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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장 지성사, 관념사에서 ‘사회과학의 담론사’로:장기 냉전의 사회과학 지식
오경환·김상현 1장 “미지의 위기”:조직화 운동과 기술관료제, 프랑스 경제개발계획의 기원 오경환 2장 1950년대 후반 이후 소련 수리경제학파의 성장과 그 영향 김동혁 3장 제국-식민지 농가경제조사의 지적 계보와 그 정치적 의미 김인수 4장 냉전기 국제정치 이론의 발전:록펠러 컨퍼런스를 중심으로 김민수 5장 첸쉐썬의 과학기술론과 사회발전론 채준형 6장 1960년대 한국의 통계 발전과 사회에 대한 통계적 지식의 부상 조은주 7장 ‘과학적’ 투자 담론의 냉전적 기원:효율적 시장과 합리적 선택 이론,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 김승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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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보게 호텔에 위치한 계획위원회 최초의 사무실에는 “근대화가 아니라면 쇠퇴”라는 표어가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급박한 표어는 계획위원회가 느낀 어떤 위기감을 반영한다. 조직화 운동에서 계획화 운동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은 “미지의 위기”라는 명명이 보여주듯이 보불전쟁 이후 계속되는 위기에 대한 집착에 근거하고 있었다. 두 차례의 전쟁을 제외하더라도 인구 감소와 퇴보, 알코올 중독, 매춘, 공산주의 혁명, 보나파르트주의의 귀환, 러시아와 독일의 부상, 유태인의 “음모” 등 프랑스는 열강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면서도 끊임없는 불안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 “위기”들이 실재하는 종류의 것이었는지 여부는 당연히 논쟁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 “위기”들에 대한 대응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사회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낸 것 역시 사실이다. 인구 감소에 대응한 가족주의적 복지국가의 형성과 생물학적·문화적 퇴보에 대응하는 우생학적 정책의 등장, 공산주의 세력의 강화에 대응하는 자본가들의 자기 수정 노력 등 프랑스 사회의 변화는 분명 “위기”들에 대한 사회적 대응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의 담론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 역시 지적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필연적으로 적대화를 거친 사회 안팎의 타자를 상정하며 위기의 극복은 이들에 대한 교정 혹은 멸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연쇄와 정상상태화는 이 시기 프랑스 사회정책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 p.43~44, 「1장 “미지의 위기」중에서
수리경제학파는 단순히 경제 연구에 수학을 적용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소련의 정치경제학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는 여러 이론적 개념을 도입하고 개발했다. 따라서 이들의 사상을 둘러싼 논쟁과 그 논쟁을 돌파해 가는 과정은 단순히 학계 내의 이론적 논쟁의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주의 사회의 전반적인 관리체계 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1950년대 이후 소련의 정치경제적 변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이는 동서 냉전의 전개 과정에서 양 체제의 이질성을 넘어선 동질성 및 인식론적 유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20세기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위한 냉전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다. --- p.50, 「2장 “1950년대 후반 이후 소련 수리경제학파의 성장과 그 영향」중에서 식민지 조선에서의 농가경제조사는 조사의 목적과 조사에 필요한 행정능력의 편차에 따라 시기별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 최종적인 귀결은 1930년대 식민지 농정을 규정한 자력갱생운동과 이에 연동된, 방금 앞에서 논의한 ‘농가개황조사(1933/1938)’였다. 이미 앞에서 한 차례 언급했지만, 이 ‘농가개황조사’와 갱생운동의 실질적인 방향을 결정지은 것은 1930~1933년에 걸쳐 진행된 조선농회의 조사였다. 조선은 일본과 달리 농가세대 내에 방대한 양의 잉여노동력이 잔존해 있기 때문에 임금노동을 지양하고 이를 모두 가족노동으로 벌충―농업노동의 탈시장화, 탈임노동화―하여 농가경제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이 조사 결과로 얻은 결론이었다. 가족세대원의 잉여노동력 투입을 통한 경영 집약화, 겸업을 통한 경영 다각화, 농가의 비자본주의적 자급자족으로 요약되는 갱생운동의 의제는 바로 이 조사의 결과를 통해 촉구된 사항들이었다. 조선 농가의 현실은 차야노프의 소농경제론에 따라, 가족세대원의 추가 노동단위를 투입하여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대단히 큰 것으로 평가되었다. --- p.107~108, 「3장 “제국?식민지 농가경제조사의 지적 계보와 그 정치적 의미」중에서 1954년 컨퍼런스는 국제정치 이론이 체계적 학문 분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첫째, 현대 학문 분과의 확립, 체계적 이론의 수립에 기업의 재정적·제도적 지원이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문체계와 이론이 단순히 학문 내의 독자적인 논쟁 과정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관심과 관점을 가진 기업의 영향력을 통해 제도화될 수 있다는 것은 학문의 자율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록펠러 재단의 주요한 역할은 단순히 체계적 이론과 학문 분야의 성립을 지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추구하면서 실증 연구, 이론, 방법론에서 매우 협소한 지적 스펙트럼의 발전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컨퍼런스에서도 확인되듯이 재단과 관료들이 학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현실에 적용 가능한 실용주의적 이론이었다. 이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현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학문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학문의 정립과 발전 과정에서 학계 자체의 역량보다 기업의 후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 p.137~138, 「4장“냉전기 국제정치 이론의 발전」중에서 과학 진흥이 현대 국가의 경제 문제, 인민 복리 향상의 문제와 직결되면서 인민공화국의 과학 진흥은 국가가 앞장서서 추진해야 하는 국가적인 사업이 되었다. 즉, 과학 실험은 “강대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기초”였다. 1950년대 이후 중국의 과학기술 사업은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신속하게 발전했고 많은 성취를 일궈냈다. 첸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생각은 중국처럼 과학기술과 공업 기초가 박약한 국가가 비교적 단시일 내에 과학기술의 현대화를 실현하여 먼저 앞서가 있는 세계 수준을 따라잡으려고 한다면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계획적·조직적으로 과학기술 작업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도화·조직화의 일차적인 목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급진적이면서도 또한 전문적인”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언사나 행보에서 간취(看取)할 수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급진적인 과학기술 인력보다는 전문적인 과학 인력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 p.154, 「5장“첸쉐썬의 과학기술론과 사회발전론」중에서 각종 통계표와 도표의 표제, 열두, 단두, 눈금은 물론 모든 통계간행물을 영역하고 현재의 영문은 개량하며 고유명사의 영문 표기를 모두 통일시켜야 한다는 이 같은 주한통계고문단의 요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종의 타자적 공간으로서 제3세계의 인식 불가능한 대상을 인식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가독성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읽히는 대상으로서의 타자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서구 사회에 자신의 가독성을 높임으로써, 한국이 열망하는 것을 원조받을 수 있으며 읽는 주체인 서구와의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한국이 “국제적 통계사회에 참가할 야망”을 실현시키고 “국제과학공동사회”의 “구성원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통계전문가와 통계기관 자체의 통계적 업적과 성숙” 외에 다른 지름길이나 간단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p.186, 「6장“1960년대 한국의 통계 발전과 사회에 대한 통계적 지식의 부상」중에서 포트폴리오 선택이라는 새로운 이론은 당시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사용해 온 이른바 ‘증권 분석’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특히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투자 결정 이론에 반영하는 것은 당시의 규범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리스크와 수익의 관계가 그 핵심이었고 기업의 다양한 정보보다는 증권들의 상관관계가 중요했다. 나아가 새로운 이론은 투자와 투기를 ‘효율성’을 기준으로 구분했다. 비효율적인 포트폴리오는 “더 높은 기대 (혹은 평균) 수익을 더 큰 변동성 없이 얻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낮은 평균 혹은 기대수익 없이 더욱 높은 수준의 수익을 확신하는” 효율적 투자선을 벗어나는 것이다. 마코위츠에게 투기는 인간의 욕심이나 대중 심리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증권의 비효율적인 배치일 뿐이었다. 새로운 투자 이론은 증권 분석의 창시자이자 워런 버핏의 스승으로 알려진 그레이엄(B. Graham)의 주식시장론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변덕스러운 대중의 심리를 따르는 미스터 마켓(Mr. Market)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었다. 마코위츠는 주식시장의 변덕을 증권 수익의 변동으로 환원했고 인간의 현명한 판단을 합리적 인간의 냉철한 계산으로 대체했다. --- p.208~209, 「7장“‘과학적’ 투자 담론의 냉전적 기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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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과 냉전의 시대 20세기
사회과학 지식의 생성과 확산 과정을 추적하다! 20세기 사회과학 연구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지식과 사회의 관계! 지식은 다양한 제도적 매개를 통해 사회 안에서 생산되며, 그것은 다시 사회에서 다양한 ‘실재’를 생산해 낸다. 그것은 사회적 맥락을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간 한국의 인문학계·사회과학계에 깊게 뿌리내린 통념은 과학이나 기술을 비사회적이고 비정치적인 독립 영역으로 선험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들을 역사적·사회과학적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사회과학 지식과 실천에 대해서도 지식과 사회적·정치적 맥락과의 연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미진했다. 적지 않은 연구들이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 관한 근대적 지식 주장을 다뤄왔지만, 사상사·관념사·지성사의 전통적 접근에서 벗어나지는 못해왔다. 사회과학 지식과 실천이 실제 집합적으로 생산·평가·수행되는 과정을 문제화하기보다는 일종의 블랙박스로 취급하는 데 그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지식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학은 이미 학설사나 개별 학제사를 넘어 일종의 담론사로 진화해 왔다. 이 책은 지식의 사회적 배태성을 강조한 토머스 쿤 이후 과학사/과학사회학의 연구 성과와 지식과 국가/체제 권력의 관계를 주목한 미셸 푸코의 통찰을 수용하는 맥락적인 사회과학 담론사 연구가 국내 학계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의 연구자들은 2014년 11월 제57회 전국역사학대회 과학사 분과에서 “사회과학, 근대 국가와 역사 서술”이라는 제목의 패널을 구성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과학과 근대 국가의 상호 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특집 기획의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사업단의 후원으로 조직된 이 패널에서 이루어진 발표들, 또 다른 연구팀이 냉전 지식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행하면서 2019년 ≪사총≫에 특별 기획으로 발표한 논문들, 그 외 새로이 추가된 연구가 이 책의 바탕을 이룬다. 이 책은 지식의 생산 과정에서 개인의 창의와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현실과 그에 대한 대응이 어떻게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담아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지식과 사회의 관계를 보다 유기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냉전과 발전의 근대성이 가진 전 지구적 동시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함께 드러내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글은 경제학과 사회공학, 정치학, 사회학, 통계학, 금융경제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맥락적인 ‘사회과학의 역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다. 영향력 있는 사상가, 지식인이나 대표적인 사회과학 개념들에 초점을 두고 지식의 사회적 배태성에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온 기존의 사상사·관념사·지성사 연구와 달리 지식의 조직화·제도화·사회화의 다양한 기제들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 가능함을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때로 지나치게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방식으로 논의되어 온 사회과학과 근대 국가의 상호 관계를 각기 다른 역사적 시기와 공간을 다루는 경험 연구를 통해 살펴봤다는 점도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을 통해서 맥락적이고 담론적인 사회과학사의 향후 주요 연구 영역을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먼저 냉전이 사회과학 지식 체계의 형성에 미친 영향은 이 책에 실린 글 상당수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기존 냉전 문화사 연구가 냉전의 문화적 효과에 집중했다면 이 책에 실린 냉전의 사회과학 지식 연구는 냉전의 구성적(constitutive) 효과를 환기시킨다. 사회과학 지식이 냉전 시기 개인뿐 아니라 국가로 대표되는 집단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욕망을 생산/재생산하며, 냉전적 구조를 유지시켜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제정치 이론에서의 특정한 냉전 이해의 생산(4장)은 한편으로 냉전적 사고와 구조의 반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생산된 지식은 냉전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런 동학은 국제정치학과 같이 냉전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회과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 책에 실린 글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주제는 경제개발, 발전주의, 발전국가 등으로 변주되는 발전의 모티브이다. 국내의 많은 역사학, 사회과학 연구들이 발전이나 발전주의를 직간접적으로 다뤄왔음에도 정작 지식, 담론, 실천으로서의 ‘발전’에는 별다른 분석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온 데 반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발전의 문제의식 자체가 사회과학 지식의 생산과 유통, 전유에 의해 구성되어 온 것임을 밝힌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개발계획(1장)과 사회주의권의 수리경제학적 선형계획법(2장)이나 사회공학적 시도(5장), 일제강점기의 사회조사 활동(3장)과 1950년대 통계학의 도입(6장)은 모두 발전이라는 문제의식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발전 담론이 사회과학 지식에 배태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냉전과 발전이라는 두 테마는 사회과학의 역사가 단순한 지식의 역사를 넘어 담론사로 정의되고 기존의 역사 인식 자체를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냉전과 발전이 맺고 있는 동시적 관계는 국제정치적 현상성으로 정의되어 온 냉전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사회과학 지식의 발전 양상이 발전과 냉전이라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두 궤적을 따른다는 사실은 냉전을 단순히 국제관계의 우발적 재배치에 의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또한 발전 담론이 냉전과 결합하는, 즉 오랜 기간 존속해 온 국민국가와 신생 국민국가 모두에서 냉전적 상황에 대한 돌파구로 유동성을 획득하는 과정은 발전과 냉전이라는 궤적의 습합이 사회과학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증거한다. 이 책의 인식은 향후 사회과학의 역사 연구가 기존의 학설사나 분과학문사에서 벗어나 특정한 역사적 분기를 중심으로 한 담론적-비담론적 장(field) 간의 공생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20세기 사회과학 지식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냉전 자체를 훨씬 장기적인 담론 구조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고, 이러한 위치 지정은 다시 냉전의 성격을 재규정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사회과학 지식의 역사를 장기 냉전의 담론사로 재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다양한 시공간에서 쌍형상화(co-figuration)되어 등장하는 사회과학 지식의 추이는 냉전과 발전의 근대성이 갖는 전 지구적 동시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20세기 프랑스, 소련, 미국, 중국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1950~1960년대 우리나라의 사회과학 발전에 대한 추적! 1장 “미지의 위기”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경제개발계획의 기원을 지성사적으로 추적하면서 프랑스에서의 계획화(planification)를 통시적이고 전 지구적인 맥락에서 복원하며 프랑스 특유의 개입주의 전통을 분석하고자 한다. 프랑스의 계획화는 조직화 운동과 기술관료제의 두 축을 통해 성립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용된 테일러주의와 페욜주의, 이에 기반한 다양한 조직화 운동은 ‘그랑제콜’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특유의 교육제도와 결합하여 전문관료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장은 이러한 결합의 가장 흥미로운 예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를 중심으로 성립한 “미지의 위기(X-crise)” 그룹을 검토한다. 2장 “1950년대 후반 이후 소련 수리경제학파의 성장과 그 영향”에서는 1950년대 소련 수리경제학의 발전 추이를 검토하고 있다. 소련에서 수리경제학의 발전은 1945년,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진행된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이라는 전반적 조건의 변화에 힘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조건의 변화를 정확히 인지한 수리경제 연구자들의 신속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경제 연구조직을 형성 및 확장하고 경제학 교육과정의 변화를 주도하며 주요 경제 매체들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이론적·조직적 헤게모니를 구축했다. 3장 “제국-식민지 농가경제조사의 지적 계보와 그 정치적 의미”에서는 식민지 조선에서 수행된 농가경제조사의 이론적 틀, 분류와 조사방법에 관한 검토를 통해 조사의 정치적 의미를 분석한다. 당시 농가경제조사는 러시아의 ‘소농경제론’에 기반한 일본의 조사 기법을 수용하여 진행되었는데, 특히 1930년대 초에 행해졌던 조선농회의 조사는 식민지 농업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그 당시 농가갱생계획과 자력갱생운동의 ‘객관적’ 근거로 활용되었는데, 조사 원자료의 해석은 잉여노동력을 산출하는 특정한 방식에 입각한 것이었고, 이는 다시 소재노동력 및 소요노동력의 산출 방법과 연령 및 성별 농업노동력 환산율의 결정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배경이 어떠하건, 조사에서 채택된 잉여노동력 산출 방식은 근면과 내핍을 강조하는 정신적 층위에서의 동원을 강화하고 식민지 농업의 구조적 문제를 농가에 전가하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 4장 “냉전기 국제정치 이론의 발전”에서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탄생을 지성사적 입장에서 재검토하면서 20세기에 국제관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냉전과 많은 민간 재단의 영향으로 ‘정치적 현실주의’로 습합되었음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개별 대학이나 이론가들의 역할보다 기업들이 설립한 민간 집단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특히 국제정치 이론의 성립 과정에는 록펠러 재단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 1954년 록펠러 재단이 후원한 “이론 컨퍼런스(Conference on Theory)”는 학문적 필요성과 현실적 적용 가능성을 조화시켜 국제정치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 장은 이러한 서술을 통해 현실주의가 학제적 권력으로 자리 잡는 데 냉전의 대결 구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반대로 현실주의가 냉전을 재생산·재규정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5장 “첸쉐썬의 과학기술론과 사회발전론”에서는 그 삶 자체가 냉전과 긴밀하게 얽혀 있던 첸쉐썬(錢學森)의 커리어와 사상에 대한 검토를 통해 중국에 등장한 사회공학 지식 체계를 분석하고 있다. 이 장의 분석은, 첸쉐썬의 작업이 냉전적 사회과학과 공유한 사회공학적 문제의식이 중국의 맥락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밝혀낸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첸은 “사회 노동”에 대한 인민의 효율적 동원과 관리를 위한 엘리트 조직의 형성과 이들이 주도하는 “시스템과학”에 의한 사회 조직화를 꾀했다. 이 장은 사회주의 신생국가에서 어떻게 사회과학적 지식이 상상되고 사회적 유동성을 확보하는가를 보여준다. 6장 “1960년대 한국의 통계 발전과 사회에 대한 통계적 지식의 부상”에서는 1960년대에 남한에서 공식통계가 제도적으로 확립되는 과정을 주한통계고문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추적한다. 미국의 대외원조처(ICA)와 통계자문회사 서베이스앤드리서치사(Surveys & Research Co.)의 계약을 통해 설치된 주한통계고문단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남한의 국가통계기구와 제도들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으며, 이들을 평가하고 개선안을 제시하는 여러 편의 보고서들을 생산했다. 1960년대 남한에서 전개된 통계정책 및 관련 제도 변화는 대부분 주한통계고문단의 자문에 기초한 것이었다. 주한통계고문단의 활동은 한편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냉전 질서 속에서 제3세계를 ‘인식 가능한(knowable)’ 공간으로 전환시키려는 서구중심적 지식/권력 레짐에 남한이 편입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동시에 탈식민 국가 형성 중에 이루어진 통계지식 생산의 비약적인 확대는 사회를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앎의 장치를 강화함으로써 남한에서 강한 발전국가가 형성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7장 “‘과학적’ 투자 담론의 냉전적 기원”에서는 지금도 금융경제학의 토대가 되는 마코위츠(Harry Markowitz)의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MPT)과 효율적 시장 이론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를 통해 그 냉전적 기원을 밝히고 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기원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 이론에 기반을 둔 전시경제의 운용과학을 그 기원으로 하는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과, 자유시장을 옹호했던 시카고 대학교의 신자유주의자 그룹이 구축한 효율적 시장 이론은 냉전에 대한 상반된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극복하고 금융경제학의 핵심 이론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논의는 “효율성”과 “합리적 선택”으로 대표되는 현대 금융경제이론이 냉전적 사고의 산물임을 지적하면서 이를 계승한 오늘날 금융 체제의 “가치중립적 과학성”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