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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5
제1편 정광(庭光) ─ 빛 내린 뜨락 제1장 구궁팔괘도(九宮八卦圖) ·10 제2장 수수께끼의 첨성대 ·20 제3장 우연은 전생의 연에 따른 필연인가 ·38 제4장 정광, 집을 나서다 ·48 제5장 금와보살의 출현 ·54 제6장 문수보살의 기별(記?) ·65 제2편 개종(改宗) 제1장 운명을 예견한 선문답(禪問答) ·78 제2장 자연 속의 불성(佛性) ·82 제3장 다시 서게 된 교단(敎壇) ·91 제4장 굴곡진 인생의 종착지 천년고도(千年古都) ·103 제5장 중생사(衆生寺) 마애삼존불의 정체 ·110 제6장 해와 달의 계시 ·120 제3편 명랑법사(明朗法師) 제1장 천주사(天柱寺) 혹은 내제석궁(內帝釋宮) ·140 제2장 성언호간(成言乎艮)의 이법 ·154 제3장 별을 품은 태몽으로 탄생한 아들 ·170 제4장 와공(瓦工) 지귀(志鬼) ·186 제5장 슬픈 운명 ·201 제6장 미실(美室)의 노래 ·214 제7장 성(性)과 죽음 ·225 제4편 돌에 새긴 신앙 제1장 불곡(佛谷) 감실(龕室) 석불좌상 ·246 제2장 신인사(神印寺) 마애조상군(磨崖彫像群) ·258 제3장 남산 칠불암과 칠성우(七星友) ·276 제4장 재회(再會) ·299 제5편 비원(悲願)의 설계도 제1장 문천도사(蚊川淘沙) ·324 제2장 미친 사랑의 불길 ·346 제3장 자비의 만트라 ·367 제4장 첨성대 설계도의 비밀 ·379 제6편 숫자 속에 암시된 우주적 진리 제1장 동기(東騎) 선생 ·420 제2장 모순과 역설 ·441 제3장 팔각형의 의미 ·480 제4장 잃어버린 시간의 왕도(王都) ·510 제5장 불 꺼진 적막한 방 ·539 제6장 유성우(流星雨) 내리던 날 ·571 제7편 명랑 루트 제1장 명랑 루트의 순례 ·598 제2장 인면(人面) 유리구슬의 정체 ·626 제3장 안타까운 소망, 천년의 사랑 ·688 제4장 마지막 퍼즐 조각 ·714 제5장 두 개의 문필봉(文筆峯) ·736 제6장 ‘오후데사키(御筆先)’의 예언과 감로대(甘露臺) ·761 제7장 낯선 방문객 ·785 제8장 미완의 성불(成佛) ·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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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 동록(東麓)의 양지마을에는 정광산인(庭光山人)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세속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가정을 버리고 오래 전부터 아내와도 별거한 채 출가자(出家者)의 심정으로 경주에 정착한 뒤 홀로 지내며 세상 이치를 궁구하는 좀 특이한 인물이었다. 정광은 언제부터선가 그와 같은 삶을 자기의 운명으로 깨닫고 틈만 나면 옛 서라벌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며 신라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신라왕도의 옛 흔적들을 더듬는 동안 그는 명랑법사의 존재와 선덕여왕과의 관계를 알게 되고 또한 첨성대의 비밀에 관한 놀랍고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명랑은 진골 출신의 신라승려이며,『삼국유사』의 곳곳에 그 이름과 행적이 나오는 실존인물인데, 자장법사의 누이동생 남간부인(南澗夫人ㆍ일명 법승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장의 부친 호림공(虎林公)의 맏누님 마야부인(摩耶夫人)은 진평왕의 비(妃)로서 훗날 선덕여왕이 된 덕만 공주의 생모이다. 그러므로 자장에게 고모였던 마야부인의 딸 덕만 공주와 자장은 사촌지간이었다. 선덕여왕 측에서 따지면 자장의 집안은 외가였던 것이다. 또, 명랑법사의 어머니 남간부인은 자장의 누이동생이었고, 이로써 자장과 명랑의 관계는 외숙질 간이다. 그들은 이처럼 아주 가까운 친족 관계로 얽혀 있었다. 명랑은 선덕여왕 즉위년인 서기 632년 처음 구도(求道)의 길을 떠나 당(唐)으로 건너갔으나 이내 토번(티베트)으로 들어가 거기서 밀교의 ‘탄트라(tantra)’ 수행법을 배우고 635년에 귀국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티베트에서 가져온 신라 신인종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탄트라 수행법에 따라 선덕여왕으로 하여금 즉신성불의 도피안몽(渡彼岸夢)을 현생에서 이루려 했던 인물이다. 그는 선덕여왕의 사후를 위해 첨성대를 설계하였고, 또한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다. 이는 선덕여왕의 능이 조성된 낭산 남쪽 언덕 기슭의 신유림(神遊林)이 곧 도리천임을 증명한 결과였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합한 뒤 명랑법사로 하여금 도리천 아래에 있는 사대왕천(四大王天)을 상징하는 사천왕사를 짓게 함으로써 도리천에 묻혀 부처가 되길 소망한 선덕여왕의 유지를 받들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이로써 선덕여왕 생전의 유언으로 제2천(天)인 도리천에 묻히고자 한 소망은 비로소 명랑법사에 의해 건립된 사천왕사의 위치로써 실현된 것이었다. 또한,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하는 과정에서도 문무왕을 도와 명랑은 당의 세력을 이 땅에서 완전히 물리치기 위해 당고종(唐高宗)이 보낸 군선들을 밀교의 문두루(文豆婁?mudra) 비법을 사용하여 두 번이나 침몰시키는 공로를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정광은 이러한 명랑법사의 행적과 그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동안 간혹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旣視感) 속에서 자신이 마치 명랑의 환생인 양 느꼈다. 그때마다 정광은 그동안 터무니없는 전설 혹은 수수께끼처럼 기술된 사연의 진상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제게 주어진 소명으로 여기며 자신 또한 즉신성불의 꿈을 꾸며 더 외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