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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서문
1. 세계 경제의 위기 글로벌 경제 위기 | 경제 위기의 전개 | 붕괴의 메커니즘 | 안이한 정부 | 무엇이 새로운 점인가? | 역사적 맥락의 낡은 문제 | 해답을 얻지 못한 물음들 | Don’t Worry, Be Happy | 행위 규범의 문제 2. 자본주의, 시장, 그리고 도덕성 신뢰 | 단순명쾌한 유효성의 법칙 | 금융 및 경제 위기의 원천 | 지적 정직성 | 최고위층의 다른 윤리 3. 세계 경제의 변화와 도덕적/심리적 환경의 변화(1980년대 이후) 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로 | 기술에 대한 과도한 선전 | 탈산업사회의 서비스 부문 | 경제의 가상화 | 부채 | 신용 | 지대(rent) | 상표 | 리스크와 도덕적 의미 | 마술적 '혁신' | 신분 | 방종 | 경종 4. 국제 관계(1980~2008년) ─ 사익이 최선이다 분할된 세계 | 항구적인 후진 상태 | 소련 붕괴 이후의 변화 | 합작품 | 민주주의 친구들 | 단기적 이득과 전략적 곤경 | 국제 정치(1980~2008년): 정치 철학의 부인, 경제력과 무력에 의한 지역 문제 해결 | 정치적 사고의 수준 5. 러시아의 위기는 다른 문제다 힘의 경제학과 우연의 요소 | 주변부 자본주의 | 혁명 혹은 복고? | 러시아의 임박한 위기와 예상되는 위기 | 저개발의 축복 | 러시아의 특수성 6. 경제 위기에서 배우는 교훈 ─ 도덕성이 생존의 열쇠이다 탈산업 사회의 포스트모던한 환경 | 의미의 회복 | 공공의 이익과 공공의 위협 | 지금은 생각할 때다 결론 감사의 글 | 주 | 참고문헌 |
Grigory Yavli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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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비즈니스 세계의 기본적인 도덕적 태도가 크게 변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도덕적 규준 자체를 아예 버리려는 시도로 보일 정도이다. 새로운 체제는 공익과 사회적 유용성의 기준에 따라 기업 활동을 평가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오직 실제로 불법적인 검은 시장만이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고방식은 흑자 매출은 정의상 소비자 욕구의 만족을 함축한다는 추론이다. 그리고 소비자 욕구의 만족은 (역시 정의상) 기업 활동의 사회적 유용성 혹은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윤리적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이라는 추론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돈이 유용성의 유일한 척도이고 그 밖의 다른 가치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경제적 판단에서 도덕성의 역할을 배제하는 윤리적 허무주의이다. 도덕성은 교환이나 저축, 투자, 상품 생산, 그 밖의 기본적인 경제 행위와 관련된 일상적인 활동에서만 제 역할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부 당국에 의해 시행되는 법률만큼 중요한 것이다. 실제로 내 경험상 국가가 시행하는 법률이 얼마나 잘 통용되는지는 오랜 세월 사회에서 숙성된 원칙들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잘 통용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원칙 가운데 하나가 도덕성이다.---pp.28-29 대불황의 성격과 원인은 전통적인 순환적 요인이나 금융 부문 내의 왜곡과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다. 경기 하락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및 이것과 연관된 금융 파생 상품의 파국적 실패에서부터 주요 다국적 투자 은행의 파산과 유럽 작은 나라들의 금융 시스템의 실질적 붕괴에 이르기까지 경제 행위자들의 행동 방식이 안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에 의해 촉발된 것이거나 그것과 밀접히 연관된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거시경제적 균형을 보증하는 메커니즘의 불완전성에 직접 기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위기의 원인(및 양상)으로 완전히 개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저마다 특정한 역사적 맥락과 원인을 갖고 있지만, 순환적 요인과 중첩되어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한 규모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모기지 대출 채권을 포함하고 있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급격한 가치 하락은 금융 시장의 붕괴를 초래했고 이는 금융기관의 안정성에 대한 투자자 및 금융인들의 신뢰를 앗아갔다. 이어 신뢰의 위기가 발생하고 대출 조건이 강화되었으며 은행 간 시장과 비금융 부문에서의 차입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신용 경색은 이미 소비자 수요의 급감(특히 장기적으로 사용되는 값비싼 제품 수요)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수많은 회사들의 재무 상태를 한층 더 악화시킨 촉매였다. 동시에 선진국 경제에 불어 닥친 심각한 경기 침체 위험은 석유 선물 시장의 투기적 거래로 이어졌다. 전에는 가격 상승에 베팅을 하고 그에 따라 1년에 세 배씩이나 석유 가격을 치솟게 한 투자자들이 석유 계약을 공격적으로 매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석유 가격은 단 몇 개월 만에 2007년 중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러한 가혹한 조정에 영향을 받은 다른 대부분의 제품들도 2008년 하반기에 가격이 급락했다.---pp.53-54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험난한 일이다. 정치인들은 꼭 필요한 대량 파산의 집행을 꺼리기 때문이다. 규모가 너무 큰 탓이다. 그 결과 사회가 감내해야 할 충격은 재난 수준에 이른다. 게다가 정치인이 만약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구석에 몰린 기업계는 기성 정치계에 이렇게 물을 것이다. 누가 냉소와 위선의 분위기를 조장했던가? 누가 세계 정치를 원칙을 사고파는 투기장으로 변질시켰던가? 누가 무책임한 자만심을 과시했던가? 누가 냉전 종식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가? 등등. 결국 정치인들은 대답을 하는 대신 보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막대한 구제금융 조치는 표면적으로만 상황을 개선시켰을 뿐,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목도한 극히 위험한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세기식 정치와 경제는 새로운 세기의 현실에 점점 더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경제 위기라는 병을 치료해야 하는데 환부의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궁극적인 원인을 살피지 않는 채 더 많은 돈을 쏟아 붓기만 하는 것은, 원인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증상만 완화시킬 뿐이다. 투자자를 비롯한 세계 경제 게임의 모든 참여자들은 무엇인가가 빠져 있고 아직 시장의 신용은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한 회복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국제관계 197 당분간은 세계 경제의 변화 방향을 수정하는 문제에 관해 국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단계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꿰뚫고 나아갈 힘이 충분한지, 세계 경제라는 거대한 배를 다른 방향으로 조종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있는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2009년 초에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비난이 널리 확산된 것이 전 세계 엘리트 계층의 의식에 심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징후이기를 바랄 뿐이다. 경제를 규제할 때 도덕 원칙을 무시하거나 경제 활동(및 그 효율성)을 평가할 때 상식이나 공익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언젠가는 경제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인식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 역명제 역시 성립한다. 만약 세계 경제 시스템을 여러 가지 불안 요인에도 휘둘리지 않는 건강한 체제로 바꾸고 싶다면, 경제 활동은 형식적인 양적 요구 뿐 아니라 도덕규범에서 파생되는 질적 요구도 충족시켜야 한다. 위기가 정점에 오른 시기에 국제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진지한 토론 주제로 떠올랐지만, 이것은 경제 시스템에 요구되는 변화의 한 가지 요소─그것도 기술적인 요소─일 뿐이다. IMF나 세계은행의 의사결정 과정은 아마도 바뀔 것이다. 그리고 국제 금융기관들의 역량과 책임도 어느 정도 확대될 것이다. 국제 준비 통화인 미국 달러화의 역할 역시 특별인출권(SDR) 같은 국제금융수단을 보조하는 정도로 축소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개별적인 사례일 뿐이다. ---pp.238-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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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과 윤리의 전면적인 붕괴가 가져온 세계 경제 위기,
과연 숨은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러시아 최고의 경제학자 그리고리 야블린스키가 분석한 세계 경제 위기의 숨은 원인과 미래의 전망과 예측 레알에코노믹(Realeconomik)이란: 탈법과 부패, 심지어는 폭력을 정치적?경제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관행 등이 팽배해 있는 분위기를 말하며, 근본 요소는 힘의 경제와 비도덕성으로 이루어졌다. 저자인 그리고리 야블린스키가 명명했으며 ‘레알폴리틱’과 유사한 용어로 쓰고 있다. ‘레알폴리틱’은 현실의 권력 관계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정치로 행세하고 있지만 사실은 냉소주의와 강압 정치, 초 도덕성 같은 마키아벨리식 원칙들로 이뤄진 정치를 뜻하는 경멸적인 용어이다. 불안을 야기한 경제 정책 및 경제에 대한 사고방식이 공동선과 경제적 안정성보다 기득권에 더 크게 좌우되었다는 사실. 정직하고 책임 있는 접근보다 잘못된 전제, 그리고 불편한 경제 현실에 대한 의도적 무시에 기반을 두고 정책이 결정되었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정책 수행자들이 오히려 명망과 승진, 높은 연봉, 다양한 특전 등으로 보상받고 개인적인 리스크와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정책 결정 방식이 바로 레알에코노믹의 토대이며, 기회만 있으면 엄격한 윤리적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 행동하려는 성향이 바로 레알에코노믹의 특징이다. 금융 부문의 안정성을 해치는 리스크가 쌓여가고 있는데도 금융 당국이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한 주범이 바로 레알에코노믹이다.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저축은행 사주의 부도덕한 행태는 레알에코노믹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책의 기본 전제는 대불황의 성격이 결코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심지어는 경제적인 요인이 주된 요인조차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대불황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 당국이나 최고위 경영자들의 무사안일주의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결과도 아니다. 근본 원인은 더 심층적인 곳에 있다.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도덕적 지침, 공적 통제 등을 통괄하는 사회의 일반적인 규칙들이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항이며 경제 활동에도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현대 시장 자본주의에서 어떤 사회 내의 도덕 원칙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민 경제든 세계 경제든, 공공도덕과 기업 윤리를 세우려는 집중적인 노력 없이 효과적인 경제를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공 도덕이 무너지고 기업 윤리가 부패하면, 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경제위기의 숨은 원인 *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붕괴가 가져온 도덕 원칙의 실종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제 경쟁, 특히 서구 자본주의와 소련식 공산주의의 대결은 그에 따른 군비 지출이 모든 분야의 객관적인 규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사회 내부에 긴장을 조성했고 경제 정책을 비롯한 정부 정책의 약점과 위험을 강조하는 비판가들의 주장을 경청하게 만들었다. 또한 냉전은 서방 세계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공정한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하게 만들었다. 인권 존중, 국제 관계에서의 경제적?정치적 자유, 가난 구제, 경제 개발 촉진, 조합주의 국가의 부당한 개입으로부터 서구의 경제 체제를 보호하기 등이 그런 원칙들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한때 이렇게 공언되고 지지받았던 원칙들은 깨끗이 수정되거나 완전히 잊히고 말았다. 일단 군사적 위험이 사라지자, 다른 모든 위험-자본주의 체제를 뒷받침하고 시장 메커니즘의 원활한 기능에 필수적인 가치들이 쇠락하는 위험도 포함해서―도 진지한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20세기 후반에는 부국과 빈국의 격차가 비정상적인 현상이고 선진국은 어느 정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즉, 제3세계를 안정시키고 난민 유입을 막고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하지만 주로 도덕적 배려에 입각해서 이러한 간격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통상적인 생각이었다. 특히 엘리트 지식인들에게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진보의 이념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에서 심각하고 우울한 빈곤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인간성의 타락을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주로 유엔의 후원 하에 다양한 국제적 개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국제 금융기관도 능력의 한도 내에서 도움을 아끼지 않았으며, 선진국 정부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었다. 수십 년에 걸친 힘겨운 노력 끝에 선진국 시장은 마침내 개발도상국 상품에 개방되었고 개발도상국은 먼 장래에는 경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20년 내지 25년 동안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비참한 경제 상황에 대한 선진국의 온정적인 태도는 냉혹한 무관심 혹은 노골적인 불만으로 바뀌었다. 선진국의 발언도 개발도상국들이 이제는 원조가 아니라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해서 경제 효율성을 높이고 번영을 구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산업자본주의에서 신경제로의 이동 가장 현저한 현상은 산업 자본주의에서 ‘탈산업’ 경제 혹은 ‘신경제’로의 이행이다. 이와 같은 구조 변화는 전통적인 산업 부문과 대비되는 금융 부문 및 금융 서비스 분야의 급속한 성장을 뒤따르고 있으며, 소비자의 기본적인 욕구나 경제 발전에 필요한 수요를 충당하는 산업보다 소비자 심리 및 소비자 성향의 조작에 기반을 둔 산업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경제 위기와 세계 경제의 장기적 변화 사이의 상관성을 검토하면, 경제 구조 변화가 공공 도덕에 확고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거꾸로 경제 붕괴가 발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선진국 경제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만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동인은 서비스 부문의 팽창이다. 여기에는 민간 부분과 공공 부분을 통틀어 온갖 유형의 서비스 산업이 포함되지만, 처음 시작은 기업 비즈니스 서비스였다. 이러한 변화는 선진국 경제에서 특정 자원, 특히 단순 노동력과 토지 비용이 상승한 데서 연유했다. 이러한 비용을 삭감해야 했기 때문에 자원 집약적 산업은 그러한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저개발 국가로 이전되어야 했다. 중국과 남서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으로 바뀐 것이 이미 기정사실화되었고 인도와 일부 남아메리카 나라들이 세계의 산업 지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난 20년 동안 선진국에서 ‘신생 산업 경제’로 대량 생산 시스템이 이동한 것은 세계 경제 및 그 구조와 발전 논리를 변화시킨 중요한 계기였다. * 신용경제의 폐해와 소비문화 지난 몇 십 년 동안 선진국 경제의 주요 변화가 가져온 결과 중 하나가 과도한 신용 증식이며, 신용 증식 역시 그 나름의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주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빌린 자금으로 생활하는 습관은 연방 정부에서 지방 자치체에 이르는 국가 부문 뿐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도 널리 퍼졌고, 2008년에는 부채 총액이 거의 13조 달러에 이르렀다. 동시에 소비자 신용 경제의 호황은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거의 모든 경제 활동 인구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계 부문에서는 수세기 동안 유럽의 전통에 의해 형성된 저축 문화가 소비문화로 대체되었다. 은행 시스템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미국의 부동산 거품은 사실 은행이 채무자에 대한 자격 요건을 점진적으로 완화한 과정의 논리적 결과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가계 수입, 신용 및 부동산 규모의 안정적 성장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높아지는 부도 가능성도 전반적인 신용 증식을 늦추지 못했다. 은행은 담보물을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상당한 손실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어딘가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손실은 은행 부문에 쌓여 있는 대출 자료들 속에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게 되었다. ‘가상화’된 경제에서 탈산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자본 흐름의 투명성이 약화되던 시기에 선진국에서 저축률이 감소한 것은, 소비자 대출의 전례 없는 팽창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팽창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은 병렬적으로 전개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신용 경제는 어느 정도 신화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심각한 압박 없이 지금 모든 것을 구입하고 나중에 값을 치를 수 있는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현실화될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활기찬 경제생활을 새로 시작하면서 온통 신용 대부를 통해 자기 집을 마련하고 그 집을 새로 단장하고 높은 수준의 소비를 즐겼다. 그리고 부채는 가계 수입이 꽤 높아져서 부채 상환 부담이 전반적인 물가 및 수입 상승에 비해 양호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되는 시기에 갚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기대감은 채무자가 예금자 덕분에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개인 가처분 소득의 증가는 대중들의 소비를 자극했다. 개인 소득이 확연히 증가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호황의 신호라고 믿은 대중들이 저축에 대한 열의를 잃었기 때문이다. 개인 소득의 증가는 또한 소비자 신용에 대한 가계의 접근성을 높였고 이것 역시 저축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켰다. * 금융부문의 비도덕성 경제 구조는 금융 부문에 유리한 쪽으로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변해 왔다. 이러한 변화는 다른 부문의 생산에서 다양한 지적 요소들에 소요되는 비용을 증가시켰다. 이를테면 생산 활동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이라든가 점점 더 전문화가 요구되는 경제 행위자 간의 복잡한 연결망이 차지하는 비중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이고 자연적인 힘 곁에서 우리는 이러한 부문들의 기업 활동이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관련자들이 그릇되고 기만적인 행위들을 더 많이 저지르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자신들이 저지른 부당한 행동이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 중에 어느 한 명도 공개적인 노출이나 대중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제로 언론이 그들의 추문을 다룬 후에도 어떤 비난도 나오지 않았다. 사회적 고립의 위험성을 공허한 객담 정도로 치부하는 사기범을 용인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도덕적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부문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서 고객들로부터 과거 세대들의 창조물인 지적 재산에 대한 저작권 사용료를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공격적이고 위압적인 광고 뿐 아니라 신비로운 ‘혁신’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뻔뻔스러운 속임수를 통해 공공연히 소비자 심리를 조작한다. 이 모든 행위들은 정치인들의 수동성과 지적 엘리트 그룹의 공공연한 협조 덕분에 가능해졌다. * 대중들의 의식 변화와 도덕성 상실 만약 상기에서 기술한 것처럼 21세기 탈산업 사회의 세계화 시대에 국제 관계를 비롯한 모든 정치 분야가 도덕 원칙과 가치를 저버린 것이라면, 세계 경제는 언제나 아무 증상도 보이지 않은 채 위기를 향해 움직일 것이다. 주기적으로 위기는 발생할 것이고 어쩌면 더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제일 우려되는 상황은 정치적?경제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은근한 팽창이다. 대중들은 더 이상 정치와 경제에서 의미를 찾지 않고, 가상적인 ‘신경제’가 풍부하게 제공하는 점점 더 새로워지는 인공물에 탐닉할 뿐이다. 오늘날의 유럽과 미국은 외부의 압력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이익과 이상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발전해 왔다. 한편으로는 이성과 현실에 대한 섬세한 인식과 이성에 기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명예와 존엄, 도덕성의 개념에 대한 오랜 이해에 바탕을 둔 이러한 노력이 가장 훌륭한 형태의 유럽 문명을 창조한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개념들이 대중의 의식에서 지워질 때, 대중이 주입된 욕구와 브랜드와 상징물의 가상 세계에 탐닉할 때, 우리가 돈의 출처와 일부 사람들이 막대한 수익을 얻는 방식에 대해 묻기를 꺼려할 때, 그 문명은 위기에 빠진다. 정치인과 경제인 역시 대중과 똑같은 생각과 심리, 편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중의 의식이 타락하면, 결국 정치와 경제도 타락하고, 사회는 부패하고 진보의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행정 명령으로 도덕성을 경제에 도입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들은 도덕성이 모든 경제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도덕성의 입지를 세우는 어떤 특별 규정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도덕성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널리 확산되면, 도를 넘는 행위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이든 사소한 결정이든, 법이 관련돼 있든 아니든, 담당자들이 어떤 결정을 받아들일 때는 경제와 정치에는 도덕성이 필요하다는 사실, 도덕성이야말로 효율성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래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양적 규범의 준수 여부만 감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손쉽게 돈을 벌 가능성이 보이면 인간의 상상력은 언제나 형식적 제약을 우회하는 길을 찾아낸다. 행동의 실체에 대해 더 엄격한 요구 조건을 부과할 때, 우리가 모두 도덕적 기준에 입각해서 행동할 때, 그래서 의심스러운 행위가 경제 영역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도덕적 퇴보를 막을 수 있다. * 미래의 전망과 예측 서방 세계와 지식인들은 새로운 현실을 단번에 파악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지 못한 채 그저 낡은 경제 정책을 답습하려 할 것이고, 게다가 레알에코노믹식 사고방식의 비도덕적 교리에 휘둘려 오판을 반복할 것이다. 교육과 경영, 경제적 사고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낡은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한동안 사태를 그대로 지켜보는 것만이 문제의 심각성을 덜 느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관성적인 태도는 결국 십여 년 후의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장기적인 경제 부진은 정치 제도와 권력의 균형 상태를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다. 국제 관계에도 별다른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외교에서는 윤리 원칙을 무시하는 경향, 고상한 목표와 도덕적 의무에 따라 ?외 정책을 수립하기를 바라는 대중의 여론을 무시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주요 국제 분쟁은 점점 더 원칙이 아니라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조만간 역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낡은 갈등을 해결하려는 야심만만한 시도들은 모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 미국 정부가 대외 정책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뀌고 있다. 유로존의 재정 위기 상황에서 볼 수 있듯, 공통의 가치에 기반을 둔 국제 연대는 강력한 협력 활동을 이끌어낼 만큼 견고하지 못하다. 금융 부문의 전반적인 상황 역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호황을 뒷받침했던 중산층 소비자의 열기로 지탱되었던 건전한 수준으로는 다시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투기와 지대추구 행위는 여전히 만연하겠지만, 우리가 대불황 이전에 목격했던 역동적으로 뜨겁게 팽창하던 금융 흐름을 이끌어낼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무익한 짓을 한다고 널리 비난받았던 신용 평가 시스템도 그대로 남아 있고, 이미 많은 돈을 잃게 한 ‘금융 전문가’의 조언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기관투자자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이야말로 증권 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잡을 때라고 떠드는 목소리도 여전히 들리고 있다. 모두 똑같은 인간, 똑같은 방법, 똑같은 전략이다. 차이점이라곤 최악의 시기는 넘겼고 이제는 비교적 안정된 번영의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일반적인 믿음뿐이다. 정치 지도자와 경영인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더 깊은 추락을 막고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다면, 책임 의식을 갖고 단호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윤리 원칙에 입각한 정책만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가장 실용적인 방안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는 것은 무척 힘겨운 일이다. 향후 5년 동안은 자본주의 경제가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목격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시험을 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과 결합한 윤리 정책은 냉소주의를 물리치고 서구 문명의 가치를 경제 및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안전한 미래 투자가 될 것이다. *도덕성이 생존의 열쇠이다 경제 시스템에서 윤리적 제약을 없애면, 시스템은 타락하고 결국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기술 혁신에 이어 비도덕적 행위가 만연하게 되면, 시스템은 당연히 붕괴한다. 인간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소유한 대기업들이 인간의 욕망과 태도를 변화시켜 자사 제품의 이상적인 소비자를 양산할 때,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그 핵심 요소를 제거하고 자본주의적 활력과 사회적 효율성의 원천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생산성이나 효율성, 공정 경쟁 같은 시장 경제의 핵심 개념을 내용과 형식 모두 송두리째 수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타락을 유도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토대를 이루고 시장 경제의 원활한 기능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산 기술이 아니라 신뢰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전 논리는 온갖 유형의 ‘혁신’을 장려한다. 그것은 비용 대비 수익으로만 이해되는 효율성은 높일지 모른다. 그러나 구성원 간의 신뢰를 훼손하고 경제 체제의 투명성을 약화시켜 이해할 수 없고 무책임한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신경제’의 이점이 무엇이든, 그것이 신경제의 해악을 상회할 리는 없다. 시스템의 근간, 즉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뢰는 공공 도덕에 의존하는 요소다. 따라서 생산, 교환, 저축, 투자와 같은 모든 기본적인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도덕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