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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___ 8
야곱의 씨름 우정에 대하여 ___ 15 청년들의 영토 ___ 19 지식인다움을 찾아서 ___ 29 작가와 상황 ___ 35 왜 기자로 남아 있는가 ___ 55 다시 왜 기자로 남아 있는가 ___ 65 야곱의 씨름 ___ 70 오리말 버리기 ‘오리말’ 버리기 ___ 87 1984년에 읽는 『1984년』 ___ 93 실의를 이기기 위하여 ___ 109 책으로부터의 도피 작가의 뒷모습 ___ 131 책으로부터의 도피 ___ 154 자유로운 책읽기에 대하여 ___ 172 ‘페스트’의 사상 ___ 181 ‘어린 왕자’의 선물 ___ 186 비상에의 꿈 근래의 심사 ___ 201 비상에의 꿈 ___ 207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___ 219 열아홉 살의 예감 나의 대학시절 ___ 243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 ___ 251 핸드폰, 노트북을 살까말까 ___ 256 아직도족의 변명 ___ 268 느리게 살기 ___ 278 마지막 장면들, 첫 모습들 ___ 286 어머니 ___ 293 열아홉 살의 예감 ___ 305 김병익 저서 목록 ___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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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해직기자 김병익,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의 출발
1975년 12월, 30대의 젊은 해직기자 김병익은 친구들의 우정 어린 협박으로 1인 출판사를 열었다. 바로 문학과지성사의 출발이었다. 유신 정국으로 시대는 얼어붙고 앞길은 막막했다. 그는 ‘불온한 지식인’으로 찍혀 거동과 글쓰기가 막히고 출판 일은 아직 서툴렀다. 하지만 함께할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즈음 한 신문에 쓴 「우정에 대하여」라는 짧은 글에는 당시 그의 희망과 기대가 한껏 묻어난다. “문득 잠이 깨어 잠이 안 올라치면 나는 이 우정들을 생각하고 사심 없고 떳떳한, 천진난만하면서도 시대고(時代苦)의 각인을 이마에 달고 다니는 그 우정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어린 왕자』의) 여우가 말하는 ‘행복’을 느끼고, 또 (『페스트』의) 랑베르가 리외에게 느끼는 감동의 부스러기를 줍는다.” ‘현실의 현장’을 지키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지식인 먼저, ‘야곱의 씨름’ 제하에 묶인 70-80년대에 쓴 일련의 글들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그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지식인의 태도와 처세 문제에 몰두했던 그는, 단순히 많이 배운 자가 아니라 그 누구든 ‘지식인이 되고 싶다’는 열의와 용기를 가진 사람을 지식인으로 규정한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라는 자기 각성, ‘지식인 되고 싶다, 되어야 한다’는 부단한 자기 계발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지식인다움을 찾아서」). 한편, 그는 1973년 춘원 이광수의 훼절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하는 중에 춘원의 딸에게 항의 편지를 받는다. 그 일화로 시작되는 「작가와 상황」이라는 글에서 그는 춘원을 서슴없이 비난만 할 수 없는 일말의 감정적 유보에 시달린다. 거기에서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살지 못한다는 고통스런 자기 인식”에 이르고, 지식인의 위선과 나약을 부단히 깨닫기 위해서 ‘현실의 현장’에 남아 있기를 주문한다. 그것은 “허위로 무장하는 비극”을 통해서라도 “지식인의 십자가를 지자”는 것이다. 이런 결의는 「왜 기자로 남아 있는가」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기자들이 다만 무력해 있을 뿐이라고 동료들을 위로하면서 비굴함과 허위, 괴로움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지켜냄으로써 기자의 윤리적 결단을 증명하고자 한다. 「야곱의 씨름」에서는, 의미를 두는 자에게 의미 있고 깨어 있는 자에게 깨어 있는 역사를 언급하며, “언제든 역사는 바뀐다”는 준엄한 경고를 환기시킨다. 그것은 희망이자 두려움인 것이다. ‘책으로부터의 도피’는 ‘책으로의 도피’였다 책읽기와 문학에 대한 글들은 저자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넘친다. 책의 현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그는, 때로 활자의 세계가 신물이 나서 ‘책으로부터의 도피’를 갈망하지만 결국 그마저 ‘책으로의 도피’였다. 책과의 질긴 인연이 평생을 옭아맨 것이다. 이 유쾌한 산문들은 책에 대한 애증으로 뒤얽힌 하소연인 듯하면서 역설적으로 책읽기의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그는 책만이 길이라는 ‘엄숙주의’를 경고하고, 정독이니 다독이니 온갖 정해진 방식의 ‘모범주의’를 버리라 한다. 책은 대가 없는, 소용없는 일이 될수록 그 무상성(無償性)으로 인해 진정한 희열에 이른다는 것. 또한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 “책에 씌어진 내용이 그럴듯하게 여겨지고 거기에 빠져들 것 같을 때, 현명한 독자여, 침을 뱉고 거기에서 얼른 빠져 나오라!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 책의 값을 올바로 매긴다는 것은 이렇게, 정말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러하듯이 다가서며 의혹을 두고, 도망가다가도 미련으로 돌아서고, 껴안으면서도 배신의 가능성을 결코 지워버리지 않는 데서 얻어진다.” 삶과 더불어 역사와 씨름하며 건너온 날들에… 나이 드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저만치 보이던 자연이 성큼 다가와 친구처럼 자상스러워지고, 세상의 무연(無緣)한 것들의 존재성을 깨닫는 일이리라. “그 무의미한 것들이, 늘어서 있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의미 있는 경험으로 되살아나는 느낌을 내게 일으켜주는 것이다”(「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 만년에 이른 그의 시선은 이제 이국의 풍경들, 더 멀리 영원의 세계에까지 가 닿는다. 그는 어린 아들과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신이 사라진 시대, 인간이 품는 ‘비상에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페루로 떠나 마추픽추를 바라보며 그곳을 둘러싼 침묵과 신비, 절대적인 고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제 그는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고, 세월만큼 쌓인 시간의 지층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 글들의 마지막 장면은 열아홉 살 소년이었던 저자의 모습이다. 순수한 충만함, 평화로운 행복감, 조용한 희열로 가득했던 그 시절, 그는 자신 안에서 차오르는 지복한 행복을 이제 자신의 생애에 다시는 느끼지 못하리라고 예감한다. 이 산문선은 삶과 더불어 역사와 씨름하며 건너온 날들에 보내는 헌사와도 같은 책이다. 영원한 슬픔이자 영원한 꿈인 소년시절을 향해, 삶 가운데 함께한 인연들을, 아울러 그보다 더 무수한 무연한 것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연한 것들에 대한 나의 기억이여, 앞으로 남은 것보다 지난 기억이 훨씬 많아진 나는 이제 그것들에, 따뜻한 안녕의 인사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