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굳이 순정만화로 국한하지 않더라도 클램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클램프의 작품을 보면서 일본만화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쁜 얼굴에 화려한 톤발은 당시(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국내 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클램프의 작품들은 거의가 수입되었고 숫자만 해도 꽤 엄청납니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저는 동경 바빌론을 꼽고 있는데요, 솔직히 기술상의 문제만을 말한다면 동경 바빌론은 클램프 치고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고 역시 잘 그린 그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동경 바빌론은 상당히 특이한 소재를 선택해 스토리를 끌어나가고 있습니다. 음양술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여러 가지 주술이 나오고 귀신을 성불시키는 말하자면 퇴마사라고 하겠습니다. 그 음양사에도 음과 양이 있어 양을 대표하는 수메라기 수바루, 음을 대표하는 사쿠라즈카 세이시로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양술이란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이고 상황이자 설정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수바루와 세이시로지요.
그런데 이 동경 바빌론의 특이한 점이라면 스토리의 한계를 미리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세이시로는 아주 다정하고 세심한 수의사로 나오지만 중간중간의 여러 장면들을 보고도 세이시로가 보이는 그대로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실제 수바루와 어린 시절의 약속을 한 사람, 그리고 음양술을 쓰는 실제로는 아주 잔인한고 냉혹한 사람이라는 것을 동경 바빌론은 전혀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고 있는 사람은 당사자인 수바루 하나뿐입니다. (호쿠토까지도 눈치채고 있지요) 그러니 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초점은 세이시로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이 무엇인가로 좁혀집니다. 그러나 그 약속도 세이시로를 보면 결코 수바루에게 좋은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수바루와 세이시로의 대결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미 독자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작품은 무엇으로 얘기를 끌어가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주인공들의 변화입니다. 세이시로는 어떻게 본색을 드러낼 것인가. 그리고 수바루는 세이시로의 변화를 보고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이 작품의 단 하나의 관심거리입니다.(절정을 지난 결말 부분이 관심 대상이 되는 상당히 특이한 구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클램프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독자의 관심은 수바루와 세이시로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작가의 관심은 주인공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있습니다. 수바루가 스쳐지나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관계맺는 사람들, 타인과 접촉하면서도 타인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그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실제 저도 이 작품을 보면서 주인공들보다는 각각의 스토리 자체에 반해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클램프는 극도로 세심한 눈으로 인간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쳤을 부분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장면으로 구사하는 능력 등 모든 것에서 클램프는 굉장한 수준에 이르러 있습니다. 현대인? 물질만능? 혹은 비인간화? 그런 단어들은 클램프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클램프가 천착하는 것은 단지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것입니다. 그것은 현대라고 해서 딱히 나쁜 것도 아니고 고대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을 단지 인간이라는 존재들의 본성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본성에 대한 섬찟할 정도의 예리한 관찰, 그것이 이 동경 바빌론을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 만화가 윤지운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