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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부: 사색 도달할 수 없는 성 / 화이트의 전율 / 신의 손, 인간의 손 / 자동차 운전과 감시카메라 / 기차가 만든 풍경 / 햇빛과 바람의 나무 / 기억의 얼굴 / 피라미드의 변형 / 이미지와 텍스트 제2부: 일상 제라늄과 할아버지의 국화 / 집, 생활의 그릇 / 접부채와 선면화 / 우연한 그림 / 왕의 패션 / 저물녘 운동장 / 약수터의 키치 / 보이지 않는 조각 / 기억의 시간 제3부: 여행 피렌체에서 길을 잃다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쿠르베를 따라서 참고문헌 도판목록 |
朴銀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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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네가 그린 작은 정물화를 보고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정물화는 단지 꽃 두 송이를 표현한 것이었는데, 큰 붓질로 쓱쓱 대충 그린 것처럼 보였다.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아 그냥 하얀 물감 덩어리가 엉겨 붙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꽃이 무슨 꽃인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려도 우리의 머릿속에선 불완전한 시각정보를 재구성해 사물을 파악한다는 것을 마네는 잘 이해했던 것이다. - p.25
그의 노트는 페이지 하나하나가 글과 그림이 융합된 나름대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다루는 재주를 가지고 의료활동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잘 활용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오래 전부터 이 방법으로 공부를 하면서 사물을 파악하는 정교한 눈과 손을 키웠을 것이다. 이런 표현력이 그가 외과의사로서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됐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 p.89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작품이란 계획하고 매만지고 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훌륭해지지 않는다는 것,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우연한 사물이나 행위에서도 미적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되새긴 점이라고나 할까. 현대미술은 자동기술법이다 비정형이다 해서 무의식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에서 창의성을 도출하는 경우가 흔하다. 20세기 초, 칸딘스키가 맨 처음 추상화를 하게 된 것도 우연한 발견이라고 하지 않는가. - p.130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때면 매번 내가 작품을 선택한다기보다 작품이 나한테 다가온다고 느낀다. 만남의 시작만이 아니라 만남을 지탱해 주는 것도 작품이다. 작품이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계속되는 의문에 대해 내 관점에 부합하는 답을 갖고 있어야 그 만남이 오래 갈 수 있다. 또 작품이 가진 내용이 아무리 많아도 적절한 시기에 만나지 못하면 가치를 모르고 무의미하게 흘려버리게 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작품과의 만남은 인간관계처럼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 p.194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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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30여 년간 미술인으로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과 지식의 산물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틈틈이 쓴 미술에 관한 에세이들로, 어떤 테마나 형식,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생활 속에서 문득 연상되는 미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따라서 통상의 일관된 설명을 전달하는 딱딱한 미술 안내서나 해설서와는 차이가 있다.
책에 수록된 21편의 에세이들은 대체로 사소한 물건이나 사건, 생각과 같은 일상의 작은 경험에서 시작된다. 가벼운 경험이 예술작품과 연결돼 단번에 깊고 무거운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외할머니의 유물로 만든 은반지는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 조각을 연상시키며, 다시 엄마의 손가락을 상기시킨다. 또한 초등학생 조카의 그림은 외과의사의 노트와 연결되고, 나아가 파울 클레의 추상화로, 더 나아가 조셉 코수스의 개념미술로 이어져 미술작품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이 전개된다. 그런가 하면 삶, 죽음, 욕망, 종교 같은 근원적인 개념도 소설이나 대중광고를 통해 미술작품으로 가볍게 다가가 아주 쉽게 다뤄진다. 일례로 저자는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을 보고 르네상스 이래 회화에 자주 등장한 여성 누드를 떠올리고, 마네가 사용한 화이트 물감에 주목한다. 화이트는 20세기의 ‘백색회화’들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생명과 죽음,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이처럼 종횡무진 생각을 펼치는 에세이들에서 예술과 생활의 구분은 사라지고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예술 장르, 학문 분야 등의 구별도 모호해진다. 어린아이의 그림이 거장의 그림과 나란히 놓이고 회화는 조각과 공존하며, 문학은 미술이 되고 미술은 철학이 된다.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이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조각과, 로댕의 토르소와 연결돼 완성보다 깊은 미완성의 예술적?철학적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미술가의 자취를 찾아간 여행 이야기에서는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여행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더불어 예술가의 도시와 작가, 작품세계를 따라가며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된다. 저자는 누구나 소소한 일상에서 예술의 깊은 정신을 발견하고 명작들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위대한 걸작이라도 가장 기본적인 삶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사소한 일상에서 예술을 발견했듯이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예술을 찾아 즐긴다면 모두가 생활 속의 작은 미술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