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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 007
프롤로그 -------- 009 1장 학교교육 부적응아 -------- 015 2장 부모는 자녀의 행복만을 바란다 -------- 034 3장 우리 아이는 천재다 -------- 057 4장 어디로 갈 것인가? -------- 081 5장 교실 속 동아시아 코끼리 -------- 112 6장 압박 피라미드 -------- 135 7장 청소년이 죽어가고 있다 -------- 151 8장 세대 간에 박힌 쐐기 -------- 169 9장 교사의 입장을 이해해보자 -------- 199 10장 동심 파괴 -------- 219 11장 자녀의 학교는 부모가 다니던 시절의 학교가 아니다 -------- 237 12장 교육이란 무엇인가? -------- 262 13장 최고의 교육모델 -------- 280 14장 민주적 리더십 -------- 304 15장 내가 원하는 학교 -------- 322 에필로그 -------- 331 본문주석 -------- 334 |
Lucy Clark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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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열여섯, 열일곱 살 아이들을 감동적인 말로 위로하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졸업시험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침착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려주면서 대학입학 점수가 전부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고 위로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 스트레스라는 악령은 딱 이 나이 때의 아이들만 짓누르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들 곁에 껌처럼 붙어다닌 것이다. --- p. 20
“선생님이 제게 말했어요. NAPLAN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할 거라고요.” NAPLAN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렸던 9세 소년의 말이다. 고작 아홉 살 아이가 말이다! 교사들 역시 NAPLAN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음은 동일한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학생들이 NAPLAN을 치르기 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교사가 90퍼센트나 되고, 학생들이 아프고, 울고, 밤에 잠을 못 잔다는 교사도 상당히 많다. 교사의 72퍼센트는 NAPLAN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 pp. 26-27 “호주에서는 아이들의 정신건강치료에 연간 100억 6천만 달러를 지출합니다. 이렇게나 아이들의 정신건강문제가 만연한 이유는 우리가 그 문제를 아이들 개인의 문제로 보고 아이들을 다그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건 네 문제야. 네가 분발해서 해결해야 해.’라고 말하면서요. 하지만 사실 그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 p. 30 한 십대 아이가 열 살에 영재반에 선발되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 교실 문 앞에서 말했어요. ‘영재반 어린이 여러분, 이제 밖으로 나오세요.’ 그러면 영재반 아이들은 모두 일어나 다른 아이들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어요. 전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반에 남은 나머지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을 제외하고 일부 아이들만을 지칭하는 영재라는 용어가 어떤 함의를 갖는지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그 다음 해에는 영재프로그램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전 한동안 영재반에 탈락한 것 때문에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 제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어요. 정말 멍청한 짓이었죠.” --- pp. 58-59 조 볼러(Jo Boaler)는 능력별 편성반으로 나누는 것이, 낮은 수준의 흥미 없는 과제로 수많은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잃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아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지만,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은 경험은 학습과 학교에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정책이 옳다고 믿습니다.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을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과 분리해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이 통합반에 비해 우등반에서 더 좋은 성과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등반에 있는 것은 일부 학생들에게는 상당한 불안요인이 됩니다.” --- pp. 63 한국 아이들에게 닥친 심리적 비용은 자살률 증가로 측정되고 있다. 한국 이외의 선진국에서는 자살률이 하락세 내지 안정세이지만 한국 십대들의 자살률은 지난 몇 년 동안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의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의 반 이상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고 세 명 중 한 명은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0퍼센트 이상이 학업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걱정이 많다고 대답했다. --- p. 122 “학교에 다시 가면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M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우리 중 한 사람은 올해 무너질 거야. M은 괜찮을 거야. M은 정신과의사와 상담하고 있고 똑똑하니까. 나는 아무래도 올해를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 (중략) 고등학교에서 낙제했다고 자살한다는 건 정말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인생에서 실패할 게 확실하고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게 불 보듯 뻔하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세상사가 아무 의미도 없게 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상담을 요청하면 정말 도움이 될까? 괜히 부모님의 돈만 날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요는, 나는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거야. 내게 사회공포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걸, 그리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너무 무서워.” --- pp. 156-157 나는 대만의 소피아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를 찾을 시간이 전혀 없다고 했다. 나는 클레어의 고통의 시간과 그녀의 그림 속 얼굴 없는 여인을 떠올린다. 나는 불안이 앗아가버린 내 딸의 십대시절과 탄탄한 자아관 없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수많은 십대들이 표현한 공허함을 떠올린다. 그 아이들은 그런 자기 정체성이 없이 어떻게 인생을 헤쳐나가게 될까? --- p. 168 그렇지만 내가 대화를 나눠본 한 교사는 ‘심리상담사 역할까지도 해야 되는’ 현실에 화를 냈다. 학교의 정신건강프로그램 개발 논의에 달린 댓글에서도 이런 정서를 찾아볼 수 있었다. ‘호주 교사의 절반은 학생의 정신건강을 다룰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설문결과를 보도한 기사에 달린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교장과 교사 6백 명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단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조사대상자의 거의 100퍼센트가 정신건강을 학업성취도만큼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22퍼센트는 학생의 정신건강을 다루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며 47퍼센트는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전념할 시간이 없다고 보고했다.” --- pp. 196-197 “교사교육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정상적인’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대다수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통합교육이나 학습요구가 다른 ‘특수’ 아이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습니다. 처음 교직을 시작하면 교사는 어려움을 겪게 되고 특수교육 대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학습부진아가 섞여있는 일반교실에서도 고전합니다. 교사들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할 시간이 없습니다.” 교사들은 통합수업에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대응기술을 갖추지 못했다. 그로 인해 학습부진아들은 더 뒤처지게 되고 학습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 p. 214-215 레아 워터스(Lea Waters) 교수는 일부 아이들을 망치는 학교가 ‘어른이 된 뒤의 삶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니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아동과 청소년의 심리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이것입니다. 이 시기는 아주 상처받기 쉬운 삶의 단계로,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씁쓸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이들이 망가지도록 방치해도 되는 시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아직 삶의 복잡성을 다룰 수 있는 지적인 힘이나 정서적 안정을 갖추지 못한 시기에 자칫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아이들이 아직 내성을 갖추지 못한 시기에 부담을 주면 만성 스트레스만 일으킬 뿐입니다.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내성을 어떻게 키우는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씁쓸한 인생교훈을 주는 셈이죠.” --- pp. 226-227 어떤 학교는 돈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고,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학교는 색연필을 제공하거나 배관공사를 할 돈이 없어 허덕일 정도로 학교 간에 격차가 심하다면 이 격차는 사회에 반영되고 불평등을 더욱 고착시킬 것이다. 특권층 배경의 어린이들이 특권층 출신들만 다니는 학교에 들어간다면,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만 고용하거나 그 계층 사람들과만 함께 일하는 데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전혀 모르게 될 것이다. 남자아이가 남자아이들하고만, 그것도 5세에서 18세까지 특권층 사립학교에서만 교육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재계를 장악하고, 자기들이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면,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인 다른 특권층 남성들로만 사무실과 중역실을 채운다 해도 전혀 놀라울 게 없다. --- pp. 325-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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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실 안의 모두는 불행하다!
실패하는 아이는 낙오하고, 성공하는 아이는 삶을 잃는 교육 『아름다운 실패(Beautiful Failures)』의 저자 루시 클라크는 ‘학교에서 실패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아이들조차도 불행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저자가 만난 국립대만사범대학 학장 슈티안밍 교수의 딸 소피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들은 자아 탐구나 관심사 탐색이나 자기 재능을 어떻게 찾는지에 대해선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요.” 소피는 망설이며 말했다. “자기 삶에 어떻게 착륙해야 되는지도요.” 소피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주 시적으로 표현했다. 공장을 닮은 교육체제에서 아이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자신이 되거나 자신을 찾도록 장려받지 않는다. 그보다는 최고가 되기 위한 경주에 충분한 준비가 되었는지 점검을 거듭할 뿐이다. 그리고 정형화된 기대에 도달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릴 것이다. - p.134 그러나 저자도 이어 지적했듯, 이는 단지 아시아계 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호주 역시 근래에 들어 사교육 시장이 연간 60억 달러(한화 약 5조 원) 규모로 커졌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외곽 부촌의 엘리트고등학교들에서도 학생들의 연쇄 자살사건이 벌어지며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근에는 스탠퍼드, 예일 등 미국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미국 유명인사들이 입시 브로커들에게 청탁한 것이 들통난 대형 입시부정 스캔들이 터져 미국사회에 교육과 실력주의(meritocracy) 신화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몇 해 전 국내에 번역출간된 책 『번아웃 키즈(Burnout Kids)』(미하엘 슐테-마르크보르트, 문학동네, 2016)는 학업부담 때문에 ‘탈진 우울증’에 걸린 현대 독일의 아이들을 다뤘다. 실로 전 세계적인 문제인 셈이다. 한 사람의 재능과 성취가 단지 몇 개 주요과목의 시험점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놓이지 못해 호주판 「가디언(The Guardian)」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세 아이의 학부모이기도 한 저자 루시 클라크는 딸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불안을 호소하며 나중에는 등교거부 증상까지 보이자 그제야 학교교육의 체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학교가 누구에게나 맞진 않지.”라고 친구들은 나를 위로했고 나도 처음에는 이 말을 태평하게 받아들였다. 딸은 학교에서 실패한 첫 번째 케이스도, 마지막 케이스도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 실패했다는 게 딸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는 학교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의 성공담이 넘친다. 학교가 모두에게 맞는 곳은 아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이 말이 좀 더 주의 깊게 따져봐야 할 미심쩍은 생각에 대한 섣부른 항복처럼 보였다. 학교는 모두를 위한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잘못되었다고 느끼나? 압박감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망가지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가? 왜 어떤 아이들은 지루해하며 그저 기계적으로 학교를 오가는 것일까? 학교는 ‘모두’가 교육을 받는 곳이자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에 도달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나? - pp. 10-11 문제의 핵심은 ‘고부담시험(high-stakes exams)’으로 아이를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아이의 미래를 재단하는 현실, 즉 ‘성공’에 대한 협소한 정의, 그리고 경쟁제일주의에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경쟁에 대한 치열한 논쟁에서 의견은 대체로 정반대로 갈린다. ‘필요하다’ 또는 ‘해롭다’로 말이다. 중도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건강한 경쟁’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개념조차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강하다는 것은 성격이 좋아서 온힘을 다해 상대방을 바닥에 깔아뭉개는 동안에도 웃고 있다는 뜻일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일까? 모두가 과정을 즐기기만 한다면 누가 이기든 점수가 어떻게 되든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그런 경우라면 애초에 경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p.89 책을 집필하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는 이렇다. 첫째, 경쟁은 좋은 교육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것이야말로 더 발전하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이의 없이 받아들여왔다. 교육을 다른 아이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주로 본다면 경쟁이 교육의 근본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둘째, 나이가 아니라 단계가 기준이어야 한다. 학교는 일생 중 연령대로 묶여 동시에 움직이는 유일한 시기이다. 무작위로 반을 택해도 한 반에서 아이들 간에 최고 6년의 능력 편차가 나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들을 나이가 아닌 능력에 따라 묶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단계별 분류는 학교 내 괴롭힘 역시 줄여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 점수에 관한 이야기는 삼가라. 우리는 점수라는 숫자에 강박적으로 매여있다. 점수와 등수는 아이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체크할 수 있는 손쉬운 기준이다. 하지만 아이의 배움과 삶, 인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준은 못 된다. 아이들에게 그 애가 A를 받을 것인지 B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그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들 각각이 어떤 식의 학습자인지에 관해 이야기하라. 넷째, 아이들이 자기 학습의 주인이 되게 해야 한다. 수업을 주도하는 것은 선생님이 아닌 학습자로서의 아이들 자신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학습을 주도하고 더 많이 참여하게 되면, 과목에 대한 호감도와 집중력 또한 높아진다. 다섯째, ‘성공’의 개념을 훨씬 포괄적인 무언가로 대체해야 한다. 학업성적은 아이들이 내는 성과 중 아주 작은 요소일 뿐이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창의성, 정서지능, 사회적 책임감 같은 비인지적 능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들이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낄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아봐야 한다. 독자가 붕괴된 교육체제와 불안해하는 아이들, 번아웃에 처한 교사들의 상황에 절망하고 있을 때, 저자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교육이 처한 문제의 현실적인 해법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한다. 호주의 템플스토칼리지, 빅픽처프로그램, 핀란드의 교육제도가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역할모델이다. 저자는 자신이 극찬하는 체제와 동경하는 학교의 사례를 들고, 그럼으로써 학생들의 ‘성공’을 더 잘 측정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교육을 재고할 수 있을지에 관해 숙고할 자료를 제공한다. [저자 인터뷰] 편집자: 한국에서는 작년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SKY캐슬]이 인기였습니다. 부유층 가족들의 ‘자녀교육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드라마에서는 전교 1등을 놓치는 것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아주 우수한 학생이 등장하고, 학부모들은 자녀가 서울대 의대에 확실히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고액의 ‘입시 코디네이터’들을 고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국 교육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주의 상황은 어떤가요? 루시 클라크: 호주에서도 자녀의 학업성취를 둘러싸고 수많은 부모가 불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제가 『아름다운 실패』를 쓰게 된 것도 바로 그 불안 때문이었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삶을 살고 어린 시절을 잘 보내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학업성과에 대해 그렇게 걱정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그리고 부모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아동기란 행복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생에 단 한 번이잖아요. 교육도 즐거워야 하는 건 당연하고, 이건 누가 1등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이기기 위한 경주가 아니에요. 경쟁이 된 교육에서 사교육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과외교사를 두면 내 아이를 앞서나가게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죠. 한국은 OECD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기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나라로 유명합니다. 특히 불붙은 시장은 사교육이죠.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이 아이들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은 차치하고, 또 다른 문제는 사교육에 고액이 드는 탓에 부(富)가 성공의 핵심 열쇠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건 정당치 못해요. 사교육이 계층 격차를 더 크게 벌이고, 거기서부터 사회 내 불평등이 한층 심화되는 셈이죠. 편집자: 『아름다운 실패』는 한국의 교육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서 한국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힐 듯합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책에서 다룬 ‘학원’ 문화인데요. 호주에서도 근래 사교육 열풍이 일어났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루시 클라크: 한국의 학원에 대한 이야기는 호주에서도 유명합니다. 아니, 악명 높다고 해야 할까요! 어린 아이들이 매일같이 밤늦도록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에 많은 호주 학부모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실상 지난 5년여 간 호주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큰 시장으로 자리 잡았어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나은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여기서도 커진 거죠. 이제 전체 인구가 2천4백만 명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1년에 60억 달러가 사교육에 쓰이고 있습니다. 불안은 전염되지요! 호주에서는 원래 사교육이 어떤 학과목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에게만 제공하는, 이른바 추가적인 지원에 가까웠어요. 이제는 다른 아이보다 더 잘하고 고부담시험(high-stakes exams)에 더 철저히 대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 되었죠. 문제는 경쟁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교육 받는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경쟁이 실은 학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많습니다. 편집자: ‘타이거 맘(tiger mom)’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애초부터 타이거 맘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어머니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자녀의 학업에 과도한 투자를 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호주와 다른 나라의 학부모들도 자녀의 교육에 크게 관여하시나요? 루시 클라크: 많은 경우 답은 ‘네’입니다. 우리 모두 교육은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최선의 방책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를 위한 ‘최선의 것’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교육적 측면에서 ‘최선의 것’이란 아이가 뒤처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부지불식간에 그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교육체제에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고, 아이가 일등이 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부모들이 아이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아이들의 학습이나 그 결과에 너무 많이 관여한다는 얘길 많이 듣습니다. 아이들에게 진정 유익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자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각자의 교훈을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잘못된 현상이지요! 부모가 그렇게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을 알면 아이도 그만큼 불안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편집자: 한국정부는 다양한 ‘대안적’ 교육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일례로, 몇 년 전 대입시험제도를 과감하게 뜯어고쳤는데요. 호주정부는 교육체제 개혁을 위해 어떤 일을 시도해왔는지 궁금합니다. 루시 클라크: 『아름다운 실패』가 나온 뒤로 아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엄청난 압박과 고부담시험이 양산해내는 부정적 영향들, 한 사람의 지성을 드러내는 진정한 지표로서는 너무 부족한 대입시험점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아이들을 점수대로 줄 세운다는 생각도 지지를 많이 잃게 됐고요. 하지만 개혁은 느리고, 최근에는 중요한 개혁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비록 많은 아이들이 대입시험점수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게 훨씬 쉬워지긴 했지만요. 어쨌든, 대학입학을 위한 ‘대안적 경로’가 마련됐고 그건 좋은 일이지요. 편집자: 한국에도 직업교육체제가 존재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직업학교는 ‘마이스터고등학교’로 반도체, 로봇 등 가장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열 가지 분야와 관련된 특수기술을 가르치는데요. 호주의 직업교육체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루시 클라크: 호주의 직업교육체제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는 아이가 학업을 계속하기로 마음먹고 일반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업진로를 택해 기술대학에 입학하거나를 결정하는 제3차 교육(중등학교에 이어지는 대학 및 직업교육 과정의 총칭) 시점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국가교육과정을 공부하는 셈이죠. 하지만 이 교육과정에는 아이들이 좀 더 직업적인 학문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선택지들이 존재합니다. 편집자: 한국에서는 대학입학시험제도가 그 초점을 수능에서 학생부종합평가로 옮겼습니다. 일생에 단 한 번 치러지는 시험인 수능의 악영향을 예방하기 위해서인데요. 호주의 대입시험제도는 어떻습니까? 교사가 평가하는 학생부라든가 자기소개서, 독서리포트 등이 포함된 학생들의 포트폴리오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요? 루시 클라크: 최근까지 호주 학생들은 대입시험인 ATAR(Australian Tertiary Admission Rank)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12년 교육과정 중 최종시험의 결과에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우는 식이었지요. 교육의 초점이 ATAR 점수를 잘 받는 것에 맞춰지면서 교육 자체는 물론 아이들이 느껴야 할 학습의 즐거움까지 망친다고 많은 교육자들이 생각했던,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방식이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ATAR 점수에 대한 중요성이 조금 줄었어요. 대학들이 ‘대안적 경로’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ATAR 점수가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자신이 선택한 대학 전공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지요. 편집자: 한국의 새로운 대학입시정책은 일반 대중이 학생들의 평가자, 즉 교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때에야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지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호주 교사들의 지위는 어떻습니까? 학부모로부터 객관적인 평가자로 신뢰 받고 있나요? 루시 클라크: 호주에서는 교사들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보수도 좋지 않고, 사범대학 입학 자체가 쉽다 보니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학생들을 그 직업에 유치하지 못하는 실정이죠. 호주의 이런 상황은 분명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큰 문화적 전환이 될 것이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겠지만, 더 나은 보수와 사범대학 입학기준 상향을 그 출발점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편집자: 한국에서는 1세대 대안학교가 90년대 말부터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대안학교라 할 간디학교를 세운 설립자인 양희규 씨는 당시 한국에서 한 해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CNN 보도를 보고 대안학교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대안학교가 있지만, 대부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과정이지, 대안대학은 없습니다. 게다가 소위 ‘포스트 대안학교’라 불리는 학교에서는 학업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학부모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이 대안학교들이 한국교육에 어떤 좋은 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혹시 그에 대한 조언이나 아이디어는 없으신지요? 루시 클라크: 학교의 경쟁적 분위기 속에서 내 딸이 불안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나서, 그리고 제 책에 등장하는, 교육제도 아래서 너무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나서, 특히 무엇보다 학교에서의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녀를 둔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아이의 정신건강이 학업성취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성적을 걱정해서 자살을 생각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청소년기는 아이들이 자아감을 형성하고,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 자존감과 회복력은 생각하고 놀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시간에서 나오는 거죠. 대안학교는 그 같은 요소를 교육에 포함시키는 점에서 주류학교를 능가하지만, 저는 주류학교에서도 대안학교 방식의 사고를 받아들임으로써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전 세계 교육체제가 ‘성공’을 너무 협소한 개념으로 정의한 탓에, 너무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느끼고 있어요. 이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편집자: 공자는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교육에 대한 장기계획을 갖는 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루시 클라크: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호주에서 교육개혁은 어렵습니다. 한 정당의 집권기간이 짧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정당이 A를 계획해 추진하더라도, 몇 년 뒤에는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고 B를 하려고 들거든요. 교육이 이런 식으로 정치판의 축구공에 지나지 않는다면, 정치가들이 아이들의 권익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 결과 충분한 개혁이 일어나지 못하는 거죠. 둘째, 아이들로 하여금 일생에 걸쳐 학습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우리는 아동기 아이들에게 그토록 어렵고 불쾌한 과업을 떠안기면서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봐야 합니다. 학교가 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아동기를 앗아간다면, 아이는 학교만 졸업하면 더는 무엇도 배우고 싶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성공’의 개념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이 단지 고부담시험을 통해 검증된 높은 학업적 성취일 뿐이라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스스로 실패자라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성공하는 아이들조차 높은 수준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성공에 대한 집착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치고 있는지를 제대로 봐야 합니다. 학교성적은 아이들을 우울하게 해서도 자살하고 싶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결과를 내는 체제는 뭔가가 대단히 잘못된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