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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작 뉴턴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3. 유카와 히데키 4. 마리 퀴리 5. 마이클 패러데이 6. 토마스 알버 에디슨 7. 앙트완 로랑 라부아지에 8. 찰스 로버트 다윈 9. 노구치 히데오 10. 제임스 프레스콧 줄 11. 그레고르 요한 멘델 12. 제임스 와트 13. 루이 파스퇴르 14. 라이트 형제 15.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멘델레예프 16. 갈릴레오 갈릴레이 17.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 18. 쿠르트 괴델 19. 루드비히 에두아르트 볼츠만 20. 기타사토 시바사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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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그가 비글호를 타고 항해 탐사를 했다는 사실이지만, 사실 진화론 연구에는 대학시절에 공부한 엄청난 박물학적 지식이 기초가 되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 지식에 그가 재산가였음을 덧붙이면, 그가 40년 이상에 걸쳐 박물학, 자연철학, 진화론 연구를 할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다윈의 아버지는 처음에 다윈을 법률가로 키우려고 했다. 그러나 다윈이 관심 없어 하자 자기와 같은 의사로 만들려고 에든버러대학 의학부에 넣었다. 그런데 다윈이 대학을 중퇴한 것은 의학의 모든 것이 싫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무렵 의학은 박물학적 경향이 있었으므로 그는 여러 영역을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피를 보는 것에 서툴렀던 다윈은 외과수술 실습 시간에 졸도를 했고, 이후 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졸업을 포기했다. 그것은 다윈의 의지가 약했다기 보다는 당시의 외과 수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외과 수술은 매우 잔인한 것이었다. 오늘날처럼 메스를 사용하여 조심스럽게 피부를 자르고 또 봉합하는 것이 아니었다. 동상, 종양이나 염증 등에서 환부를 도려내어 다른 곳으로의 전이를 막는 것이 수술의 기본이었다. --- p.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