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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상아탑 밖의 이론: 거리의 지혜와 비판이론
2장. 반포르노그래피 운동 속 문화이론과 사회활동 3장. 동인지 속의 비평: 대중문화와 토착이론 4장. 뉴에이지의 이야기: 서사, 치유, 그리고 변화 5장. 광고계 내에서의 이론적 작업 6장. 교사와 전문가의 만남: 총체적 언어 운동 속의 토착이론 7장. 교육학과 토착이론 주(註)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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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이론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이 책은 문화적 실천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진지하고 끈질긴 질문을 제기하는 비판이론이라는 것이 학술적 엘리트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시트콤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사람들에 의해서, 엘비스 프레슬리 팬들과 [스타트렉] 마니아들에 의해서, 또한 거리에서 흔히 보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모든 통설에 도전하는 철학적·정치적 회의주의로 무장한 전통적 학술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맥러플린이 이야기하는 토착이론가들은 사회적 모순과 선전을 재빨리 알아차린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념 체계에 대해 능동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론적인 작업은 그들이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대중문화 가운데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들에서 비롯된다. 또한 기존의 제도들에 대한 그들의 질문 행위는, 그것이 바로 그 제도들의 목적과 전략을 명확하게 해 주고 그 문화적인 실천의 존재를 정당화해 주는 다른 이론가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건강한 것이라고 맥러플린은 주장한다. 『거리의 지혜와 비판이론』은 우리를 여러 분야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로 이끈다. 남부 기독교의 반-포르노그래피 운동, 동인지 세계의 팬 비평, 치유와 변화에 대한 뉴에이지의 서사, 광고 전문가들에 의한 체계적인 조작, 그리고 총체적 언어 운동에 나타나는 토착이론 등등......이론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문화적 실천임을 강조함으로써, 맥러플린은 학생들이 교실로 가지고 들어오는 이론적 전략들에 학계가 주의를 기울이고 또 그것을 발전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옮긴이의 글] 지금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대중과 대중문화의 힘은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더욱 강력하며 앞으로도 계속 더 커질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제 대중문화를 단순히 천박한 삼류 문화나 돈벌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으며, 그것은 이미 우리 삶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TV와 영화와 인터넷과 광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기존의 엘리트주의적인 비판은 대중을 수동적인 피해자로 간주하였으며, 대중문화란 문화 권력자들이 대중을 조종하기 위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대상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론가인 피스크와 세르토는 이런 견해에 반대하여 대중에게 상당한 권력과 저항의 가능성을 부여하였으나, 그 저항이란 어디까지나 지엽적이고 산발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대중이란 존재가 갖는 가능성은 이러한 견해 속에 궁극적으로 잠재된 일종의 패배주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대중은 때로 어리석고 편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명하고 노련하였다. 상아탑 속의 학자들은 대중에 관해 이런저런 이론들을 생산해 내고 있지만, 사실 대중도 이런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바를 이미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그것을 뛰어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목격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는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로 어떤 강력한 진리가 깃들어 있었다. 맥러플린의 책은 나의 이런 어렴풋한 느낌을 대단히 명쾌한 언어로 설명해 주었다. 그는 대중의 삶 속에 깃들어 있는 진리를 '토착이론'이라고 부른다. 토착이론가들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광고, 교육, 사회운동, 동인지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비록 학술계의 이론가만큼 정교하고 엄격한 어휘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의 전제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한 이데올로기의 피해자가 아니며 오히려 그 이데올로기를 향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의 팬들은 음악 산업의 장삿속을 꿰뚫어 보고 있으며, 교사들은 관료제도와 기존의 교과서 시스템이 갖는 근본적 결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을 '이론'이라고 부름으로써 맥러플린은 그들의 능력에 대해 가장 강력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맥러플린의 토착이론 개념이 제시된 후에야 비로소 대중은 스스로의 행위를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겠다. 이 책이 갖는 또 한 가지의 미덕은, 맥러플린이 대중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맹목적인 긍정으로 빠지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토착이론이 해방적이고 전복적인 결과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대중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전제들, 즉 이데올로기에 질문을 던질 수 있으나 그 결과가 항상 이데올로기의 전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보수적 사회 운동가를 논하고 있는 2장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시피, 심지어 이런 질문과 도전은 기존 이데올로기와 사회 질서의 강화를 목적으로 삼기도 한다. 결국 맥러플린의 토착이론 개념은 한편으로 대중의 역량을 충분히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한계점과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이론적 도구가 되어 줄 수 있겠다. 하지만 토머스 맥러플린이라는 이름과 토착이론이라는 개념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가 없다. 이 책이 출판된 지가 제법 오래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단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런 훌륭한 책이 주목받지 못한 채로 세월 속에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은 1990년대 중반 이전 미국의 것이며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어느 정도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대단히 빠르게 변화하는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그러나 지난 십수 년 동안 발생한 많은 변화와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맥락 차이에도 불구하고 맥러플린의 분석과 주장은 여전히 시의적절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아마도 우리의 시대에 와서야 대중의 역량에 대한 그의 통찰이 비로소 진정으로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예전에 '침묵하는 다수'에 불과했던 대중에게 강력한 발언권을 부여하였으며 또한 그들의 발언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팬 동인지나 소식지, 강연 등 비교적 폐쇄적이고 좁은 유통 경로를 통해서만 드러났던 토착이론이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 그 진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장밋빛 미래로 이어질지 아니면 기존의 전제들을 재승인하고 강화하는 보수반동적인 경향으로 나타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맥러플린의 책을 통해 이제 우리는 적어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