 들었더라면 지키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거죠.” 문성근,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본 태생, 그리고 이혼,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두 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4. ‘배우 문성근’에 관한 이야기다 문성근은 지금도 자신의 ‘천직’은 배우라고 말한다. "일흔이 넘으면 그 때는 다시 배우로 복귀해 여섯 번째 삶을 살거"라고 말한다. 연기자가 되려고 20년 발버둥을 쳤고 이제 겨우 의무감에서 벗어나 연기가 행복해진 게 얼마 안되었는데 연기를 못하게 돼 괴롭다는 문성근. 대학졸업하고 취직한 건설회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 파견되었을 때도 그는 천상 배우였다. “사우디 더위가 자동차 본네트에 달걀을 깨면 지져질 정도였어요. 엄청 뜨겁죠. 그런 차안에서 배우의 정서랄까 감성 구조랄까 그런 걸 만끽하는 거죠. 혼자 자동차 안에서 땀은 비오듯 솟는데… 일부러 에어콘도 안켜고요.” 잡놈, 싸이코패스, 수꼴 등 ‘악역’을 자처했던 이유. “자기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안되는 일에 도전하려는 측면이 있고요. 또 상업 배우들이 이미지 관리 때문에 나쁜 역을 안해요. 저는 그게 굉장히 불쾌하더라구요. 배우 알기를 뭘로 아느냔 말이지. 배우가 CF 모델이냐?” 문성근은 자신을 세속 영화판에 적응시킨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과 개성을 그대로 지키면서 성공한 배우라는 점에서 영화판에서 희귀한 존재다. 그러면서도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춘사대상영화제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톱배우. 하지만 이제껏 찍은 30여편의 영화 중에서 자신과 닮은 배역은 근사치도 없었다는데… 그는 과연 천개의 얼굴을 지녔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