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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미디어로 보는 만주국
포스터·그림엽서·우표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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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 - 만주국의 미디어 전략와 홍보
제1장 - '오족협화'와 국가의 상징
제2장 - '커다란 부의 원천'과 '관광 만주'의 틈새에서
제3장 - '건국'과 '승인'을 둘러싼 미디어.이벤트
제4장 - '건국 1주년'을 둘러싼 공방
제5장 - 제정 체제로의 전환과 일본과 만주국의 관계
제6장 - 중일전쟁과 홍보일원화
제7장 - 국방체제의 강화와 '건강 만주'
제8장 - 결전체제에서의 홍보독점주의
제9장 - 건국 10년의 '성과'와 '과제'
에필로그 - 사람들은 만주 미디어를 어떻게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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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기시 도시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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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hi Toshihiko,貴志俊彦

1959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히로시마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시마네현립대학 교수, 가나가와대학 교수, 교토대학 지역연구통합정보센터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교토대학 동남아시아지역연구소 교수이며,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객원교수, 일본학술회의 연계 회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비주얼 미디어로 보는 만주국』, 『동아시아 유행가 아워』, 『아시아 태평양전쟁과 수용소』, 『문화냉전과 아시아: 냉전 연구를 탈중심화하기』(공동 편저)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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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 Kyoungsun,全京先,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신라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태평양전쟁기 만주국의 선전정책」(『中國史硏究』82, 2013),「전시체제하 만주국의 국병법 선전」(『만주연구』23, 2017) 등 만주국 프로파간다 관련 다수의 논문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30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06쪽 | 152*223*30mm
ISBN13
9791159053924

책 속으로

만주국은 민족, 신분에 따른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일본인이 가진 만주의 이미지는 극히 간단했다. 인구가 희박하고 황량한 대지, 마적, 붉은 석양, 아카시아 꽃, 수수밭, 아시아호, 야마토호텔 등으로 그려졌다.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진 근저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후의 ‘전승붐’, ‘대륙붐’이 있었다. 만주 자체의 정치적 위치는 1910년대 청조의 붕괴,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연이은 시베리아 출병, 20년대는 장쭤린張作霖 폭살사건, 30년대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40년대는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패전, 이런 끊임없는 전쟁과 동란 속에서 변화했지만, 일본인의 만주 이미지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만주국에서는 관, 민, 군 각각의 의도하에 대규모 도시계획에 따라 수도 신징新京을 건설하였고 도시 내의 교통통신망을 정비하였다. 또한 산업개발을 진행하고 대량의 미디어를 발행하였는데, 동시에 각종 통제와 검열을 진행하였다. 이리하여 만주국은 국가로서의 허구성을 가진 채 만들어져 갔고, 푸이 등 일부 만주 기인旗人, 한인(漢民族과 거의 동의어) 관료, 새로 도래한 일본인은 자신들을 만주국이라는 ‘극장’에 선 축제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의도적 혹은 잠재적으로 자신을 모종의 메시아로서 묘사하였다. 키메라와 같은 만주(山室, 2004)를 다시금 해부하여 그 실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정책론과 더불어 시대의 붐과 미디어, 이벤트에 눈을 돌려, 만주국이 홍보정책을 통해서 묘사해 온 만주 이미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현지 주민의 입장에서 볼 경우, 포스터의 감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러허성 정부 총무과 고시考試 쟝상원姜尙文(25세)은 안도安藤의 감상과 같이, “신징에서 시내를 둘러 보면 중국어로 번역된 듯한 선전물은 보입니다. 언뜻 본 바로는 다소 중국어로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라고 하고 “일본어 문장과 중국어 문장은 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할 경우는 일본어의 고유명사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중국어 문장방식을 쓸 것” 등을 제안하였다. 아마 일본인의 중국어 번역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포스터 선전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을, 정말 깊이 헤아려 지적하고 있다. 필자조차도 만주국의 전단을 조사했을 때 때로는 심한 일본어 투의 중국어 삐라를 마주하게 되어 쓴웃음을 지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삐라가 보여주는 것, 삐라로써 보이려는 것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미디어는 만주국의 기념 행사나 축제 때 제작된 포스터나 전단(선전 삐라), 중일전쟁 이후 홍보활동에 이용한 기념 우표나 기념 그림엽서, 우편소인 등이다. 즉 예술작품보다는 ‘이페머럴 미디어’, 일시적이고 복제된, 종이 한 장짜리 인쇄물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저자는 객관적인 만주 이미지를 묘사하기보다는, “일본인의 만주 이미지”를 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만주국이 국가를 홍보하고 각종 행사를 선전함으로써 일본이 만들고자 했던 만주국의 이미지, 뒤집어 말하자면 일본이 받아들이고 있던 만주국의 이미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결국, 일본과 만주국 사이의 ‘일덕일심’을 둘러싼 지배 도식은 명확히 일본 정부 혹은 일본인에 중심을 두었고, 이상으로 내세운 ‘오족공화(五族共和)’와는 거리가 먼 것을 간파해 낸다. 전황이 긴박해지면서 만주국에서 현지주민은 피지배자로서만이 아니라, 때로는 통치의 대상이라는 위치에서도 떨어져 나가 버렸다. 당시 일본인이 사용했던 ‘만인(滿人)’이라 함은 어디까지나 일본인 이미지 속의 허상에 지나지 않았고 ‘만인’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은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만든, 일본인들을 위한, 때로는 중국어로 쓰여있지조차 않았던 홍보물들은 결국 일본에게 있어 만주, 만주인의 위치가 무엇이었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일본인 저자가 쓰고 한국어로 번역된 ‘만주’에 대한 이 책은, 만주국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넓힘은 물론, ‘내선일체’, ‘천황의 적자’라는 프로파간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이해 역시 재고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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