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에필로그 But I Love You ? 8
Episode 1 미국, 신세계라는 우주의 고양이 달에 다녀온 다음에는 어디로? 주디, 달에서 만난 그리움 세상에서 가장 나와 다른 당신 영원한 이방인 떠나온 뒤에야 달은 보인다 Episode 2 유년, 엄마 잃은 고양이 아무리 불러도 없는, 엄마 아버지는 누군가와 말했다 십자가, 최초의 아름다움 어떤 공포 등 돌린 어깨를 닮은 골목길 눈 내리는 날, 엄마! ? 나는 가장 빠른 속도로 어른이 되고 싶었다 Episode 3 생명, 가난한 새끼 고양이 부디 저만을 위해 살라, 한 포기 풀도 울 아빠는 풍선 장수 그 숲이 되고 싶다 문 밖의 세상, 문 안의 풍경 가슴에는 멍울이 자란다 봄날은 눈이 부셨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묻은 날 작은 생명들을 기억한다 삶과 죽음이 함께 든 상자 Episode 4 성장, 그림 그리는 고양이 그림 그리는 어린 이방인 서울, 신세계에서 길을 잃다 변명만 가득한 스무 살 홀로 걷는 일방통행, 그리움 슬픈 지식에 울다 You’ve Got a Friend 높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처럼 창백하고 푸른 암흑 속에서 그림, 소중한 욕망을 수집하는 행위 천을 그리는 인간, 인간을 감싸는 천 불완전함의 예술 빈곤과 아름다움 사이 욕망이 있다 You Don’t Own Me!당신은 나를 가질 수 없어! Episode 5 사랑, 고양이처럼 나는 혼자였지만 흩어지는 연기를 닮은 사랑 지도 위, 당신과 나의 좌표 타임스퀘어에서는 사랑할 시간이 필요하다 패배한 사랑 추락하는 탁상 위의 월스트리트 지구의 소리를 들어라 새로운 길 위에서 프롤로그 Just Go! |
이경미의 다른 상품
|
불이 꺼진 새벽에 집으로 들어서면 강아지들과 노란 고양이 나나가 저를 반겨주었지요.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사람에게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들 또한 고단하지 않을 리 없는데……. 그래서 저는 강아지와 나나에게서 위로받고 또 위로받았습니다. 특히 나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언제나 부담스럽지 않게 저를 편하게 해주었지요.---p.19~20
그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아마 저들의 고향을 생각했을 것이다. 손에 잡힐 듯 파랗게 빛나는 지구를 보며 떠나온 그곳을 생각했을 것이다.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오래도록 비행했을 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어렸을 때 TV화면으로 본 챌린저호의 끔찍한 폭발 장면과 당시 그 우주선에 탑승했던 교사 출신의 여성 우주인과 슬퍼하던 그녀의 가족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치 창밖으로 파란 지구가 만져지는 듯한 생각이 들어 가만히 모은 내 두 손이 이유 없이 꼼지락거린다. (중략) 사랑에 대한 의문 반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 반으로 도착했던 처음과 달리, 정말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금도 여전히 이곳의 풍경은 기묘하다. 운명처럼 이곳에 꽤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면 새로운 땅에 대한 탐험과 배움이 먼저겠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떠나온 나의 집, 나의 가족, 나의 고국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벌써 그리운 그곳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달로 떠난 그들이 우주 속에 있던 짧은 시간 동안 평생을 돌이켜도 끝나지 않을 감동적인 깨달음을 얻어온 것처럼, 그래서 나도 그곳을 떠나온 것이리라 믿기로 했다.---p.27,32 때때로 사람이 중요한지 고양이가 중요한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실 생각해보면 미국처럼 잘사는 나라의 이면에는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수많은 무등록 차량이 있고, 집이 없는 사람, 병에 걸리면 그냥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최하층민이 매우 많다. 동물을 위해 많은 자산을 기부해 최첨단의 동물 보호소를 만드는 미국이지만 반면 노숙자가 넘쳐나는 나라이기도 하다. 가끔은 무엇이 우선인가를 두고 나도 고민스럽다. 지구상에 굶어 죽고 있는 아이들이 1분당 몇 명이라든가, 보호자가 없는 노약자들을 위한 자선단체라든가, 반면 인간의 손에 학대당하고 버려지는 안타까운 동물들이 구출되자 얼마 안 되어 안락사를 당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들.---p.43 멀리 고즈넉한 달에는 ‘플라토(Plato)’, ‘코페르니쿠스(Copernicus)’,‘튀코(Tycho)’라는 익숙한 이름의 지명이 있다. 닿지 않던 땅에 붙인 이 친숙한 이름들 덕분에 무인의 황무지가 인간의 것이 된다. 모두 떠나온 자의 소행이다.---p.57 빈방에서 멍하니 창호지문을 바라본다. 문 밖은 따스한 초여름의 기운이 가득했다. 창호지문은 밝은 햇살 때문에 마치 등을 켜놓은 듯 훤하다. 가장자리는 은은하고 붉은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바람 때문인지 빈방을 채운 격자무늬의 그림자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랑사랑 일렁였다. 내 눈가의 물기 때문인지 정말 그림자가 일렁이는지 알 수는 없었다. 문을 흘깃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엄마…….” 나는 너무 절실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목소리가 낯설다. 또다시 불러본다. “엄마…….” 이번엔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을 준다. 의지와는 반대로 나는 점점 더 절실해져갔다. “엄마!” 이제는 계속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라고 불러본 지 너무 오래되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그 이름이 무척 낯설었다. 어색한 느낌을 잊어보려는 듯 나는 더 크게, 더 또렷하게 불러본다. 문 밖에 엄마가 있는 것처럼. 저 문을 열고 엄마가 “왜?”라고 대답할 것만 같아 나는 더욱 목청껏 불렀다. 메아리도 없이 아른거리는 옅은 바람 소리조차 들릴 듯한 초여름의 고요함이 나를 짓누른다. 그런 고요함이 싫었다.---p.71-72 사람들과 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큰길과는 달리, 끝이 굽이쳐 가려진 골목. 도시의 골목이 생전 처음이었던 나에게 그곳은 세상의 전부였다. 언제나 등 돌린 듯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누군가의 어깨처럼, 집집마다 담벼락에 매달린 석류나 감들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동경을 품게 했다. 여름이 가까우면 골목에는 어김없이 짙은 보랏빛 라일락 향내가 진동했다. (중략) 긴 고생을 하고 탈 많았던 남편도 먼저 보낸 엄마가 중얼대던 말이 있다. “한때는 하루하루 어찌 살아야 하나 싶을 만큼 긴 것 같았는데, 지나보니 인생은 저 골목어귀 같더라. 멀리서 올 때는 너무 멀어 보였는데 어귀를 돌고 나니 골목은 금방 끝이더구나…….”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을 알기에 나는 너무나 모자란 나이였다. 하지만 엄마의 담담한 말은 이제는 떠난 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 어린 시절의 골목과 아련히 겹치며 눈물 나게 했다.---p.95-96 관찰을 통해 무언가 창의적인 성과를 생산했다면,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관찰 행위의 동기는 과학적인 호기심보다는 그저 사소한 생명들이 지닌 작고 섬세한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손으로 살짝만 눌러도 멍이 드는 하늘하늘한 자줏빛 모란꽃잎의 섬세한 아름다움이나, 하늘을 향해 비춰보면 작은 마을의 지도처럼 보이는 플라타너스의 잎맥이나, 우아하고 세련되게 고개를 숙이며 조형적인 선을 그리는 수선화의 긴 잎들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 식물뿐 아니라 장독과 장독 사이에 섬세한 편물을 아슬아슬하게 짜놓은 거미들의 놀라운 능력이나, 때때로 무수히 마당에 날아들어 무언가를 쪼아대는 참새의 완벽한 듯 아름다운 호를 그리는 둥근 머리,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유리체 뒤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고양이의 황금빛 홍채, 보송보송 솜털구름보다 보드라운 병아리의 날개죽지 같은 게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고 신기했다. (중략) 생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눈물겹게 아름답다가 이유 없이 지고 만다. 작은 씨앗에서 여린 잎들이 틔어나고, 한줌이 되지도 않는 벽돌 틈 사이에 피어난 화사한 민들레로, 꽉 쥐지도 못하는 한 손 위의 여린 병아리의 노오란 몸짓으로, 다음엔 골목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활짝 핀 지천의 붉은 철쭉으로, 대낮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들러붙은 한 쌍의 개로, 또 술에 전 아버지의 흐린 눈빛으로, 옆집의 석류나무 끝에 살짝 걸린 노을빛으로, 천 년을 지켰다는 계림의 숲으로, 바람에 날리는 해파리 같은 홀씨의 너울거림으로…… 모든 생은 존재했다. (중략) 엄마는 많은 말도 없이 비싼 비료도 없이 자녀도 화초도, 내가 안고 온 그 수많은 동물들도 평온하게 그 생을 살게 했다. 내가 아는 생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의 주체가 아니었다. 수많은 벽돌이 쌓여 교회가 지어지듯, 나를 스쳐간 수많은 생명들이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잊혀지지 않기를 오늘 하루도 기도한다. 한 포기의 풀도 저 자신을 위한다는 경전의 말처럼 한 포기의 풀도 저 자신만을 위한 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p.111-116 그 어떤 시간이든, 그 어떤 노력이든 흔적은 남는다. 그 흔적으로 인해 아프다 해도, 또 웃는다 해도 결국 식물처럼 서서히 자라나리라. 우리의 모든 경험과 지식은 그렇게 삶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되어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린다.---p.217 나나와 1미터쯤 떨어져 거실 바닥에 누웠다. 나나의 투명한 눈이 나를 지긋이 응시한다. 가족들은 모두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다. 강아지들도 제자리를 찾아 사라진다. 적막 같은 거실 위에 나나와 내가 서로 바라보고 있다. 나나의 깊고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홀린다. 우주같이 적막하다. 나는 홀로 궤도에서 이탈한 우주인같이 고독했다. 손가락 하나 쳐들기 힘들게 피곤했다. 서너 시간 후면 나는 다시 출근해야 한다. 침대에서 자야 하지만 거실 바닥에 뉘인 내 몸은 바닥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마치 원시의 소리처럼 고요히 들린다. 블랙홀 같은 어둠이 나를 삼킨다. 저 멀리 별빛 같은 나나의 눈동자가 창백하게 빛난다. 암흑이다.---p.236 무수히 많은 지구상의 아름다운 존재들은 우리들의 뒤에 있다. 그리고 나,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You don’t own me!”---p.262 ‘너를 보면 아프고 지친 내가 떠올라. 그래서 좀 더 좋은 인간이고 싶어. 너와 함께라면…….’---p.277 순한 성격도 그렇고 두개골이 골절되었던 사연도 그렇고, 언제나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가, 인간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는 프랑켄슈타인의 어눌하지만 귀여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걱정하던 바와 달리 시간이 지나자 랑켄은 나름대로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머리는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들이대긴 해도 크게 곤혹스러울 정도는 아닐 만큼 적응해갔다. 작업실을 옮기며 나에게 잠시 랑켄을 부탁한 친구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랑켄은 나나의 동생이 되었다. 항상 사람만 바라보는 나나에 비해 랑켄은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과연 그 작은 뇌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늘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긴 사색에 잠긴다. 랑켄은 랑켄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인지, 자기의 세계가 왜 20도쯤 기울어 있는지 평생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랑켄은 고양이니까. ---p.311 |
|
서양화의 모델이 된 길고양이, ‘나나’ ‘랑켄’ ‘바마’ ‘주디’!
늘 삶과 싸우고 다시 화해하며 성장해온 젊은 화가 이경미가 전하는 산다는 것, 극복한다는 것, 예술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사소한 것이다 화가 이경미의 그림에는 네 마리의 고양이가 번갈아 가며 자주 등장한다. 천형(天刑)이자 에너지의 근원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태어난 노란 고양이 ‘나나’, 사고로 목을 다쳐 늘 20도 기울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프랑켄슈타인’ 고양이 ‘랑켄’,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입양한 고양이 ‘바마’, 미국의 동물 보호소에서 인연을 맺은 막내 고양이 ‘주디’는 단순히 그림의 소재를 넘어 화가의 예술과 영혼을 반영하는 ‘아바타’이기도 하다. 화가의 분신이자 벗이고, 그림 속에서 유년과 현재를 연결하고 현대문명과 가상공간을 연결하는 메신저이다. 특히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도 살아 돌아온 첫째 고양이, 가장 힘겨웠던 20대를 함께 보내며 가장 큰 위안을 준 나나를 통해 저자는 고단한 삶을 한 발 한 발 디뎌간 스스로의 궤적을 확인한다. 화가 이경미가 끊임없이 고양이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화가 이경미에게 그림이란 ‘소중한 순간을 수집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그 소중한 순간이란 거대하거나 값비싼 가치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기억 그리고 일상이라는 가치이다. 그녀는 때로는 술병, 가구, 잼통, 주사위 등 일상 속 물건에 그림을 그려 넣어 소중한 대상을 기억 안에, 작품으로 영원히 수집한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하나하나 다르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사소하고 작은 경험과 기억조차 그림이라는 예술을 거쳐 커다란 공감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성장이란 얼마나 극악하고 끔찍하고 눈물겹고 애잔한 단어인가”라고 작가는 고백했다. 무능력하고 술을 이기지 못했던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는 몇 년간 집을 떠났다. 서너 살이었던 그때 무의식에 각인된 첫 감각은 지독하고 끝없는 외로움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와 이별하던 날 내리던 눈발은 이경미의 그림 속에서 여전히 낯선 도시의 골목에 흩날리며 유년을 상기시킨다. 무엇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했던 일은 화려한 은박 풍선을 파는 일이었고,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한복을 지어 세 남매와 또 다른 어린 생명들을 살게 했다. 눈부신 광택에 황홀한 색감,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한복천은 이경미의 그림에서 잔잔하고 푸른 파도와 함께 자주 등장하고, 아버지의 은박 풍선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방 출신의 고학생이 대도시 서울에 와서 겪는 이질감과, 갑작스레 거대한 이국의 도시에서 살게 된 이방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외로운 이방인이라는 자각을 안고 살아온 화가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떠나간 우주인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물론 그 우주인은 지구로 다시 돌아올 운명에 속해 있다. 그렇게도 미웠던 아버지가 너무나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저자는 ‘슬퍼지기 전에 삶을 향해 전진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이렇듯 화가 이경미의 그림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 등 돌린 어깨를 닮은 우리네 뒷골목, 현대문명의 상징인 거대 빌딩과 자동차가 다니는 대도시, 환상적인 우주 공간, 어딘가로 열려 있는 문, 가난한 삶을 굳건히 지탱해주는 듯한 책.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거대한 공간들은 주로 방 안, 건물 안, 책상 위에 펼쳐져, 예술가의 상상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하고 있다. 잔잔한 파도와 한복 천은 이질적이면서도 각각의 공간과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네 마리 고양이는 그 어떤 시공간에서도 본성을 잃지 않고 유유자적하고 있다. 고양이처럼 혼자였지만,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니 그냥 가자! 힘겨운 환경에서 11년간 판화와 회화를 공부한 뒤, 유학 간 미국에서도 꿈꾸었던 이상과는 다른 현실을 맞닥뜨린 이 화가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우주 비행사처럼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 길은 분명 전과는 다른 길이다. 다행히 크고 작은 사랑을 받으며, 생명과 자연과 예술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그녀는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수집’하고 표현하며 오늘도 걷고 있다. 거대한 우주, 흘러가는 긴 시간에서는 모든 것이 순간일 뿐이다. 그러니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행복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깨달음. 그것은 성장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이다. ‘여전히 고양이처럼 혼자이지만, 어느새 외로움을 그리움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게 된 저자는, ‘성장한 어른이 지닌 모든 정보가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모두 유전이 된다면 이렇게 길고 긴 시간을 실수하며 상처받고 후회하며 살지 않아도 좀 더 현명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인류는 놀랍도록 지적인 완벽에 가까운 문명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연을, 그리고 막막한 안개 속의 여행자 같은 다음 세대를 다독인다. 어디인지 몰라도 그냥 가자고, 마음이 가리키는 그곳으로 함께 가자고 말이다. 그 길 끝에서 결국 무엇도 만나지 못한다 해도, 무엇도 얻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는 진실을 함께 나누자고 말이다.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마법 같은 그 공존의 시간은, 진솔하고 서정적인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양이처럼 혼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무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장은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답다. 화가 이경미가 그림을 넘어 내밀한 고백을 통해 전하는 성장과 삶의 비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