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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선택이다 7
이뭐라는 말 9 받아들이거나 용서하거나 26 아이들이 어디까지 알까? 39 진짜 버전 72 오늘은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92 이름들은 장엄했다 118 환생 129 단지 통곡일 뿐 142 봐! 울고 있는 히브리인 아기야 152 사자 우리 161 문틈에서 198 빈 방에 누가 있을까? 205 밑져야 본전 230 6부 이스라엘의 파괴 251 조국으로 돌아오라 253 오늘 저는 성인이 아닙니다 255 오, 유대인들이여, 그대들의 때가 왔도다 261 조국으로 돌아오라 270 오늘 저는 성인이 아닙니다 275 오, 유대인들이여, 그대들의 때가 왔도다 282 조국으로 돌아오라 284 오늘 저는 성인이 아닙니다 287 오, 유대인들이여, 그대들의 때가 왔도다 290 조국으로 돌아오라 292 오늘 저는 성인이 아닙니다 295 오, 유대인들이여, 그대들의 때가 왔도다 298 조국으로 돌아오라 301 7부 지침서 313 8부 집 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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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 브리에레 이즈 오이치 아 브레이레. 그 뜻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선택이다.’였습니다.”
--- p.105 그는 전 인류 역사를 통틀어 죽은 사람들보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모두 죽은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개성에는, 그 극단적으로 특이한 유대인들의 이름의 극단적 특이성에는 단 하나의 운명만 존재했다. --- p.125 “저는 여러분에게 이스라엘 공군이 이스라엘 방위군의 다른 군대들과 협력하여 모세의 팔 작전을 개시할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여덟 시간부터 엘알 항공 비행기들이 열여섯 살부터 쉰다섯 살까지의 유대인 남성과 여성을 전 세계의 주요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 기지로 데려오기 위해 출발할 것입니다.” --- p.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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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한 유대인과
그의 아들, 손자, 증손자에 이르는 4대 일가의 운명, 그리고 그들을 다시 호출하는 고향, 이스라엘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am)’ _창세기 22장 1절 블록 일가는 워싱턴 D. C.에 사는 유대인 일가다. 아이작 블록은 2차 대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아들 어브를 낳았고, 어브와 그의 아내 데버러는 아들 제이컵을 낳는다. 소설가 겸 방송 드라마 작가인 제이컵은 아름답고 총명한 줄리아와 결혼해 세 아들 샘, 맥스, 벤지를 낳는다. 마치 구약 성서의 족보처럼 줄줄 이어지는 이 4대가 바로 이 블록 일가의 구성원이다. 이제 아이작은 늙었고, 오로지 증손자인 샘의 바르 미츠바(유대인 소년이 13세에 치르는 성인식)를 보고 죽겠다는 일념만으로 살아간다. 그의 아들 어브는 블로그에 강경한 글을 쓰는 시오니스트로, 매체에서 각종 논쟁을 일으킨다. 어브에 비해 온순한 성향인 지적이고 현대적인 주인공 제이컵은 아버지의 시오니스트적 성향에 늘 기겁하면서도, 유대인의 계율과 안식일을 꼬박꼬박 지키며 살아간다. 어느 날, 히브리어 학교에 다니는 아들 샘이 사고를 저질러 제이컵과 줄리아 부부는 학교로 호출 당한다. 랍비는 샘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종이에 글로 끼적였다면서,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바르 미츠바를 치를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장남인 샘은 원치 않는 바르 미츠바를 앞두고 ‘아더 라이프’라는 이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빠져 있다. 통찰력을 지닌 예민한 소년 샘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하기를 일절 거부한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점차 멀어지는 걸 눈치 채고,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 앞에서 망설이고, 사춘기적 충동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제이컵이 다른 여성과 성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은 전화기가 발견되면서 블록 가족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서로를 사랑할 능력을 잃었음을 깨달은 부부, 증손자의 성인식만을 기다리며 생명을 연장중인 증조부, 유대적 삶과 미국적 가치의 충돌 속에 성장하는 아이들. 이 모든 것이 불협화음을 내는 가운데, 그들의 뿌리인 이스라엘에 대지진이 발생하고, 전 세계에는 반유대주의의 불길한 기운이 흐른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적대하는 국가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종식’을 선언하며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로 돌아올 것을 요청한다. 아직 치르지 못한 샘의 바르 미츠바를 앞두고 아이작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그의 죽음 앞에서 가족은 상념에 잠긴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유대인이자 미국인으로서 제이컵은 이 모든 의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모든 의무가 그를 호출할 때, 과연 그는 성서의 아브라함이 신에게 했듯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Am)’라고 답할 수 있을까. 결국 제이컵은 이스라엘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는데……. 가족과 개인, 민족과 공동체, 종교와 디아스포라… 현대인으로, 세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거대한 의문을 던진 우리 시대의 걸작!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다(Here I am)’ _창세기 22장 7절 유대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수많은 강대한 민족이 나라를 일으키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사라지는 사이, 3천 년 동안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온 그들에 대해 우리가 단편적으로 아는 것은 그들이 『탈무드』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전 세계 금융계와 정계, 엔터테인먼트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의 고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끊임없이 영토를 두고 다툰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물론, 2차 대전의 어마어마한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혹은 유대인들이 부르는 말로 ‘쇼아’의 기억이 있다. 일견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논쟁을 즐기는 유대인들에 대한 이미지, 특히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1970~80년대에는 중동 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강인한 민족’이었으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진 현재에 이르러서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주목이 집중되면서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많다. 하지만 전 세계 유대인에도 많은 종류가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마치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친척과 같은 사이이다. 작품 내에서 제이컵과 그의 터프한 이스라엘 친척 타미르의 관계에서 그려지듯이, 다인종 사회를 살아가는 미국 유대인들은 타 인종에 대해 고양이와도 같은 조심성과 경계를 갖춘 한편,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탱크를 몰고 사막으로 돌진하는 거칠 것 없는 전사와도 같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는 유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블록 일가의 일상을 통해 이와 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아이러니하게 그려낸다. 작품의 제목이 드러내듯이, 이 소설이 담은 주요한 이야기는 유대인으로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은밀한 욕망을 지닌 개인으로서, 현대인으로서 자신이 어디에 귀속되어야 하는가, 어떤 호출에 응답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제이컵이라는 한 남자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깊이 뒤얽혀 있다. 아버지로서 그는 어린 아들들의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열린 호기심을 유도하는 유대인 특유의 철학적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한편, 이를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의 지성과 날카로운 통찰에 사정없이 휘둘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에 감탄하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내 줄리아와 일상의 모든 비밀을 나누기로 약속하지만, 자신의 남성성이 충분히 강인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고 딴 길로 샌다. 시오니즘적 태도를 지닌 아버지와 이스라엘 친척들 앞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에게 이스라엘이 과연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지 자문한다. 이와 같은 이중 삼중의 사회적 구속에 대한 고민과 정체성에 대한 고찰은 반드시 유대인의 것만은 아닐 터이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다른 세계와 연결되고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 글로벌한 세상에서 우리는 민족과 공동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장면과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들의 탄생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가족을 뭉치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헤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인간이라는 걸 믿지 못하겠다고?” “당신이 거기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못 믿겠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외에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것은 가족이다. 사프란 포어는 미국 유대인 일가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일상을 생동감 넘치는 대화체를 통해 담아낸다. 총명한 세 아이들의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 세례와 그에 답하는 부모들의 애정 어린 하모니가 작품 곳곳에 넘쳐난다. 시오니즘과 묵직한 비극적 태도로 무장한 일가친척들에게 진저리를 치면서도 제이컵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고 거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늙은 개 아거스에게도 제이컵의 애정 어린 눈길은 늘 멈춰 있다.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개의 이름에서 따온 아거스의 죽음은, 마치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기다리다가 그를 만나자마자 숨을 거둔 늙은 개 아르고스와 그 주인의 관계처럼, 가족을 위해 늘 다시 돌아오기를 선택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슬프고도 깊은 애정을 전한다. 유대 정체성, 가족,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공동체 앞에서 늘 망설이고 서성이던 남자 제이컵은 이혼과 이스라엘 전쟁 위기라는 극적인 전환을 통해 거기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제이컵은 이혼하여 가족 밖에 놓이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 사이에 있는 사람이 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사프란 포어는 말한다. 파편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누구이든, 어떤 민족이든, 이는 보편성을 지닌 울림으로 다가온다. 10여 년 전 ‘분더킨트’로 불리던 젊은 작가였던 그는 이와 같은 인간적 성숙과 고찰, 그리고 감동을 안겨주는 작가로 다시 귀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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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감정을 야심만만하게 결합한 작품. 포어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가장 신랄한 작품. 고통과 후회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을 후벼 판다. 웬만한 소설 수백 권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의미로 가득한 책.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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