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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004
1부_삶(生) 1. 출생과 유년시절 : 벙어리 소년의 우주적 시야 길 위의 장군-학자│『전습록』?:?전하고 학습하던 날들에 관한 기록│구름 아이에서 인의 수호자로 2. 대나무 격물 : 배움과 좌절의 시간들 시를 짓는 악동│성인을 꿈꾸다│대나무 격물 3. 용장대오(龍場大悟) : 막다른 골목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환관 유근│용장에서 깨닫다│물음으로서의 양명학 4. 강학(講學)과 죽음 : 혼자가 아니라 함께, 태산이기보다는 평지를! 강학원, 왕양명 밴드│심즉리=격물=지행합일=치양지=성인│ 죽음도 산 자의 길이다 2부_마음(心) 1. 심즉리(心卽理) : 내 마음이 우주다! 나는 마음이다│‘심즉리’와 ‘성즉리’│마음은 거울이다 2. 격물(格物) : 나와 세계는 어떻게 만나는가 삼강령과 팔조목│격물치지│물(物)은 일(事)이다 3. 무선무악(無善無惡) : 마음은 무색이다, 고로 모든 색이다 물과 앎과 의념과 마음, 그리고 몸│마음 바깥엔 아무것도 없다│순임금의 마음 4. 치양지(致良知) : 마음이 드러나는 길, 마음을 드러내는 길 누구나 양지가 있다│양지는 시비를 안다│치양지는 끝이 없다 3부_행(行) 1. 지행합일(知行合一) : 앎은 행이다 지행일치와 지행합일│앎이 행이다│행이 앎이다 2. 사상마련(事上磨鍊) : 일상을 사건화하기 공부는 실천이다│나를 위한 공부│백척간두진일보 3. 만물일체(萬物一體) : 나와 우주 나와 세계│대인과 소인│천지간 만물이 한 몸이다 4. 만가성인(滿街聖人) : 성인은 없다, 그러므로 모두가 성인이다 성인│향원과 광자│산 자의 길 4부_배움(學) 1. 스승 : 줄탁동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줄탁동시 170│스승, 질문하는 자│불교와 도교의 옷을 입은 유학 2. 논쟁 :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적, 친구 뜨거운 철학│대화, 타자와의 만남│나는 타자다 3. 배움의 정원 : 천하와도 바꾸지 않을 기쁨 스승은 도반이다│뛸 듯이 기쁘고 모골이 송연한 │집단 지성 4. 양명의 평지를 내달린 사람들 사구교 │양명학의 분화 │이탁오, 양명 좌파의 마지막 상상력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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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삶은 나에게 좋은 것을 행하는 삶!
집단지성 공동체 왕양명밴드의‘앎-삶-배움’풀스토리!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며칠 후 20세의 멘사회원이 한강에 몸을 던졌다. 명문 사립대의 장학생이기도 한 그의 자살 시도 이유는 수능을 망쳤다는 것과 “친구들은 모두 서울대에 다니는데 머리 좋은 내가 더 좋은 대학에 못 간 게 화가 난다”는 것. 어쩌면 이 청년이야말로 완벽한 지행합일의 삶을 산 것은 아닐까? 이토록 머리 좋은 내가 서울대에 다니지 못할 바에야 죽는 게 더 낫다고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실천’한 것이다. 딱 자신이 아는 만큼 산 것. 하지만 이런 것이 앎이고, 삶이라면 허망하지 않은가. 앎이 삶이라면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또 무엇이 좋은 삶인 것일까? 마이클 시리즈의 첫번째 권 『전습록, 앎은 삶이다』는 (이 책에서 필자가 명명한) 왕양명 밴드라는 학문 공동체가 ‘전하고(傳) 학습한(習)’ 모든 것이 담긴 『전습록』을 통해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고, 지금-여기의 언어로 그 답을 풀어낸 책이다. 왕양명은 중국 명나라 때의 유학자이자 장군(將軍)으로 유학사에서 주자학의 라이벌로 꼽히는 양명학을 수립한 인물이다. 양명과 그의 제자들의 공작(共作)인 『전습록』은 질문의 책이다. 공부가 잘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둥, 말단 공무원이라 바빠서 도저히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둥, 출세에 대한 욕망이 끊이지 않는데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둥 제자들의 질문이 가지각색으로 쏟아진다. 하지만 다양한 질문은 결국 “어찌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나요?”로 수렴된다. 양명의 대답도 하나로 귀결될 뿐이다. 치양지(致良知)한 삶을 살라는 것. 치양지는 격물(格物), 심즉리(心卽理),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거쳐 마침내 양명이 도달한 최후 종지다. 그럼에도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나에게 좋은 삶, 내 마음(양지)을 따르는 삶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치양지는 각자의 삶이 스스로에게 좋은 삶이 될 것을 제안한다. 선한 삶이란 자신의 본성, 즉 자신의 양지에 따르는 삶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선한 삶은 아무것도 모방하거나 흉내내지 않는다. 삶은 누구 나 한번뿐이며 누구에게나 고유한 것이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좋은 선한 삶이란 없다! 만인을 위한 선한 삶은 그 삶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그 삶에 나의 삶을 맞추어 갈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치양지는 나에게 좋은 삶을 스스로 창안할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기존의 권위나 인습 따위를 파괴할 것을 요구한다. (본문 113~114쪽) 다시 말하면 치양지한 삶이란 타자의 삶에 나의 삶을 동화시키는 삶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타자의 삶을 나의 삶에 동화시키려는 것 역시 치양지한 삶이라 할 수 없다. 치양지한 삶은 오히려 타자일 수밖에 없는 삶의 관계를, 결국 나조차 타자 중 하나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앞서 언급한 멘사 청년처럼 타자의 삶에 나의 삶을 비춰보고 모방하다 좌절하거나, 나의 삶에 미치지 못하는 타자의 삶을 경멸한다. 이 책 『전습록, 앎은 삶이다』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책 곳곳에서 ‘치양지’와는 멀어도 너무 먼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 한편 이 순간에도 나의 양지(마음)는 지금-여기에 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치양지는 “살면서 도달해야 할 종착점”이 아니라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자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삶의 실천 윤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