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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
퇴원 암병동 이경록 생각 복대 오고 가기 귀 폭우 할 말이 그것밖에는 폴대 귀환자 너무 큰 바람 이청준 생각 말빚 살길 하나 주시지 다음 방귀 유행어 운명의 날 연령 피와 거즈 대게잡이 나가요 고통의 마스터 친구 고양이 말복 안다는 것 일요일 아침 신학생 운동요법 나는 못 가요 문밖에서 장기 입원자 로또 전혀, 전혀 나 자신의 노래 김정호 생각 내게도 즐거운 일이 때로는 전망 없음 불안 긴병 긴 하루 고난의 걷기 문병 꺼진 불 정글의 법칙 짧고 행복한 시절 민간인 외로움 수성못 덱스터여 나를 데려가다오 사후세계 어떤 다이어트 더욱더 큰 병 오직 나 자신을 위하여 복잡한 관계 귀환하고자 하노니 두 번째 퇴원 기형도 생각 생명가 SOS 나보다 더 웃음요법 기도 맛 동감 생각만 하는 바보 전후 사정 이상한 셈법 나의 경제 참회 축복받은 저녁 누가 물으면 태아 자세 오직 나만이 상심의 노래 시계視界 없음 가족사진 엘리엇 생각 성城 나 한 사람의 전쟁 주말 자 모 일간지를 보고 고통의 하수 밤과 낮 어떤 문답 즐길 수밖에 고해 산문_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 해설_투병에서 자기 구원에 이르는 온몸으로서의 글쓰기 :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우리 모두의 전쟁’이니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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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그것밖에는
옆에 앉은 말기암 환자 아주머니 이름을 몰라도 간밤에 나를 뒤에 두고 스무 바퀴 복도를 떠다녔던 아주머니 덜컹덜컹 마찰이 많았으니 떠다녔던 것이 아니라 끌고 다녔다고 해얄지. 남편과 통화하는데 그 말을 안 해준다. 볶음밥 솜씨가 일품이라는 경상도 남편 아내가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으리니 그 말을 해줄 리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씩씩한 부산 아주머니 기어이 사랑한다는 말을 이끌어내고 전화기 폴더를 닫는다, 그 눈에 이슬 한 방울. --- p.24 고통의 마스터 고통의 대가가 되는 방법을 아시나요? 고통의 마스터가 되는 게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요? 누가 자식 먼저 보낸 고통 병들고 근육이 사라지는 앉은뱅이 누이의 아들과 보행기에 의존해서 걷는 게 싫다는 아이를 때리면서 함께 우는 엄마의 표정 분당의 21세기병원에서 여기로 왔을 때, 초죽음 살 길도 죽일 길도 없어서 그래도 숨은 붙어 있어 코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큰 병 숫자만 두서넛, 말로 지시도 못 하니 이제 숨만 안 쉬면 자기 아들은 끝이라는 아버지 고통의 마스터, 고난 극복의 천재들 그래도 아프지 않았다면 꿈도 가졌을 텐데 그저 앞날이 없다는 것뿐 생명체 누가 고통의 의미를 안다 하리오, 아니 모른다고 하리오. --- p.38 나 한 사람의 전쟁 세상은 거대한 전쟁터였고, 나는 부상당한 낙오병이더군. 내가 산책로에 처음 나타났을 때 나는 후송 중인 회복 환자가 이렇게 많았던가 하며 놀랐지. 물론 산책로를 엎어지고 기어가고 또 그 위로 곡예사처럼 자전거로 질주하는 10대 청소년들은 시술받고 재활하는 환자들은 아니었어. 시답잖아도 인간은 말을 해야지. 그들이 지르는 굉음―그들은 그것을 말이라고 우길지도 몰라― 깜짝깜짝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나는 내 상황도 잊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뒤돌아봤지.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이 없이 젖먹이는 팽개치고, 나뭇등걸 같은 데 육중한 몸을 부딪고 왜 뿌리째 뽑아버릴 듯이 나무와 씨름하는지는 정말 몰라. 하나씩 운동기구를 차지하고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운동기구와 한 몸이 된 사람들, 지옥도가 따로 없는 한쪽에서는 재수 없어 걸려든 고기를 낚아 올리고 번연히 살아 있는 몸을 회를 떠서 붉은 초고추장에 피칠갑 도장을 해서 천상의 맛이라며 저작하는 텔레비전 내 고향 탐방 프로들은 자체 검열도 없는지 몰라. 미물이라도 생명이 있고, 존엄은 몰라도 목숨을 빼앗는 일을 그저 가마솥에 뚜껑을 눌러놓고 산 채로 데치는 행위로 행한다는 게 목숨이 바로 음식이 된다는 게 좋은 일인지는 정말 몰라. 밤새 술을 마시고 노숙에 가까운 광란을 벌인 뒤 새벽이면 청소차가 와서 쓸고 가면 된다지만 황음한 나날이 지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나야 뭐 재활이 목적인 환자, 이 도시의 이방인 건강한 당신들의 세상에 잠시 살려 왔지만 감히 더불어 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지만 타는 듯한 매미의 울음소리가 우리 전쟁터의 앞날에 어떤 시사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 p.106~107 산문 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 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었다. 운명은 내가 A란 길로 가고 싶어했을 때 C라는 알 수 없는 길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그리될 줄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고. 이모든 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긴요하지 않았다. 나는 현재 내가 할 수 있을 일을 하며, 비록 그것을 잘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뭐,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운명의 내방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 p.123~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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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치열한 투병 시집, 유고 시집
“제5구역에서 이제 귀환한다, 허락해주길 오버” 2011년 4월 24일, 고(故) 윤성근 시인이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1981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시인은 1987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시작으로 네 권의 시집을 펴냈다. 1992년에 펴낸 마지막 시집 『나는 햄릿이다』 이후 20여 년 만에 내는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윤성근 시인의 1주기에 맞춰 출간한 유고 시집이다. 대장암 발병으로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하며 써내려간 시를 모은 이 시집은 한 시인의 치열한 투병 일지다. 86편의 시와 1편의 산문은 시인이 생전에 정리한 것으로, “시와 산문 제목, 토씨 하나까지 다 시인이 남긴 그대로다.” 이렇듯 아이러니와 도시적 멜랑콜리로 가득 찬 그의 네 번째 시집 『나는 햄릿이다』가 출간된 것이 1992년이었고 올해가 2012년이니, 윤성근 시인은 20여 년의 시간 만에 유고 시집의 형태로 한국 시단에, 독자 앞에 돌아온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시집인가, 얼마나 귀중한 시집인가. 이것이 유고 시집이 아니라면 얼마나 반갑고 흐뭇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이제 마지막 시집 『나 한 사람의 전쟁』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131쪽, 해설 「투병에서 자기 구원에 이르는 온몸으로서의 글쓰기 :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우리 모두의 전쟁’이니」에서 암병동에서 직면한 ‘리얼 라이프’ “과연 ‘다음’이 절대 없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윤성근 시인은 투병 생활 중 여러 권의 노트에 육필로 시를 쏟아냈다. 암병동에서 맞닥뜨린 육체의 고통과 여러 인간 군상들의 생생한 모습, 말기암 환자로서의 자아와 시인으로서의 자아의 충돌 등을 격하지 않은 감정으로 써내려갔다. 「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라는 산문에 시인의 담담함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행복했던가. 입원을 하고 갖은 곤욕을 치렀지만 퇴원을 하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암과 살거나 죽어야 할 운명이었으므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통증이 수그러들면서 진통제나 수면제 없이 살 수 있기만을 꿈꾸었고, 그래서 꿈자리가 사납지 않기만을 빌어볼 따름이었다. ―122쪽, 산문 「한 사람의 투병에 부쳐」에서 「물통」에서 시작하여 「고해」로 끝나는 이 시집은 “물질성으로 육체를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영혼의 자리로 서서히 나아가는 궤적”을 따른다. “나 이제 돌아가는 자리에 서서 / 많은 회한과 추억들에 망각의 콩고물을 입혀 / 거진 다 말라가는 나의 물통들에 대해 생각하니, 피부는 짓무르고 어깨는 결려와”라고 통증에 대해 써내려간 「물통」, “그렇게 다 지나가리라 / 우리를 백에 백 번은 순응케 하는 통각의 문을 즈려밟고 / 가는 길마다 내딛는 발길마다 끄집어지는 / 복대는 울려온다 / 이른바 외과적 상처라는 것과 더불어”라고 육체의 고통을 담담히 표현한 「복대」, 그리고 「폴대」라는 시에서는 “나는 그저 하루 받아 하루만 사는 처지 / 지금 제 눈앞에 밟히는 그 폴대와 몇 배 더 고통스런 / 그것을 멈춰주세요, 폴대를 세워주세요”라며 병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을 통해 그 물질성에 대해 말한다. 또한 시인 기형도, 소설가 이청준, 가수 김정호 등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당신과의 짧았던 만남을 되새김질하고 / 나는 길 떠나고자 합니다, 미지의 세계 다시 만날 때까지 / 안녕.”(「기형도 생각」에서) 극심한 통증 속에서 보낸 치열한 투병의 시간 또한 엿볼 수 있다. 크나큰 통증에 제프 린제이 장편 스릴러 시리즈의 주인공인 덱스터에게 “고통이 없는 곳, 형기가 없는 땅, 자책이 없는 땅으로” 자신을 데려가라고 하고(「덱스터여 나를 데려가다오」에서), 환자의 고통을 복날 개가 겪는 고통에 비유하면서 “자비를 베푸세요, 환자에게 복날은 고통의 날 / 삼가세요, 고통은 살아 있다”(「말복」에서)라고 말한다. 이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계’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갖지만 내세에 대한 환상은 거의 품지 않는다.(“시간이 흘러 미망은 걷히고 / 절반쯤 통증이 완화되는 날이 / 과연 ‘다음’이 절대 없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다음」에서) 마지막 시 「고해」에 이르러서는 작은 바람을 내놓으며 글쓰기를 통해 결국 “자기 구원에 도달한다.” 외로운 날에는 혼자 있게 하소서. / 슬픔이 차오를 때는 아무도 곁에 없게 하소서. / 아무것도 바라지 말게 하시고 / 앞의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면 내일은 적게 바라게 하소서. / 용서해주시고, 더 이상 용서를 빌지 않게 하소서. / 바라건대 더 큰 고통은 조금만 주시고 / 그리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지능을 갖게 하소서. / 이런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라고 할지라도 / 해량해주소서. ―115쪽, 「고해」 전문 끝까지 문학주의자였던 시인의 실존적 글쓰기 “나 한 사람의 전쟁은 우리 모두의 전쟁이니” 스스로를 “아스팔트 킨트”라 칭하는 윤성근 시인, 1992년에 펴낸 시집을 마지막으로 ‘폐업 시인’을 선언했지만 마지막까지 문학주의자였다. 암병동에서 극렬한 고통을 견디면서도 가족과 사람과 삶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아내는 인증샷을, 아들은 아빠의 반백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 이 상황에 적당한가. / 뭐에 쓰겠는가”(「웃음요법」에서)처럼 가족애의 치유를 그리고, “세상의 모든 노모에게 / 안식을, 한 줌이라도 평온한 한때를”(「기도」에서)이라고 남겨질 어머니를 위해 기도한다. 『나 한 사람의 전쟁』은 한 개인의 치열한 투병 일지인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공감의 기록이다. 시인은 “나 한 사람의 전쟁”이라 말하지만,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전쟁이자 구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