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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 속초에는 배 목수가 있습니다 (김영건)
업業 | 배 목수 | 하루 일당 | 나무 | 도구 | 손 | 나무배 | 조선소 | 명태 | 오징어 | 선택과 후회 | 돈과 밥 | 속초 | 고향 | 청초호 | 영랑호 | 자연 | 집 | 가족 | 웃음 | 냉면 | 커피 | 술과 담배 | 노래 |통일 | 제주도 | 건강 | 나이 | 인생 에필로그_ 진짜로 배 만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윤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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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목수하고 배 목수는 달라요. 집 목수는 각을 맞추는 거예요. 집에 쓰는 나무는 바로 서죠. 배 목수는 나무를 틀어지게 해야 해요. 구부러트려야 한다고요. 바른 나무가 없어요. 나무를 구부리는 게, 그게 기술이에요. 그런데 FRP(플라스틱 배) 나오고 나서는 배 목수 일이 많이 줄었어요. 이젠 배 만들 일이 없어요. ---「배 목수」중에서
새벽에 눈만 뜨면 바로 일하러 가서 12시간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그제야 밥을 먹었어요. 그러다가도 뭔 일 있으면, 배가 망가지거나 하면 밤에라도 가서 일해주고 했어요. 다음 날 새벽에 배 타고 작업 나가야 하니까 그 전에 일해줘야 했던 거예요. 밤에 일한다고 돈 더 받고 그런 건 없었어요. 요샌 연금 나오지요, 노인 일자리 해준다고 일 있어서 나가지요, 퇴직금도 있지요. 그땐 퇴직금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땐 아무것도 없었어요.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하루 일당이에요. 하루 일당이, 그게 전부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참 편안해졌지요. 정말 편안해졌어요. ---「하루 일당」중에서 저는 평생 손에 아무 이상이 없었어요. 지금도 일이 있으면 일할 수 있어요. 손이 괜찮으니까요. ---「손」중에서 요즘 FRP는 몰드라고 하는데요, 붕어빵 찍어내듯이 만들기 때문에 잘 만들고 못 만들고 하는 구분 자체가 없어요. 옛날에 목선 같았으면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차이가 좀 났는데 말이죠. 배 좀 아는 사람은 말 안 해도 실력 있는 목수를 찾아와요. 배 목수라고 다 같은 목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만들겠지만요. ---「나무배」중에서 경기가 좋았던 때도 있었어요. 그때는 배 목수도 좋았어요. 돈도 많이 벌고. 조선소도 많았는데 지금은 두 개밖에 남질 않았네요. 수협 어판장 앞에는 사람들이 득실거렸어요. 그때 무슨 얘길 했냐면,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얘기했어요. 그때는 건조장(오징어를 말리는 곳)이 없고 해서 그냥 아무 데서나 오징어를 말렸어요. 온 사방이 오징어였어요. 걸어 다니면 오징어 썩는 냄새가 말도 못했어요. ---「속초」중에서 부산에서 다섯 살 되던 해에 이승만 신문 다르고 이기붕 신문 달랐던 그때, 우린 정말 통일이 된 줄 알았어요. 수양호 선주가 있었어요, 박수연 씨라고.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한테 그랬던 거예요. “이 사람아. 곧 통일되는데 거기 끝에 앉아 뭐해?” 그래서 속초로 올라온 거예요. 고향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다가 하루빨리 돌아가려고. 빨리 올라간다고 여기에 온 게 여태까지 눌러앉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62년째 여기 앉아 있는 거죠. ---「고향」중에서 남인수 노래를 좋아해요. 백야성 노래도 좋아하고요. 남인수 그 양반은 청춘에 대한 노래가 많고, 백야성 그 양반은 항구에 대한 노래가 많아요. 둘 다 목소리가 참 좋잖아요. 흘러간 가수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옛날엔 노래방도 잘 갔는데 이젠 갈 일이 없죠. ---「노래」중에서 지금 드는 생각은 그래요. 40대 중반, 50대 초반 정도만 됐으면,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나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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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는 배 목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관광도시로 더 유명하지만 속초는 원래 어업으로 먹고살던 도시였다. 명태가 워낙 많이 나서 명태 철만 되면 마산이나 거제도 같은 먼 지역에서도 명태를 잡으러 올라왔다. 지금은 폐건물이 되어버린 수협 어판장 앞은 늘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오징어 말릴 공간이 부족해 사방에 오징어가 널렸고, 수협 앞에서는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명태 포획량이 급격히 줄었고, 이제는 오징어도 많이 잡히지 않는다. “오 씨는 없어진 지 오래고, 금징어라 불리는 금 씨만 있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다. 어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속초도 많은 게 변했다. 직격타를 맞은 곳 중 하나는 배를 만드는 조선소다. 12곳이나 되던 속초의 조선소는 이제 2곳밖에 남질 않았다. 조선소에서 나무배를 만들던 배 목수들도 다 뿔뿔이 흩어졌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아예 손에서 일을 놓거나 소일거리로 목공 일을 하며 지내는 이도 있다. “평생 구부러진 나무만 찾아다녔어요. 그런 게 있어야 배 만드는 데 좋으니까.”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는 이제 사람들의 기억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배 목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배 목수 양태인(1935년생), 전용원(1952년생) 두 사람이 보낸 평생을 나무배, 도구, 가족, 속초, 담배, 건강 등 여러 키워드를 가지고 꿰어나간다. 그들이 흘려보내는 말들은 평생 한곳에서 하나의 ‘업’(業)으로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이기에 개인의 역사이자, 곧 한 도시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무로 집을 짓는 일과 배를 만드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는 직업을 대하는 자부심, 속초에 사는 다른 실향민들처럼 이북의 고향에 가려다가 속초에 눌러앉게 된 사연, 항상 배와 물고기로 항구가 북적이던 과거의 속초, 나무배를 대체한 플라스틱 배의 출연, 전기 장비보다는 손으로 쓰는 도구가 익숙한 이유 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잊혀간 도시의 풍경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진짜로 배 만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양태인, 전용원 배 목수의 인터뷰와 사진촬영은 주로 칠성조선소와 각자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칠성조선소는 속초에 남은 2곳의 조선소 중 하나로, 이제는 주로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이다. 양태인 목수는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고, 전용원 목수도 이제는 사라졌지만 칠성조선소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조선소에서 일했다. 이번 프로젝트 진행의 한 축을 맡은 칠성조선소의 최윤성 대표는, 할아버지가 개업한 칠성조선소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배가 활발히 제조되던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훗날 그가 가업을 이어 배를 만들기로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와 함께 배 목수 두 분의 인터뷰를 맡은 김영건은 속초의 오랜 동네서점, 동아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동아서점 역시 칠성조선소와 같이 속초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대학 졸업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속초의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이 책을 계기로 속초의 ‘과거’를 기록하려는 이유는, 속초의 ‘미래’를 살아갈 그다음 세대에게 그 흔적을 전하기 위함이다. 『서울의 목욕탕』 등 사라지는 것들을 소재로 주로 작업을 이어온 사진작가 박현성의 사진이 그 기록에 깊이를 더한다. 그렇게 한 사람, 그리고 한 도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