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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암 3기입니다
암은 인생의 선물이었다 | 바빠서 죽을 시간이 없습니다 | 주인님, 잘 먹고 운동하세요 | 천만다행이다 | 삶을 사랑하는 일 2. 아프니까 산에 간다 동네 뒷산의 위엄 | 우연히 만난 우연한 기회 | 결론은 ‘할 수 있다’ | 옥녀봉에 도전하다 | 바닥에 누웠더니 정상에 섰다 3. 산꾼의 꿈으로 산을 오르다 1 산꾼들의 꿈, 지리산 | 연약한 두 여자의 아홉 시간 종주길 | 대한민국 최서남단 가거도에서 드린 기도 | 창원의 가을 산행에서 창원을 느끼다 | 창원 사는 여자의 마음을 훔친 설악산의 가을 4. 산꾼의 꿈으로 산을 오르다 2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기를 바라는 금강산 | 히말라야에서 더 높은 곳을 꿈꾸다 | 일본 북알프스에서 인사하는 법 | 후지산 정상에서 떠오른 사람 | 킬리만자로에서는 뽈레뽈레 5. 나와 산, 산과 나 살았다 살았다 | 정상이 있는 곳 | 돌아가야만 할 사정이 없는 사람 | 고향이 좋다 | 잘들 놉시다 6. 오늘도 나는 산에 오른다 천 번을 올랐지만 또 오르고 싶다 |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 | 배우고 나누고 | 병원에 가는 길과 산에 가는 길 | 소풍을 왔으니 소풍을 즐깁시다 7. 다시 사는 시간들 시간, 있을 때 잘하자 | 모두 흔들리고 있습니다 | 좋은 사람 소개합니다 | 좋은 사람들과 산에서 놀고 싶다 |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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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에 바빴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돌아왔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 집안일도 처리해야 했다. 동네 뒷산이 얼마나 높은지, 오르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는지 알아볼 새가 없었다. 출근길에는 뒷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때 나는 뒷산을 미래의 운동 장소로 지목해 두기만 했었다.
‘난 나중에 일 그만두고서 다녀야지.’ 이제는 현재의 운동 장소가 되었다. 동네 뒷산은 숲도 좋을뿐더러 매연도 덜하다. 특히 좋은 점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뒷산에 처음 오른 날 이런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아! 얼마 만에 맡아보는 산 냄새인가? 바람인가?” 몸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작은 숲길을 아껴 걸었다. 호흡의 거센 소리를 들으면서. ‘산이라고는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아프니까 가게 되는구나!’ 아픈 나를 받아주는 산이 고마웠다. 아카시아 향기로 나를 반겨줄 때는 몸서리치게 흥분되기도 했다. 산을 오르고, 산과 함께하면서 몸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동네 뒷산의 힘은 참 대단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동네 뒷산은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오르는 특별한 곳이 되었다. 동네 뒷산은 내게 크고 높은 산을 꿈꾸게 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면서 나는 그 꿈을 향해 집을 나섰다. 뒷산은 남편에게 맡기고 먼 지역의 산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점점 산 맛에 취해갔다. 그동안 남편은 뒷산을 잘 맡아주었다. 매일 산에 올라 운동기구도 이용하며 근육을 키웠다. 꾸준히 산에 다닌 나는 급기야 산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산병에 걸렸다. 왕복 8시간 버스를 타고 다녀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산병은 질병이 아니다. 산을 좋아하는 병일 뿐이다. 건강에 유익한 병이다. --- p. 43~44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금강산은 오랜 세월 갈 수 없는 산이었다. 그러다 1998년 분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남한 사람들에게 금강산이 개방되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빨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찾아간 금강산은 여름의 봉래산이었다. 새우잠을 자면서 달려온 금강산과의 만남은 흥분과 떨림 그 자체였다. 남측 출입국과 북측 출입국을 통과할 때 느꼈던 긴장은 우거진 녹음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온정리와 양지리 마을 주민들이 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유유히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흙 범벅이 되어 운동장에서 공을 찼고, 어떤 주민은 냇가에서 잡은 조개류를 어깨에 가득 메고 걸어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그들은 바지런한 우리 남한 사람들과 달리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1960년대 느낌이 나는 옷차림에서는 가난이 비쳤다. 정치를 잘 모르지만 북한이 관광 자원을 우리에게 활짝 개방한다면 그로 인해 벌어들인 돈으로 어느 정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을 거부하는 북한의 체제가 자못 아쉬웠다. 현대아산의 수고로 세워진 온장각(자연미를 살린 목조 건물. 금강산 관광의 첫 출발지)에서 구룡연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제한된 곳을 탐방한다는 사실에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일정 구간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소나무의 군락들이 어마어마했다. 생육 시기가 200여 년이 넘고 크기는 20미터가 넘는 금강송이다. 미송, 적송들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가 기록된, 금강산의 보배들이다. 이런 귀한 풍경을 온 국민이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 p.107~108 나무가 유일한 땔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동네총각들은 줄을 지어 산에 나무하러 다녔다. 너도나도 땔감을 구하려고 나무를 베어가니, 푸른 산이 벌거숭이산으로 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도 했다. 가난했던, 아주 가난했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 시대 산은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는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다.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산에서 힘을 얻고, 건강을 얻고, 지혜를 얻는 것에 더 힘써야 한다. 그렇게 산에서 얻은 것으로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젊은층과 어른들의 세대 갈등이 심한 요즘이다. 젊은층은 어른들의 낡은 세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어른들은 젊은층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못 마땅해 한다. 젊은이는 앞서 산 어른들에게 지혜를 배우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른들은 젊은이를 이해하고 잘 보호해 주면서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게 된다. 산으로 가자. 산이 주는 매력을 아는 사람은 꾸준히 산을 찾는다. 시간과 계절과 무관하게 자신이 가고 싶은 산을 찾아간다. 산에 몸담은 스스로를 반기는 마음을, 산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갈수록 산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산을 찾는 사람은 산을 보호하는 마음도 같이 병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산과 따로 행동하는 사람이 안타깝다. 그런 사람은 진정한 산쟁이가 되기 어렵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인데, 그런 친구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산쟁이가 되겠는가? --- p.174~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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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살길이다
“내가 처음 산을 찾은 이유는 건강을 찾기 위함이었다. 산은 암 선고를 받은 내게 돌파구이자 피난처였다. 산에서 건강을 찾은 후에는 몸에서 우러나오는 생체리듬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소리는 평생 산에 머물라는 메아리였다. 이제 산은 운명으로 내게 다가왔다. ‘일과 산행을 병행하자. 산이 살길이다.’” 암을 치유하기 위해 산을 선택한 저자 권부귀가 우리나라의 모든 명산을 포함하여, 금강산, 후지산, 일본 북알프스, 일본 중구산, 히말라야. 킬로만자로 등 해외의 산까지 1,000여 차례 등반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산의 마음을 배우다》다. 이렇게 건강을 회복하는 복을 누렸는데, 이제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 산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산을 닮아가고 싶고, 산이 좋아 찾아다닌다. 서로 도우려는 마음은 마음부자의 마음이며, 산의 마음이다. 그러한 산의 마음을 배우는 경험을 본받아 우리도 치유의 길을 걸어보자. 우연히 만난 기회 “그러다 내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해봐. 가봐. 못 따라가면 절반만 가면 되잖아. 꼭 처음부터 끝까지 가야 하니?’ 동네 아저씨와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말했다. ‘네, 산악회 가겠습니다. 폐를 끼치더라도 좀 이해해 주십시오.’” 저자는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에도 불구하고 몸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했다. 그중 하나가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것이었는데, 우연히 만난 동네 주민의 권유가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산악회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지만, 힘겨웠던 첫 산행 이후 조금씩 더 어려운 코스에 도전한 결과로 자신이 치유받은 이야기를 전하는 산꾼이 되었다. 등산도 글쓰기도 우연한 기회에 받은 권유로 시작해 결실을 맺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동네 뒷산에서 히말라야까지 “트레커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기를 꿈꾸는 히말라야. 우리도 그곳을 꿈꾸었다. ‘무식이 용기야.’ ‘고소증 있으면 못 가.’ ‘그래도 밀어붙여야 돼.’ 긴장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우리는 결국 가기로 결정했다.” 환자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에 빠진 저자는 세계 최고봉이 있는 히말라야까지 가게 된다. 물론 적당 한 높이까지 오르는 트레킹 수준으로 히말라야를 가까이에서 보고 오는 일정이었지만, 그 도전 정신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고소공포증과 싸워가며 감행한 트레킹은 마음속의 자신과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트래커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기를 꿈꾸는 히말라야에 도전해 성공한 이야기는, 왜 그토록 힘든 산행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우리 모두 산행의 매력에 빠져보자. 산은 배움터 “산은 내게 배움터이기도 하다. 산은 누구도 거부하지 아니한다. 부자든 빈자든, 어른이든 아이이든, 실력이 있는 자이든 없는 자이든, 포용한다. 그 포용을 협력으로, 나눔으로 세상에 퍼뜨리라고 가르친다.” 산을 타다 보면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다. 이때 혼자만의 힘으로 난관을 이겨내기는 무척 어렵고 여러 산우들과 힘을 모아야 한다. 이렇듯 산은 나눔을 가르쳐주는데, ‘나누고 살아야지, 베풀어야지.’ 하며 마음먹는 사람은 주변에 적지 않다. 문제는 실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산의 마음을 배우다》는 산꾼으로서 산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치유의 복을 누리고 싶어 쓴 책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든 사람이 주인인 산을 많은 사람들이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산에 가보면 알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제 산에 올라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