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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 보이는 것만 믿으세요?
들어가며_ 성장의 신화는 어떻게 쓰여지는가 눈부신 성장, 10년간 225배 성공방정식 = f (오너 리더십, 인재, 도전정신, 운) 1막_ 미래에셋 성공 DNA의 비밀 박현주, 증권업계 돌풍을 예고하다 미래에셋의 초석을 다진 잇따른 성공 타고난 승부욕, 탁월한 수읽기 아무도 생각 못한 ‘거꾸로 전략’ 2막_ 미래를 창조하는 박현주의 경영비법 미래에셋의 거침없는 도약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한 해외진출 오너 경영자의 모범답안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하다 주식시장과 박 회장의 인연 개구리는 움츠린다, 더 멀리 뛰기 위해 치밀한 계산의 승부사 박현주 3막_ 타고난 승부사 박현주의 투자비법 무서운 20대, 증시의 흐름을 읽다 돈 버는 법칙 = 시대를 앞서라 직관력 + 천운 = 성공 ‘Killer Instinct’가 강한 승부사 초가집을 초호화 아파트로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시야를 밖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하다 ‘계산된 파격’으로 승부를 걸다 4막_ 인재를 사로잡는 박현주 회장의 용인술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 참모이자 동업자 ‘좌재상’ ‘우현만’ 박현주가 만들고 최현만이 판다 최고의 펀드매니저 구재상 간접투자의 전도사 강창희 미래에셋을 떠받치는 전문가그룹 5막_ 지속 성장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 박 회장이 미국으로 간 까닭은 구재상 사장의 해명 미래에셋을 둘러싼 루머들 박현주 회장의 용인술의 명암 대형차를 소형차 몰듯 한다? 1인지배인가, 책임분산인가 그림자를 짧고 옅게 만드는 법 6막_ 10년 후 미래에셋의 또 다른 미래 국내는 좁다, 해외로 해외로 미래에셋의 ‘미래 인재’ 양성 10년의 성공을 딛고 앞으로, 앞으로 거인에 맞는 큰 옷으로 갈아입을 때 맺음말_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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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대학 시절, 미래에 회사를 경영해보기로 결심했다. 경영학 공부도 열심히 했고, 특히 주식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생 시절 주식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 명동 증권가를 돌아다녔다. 어머니가 돈 관리하는 법을 배우라는 취지로 1년 학비와 생활비를 한 번에 보내주시면 그는 이를 종자돈 삼아 직접투자에 나섰다. p.42
현재 미래에셋그룹 본사 건물이기도 한 한국유리빌딩은 1999년 7월 미래에셋이 215억원에 매입했다. 주위에서 다들 부동산 경기가 어렵다며 매입을 말렸지만 박 회장은 수개월을 고민한 뒤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 이 건물은 대지 3927제곱미터에 연면적 1만 4466제곱미터로 12층으로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건물 매입가는 가장 싼 가격이었고 현재 시세는 그때보다 3~4배 이상 올라 있는 상태다. p.46 2003년 적립식펀드가 나온 시기는 2000~2002년 증시 침체기를 벗어나 회복하던 때로 펀드 열풍과 맞아떨어졌다. 미래에셋은 대세 상승기에 모멘텀투자로 수익률을 끌어올림으로써 고수익을 올렸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자금이 더욱더 급속히 몰렸다. 돈이 몰리니 미래에셋펀드가 사는 종목의 주가가 올라 수익률이 다시 뛰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섰고 미래에셋은 더 많은 자금을 빨아들였다. 이 모두 미래에셋 즉, 박현주 회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베팅이었다. … 미래에셋의 한 임원은 “박 회장은 자산운용사는 돈 벌 생각 말고 수익률을 높이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면서 “돈은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이 자산운용의 뛰어난 운용능력을 발판삼아 펀드와 변액보험을 팔아 수익을 내면 된다는 게 미래에셋의 성장전략”이라고 전했다. 비유컨대 자산운용이란 ‘엔진’에 기름(돈)이 들어오면 증권과 생명이란 두 바퀴로 움직인다(이익을 낸다)는 것이 미래에셋 성장전략의 핵심이다. p.52 2005년 국내 증시가 대세 상승하던 시기에 미래에셋은 해외 자산운용사를 토대로 해외펀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인도 펀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국내 펀드를 한발 뒤로 뺐다. 그동안 국내증시가 1년간 기형적인 상승 국면에 있었다고 판단, 2006년을 국내 증시의 조정기간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다른 증권사나 운용사들이 국내 주식형펀드에 매달릴 때 미래에셋은 국내 주식형펀드의 자금 정체를 해외 주식형펀드로 보충해 수탁액 증가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다른 운용사들은 국내 증시 침체기에서 수탁액 답보 상태에 머무른 반면 미래에셋은 해외펀드를 통해 다시 한발 앞서간 셈이다. p.67 박 회장은 IMF가 곧 기회임을 직감했다. 증시가 폭락하고 금리 및 채권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마침내 1998년 박 회장은 시중금리가 연 30퍼센트까지 치솟을 때 운용자금 200억원을 채권에 쏟아부었다. 박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그해 시중금리가 20퍼센트대로 떨어지고 채권값은 급등했다. 박 회장은 채권투자로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 p.95 대학원생 시절 1980년대 중반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 백 할머니를 일면식도 없이 찾아간 일도 박 회장의 과단성을 보여주는 일화 가운데 하나다. 1960년대말부터 주식투자로 명성을 떨치던 백 할머니는 주가조작이 공공연한 시절에 우량주 중심 투자로 큰 수익을 올려 ‘철학 있는 큰손’으로 유명세를 탔다. 백 할머니를 불쑥 찾아간 박 회장은 ‘좀 가르쳐달라’며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할머니 사무실로 출근하고 증권사나 기업체 탐방 때도 동행했다. 당시 박 회장이 깨달은 투자관은 이렇다. “할머니는 답답할 정도로 정석투자에만 전념했다. 답답할 만큼 원칙을 고수했다.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주식과 기업이 튼실한 주식만 사들여 2년이고 3년이고 기다려 시장이 폭등할 때 파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p.101 박 회장 용병술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좌현만 우재상’이다.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과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의 미래에셋그룹 내 역할을 보면 ‘후배’들을 부리는 박 회장의 뛰어난 용인술을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증권-최현만, 운용-구재상’ 투톱 체제는 두 사람의 전공과 성장과정, 성격 등을 감안한 최적의 역할분담이라는 것이 미래에셋그룹 안팎의 분석이다. p.127 미국에 건너간 진짜 이유야 어떻든 시점으로 보면 분명 처음 맛본 쓰라린 패배를 겪은 후였다. 성공 일색이었던 그의 이력서에 첫 상처를 남긴 후였으며, 분명 심리적으로 고단한 시기였기 때문에 무언가 돌파구를 찾거나 ‘소나기’를 잠시 피하고 재충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유학을 통해 미래에셋이 앞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그려왔다는 점은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전환하는 박 회장의 능력을 보여준 사례란 것만은 확실하다. p.149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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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박현주 회장에게 배우는 투자와 경영의 지혜 : 자본시장의 칭기즈 칸 박현주의 “선택과 집중” 그 비밀은 무엇인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돈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는 사람’이다. 개방형 뮤추얼펀드 국내 1호인 ‘박현주펀드’를 만들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을 당시 그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돈이 막 발에 차인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주식투자에 뛰어들어 놀라운 수익을 거두면서 증권가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하여 45일 만에 대리가 되었고, 동원증권 시절에는 초고속승진을 거듭 33살에 전국 최연소 지점장이 되기도 했다. 박 회장은 1997년 창업 이후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펀드 1호’를 선보여 100퍼센트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며 펀드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래로 특유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10년 대박의 신화’를 써왔다. 그는 ‘소수게임’의 신봉자다. 모두가 움츠려들던 외환위기 때 오히려 과감한 투자로 ‘떼돈’을 번 것도 ‘대중과 거꾸로 가라’는 그의 투자철학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는 소수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 균형감각을 갖고 시장을 냉정하게 바라볼 것, 항상 기본에 충실할 것 등 3가지 투자원칙을 강조한다. 매는 조는 듯 앉아 있고, 호랑이는 앓는 듯 걷는다 :시장보다 먼저 움직이는 동물적 투자감각 1984년 무렵, 박 회장이 내외증권연구소를 차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증권가에서 이미 제법 유명세를 치르던 박 회장은 폭락장 속에 전광판이 파랗게 물든 어느 날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 매수주문을 냈다. 언뜻 보면 폭락장 속에 ‘올인 전략’을 편다는 것은 극히 무모한 도전이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주식시장이 상승장으로 돌아서면서 박 회장은 상당한 이문을 남겼다. 미래에셋이 1998년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뮤추얼펀드를 선보일 당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주가지수가 충분히 낮고 운용시스템을 잘 짜면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고 결국 성공했다. 박 회장의 남다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래에셋은 또 국내 최초로 해외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자산운용업도 해외로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산업’일 수 있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2005년 6월에는 SK생명보험을 인수했다. 보험회사가 단순히 보험료를 받아 사고를 당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변액보험과 퇴직연금 등에서 우수한 투자성과를 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미래에셋의 이러한 과감한 결정은 미래의 트렌드를 한발 앞서 파악하고 대비하는 박현주 회장의 동물적 투자감각과 강인한 승부근성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도 예상 못한 곳에서 승부를 걸어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박 회장의 미래 예측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박 회장은 ‘독서’라고 밝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신 뒤 삶과 학과공부에 회의를 느끼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케네디와 키신저의 자서전들을 대여섯 차례 반복해서 읽으며 전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십수 차례 읽으며 미래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을 키웠다는 것.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앞으로 달려나간다 :‘최초’로 시작하여 ‘최고’를 일구어낸 승부사의 경영전략 그에게는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미래에셋은 국내 최초로 뮤추얼펀드와 부동산펀드를 선보였고 주식형펀드 최고 누적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는 좁다며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해외로 진출한 것도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이 이처럼 성공에 성공을 거듭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초’로 시작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답은 아니다. 사실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생명 등 미래에셋이 최초로 진출하지 않은 분야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셋이 각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박현주 회장의 추진력과 차별화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측근들은 평소 그가 입버릇처럼 “될 만한 사업은 확실하게 밀고 가라”, “이왕 할 것이라면 튀게 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얼굴이 어두우면 뽑지 않고 뽑으면 믿고 맡긴다 : 인재를 사로잡는 탁월한 용인술 박현주 회장이 미래에셋캐피탈을 만들어 10년간 금융의 신화를 써오는 동안 그의 곁에는 항상 최고의 인재들이 있었다. 박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은 증권영업에서, 박 회장의 왼팔로 통하는 구재상 미래에셋운용 사장은 펀드운용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상기 맵스자산운용 사장을 포함한 이들 세 사람은 박 회장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행동대장이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미래에셋을 위해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원천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인재를 사로잡는 박 회장의 용병술이다. 김형진 전 세종증권 회장은 “주변에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천운이 작용했지만 이들과 10년가량 호흡을 같이하면서 한국증권산업과 자산운용산업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것은 분명 박현주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의 승리”라고 설명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부문 대표는 박 회장이 스스로를 ‘금융전략가’로 규정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놀라운 경영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모두가 진심으로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사람을 알아보는 박 회장의 안목과 일단 눈에 들어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는 노력, 인재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환경 조성 등이 최고의 인재들로 하여금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만든다. 박 회장은 아무리 탁월한 전문성을 갖고 있어도 얼굴이 어둡거나 사리를 추구할 경우 결코 중용하지 않는다. 즉, 금융업은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 돈을 불린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해야 하고 이 같은 태도가 얼굴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또한 견리사의(見利思義)가 고객 돈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기본 자세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