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 터치, 크레마원 기본뷰어 이용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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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사람의 향기로 풍미를 더하다내게 너무 특별한 빵, 바게트배고픔을 채워준 맘모스빵방황, 그리고 빵과의 만남빵공장에서 공부에 눈뜨다일본에서 천직을 만나다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파티쉐또 하나의 운명을 만나다당당하게 나의 길을 가다포항에 입성하다제2장 행복한 파티쉐가 간다비우고 나누면 향기가 난다삶은, 결국 ‘사람’이다꿈은 생생할수록 현실이 된다죽순의 시간, 대나무를 꿈꾸다아시아 챔피언, 제빵 외교관이 되다진심은 결국 통한다열정이 실력보다 중요하다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배움에는 끝이 없다제3장 날고 싶은가? 준비하라!나의 일을 다한 후 기다려라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절대 포기하지 마라우리에겐 우분투가 있다믿음은 존중에서 온다나 홀로 다 함께인생이란 믿고 가는 것!비교하지 마라작지만 강한 빵집, 나의 일터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제4장 나는 꿈을 굽는 사람이고 싶다포항의 마스코트가 된 빵 배달차시식용 빵바구니에서 마술이 펼쳐진다고객은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나만의 DRAMA를 펼쳐라세계로 향하는 조그만 길을 내며행복을 ‘빵빵’하게 주는 빵나의 갈릭바게트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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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세상을 향해 오늘도 나는 꿈을 굽는다!“내가 직접 빵을 만들어 보니 앞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할 것이고 실력 있는 제과제빵 기술자들은 여기저기서 모셔가려고 할 거야. 내가 보기엔 그 정도로 전망이 밝아! 형 말 믿고 빵 만드는 거 배워보자!”방황하던 어린 시절, 이러다가는 영원히 막내동생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큰형은 나를 붙잡았다. 열여섯 살이나 차이 나는 형의 말에 토를 달기도 어려웠지만 형의 말에 솔깃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그 길로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갔다. 빵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송파동의 기자촌에 실습을 나갔을 때 내가 진열한 빵을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 취재하는 기자들과 스태프들이 골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큰 기쁨을 얻었고, 빵 만드는 일을 더 열심히 해서 뛰어난 제과제빵 기술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 당시에는 일본의 제빵 기술이 우리보다 10년 정도 앞서 있었기에 동경제과학교에 선진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2년 동안 하루 2~3시간만 자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학금을 모으고, 또 어렵게 동경제과학교에 합격을 했지만 모종의 일이 생겨 입학을 포기하고 귀국을 해야 했다. 다만 이 일은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한 유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마음 먹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고려당과 조선호텔 베이커리 사업부에서 책임자로 6년을 근무했다. 이때 프렌치바게트를 개발하여 회사에 엄청난 수입을 올려주기도 했고, 또 사람과의 관계로 많이 힘들기도 했다. 오너 셰프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대구의 조그마한 빵집을 인수하게 되면서 나는 꿈에 그리던 나의 베이커리를 가지게 되었다. 작은 가게였지만 나는 함께하게 된 새로운 식구들과 마음을 합쳐 과자와 빵을 굽고 매출을 착실히 늘려 나갔다. 4년이 금방 지나갔다.2007년 어느날 포항에서 ‘마인츠돔’이라는 큰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산 파트의 직원이 7명, 매장 직원이 3명인 곳이었는데, 그 매장을 맡아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다. 대구의 베이커리가 안정화 단계여서 조금은 망설였지만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 과감하게 인수를 결정했다. 포항에서 첫손 꼽히는 맛있는 빵집, 한스드림 베이커리는 그렇게 탄생했다.한스드림베이커리의 슬로건은 ‘지식경영과 나눔경영을 실천하는 글로벌 휴머니즘 베이커리’이다. 한 개를 얻으면 두 개를 준다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제과제빵 기능인을 위해 더 넓은 세계로 도약하고자 한다. 그만큼 한스드림의 꿈과 미래는 원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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