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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프롤로그 제1장_ 신화적 인물들의 차용과 탈신화화: 『불꽃』, 『연극 2』를 중심으로 1. 불가능의 열정과 상처 2. 불의의 복수와 정화 3. 죽음의 극복과 자기실현 4. 신화의 모방에서 창조로 제2장_ 로마네스크 인물들의 신화화와 영원성: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흑의 단계』, 『은자』, 『안나, 소로르…』 1. 연금술 신화로 본 하드리아누스-제농-나타나엘 2. 안나와 미겔의 근친사랑과 자웅동체Androgyne 신화 3.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우스의 비극적 파이도필리아 신화 제3장_ 오리엔트 신화, 서구 문예 정신의 진원지: 『동양이야기들』 1. 『동양이야기들』 2. 예술과 현실 3. 사랑과 진실 4. 위반과 경이驚異 5. 죽음과 구원 6. 욕망 또는 죽음 7. 『동양이야기들』에 담긴 오리엔트 신화의 범주와 의미 제4장_ 꿈과 현실 사이에서 탄생하는 개인 신화: 『몽상과 운명』 1. 『몽상과 운명』 2. 주요 꿈들을 통해 본 유르스나르의 개인 신화 3. 유르스나르의 꿈, 프로이트주의-초현실주의와 다르게 읽기 제5장_ 유르스나르 ‘문학신화학’의 지형 안에서 만난 20세기 작가들 1. 지드와 유르스나르의 테세우스 신화 2. 사르트르와 유르스나르의 엘렉트라 신화 3. 유르스나르와 아누이의 안티고네 신화 에필로그_ 고전과 현대의 가치가 소통하는 유르스나르의 ‘문학신화학’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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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는 ‘크레타의 아메리카라는 둘도 없는 거대한 도축장’, ‘농가 냄새’, ‘아이티Haiti의 독’이라는 은유 이미지로 현대의 역사적 시간을 끼워 넣는다. 이 단어들은 현대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절망의 무게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다. 또한 크레타는 이성적인 미노스 왕이 세운 지상의 섬나라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로 괴물이 사는 서구화된 지하 미로를 환기시킨다. (…) 유르스나르가 그려내는 파이드라의 공간은 신화보다 낯설고 모호하며 신화라는 영원한 시간 속에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이 끼어들어 시간의 경계가 부정확하다. 이미 새로운 차원의 신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 p.26
유르스나르가 구분한 사랑의 개념을 보면, 열정은 지배욕구이고 사랑은 공감과 헌신이다. 그녀는 자기 열정의 체험을 마리아 막달레나의 인생 속에 투영하면서, 궁극적으로 희생적 사랑과 열정적 사랑 간의 차이를 변별하고자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불평-회개-구원’의 단계로 나아가는 동안 사랑의 성격이 변화하는데, 이는 마르그리트의 사랑관도 달라지는 것을 반영한다. 불꽃처럼 뜨겁던 두 여인들의 열정은 점차 절제되고 정화되며, 공감과 선의가 담긴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젊은 날 그토록 행복이라고 여기고 집착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 p.81 유르스나르의 주인공들은 목적을 위해 서로 이용하거나 증오하는 삶의 태도를 지닌 인간들에 대해 염오厭惡를 지녔으며, 대체로 혈연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출가하여 고독한 내적 투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흑백논리에 대한 거부, 제도적 모순에 대한 회의, 비참한 삶에 대한 연민, 절대고독의 수용, 자유를 구속하는 금기에 대한 반항 등을 하도록 장치되어 있는데, 이처럼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인습과 편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연금술의 ‘흑의 단계’로 볼 수 있다, (…) 그러나 이것이 끝나갈 즈음 인물들은 이미 2차 단계로 접어든다. 심오한 내면의 성찰을 통해 자아 탐색에 열중하는 시기, 연금술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 p.105 이 작품에서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의 주제는 은밀하고 내면화되어 있어 불순하거나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 그것은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미겔의 근친상간이 현실 속 욕구로 자리 잡게 되는 결정적인 단서가 역설적이게도 ‘성서’라는 설정만 보아도 그렇다. 성서 속 역사적 인물들이 미겔의 욕망을 대변하고 그 실현을 부추기는 것이다. 구약성서(사무엘 하권, 13)에서 (…) 암논은 자신의 친구 여호나답의 꾀로 누이동생 타마르를 침상으로 불러들여 욕보인 후 두려움에 그녀를 증오하며 내쫓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 이 짧은 성서구절은 처음에는 미겔에게 두려움을 주었지만, 점차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용기를 제공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안나에게도 그녀의 내적 감정을 솔직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 pp.120~121 유르스나르는 자신의 문학을 유럽의 신화로만 경계 짓지 않고, 오리엔트 신화들을 추가하여 자신이 꿈꾸는 신화학의 구도를 보여주었다. (…) 유르스나르의 『동양이야기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 국한시키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힘으로 남동유럽과 동아시아의 문명적 교류와 융합이 이루어졌음을, 그리고 그 무의미한 경계들을 지움으로써 화합과 소통으로 나아가 보다 다양하고 환상적이며 경이로운 신화 이야기들을 세상에 들려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 p.229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르스나르가 동성애자였던 자신의 연인을 향한 열정이 매우 컸고 그 열정의 불가능으로 인해 절망을 느끼고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는 점이다. 유르스나르가 1930년에서 1939년 사이에 발표한 작품들은 대부분 자신의 강렬한 열정을 감추고 종종 신화에 빗대어 절제하고 정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이때 출간된 작품 시리즈 안에 바로 이 『몽상과 운명』도 들어가 있다. 따라서 위에서 살펴본 꿈 서사는 운명처럼 새겨진 사랑의 흔적을 환기시키는 개인의 신화로 볼 수 있다. --- p.246 그것은 유르스나르가 작품에서 꿈을 정확히 전사하려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작가는 꿈의 사고를 촘촘히 밟아나가면서 그 안에 담긴 개인의 운명을 이해하려는 내밀한 의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 유르스나르는 “운명이 꿈으로 표현되는 순간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 따라서 작가에게 꿈은 고대의 신탁처럼 예언의 기능을 하는 내밀한 개인의 신화인 것이다. 이와 다르게, “잠자는 자가 자신의 꿈을 그저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이용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의 숙명적 부분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 p.251 지드와 유르스나르의 영웅관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영웅은 기억하는 자’라는 것이다. 지드에게 영웅은 개인적 욕구를 절제하고 자신이 전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의무를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이고, 유르스나르의 영웅은 자기 내면의 그림자, 즉 어두운 무의식을 기억하고 부단히 고쳐나가는 자이다. 또한 두 작가에게, 영웅은 주변의 타자들로 인해 자신을 인식하고, 발전하고, 존재할 수 있음을 기억하는 자이다. 그런 이유로, ‘희생제물, 괴물 미노타우로스, 아버지, 신’과 같은 테세우스의 주변 인물들은 그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돕는 조력자로 볼 수 있다. --- p.282 신화와 문학이 맺는 다양한 형태의 상호관계 안에서 작가 유르스나르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신화를 전복시켜 의미를 정교하게 다듬고 재창조한 신화문학을 통해 인간을 현상세계에서 보편세계로 이행시키는 것이다. 또한 신화가 단순한 차용과 변용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정치·철학·문화 등의 인문적 해석으로 나아가기 위한 상징성이 가득한 사료의 보고이자 상위의 미학적 글쓰기로 승화될 수 있는 문학 유산임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 pp.33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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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에게 신화는 자유자재로 구사 가능한 일종의 모국어"
신화를 매개로 역사, 기억이 맞물려 순환한 유르스나르의 문학세계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1903~1987)는 프랑스의 유구한 문학 전통을 잇는 20세기 주요 작가로서,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L’Acadmie franc?aise 사상 최초의 여성 회원이기도 하다. 유르스나르에게 신화는 자유자재로 구사 가능한 일종의 모국어로서, 인류 기억의 샘이며 유르스나르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이끌어내는 기억의 실마리이자 수단이다. 그의 문학관은 역사, 신화, 기억이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가 순환하는 창조적 세계이다. 신화를 매개로, 다양한 시공간의 복수적複數的 의미의 역사가 인간의 원초적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 세계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근원성에 닿아 있으며, 유르스나르가 평소 강조하는 ‘모든 것은 하나Tout est Un’라는 전일全一의 개념이 녹아 있다. 신화의 문학적 변용, 문학신화학의 지평을 열다 유르스나르의 문학신화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작가 한 사람이 이처럼 다채로운 신화 문학을 제시한 경우는 거의 없고, 신화의 단순한 차용이 아닌 문학적 전복과 변용, 로마네스크적 인물과 소설 공간의 신화화를 통해 반전과 창의성을 갖춘 유르스나르의 신화체계는 독창적이다.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잠재된 신화의 유기적 연결망을 은밀히 장치하여 인류 본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현대의 인문주의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회귀’의 신화학을 지향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인문주의로의 회귀를 지향하기에 유르스나르의 문학신화학은 다면성을 지닌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게 해주고, 보다 깊은 지성과 원초적 감성으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와 다른 타인과 공동체를 이해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다. 유르스나르 문학신화학의 일곱 가지 특징 1. 미학적 신화학 유르스나르 문학세계는 여느 특정 신화의 통시적 변모과정에 기댄 신화학의 구축과 다르다. 신화 이야기들을 문학적으로 전복하거나 탈신화화하기도 하고, 로마네스크적 인물을 신화화하거나 소설 공간을 신화화하기도 하며, 반대로 신화적 인물들을 육화하여 현실의 세계로 끌어냄으로써, 유르스나르의 전全 작품들 안에서 여러 신화를 공시적으로 잇고 결합시켜 하나의 거대한 신화망網을 구축한다. 신화의 창의적인 재해석과 대부분의 작품들에 산재해 있는 신화적 요소들이 우연히 만나 이어지고, 그 신화적 연결망으로 인해 문학적 가치가 높아지는 상위 범주의 ‘미학적 신화학’을 형성한다. 2. 개인 신화학 일반적으로 신화학은 신화의 뿌리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변모과정을 찾아나가는 일련의 고찰이지만, 유르스나르에게 신화는 자기 정체성의 뿌리나 정서affectivit적 근원을 찾아나가는 ‘개인 신화학’의 성격을 띤다. 자신의 열정, 기억과 상처를 신화에 기대어 표현함으로써 미학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3. 사회학적 신화학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 신화가 내포할지도 모르는 진실을 이성을 통해 추출하려는 과학적 차원의 신화학과 달리, 유르스나르는 다양한 사회·문화·사상적 의미와 인문학적 개념들이 도출되는 논리적 장치가 마련되도록 작품마다 신화적 요소들을 심어놓는다. 유르스나르는 신화의 현재성에 관심이 크다. 신화가 동시대의 사회, 사상, 심리, 문화 현상과 인간의 제 문제와 진실을 밝혀주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신화라는 보편적 언어를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신화 자체의 내적 기능에 천착하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 존엄 가치관의 위기와 같은 문제를 신화의 층위에서 공론화하기 위한 ‘사회학적 신화학’의 성격을 띤다. 4. 상호 텍스트성의 신화학 일반 작가들과 달리 유르스나르는 고대 신화로부터 고전 신화 그리고 현대 신화에 이르기까지 원형신화와 차별화되는 신화 이설들의 변용과 그 개별 가치를 익히 알고 밝힐 줄 아는 작가이다. 작품들뿐만 아니라 서문, 후기, 부록으로 붙은 자료들, 대담집을 통해서도, 신화 다시 쓰기에 대한 해설과 논평을 멈추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이설로 이루어진 신화학이라는 전체성 안에서 자신의 신화문학이 차지하는 좌표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유르스나르의 신화 작품들은 고유의 독창성을 지닌 하나의 기원이자 동시에 다른 텍스트들과의 영향관계에 있는 ‘상호텍스트성의 신화학’에 속한다. 5. 원심적 문학신화학 유르스나르의 신화 작품은 한두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편소설, 단편소설, 시, 희곡, 에세이 등 거의 전全 장르에서 신화의 침윤성을 드러낸다. 또한 장르를 불문하고, 유사하거나 상반되는 주제의 신화가 서로 이어지고 한 짝이 되어 만나기도 한다. 『불꽃』, 『연극 2』, 『동양이야기들』의 경우가 종종 그렇다. 신화들이 서로 연결고리를 갖고서 여러 장르를 순환하므로 이른바 ‘원심적 문학신화학’이라고 하겠다. 6. 동서 통합의 신화학 그리스 신화와 사상에 정통한 유르스나르의 작품세계는 서구의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서 신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양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듯이, 오리엔탈 그리스, 발칸, 인도, 중국의 신화까지 넓게 확장되어 있다. 유르스나르는 지중해 문화권 중심의 신화학에서 벗어나 오리엔트 신화와의 균형을 모색하는 새로운 헬레니스트로서, ‘동·서 통합의 신화학’을 제시한다. 7. 인본 회귀의 인문주의 신화학 유르스나르가 신화를 다루는 특징적 태도는 선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유르스나르가 취사선택한 신화적 인물들의 이야기는 인간 본연의 성스러움과 미덕을 회복하기 위한 가치 판단에서 비롯된다. 이는 신화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여느 신화학자와 달리 ‘판단’의 가치를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유르스나르가 시도하는 신화의 문학적 변용은 유럽적 인간의 이해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 본질에 대한 보편적 이해와 인문주의의 현대적 복원을 지향하기에, ‘인본 회귀의 신화학’이라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유르스나르의 ‘문학신화학’은 보편적·초월적·해방적 신화문학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부각시키는 ‘인문주의적 신화학’을 지향한다. 작품으로 보는 유르스나르의 문학신화학과 역사적 변용 제1장_ 『불꽃』, 『연극 2』에 드러난 신화적 인물들의 탈신화화와 회귀 제1장은 신화의 직접 차용이 두드러진 유르스나르 산문시 『불꽃』과 희곡집 『연극 2』에 관한 연구를 담았다. 여기에는 클리타임네스트라, 파이드라,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엘렉트라, 알케스티스, 아리아드네와 같은 그리스 신화의 유명 인물들과 성서 신화에서 차용한 마리아 막달레나가 등장한다. 유르스나르는 장르의 형태와 문체의 차별화 그리고 인물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의도적 문학 변용을 통해 이들을 탈신화화하였다. ‘불가능의 열정과 상처’, ‘불의의 복수와 정화’, ‘죽음의 극복과 자기실현’이라는 내적 감성과 내면 성찰의 주제를 중심으로, 신화적 인물들의 변용과 그 현대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하지만 유르스나르 개인 신화의 성격을 띠면서도 동시대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자화상으로 확장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내적 진실을 다루고, 인간의 원초적이고 무한한 존재 가치의 회복을 이끌어내며 보편적 신화세계 안으로 자연스럽게 회귀한다. 제2장_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흑의 단계』, 『은자』, 『안나, 소로르…』에서 볼 수 있는 로마네스크 인물들의 신화화와 영원성 제2장에서는 로마네스크 인물들이 각자 고유의 본질적 신화소mythme를 갖고서 작품의 주제를 비추거나 행위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음을 살펴본다. 연금술 신화를 정신적 차원의 연금술로 이해하는 유르스나르의 관점은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흑의 단계』, 『은자』의 역사적 또는 허구적 주인공들인 제농과 하드리아누스, 나타나엘의 일생에 이 연금술 신화의 상징적 단계들을 연결시켜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소설 『안나, 소로르…』의 주인공 안나와 미겔의 근친사랑은 한 몸을 이루는 자웅동체 신화와 닮아 있고, 고대 그리스 철학과 성서 신화가 환기하는 작품 배경은 이들이 파괴한 금기의 죄악을 성스럽고 몽환적으로 만들어준다. 원초적 시대의 감성과 자유에 닿아 있는 인간의 진실한 사랑과 인고의 노력이 종교적 금기나 사회적 금기를 넘어선다는 화해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아울러 역사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안티노우스를 향한 열정은 제우스의 파이도필리아 신화를 연상시키고, 안티노우스의 죽음으로 인한 비극적 파이도필리아가 인간 황제의 헌신적 사랑으로 새로이 양성동체 신화로 전이되는 일련의 신화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제3장_ 『동양이야기들』에 내재된 서구 문예 정신의 진원지로서의 오리엔트 신화 제3장에서는 오리엔트 신화들을 모아 각색한 단편 신화집 『동양이야기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바, 이 책에서는 단편을 두 편씩 짝지어 ‘예술과 현실’, ‘사랑과 진실’, ‘위반과 경이’, ‘죽음과 구원’, ‘욕망 또는 죽음’을 주제로 작품 내용을 분석하고 유르스나르의 의도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바로 유럽의 끝자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두 개의 문門인 그리스와 발칸반도가 형성하는 문화적 혼종성에 관한 것이다. 유럽의 상상력에 자리한 신화의 힘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의 접합지점과 그 인접 지역으로 확장되어 나아가고 그로 인한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의 생각을 입증하는 작품인 것이다. 오리엔트와 옥시덴트의 정치적·이념적·지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유르스나르의 관점은 새로운 헬레니즘을 제시해 준다. 이야기의 힘으로 동서양을 구분 짓는 허상의 경계들을 무너뜨리고, 문화적 차이를 넘어 인간의 본질을 관통하는 소통의 길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제4장_ 『몽상과 운명』에 나타난 꿈과 현실 사이에서 탄생하는 개인 신화 제4장은 꿈과 현실의 엉킴 속에서 만들어지는 유르스나르 개인의 몽상 신화mythologie onirique에 관한 연구이다. 『몽상과 운명』에서 가장 강렬하면서 신화적 상징을 띠는 ‘대성당’과 ‘푸른 물’, ‘섬들’과 ‘검은 깃발’이 나오는 꿈들을 분석하였다. 젊은 시절에 꾼 꿈들은 지나간 열정의 상흔이 결국 우연에 기인한 운명이었음을 일깨우고, 노년에 꾼 꿈들은 지속적으로 연행되면서 필연적인 운명을 예고하는 몽상임을 암시한다. 유르스나르가 꿈들을 전사한 궁극적 이유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운명의 실마리를 찾아 꿈이 안내하는 내밀하고 신성한 개인의 신화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한편 유르스나르는 프로이트학파의 꿈에 대한 성적 상징과 분석이 개인적·역사적·신화적·종교적 특징까지 아우르는 보다 폭넓은 분석으로 꿈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이 꿈이 지닌 숙명적 성격을 경시하고 한낱 문학과 예술의 표현 수단으로만 삼았다는 유감을 남겼다. 유르스나르에게 꿈은 자신에게만 내리는 고대의 신탁처럼 운명을 예언하는 내밀한 개인 신화였기 때문이다. 제5장_ 20세기 작가들과 유르스나르의 ‘문학신화학’ 제5장에서는 ‘문학신화학’의 지형 안에서 만난 20세기 작가들인 지드, 사르트르, 아누이의 신화 작품들을 비교하여 유르스나르의 작품을 비교하여 살펴본다. 나아가 이들 작품에 미친 시대적 배경의 영향도 살펴보았다. 우선 ‘테세우스 신화’를 주제로 쓴 유르스나르와 지드의 작품들을 비교하여 현대적 영웅의 의미를 이끌어내었다. 지드의 경우에, 영웅은 개인적 욕구를 절제하고 자신이 전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의무를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이고, 유르스나르가 의도하는 영웅은 자기 내면의 어두운 무의식을 인지하고 기억하며 부단히 고쳐나가는 자이다. 또한 유르스나르와 사르트르의 ‘엘렉트라 신화’ 변용에 관해 비교 연구하였다. 실존과 자유의 문제를 중요시한 사르트르는 흔들리는 엘렉트라보다는 능동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오레스테스에게 중점을 둔 반면 유르스나르는 소위 정의를 앞세운 인물의 감추어진 어두운 내면세계에 관심을 두었고, 우유부단한 오레스테스보다는 음울하고 반항적인 기질을 지닌 엘렉트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어 ‘안티고네 신화’에 대해서는 유르스나르와 아누이를 비교하였다. 유르스나르의 안티고네가 절대적 사랑의 희생이라는 성스러운 개인의 차원에 속해 있다면, 아누이의 시선으로 따라가 본 안티고네에게는 프랑스의 오랜 정치적 이데올로기 전통에 맞서는 시민 비르투로서의 변치 않는 열정과 저항의식이 들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