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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철새협동 :합』을 펴내며 _ 조경진 탈경계적 프로세스를 통한 지역의 커뮤니티 디자인 _ 김아연 철원 철새마을 프로젝트에 대한 나만의 키워드 _ 변혜선 “과정의 공공성을 담다”, 철원이 보여준 공공건축다움 _ 염철호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디자인 프로세스 _ 임재용 사이트 스토리 양지리 철새마을의 어제와 오늘 건축 및 공간구조로 본 민북마을 양지리의 정체성 _ 이승연 주민들이 말하는 양지리의 어제와 오늘 철새와 동식물 서식처로서의 양지리 _ 김지석 사진으로 본 철새마을의 어제와 오늘 커뮤니티 디자인 철새, 농민, 도시 아이들은 어떻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가 _ 이재영 양지리 사람들과 함께한 커뮤니티 계획과정 _ 오형은 철새마을 사진 이야기 _ 이재영 액션철원 _ 이장섭 소통을 가능케 한 협의 프로세스 _ 강봉이 철새건축 _ 김광수 주민과 철새가 함께 꿈꾸는 철새마을의 살아있는 경관 만들기 _ 허대영 철원 철새마을 커뮤니티 디자인을 돌아보다 _ 좌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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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나 조경과 같은 공간 환경을 다루는 분야와 커뮤니티 디자인이나 마을만들기 같은 커뮤니티 중심 프로젝트는 실천적인 작업의 성격상 늘 현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작 개별 프로젝트의 실현 과정을 꼼꼼하게 다룬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최대한 가감 없이 우리의 구체적인 사례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프로젝트가 여러 방식으로 중재되고 진화되는 프로세스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p.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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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많은 행정가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무언가 차별화된 결과물을 원한다. 특히 외형적인 차별화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예산을 투자해서 새롭게 정비한 지역일수록 좋아졌다는 느낌을 주기보다 정체불명의 요란한 디자인들의 각축전인 경우가 많다. 지역 공공건축물을 만드는 일은 형태적·표면적으로 상징성을 표현하기보다 지역적 특수성에 맞는 프로세스를 통해 이용성과 정체성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 형태적 차별화보다는 과정적 차별화가 더 중요하다. 우리들의 선진사례지 답사는 증거로 남길 수 있는 사진 찍기에 더욱 분주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선진사례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과정에 대한 ‘공부’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철새마을 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우리에게 맞는 프로세스를 디자인할 수 있는 자유였다.
---pp.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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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건물 하나 만들기 위해 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냐고. 아마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공공건축물이 실패한다고. 건축물이 물리적으로 지어지기 전에 커뮤니티가 건축된다는 사실, 건축물이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p.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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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강자들이 일으킨다. 약자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드물고 그래봐야 사소하다. 경제적 양극화는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발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학교에서의 왕따와 폭력과 차별은 사회적 양극화와 차별을 재생산하기 위해 강자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경쟁과 공포의 체제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차별과 빈곤과 무시는 지역적으로 농촌으로 상징되는 공간을 바닥에 깔고 세계무역이라는 전혀 불가피하지 않은 채널을 통해 전세계의 모순과 연결된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60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한꺼풀 덧씌워져 강자들의 연합에 종교적 신념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가진 자의 못가진 자에 대한 지배가 인간의 자연 지배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중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이든 어쨌든 우리는 이 못돼먹은 현실과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 인간 이외의 생물들, 예를 들어 철새들과도 얼마든지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지는 누구인가? 일단 최소한으로만 잡아도 농민, 청소년, 철새 이렇게 세 그룹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지금 아지트를 짓고 있다. 철새들의 생존과 농민들의 생활과 청소년들의 미래가 걸린 싸움을 위한 아지트를. 이번에 만들어지는 커뮤니티센터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전초기지인 셈이다.
---pp.8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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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철새를 상대로 한 시설을 설계하는 행위는 군사시설을 설계하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철새관련시설을 설계하며 주로 쓴 우리들의 개념적 어휘도 ‘잠복’이니 ‘은폐’니 ‘엄폐’니 하는 단어들이었다. 무엇인가를 ‘본다’라는 행위가 철새 탐조 행위든 군사시설의 정찰 행위든 모두 비슷하니까. …… 무엇보다 이 디자인의 주안점을 ‘낮은 포복’과 ‘내외부 공간의 비경계성’ 그리고 ‘동선의 흐름’에 두고 시작하였다. 단층으로 설계하여 주진입은 인공대지라 할 수 있는 지붕층에서 이루어지게 하였다. 이 시설을 진입도로 및 토교저수지 제방 보다 낮게 포복시켜 철새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하려 한 것이다. 내부에 존재하는 각각의 시설들도 불명료한 경계를 가지고 혼합되어 있으며, 내외부뿐만 아니라 기능시설들의 활동도 시선적으로 공간적으로 교차된다.
---p.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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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별난 겉모습
이 책의 외형은 조금 색다르다. 종이도 크기도 각기 다른 세 개의 묶음이 한 권의 책으로 합쳐져 있다. ‘내용과 형식은 둘이 아니다’라는 거창한 메시지를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철새마을에 모여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했던 지난 2년여의 노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디자인을 맡은 액션서울의 이와 같은 제안에 모든 필자가 선뜻 동의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양보한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꿈보다 좋은 해몽을 덧붙이자면, 흔히 커뮤니티 디자인 혹은 마을만들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행정, 주민, 전문가(시민단체)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행정이 너무 관행대로만 일을 추진해서도, 주민이 형식적으로만 참여해서도, 전문가가 디자인 욕구만 내세워서도 좋은 결과를 담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철새협동 :합의 크기와 종이가 다른 세 묶음은 이러한 세 주체를, 세 묶음이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된 것은 세 주체가 협력하여 결국 하나의 커뮤니티를 구축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시도였다. ● 철새마을로 불리는 민북마을 양지리 일반적으로 한국의 농촌사회에서 마을의 입지는 ‘배산임수’의 원리를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민북마을은 북한에서 잘 바라다 보이는 평지나 벌판 한 가운데 마을이 위치해 있고, 시계가 한쪽으로 열려있는 폐쇄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 과거 대북선전 효과와 더불어 주민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한 통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민북마을의 가옥은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집이 붙어 있는 쌍둥이 구조로 지어졌다. 실상은 두 개의 가구가 살고 있지만, 외형적으로는 한 개의 가옥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남한 농촌마을의 우위성을 북한에 선전하고자 의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통선 내의 민북마을은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가 만들어낸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계획마을이다. 또한 양지리는 금지된 땅 북한과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생명체들, 바로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철새마을이기도 하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경작한 철원 평야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토교저수지가 사람들은 물론이고 철새들까지 넉넉하게 품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때문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철새마을 프로젝트는 역사가 만든 경계와 그 경계를 뛰어넘는 생명체들, 그리고 그 경계를 점유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철새마을 프로젝트는 국토해양부에서 2009년부터 시작한 국토환경디자인시범사업 공모에 철원군의 계획서가 당선되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지방에 건립되는 공공건축물의 경우, 전시행정의 관행, 예산의 잘못된 사용, 디자이너의 무책임, 사회적 의식의 부재, 지역성에 대한 몰이해, 저가입찰, 담당 공무원의 그릇된 취향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한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예산을 투자해서 새롭게 정비한 지역일수록 좋아졌다는 느낌을 주기보다 정체불명의 요란한 디자인들의 각축전인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역의 공공건축물을 만드는 일은 형태적, 표면적으로 상징성을 표현하기보다 지역적 특수성에 맞는 프로세스를 통해 이용성과 정체성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 형태적 차별화보다는 과정적 차별화가 더 중요하고, 완공 후 덩그러니 방치되는 건축물을 짓기보다 실제로 건축물이 활발하게 이용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직조하는 것이 더욱 긴요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철새마을 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철새마을에 맞는 프로세스를 디자인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프로세스 디자인은 발주 방식, 관련 전문가의 선정, 분야별 진행 방식과 선후관계의 결정, 다양한 피드백 방식의 도입 등, 해당 프로젝트의 특수성에 맞는 유연한 체계를 갖추며 진화해나갔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책임을 맡은 김아연 교수는 프로세스 디자인과 분야간 협업 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해주었다. “우리시대의 전문성과 영역성은 실상 배타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협업은 타 분야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전제로 하는데 우리들이 익숙한 영역성은 이러한 개입을 ‘침범’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별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철새마을 프로젝트는 이러한 익숙한 경계성과 영역성에 대한 스스로의 도전이었다. 프로그램 전문가는 끊임없이 건축물의 용도와 기능에 대해 언급해야 했고, 커뮤니티 계획가는 건물을 운영할 주민들의 관점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디자인의 세세한 부분을 검토하였다. 건축과 조경의 영역이 불분명해지기도 했으며 철새의 관점에서 전체 프로세스에 제동이 걸리기도 하였다. 당연히 불편한 대화도 있었고 서운함도 오갔다. 하지만 소모적인 감정적 논쟁으로 지치기보다 논쟁을 통해 생산된 더 나은 결과물에 대해 안도하게 되었다.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대화에서 시작한 소통은 두 번째 해를 맞으면서 훨씬 강하지만 부드럽고 활기차며 즐거워졌다. 프로그램 팀과 커뮤니티 계획 팀이 건축물을 디자인하는데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체험학습 기간과 규모, 진행방식에 따라 방의 규모와 용도를 주문하였고 주민들이 원하는 주방과 판매하고 싶은 상품에 맞추어 실내 인테리어 계획이 수립되었다. 설계안이 진행될 때마다 함께 모여 각 분야의 관점에서 교차 검토를 했다. 자칫 놓칠 수 있는 틈새를 많이 발견하였다. 여러 전문가의 자문회의를 거치면서 설계안은 계속 조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