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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그 역사와 소통하다
경복궁에 고종이 숨겨놓은 깊은 뜻이 있다는데 아무 곳에나 묻힐 수 없었던 왕들 과인은 백성들의 해와 달이 된 적 없는 못난 왕이었소 왕들은 왜 물에 만 밥을 즐겨 먹었을까 조선의 환관은 없고 고려의 내시는 가졌다 가짜들이 판을 친 과거시험장 - 자리를 잡고, 글을 짓고, 받아 적는 이 따로 있었다 공민왕이 정말 그래서 죽었을까 해가 먹히지 않도록 소복을 입고 북을 쳐라 양반가 잔칫상과 왕의 수라상에도 올랐던 수제비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고추가 안 떨어진 남자들 고려시대에도 전쟁터에 군의관이 있었다 향기 나는 여인 선덕여왕 만두는 사치한 음식이니 가려서 대접하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내 엉덩이를 보고 흠뻑 적셔주소서 절름발이 시늉에 부엉이 성대모사까지 했던 정약용 주인 양반에게 재산을 물려준 부자 노비가 있었다 밖에서 변호하다 더 밖으로 사라진 변호사 자기 집을 태우면 매질, 왕릉을 태우면 사형 아버지에게 등을 돌린 고종의 비애 욕쟁이 왕이라 불린 정조의 카리스마 2장 찬란한 문화를 품다 북한군은 왜 조선왕조실록만을 챙겨 도망갔을까 중국어 실력을 원어민 수준으로 만들고 싶었던 세종 세종은 정말 팔만대장경을 일본에 주려고 했을까 서둘러 만든 옥새의 저주 일본 왕은 신라에서 수입한 양탄자를 깔고 살았다 실물이 없어 세계 최고를 놓친 고구려 천문도 고려의 왕은 호텔에서 조선의 왕은 모텔에서도 성형수술 때문에 죽은 가야의 어린아이 정말 금관은 머리에 쓰는 것이었을까 서점이 없어 직접 책을 만들어 팔았다 불꽃놀이 구경에 밤새는 줄 몰랐던 성종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가도 인정한 한지 1천 3백 년 만에 향기를 전하다 명품 백을 차고 다녔던 여자들 신라는 색조 화장품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금과 같고 은보다 비쌌던 우리 인삼은 지금 얼마일까 차 한 잔의 여유 속에 꽃가꾸기를 즐겼던 이성계 밥과 술을 사먹으면 하룻밤 숙박비가 공짜였다 3장 진실과 삶을 담다 조선 매관매직의 끝판 왕 고종 왕은 왜 상궁들이 지켜보는데 왕비와 잤을까 멀고 먼 유배길 경비를 죄인이 부담했다 세종 때문에 조선에서 무슬림이 사라졌다고 해장국까지 배달시켜 먹었던 곰탕과 국밥 천국 조선 성균관에 물든 소의 피를 누가 씻어낼 것인가 외국어는 필수, 밀무역은 선택이었던 역관 잠자리로 생긴 불화, 이혼 요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궁궐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외딴섬 노비가 되다 남의 남자를 위해 울어주던 과부댁 품행이 부정한 양반가 부녀자의 명단이 있었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노비로 살게 해주오 우리가 알고 있는 실록의 진실 혹은 거짓1 우리가 알고 있는 실록의 진실 혹은 거짓2 과거급제한 양반이 돗자리를 짜다니 노비나 왕이나 극한직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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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서 수출한 양탄자는 일본 왕은 물론 왕실과 귀족들에게 최고 인기상품이었다. 양탄자 역시 당나라 산(産)이라고 억지를 부릴수 없게 하는 명백한 증거가 일본에 있다. 나라현의 사찰 동대사 내 정창원(왕실 보물창고)에 보관 중인 50여 점의 양탄자 중 일부에는 신라 이두문자가 적힌 꼬리표(천 조각)가 박음질되어있다. - 149쪽 「일본 왕은 신라에서 수입한 양탄자를 깔고 살았다」 중에서
1천 6백 년 전 고대 가야에도 성형수술이 존재했다. 지난 1976년 경상남도 김해시 예안리 고분군(古墳群)에서 발견된 고대 가야인들의 두개골 일부가 정상인과 사뭇 다른 형태였다. 작은 두상에 이마 부분은 뒤쪽으로 밀리듯 눕혀져 있고 정수리는 솟아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놓고 당시에 편두(偏頭, 머리를 납작하게 만듦)라는 성형수술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 164쪽 「성형수술 때문에 죽은 가야의 어린아이」 중에서 밤하늘에 퍼지는 불꽃과 폭음에 중종은 시종일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경복궁 경회루에 함께 자리를 한 명나라 사신들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터졌기 때문이다. “오, 방금 저것은 우리 명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이하고도 경이로운 불꽃이었사옵니다!” 특히 명나라 황태자의 탄생을 알리러 온 사신 공용경은 아름다움에 취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중종은 그들이 불꽃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전투용 화포들을 선보이지 않은 계획이 내심 만족스러웠다. - 180쪽 「불꽃놀이 구경에 밤새는 줄 몰랐던 성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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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그 숨겨진 역사를 만나다』는 한번 읽은 뒤 책장에 꽂아두고 잊는 책이 아니다. 그 안에는 지금을 조명해볼 수 있는 혜안과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풍족한 먹거리와 다양한 혜택을 누리던 왕들의 생활은 윤택했다. 그 풍요 속에서도 가뭄 때는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실외에서 정무를 보는 등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견디려고 애를 썼다. 한편 강제로 혈세를 거두고 연일 술과 여자 곁에서 흥청망청 노는가 하면 폭발사고로 사상자가 났어도 불꽃놀이 구경을 멈추지 않은 왕도 있었다. 고관대작들도 뇌물과 착복으로 저택은 왕실에 버금갔고 재물을 쌓아둘 곳이 없어 집 앞에 저자를 열어 팔기까지 할 정도였다.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었다.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직업의 선택이 불가능해 이어온 농업과 제조업 등 생업(3D 업종)을 천직으로 삼아야 했다. 그 밖에도 지방 관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시체를 대신 만지는 오작인, 걸어 다니는 서점인 책쾌, 처벌대상인 양반에게 돈을 받고 대신 매를 맞아주는 매품팔이, 군역을 대신하던 대립군, 남의 초상집에서 대신 울어주는 곡비 등이 있었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천민들 가운데는 환관이 되려고 스스로 거세의 길을 선택하는 일마저 있었다. 신분의 대물림 속에 있던 노비는 더욱 참담했다. 양반 못지않은 재물을 모아 흉년 때 곡식 2천 석을 바쳐 면천되거나 노비까지 거느린 채 떵떵거리며 살다가 죽으면서 주인에게 재산을 물려준 거부 외거노비도 있었지만 일부고 사노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메산골이나 외딴섬으로 도망치고 신분세탁 후 양반행세를 하며 벼슬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던 반면 흉년과 빚 때문에 식구들까지 데리고 자진해 노비가 되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에게 지금의 변호사인 외지부는 그나마 위안이었다. 가난 속에서 억울한 일까지 닥쳤을 때 대신 변론해주는 그들은 은인과도 같았다. 주막에서의 술과 국밥 역시 고달픈 민초들에게 고마운 쉼터이자 위안이 돼주었다. 여자에 대한 차별대우는 특히 남성 중심의 조선시대에 심했다. 양반가에서는 집안 여자들의 외출을 금지했고 부득이한 경우 장옷과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리거나 안이 보이지 않는 가마를 이용하게 했다. 화장에 대한 인식도 낮아 조금만 짙어도 기녀나 첩들이 하는 천박한 행위로 간주했으며 수절의 강요 속에 이혼과 재혼마저 규제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귀가하는 통행금지 때 지금의 명품 백인 금박과 자수 등이 입혀진 주머니를 차고 잠깐 외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책은 각 시대의 왕조사, 문화사, 풍속사를 통해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사건들을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같고 그 안의 희로애락 또한 다르지 않아 역사를 읽으면 지금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 현재를 살필 수 있는 선명하고 정확한 확대경 하나씩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